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예상했던 대로 졌다. 졌지만 그녀의 ‘패배 인정’으로 주가가 다시 오르고 있다. 워낙 감정적으로, 워낙 신랄하게 이명박 후보와 싸움을 했던 탓일까? 박근혜의 ‘패배 인정’은 사람들에게, 특히 언론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 같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이 절대적으로 어렵다던 탄핵이후 총선에서 비록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확보를 저지하지 못했지만, 제1야당으로 예상 밖으로 선전하여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번 대선 예비경선에서도 압도적인 표차이로 질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과는 달리 ‘근소’하게 져서, ‘역시 박근혜’라는 인상을 심는 것에 성공했다. 어느 덧 박근혜의 특징은 ‘케이오 패배가 예상되었으나, 근소하게 판정패하는 사람’으로 되었다. 박근혜는 싸움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 희한한 사람이 된 것이다.
언론에서는 박근혜 예비후보가 “백의종군”하겠다는 말을 근거로 이명박의 선대위원장 자리를 사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선거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 본인의 의견이다. 특히나 선대위원장이라는 직책은 후보와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측면에서 후보 본인의 판단이 가장 많이 개입하는 중요한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언론에서 박근혜의 선대위원장 여부가 중요하다고 추정하는 근거일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이명박 후보가 박근혜 예비후보에게 선대위원장 자리를 제안하지 않는다면 언론이 왜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때는 박근혜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전혀 없다. 만일 이명박 후보가 선대위원장 자리를 제안한다면 정반대의 결과이다. 박근혜 로서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갖게 된다. 선대위원장 자리를 수락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예비후보의 경선패배 인정의 효과는 사그라진다. 필자가 판단할 때 이명박으로서는 박근혜에게 무조건 선대위원장을 제안할 것이다. 설사 박근혜가 선대위원장을 수락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핵심적인 역할들은 어차피 후보자신과 캠프의 측근들이 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으로서는 향후 당 조직의 여러 사람들을 포용해야 하고, 당 내에서 자신의 조직기반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다.이런 판단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선대위원장을 제안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판단이 전혀 없거나 독불장군이라는 두가지 중의 하나라 이명박에게 무조건 불리한 것이다.
박근혜의 향후 노림수는 두 가지로 집중된다. 하나는 당내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굳건하게 지켜내는 일이다. 또 하나는 ‘차기 후보는 박근혜’라는 이미지를 국민대중들이 자연스럽게 인정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녀는 아직 젊다. 충분히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박근혜가 당내에서 조직 기반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그렇게 녹녹치 않다. 이명박으로서는 당에서는 지고 국민여론에서 이긴 상황이라 사실상 ‘국민경선’이 아니었다면 후보로 선정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식 선거는 ‘당’에서 진행한다. 반드시 당내 입지를 굳건히 해야 한다. 이명박으로서는 현재 당내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을 주요 포스트에 심는 일이다. 박근혜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든 박근혜는 공식적으로 이명박 중심 체제를 인정하면서도 내부적으로 지속적인 파열음을 제기할 가능성이 많다. 특히나 내년의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검토될 것이다. 아마도 선대위원장 수락 협상에서 이같은 영역에 대한 개괄을 합의할 가능성도 있다. 세부적으로는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종의 ‘대강의 틀’에 대한 합의를 할 수가 있는 데, 이것 또한 선거가 진행되면서 갈등의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박근혜의 당내입지는 확실하게 축소될 것이기 때문에 박근혜로서는 선대위원장 수락에 따른 여러 조건들에 대해 대선이후 효력이 지속될 합의문의 형식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로서는 당내입지를 절대 반대급부 없이 넘겨 줄 수가 없는 것이다.
경선패배 인정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전달했다. 박근혜는 네거티브만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어느 정도 불식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어쨌든 박근혜 본인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사실 별로 없다. ‘대통령의 딸’이라는 수식어는 항상 앞에 ‘독재’가 연상된다. 반면 이명박은 ‘경제개발’, ‘경영마인드’ 등등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앞으로 박근혜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 혹은 ‘룰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내용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갈 공산이 크다. 지금껏 박근혜에게 따라붙은 부정적 이미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가 향후의 박근혜를 담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마도 반드시 진행될 것이다. 한나라당이라는 조직적 기반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산하는 노력은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다만 이같은 과정이 박근혜 본인의 의지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박근혜는 본인의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 보다는 다른 사람의 한계를 등에 업고 다른 사람의 한계를 이용한 어부지리를 최대한 활용하는 면에서 탁월했다. 자신의 고유 이미지가 없는 박근혜는 국민들에게 다가설 수 없다. 박근혜의 다음목표는 분명히 이점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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