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민영화된 전쟁

파랑새호 2009. 1. 21. 16:54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츠츠미 미카 지음, 고정아 옮김, 문학수첩, 2008년

 

 

책의 저자 츠츠미 미카는 미국 노무라 증권에서 근무하다가 9 ․ 11 테러의 순간을 바로 옆 건물에서 봤다. 저자가 볼 때 9 ․ 11 테러 이후에 맨 처음 희생된 것은 바로 ‘저널리즘’이었다. 저자는 그때부터 노무라 증권이라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저널리스토로 ‘전향’했다. 이후 사람들에게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민영화된 전쟁’의 실상을 알리고, 일본 헌법의 제9조( 1항 ;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바탕으로 진심으로 국제 평화를 염원하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국권 발동에 의한 전쟁, 무력 위협 또는 무력행사를 포기한다.'고 명시. 2항 ; '전 항의 목적을 달성키 위해 육해공군과 그 밖의 어떤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를 지키는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책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허덕이는 사람들, ‘고가의 진료비’로 파산하는 사람들, ‘학자금 대출’과 ‘일자리 부족’으로 신용불량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을 아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르포’라는 형식이다. 책에서 등장하는 사례가 구체적이면서, 너무나 실감 나기 때문에 그냥 자체로 다가온다. ‘미국이라는 나라도 서민들이 살아가기에는 엄청나게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현재 미국이 세계적으로 진행한 전쟁의 실상을 전달한 것에 있다.(‘민영화된 전쟁’) 지금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전쟁은 ‘이라크 전쟁’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정부가 가난으로 내몰린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약간의 돈을 이용해 진행된다. 미국은 낙오학생 방지법’을 이용해 군 모병관이 입영을 권유한다. 입영하는 학생들의 가장 큰 이유는 ‘학비면제’와 ‘의료보험 제공’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막상 예산삭감으로 진료를 받기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미국의 징병제도는 신자유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경제적인 징병제”로 변질되었다.

 

2007년 1월에 ‘희망법안’(Dream Act 2007)이라는 새로운 이민법을 개정하였다. 핵심내용은 불법이민자에게도 군에 입대를 하면 시민권을 준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민정책연구소’에 의하면 이상적인 병역 연령(18세~24세)에 있는 불법 이민자수는 28만 명이다. 이들은 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입영하는 길이 곧 사는 길로 간주된다. 징집은 주로 ‘모병관’이 하게 되는 데 “이라크 전쟁은 상당히 오래전에 종결되었다”고 학생들에게 허위 권유한다. 이렇게 해서 미국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이라크에 간다.

 

주로 가난한 학생들이 많은 공립 고등학교에는 ‘JROTC’가 있다. 연간 180시간, 4년간 총 720시간의 군사훈련이 있다. ‘JROTC'의 장점은 툭하면 학교를 쉬는 학생도 계속 학교를 다닐 수 있다. 수업을 받은 학생의 40퍼센트가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하고, 그중 80퍼센트는 제일 먼저 최전선에 배치된다. 마이너리티 청소년의 부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은 연 8.5퍼센트의 이자를 내야한다.(한국은 현재 7.3퍼센트이다.)거의 대부분 졸업하면 각종 청구서와 빚이 남는다. 미국 내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의 파산건수는 1991년 61만건에서, 1999년에는 110만 8천건으로 증가한다. 미국 전체 파산건수의 7퍼센트이다. 학자금 대출 상환 면제 프로그램은 이런 젊은이들을 군에 입대시키기 위한 것이다. 군에 들어가면 빚에서 해방된다는 그럴싸한 권유가 있게 된다. 이들은 거의 대부분 최전선에 배치되면서 1년넘게 근무하다 돌아오는데 PTSD(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린다. 영국의 의학잡지 <란세트>에 의하면 2007년 8월 시점에서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병사의 사망자는 3,666명, 그중 5퍼센트에 해당하는 188명이 자살을 했다.

 

미국은 또 민영 회사에서 전쟁을 수행한다. 일자리가 없어진 사람들에게 직업을 주고, 월급을 준다는 그럴싸한 명분으로 군인을 모집한다. 대표적인 회사가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사’(KBR, Kellogg Brown and Root)로 전쟁 파견 업체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 회사를 통해 이라크에 갔다.

 

제3국의 노동자들도 미군의 전쟁임무 수행에 파견된다. 일반 시민 희생자 중 3분의 1이상이 제3국의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몇 층으로 겹겹이 하청을 한다. 예를들면 미국의 부통령 딕 체니가 운영하는 ‘헬리버튼’이라는 회사는 ‘KBR'에 하청을 주고, ’KBR'은 유타 주에 있는 ‘이벤트 소스’사에 하청을 주고, ‘이벤트 소스’사는 ‘알라간 그룹’이라는 회사에 하청을 주고, ‘알라간 그룹’은 ‘걸프 케이터링’이라는 회사에 하청을 준다. 필리핀 노동자가 ‘걸프 케이터링’회사의 파견직원으로 전쟁에 참여했는 데, 여권을 몰수당한 상태에서 인권을 무시당하기 일쑤이며, 살해되는 경우도 많다. 현재 헬리버튼사와 그 하청을 받는 민간 전쟁 청부회사는 전세계적으로 500개 사 이상이다.

 

“이제 징병제 따위는 필요없습니다. 정부는 그저 격차를 확대시키는 정책만 잇달아 내걸면 되거든요.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국민은 잠자코 있어도 알아서 전쟁터로 향하니까요. 이데올로기를 위해서가 아닌 생활고 때문에요. 어떤 사람은 병사로 또 어떤 사람은 전쟁 청부회사의 파견사원으로 거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전쟁 비즈니스를 지탱하게 되는 거죠. 윤택해진 대기업은 그 자금력으로 정부의 중추에 있는 사람들을 지원합니다. 전쟁은 국경을 초월한 거대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189쪽)

 

이제 프롤레타리아는 생존을 위해 전쟁터에 가야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국의 프롤레타리아를 죽여야 하거나 죽이는 일을 도와야 한다. 그리고 다시 프롤레타리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전쟁전과 비교하여 각종 질병의 후유증이 남아있는 프롤레타리아로 변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