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학력보다 더 큰 문제가 있으나 잘 거론되지 않고 있다. 실제 학위가 있고, 실제 학교를 졸업했으나 전혀 실력이 없는 사람이 그들이다. 학력은 최소한 검증할 방법이나 있다. 실력은 도대체가 눈으로 확인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확인이 된다. 그것도 ‘주관’이네, ‘편견’이네 하는 말로 매도당하기 일쑤고, 학위를 받았다는 것으로 무마가 된다. 한마디로 말해 오직 학력에 의해 모든 것이 인정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선 전혀 지적되지 않고 있다.
학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정한 기간 일정한 주제를 공부했다는 뜻이지, 향후 다가올 새로운 환경, 새로운 영역에 대해 그 사람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다. 즉 학위는 이미 알려진 지식을 공부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증표이다. 인류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거나 지대한 공헌을 하는 사람들에게 학위가 그토록 중요한 문제였던가?
학위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위문제는 늘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학위를 속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이다. 둘째는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학위가 없고, 학벌 없는 인재가 자신들을 뛰어넘는 세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은 항상 동시에 존재한다. 동시에 존재하지만 한 가지 문제는 늘 수면위로 나타나고, 다른 문제는 늘 수면 밑에 잠복해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 두 가지 문제는 결국 한 가지 문제임을 알게 된다. 학위 없는 사람들이 학위를 속여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사회가 학력위주의 사회요, 학벌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학벌 있는 사람들만 독식하는 소위 ‘승자독식’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니들만 잘 살거냐?”라는 암묵적인 정서가 밑에 깔려 있다.
학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학벌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깨닫게 된다. 그들은 말없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킨다. 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학위 자체가 큰 자산이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는 담보이다.
학위를 갖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검증체제, 학위를 갖지 않은 사람에 대한 등용체제가 없는 상태에서 학위를 강조하는 것은 기득권유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학벌사회]라는 책에서 김상봉 교수는 이를 “권력”의 문제로 지적했다. 학벌권력은 어떤 견제장치도 없이 줄곧 재생산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전여옥의원이 대변인 하던 시절에 소위 “대통령은 대졸출신이어야 한다.”는 발언으로 꽤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당사자는 “진의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한나라당 부대변인이었던 김명주 의원은 “박근혜 대표가 사과하라.”고 주장할 만큼 당 내부에서도 많은 반발을 초래했다. 즉 우리나라에서 학벌에 대한 옹호는 절대 공개적으로 할 수 없다. 학벌권력의 유지는언제나 비공식적인 차원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학벌을 속인 것이 죄악인 이유는 실력을 속이려 했기 때문이다. 실력은 충분한데 다만 학벌이 모자라 학벌을 속였다면 그는(혹은 그녀는) ‘컴플렉스’가 있다고 봐야한다. 학벌은 있으나 실력을 속인 사람은 ‘사기꾼’이다. 학벌보다 실력을 가장하거나 속이는 사람이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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