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경제학의 역사(갈브레이드)

파랑새호 2009. 4. 22. 11:48

[이코노미스트]라는 잡지의 보도에 의하면 아마존 닷컴에서 경제학자 갈브레이드의 책이 베스트셀러이다. 지금까지 갈브레이드의 책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1958년도에 처음 출판된 ‘풍요한 사회’(The Affulent Society)이다. 여기에 최근의 경제위기 등으로 인하여 ‘대폭락, 1929’(The Great Crash, 1929)이라는 책 판매가 급증했다고 한다. 아마존 닷컴에서 갈브레이드의 저서 중에 많이 나가고 있는 책 10권을 리스트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갈브레이드는 33종류의 책을 저술했다. 그중에서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책은 ‘불확실성의 시대’, ‘풍요한 사회’, ‘대폭락, 1929’, ‘경제학의 역사’ 등 4권이다. 나는 위 4권중에서 ‘풍요한 사회’라는 책과 ‘경제학의 역사’라는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물론 요즘 미국에서 잘 팔리고 있다는 ‘대폭락, 1929’라는 책도 좋겠으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별로이다.(‘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대폭락 1929’는 1929년 뉴욕 주식시장 대폭락을 둘러싼 당시의 언론보도와 당시 정부의 정책 흐름을 거론하면서, 특히 금융회사와 금융업자들의 말, 경제학자들의 말은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입증한다. 책을 읽다보면 ‘어빙 피셔’라는 통화주의 원조 경제학자와 ‘하바드대학 경제학부’는 애처로운 생각마저 들게 한다. 특히 ‘어빙 피셔’는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직전까지 “주가가 저평가 되어있다.”고 주장하여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다. 갈브레이드는 결국 주식시장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깨라고 주장한다. 책을 읽다보면 갈브레이드가 주식이나 경제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투기적이며, 주식투자를 통해 손해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의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 갈브레이드의 속뜻이다.

 

'풍요한 사회는' 자본주의 성장 동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한다. 갈브레이드가 이 책을 처음 썼을 때는 제2차세계 대전이후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표현되는 시기이다. 본격적인 자본주의 성장이 진행되면서, 광고, 할부 제도의 폐해, 환경오염의 폐해에 대해 상당히 많은 양의 서술을 하고 있다. 한번쯤 읽어볼만하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경제학의 역사]이다. 경제학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문외한인 사람들은 처음 읽을 때 약간 어려울 수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장 혜택을 받는 사람은 아마도 경제학을 전공하거나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물론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경제‘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봐야 여건상 경제학 개론을 읽는 수준에 불과했다. 보다 체계적인 공부가 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갈브레이드의 책 외에도 ‘하일브로너’ 라는 사람이 쓴 ‘세속의 철학자들’이라는 책이나, 일본인이 쓴 ‘세계사를 지배한 경제학자 이야기’ 등의 책도 읽어보았다. 무언가 겉을 한번 쓱 훑고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다. 이런 면에서 갈브레이드의 책은 단연 내용의 폭과 깊이가 압도적이다. [경제학의 역사]를 이해가 될 때까지 읽다보면, 지금까지 잡다한 사람들이 제기한 경제학 이론이 한꺼풀씩 벗겨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드디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무언가 머릿속에서 실타래가 풀어지는 느낌을 맛본다. 아마도 부분 부분 다시 읽은 것을 제외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4번은 읽은 것 같다. 어렵기도 하고, 읽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는 나의 돌머리 때문이다. 어쨌든 완전히 이해한 후에 읽고나면, 대학 다닐 때 ‘보케빌러리 22000’을 완전히 외웠을 때의 그런 성취감을 맞본다. 처음 공부했을 때는 중간 쯤 가다보면 앞의 단어가 다 잊어지고, 두 번째 볼 때는 삼분의 이쯤 가다보면 또 앞의 단어를 까맣게 모르겠고, 세 번째 볼 때 비로소 책 한권 전체가 머릿속에서 살아나고 있다는 그런 성취감과 비슷했다.

 

갈 브레이드의 사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과 대안경제학 모색하기’로 판단한다. 그는 스스로를 ‘제도학파’로 명명한다. 갈브레이드 자신의 규정에 의하면 제도학파란 경제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한다.

 

     경제학의 결함은 그 개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낡은 개념을 수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일종의 퇴화현상 때문이니 말이다. 편리한 것은 절대 침범해선 안된다는 사고방식이 이런 퇴화현상을 가져왔다.(18쪽)

     경제학자는 가령 화학자나 물리학자가 하듯이 영원의 진리를 추구 ․ 발전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경제학이 다루는 각종 제도는 끊임없는 변형과정에 있고 이에 대해 경제학은 특히 그것이 주장하는 정책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적응과정에 있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논쟁이다.(119쪽)

     고전파나 신고전파 경향을 가진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정된 불변의 규범이 여전히 존재한다. 경제생활은 중도의 방해나 간섭이 어떠하든간에 이 규범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지배적인 경향이 있다. …… 중략 …… 이것과 대립하는 견해는 계속되는 변화를 믿고 이러한 변화에 경제학자도 경제학설로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유산이다. 이러한 견해에서 본다면 경제 제도는 모두 움직이고 있고 또한 움직임의 원천이다.(163쪽)

     오늘날의 미국 경제학은 고전파와 제도학파로 나뉘어 있다. 불가피하고 고정된 균형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과학적 정확성은 그다지 주장하지 않으면서 진화하고 계속 변하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다. 제도학파 사상의 하나의 원천은 헤겔 -그리고 마르크스-의 세계에 있는 독일이다.(163쪽)

 

갈 브레이드에 의하면 제도학파는 “엄격한 고전이론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적인 개혁에 대해 개방적”이며, ‘베블런’에서 유래하여 ‘엑스포드 기이 터그웰’이라는 사람의 [경제학의 추세]에서 본격화되었다. 특히 갈 브레이드는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와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에 대해 가장 미국적인 특색을 나타낸 두 사람 으로 평가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노동자의 빈곤을 수긍하지 않았으며, 주류경제학이나 맑스 경제학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다. 즉 경제학 영역에서 좌․우파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내세운 사람이다. 진보적이지만 맑스주의로부터 독립된 사람인 셈이다. 베블런에 대해서는 “새로운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로 언급하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갈브레이드가 진보적이지만 비 맑스주의적 경제학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 결론 내렸다.

 

갈 브레이드는 책 전체를 일관하여 고전파 경제학, 신고전파 경제학, 통화주의 경제학(신자유주의)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한다. 여러 사람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했지만, 맑스주의 경제학 외부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것은(‘나의 기억속에’라는 단서를 붙이면) 장하준의 [사다리걷어차기]가 있다. 이미 갈브레이드는 훨씬 이전에 일목요연하게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반에 대해 비판한 셈이다.

 

[경제학의 역사]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최근의 경제 상황과 관련하여 관심을 갖는 경제학자는 아마도 케인즈와 밀튼 프리드만 아니겠는가? 두 사람에 대해 갈 브레이드가 어떻게 평가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갈 브레이드는 케인즈를 평가하기에 앞서 미국의 대불황에 대해 고전파 경제학이 전혀 대응할 수 없었다고 강조한다. 다음과 같은 표현을 보라.

 

     이러한 사태의 어느 것에 대해서도 정통 고전파는 대응할 수가 없었다.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하자면, 이론적으로는 경제는 완전고용수준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하고 완전고용하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요의 흐름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세이의 법칙이다. 일시적인 수요 부족은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용인했다. …… 중략 …… 중앙은행의 조치를 통해 금리를 인하하는 정도의 일은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 중엽에 금리는 거의 명목적인 수준까지 이미 떨어져 있었다. 금융적 방법으로 대부와 투자를 촉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274쪽)

 

그리고 케인즈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o 케인즈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현대 경제는 반드시 완전고용 수준에서 균형을 이룬다고 할 수는 없다. 실업을 수반하면서 균형을 이루는 일은 있을 수 있다. 불완전 고용 균형이 그것이다. 세이의 법칙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즉, 수요 부족은 있을 수 있다. 정부는 이것을 극복할 조치를 취할 수가 있고 또 그렇게 해야한다. 건실한 재정 제일주의는 이러한 조치의 필요성에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완전고용 균형, 세이의 법칙의 부정, 그리고 수요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 수입의 지원 없이 정부가 지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 - 이러한 것이 케인스 이론 체계의 요점이었다.(275쪽)

     o 일반이론의 주요한 논점의 하나는, 세이의 법칙이 규정한 것처럼, 모든 소득이 재화 ․ 용역에 대한 수요라는 형태로 환류된다고는 기대할 수 없고, 소득의 일부는 사용되지 않는 저축이나 투자되지 않는 저축의 형태로서 유입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286쪽)

     o 중요한 문제는 생산량 ․ 고용의 수준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것이다. 생산량 ․ 고용 ․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소득의 추가적인 증가분에서 발생하는 소비는 감소한다. 즉 케인즈의 역사적인 공식화에 따르면 한계 소비 성향은 저하한다. 다시 말해서 저축이 증가한다. 금리의 인하로 이러한 저축은 투자될 것이다. 즉 지출될 것이라고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주장했으나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저축은 지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개인이나 기업이 유동자산에 대한 필요나 욕구를 반영하는 여러 형태의 예방행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케인스는 사람들의 이러한 필요나 욕구를 유동성 선호라고 이름 붙였다. 만일 수입을 저축해 지출하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재화 ․ 용역에 대한 수용의 총계, 즉 총 유효수요와 산출량과 고용을 저하시킨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저축이 저하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소득이 감소함으로써 높아지는 한계 소비 성향에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억지로 압력을 가할 때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투자 지출의 수준은 저축만큼 급속도로 저하하지 않기 때문에, 투자 지출이 저하한 저축을 흡수하게 된다.(287~288쪽)

     o 케인즈 이론에는 또 한가지의 깜짝 놀라게 하는 주장이 있었다. 고전파 이론에 따르면, 직업을 바꾸는 중의 노동자나 기능과 자격이 부적격해 실업자가 된 사람들을 별도로 친다면, 실업이 일어나는 원인은 임금이 너무 비싸거나 경직적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과 그들의 지나친 요구가 실업의 명백한 원인이다. 노동자를 늘림으로써 생기는 수익, 즉 노동력 증가의 한계수익은 필요한 임금을 모두 지불할 수 없다. 어떠한 저항이 있더라도 임금을 내리면 실업중인 노동자는 다시 복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엇다. 이러한 생각은 케인즈 때문에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케인즈 이론의 큰 의의가 있다. 개개인의 자본가에게 진실인 것이 자본가전체에게 반드시진실인 것은 아니다. 실업이 존재하는 시기에 일반 자본가가 임금을 낮춘다면 구매력의 흐름, 즉 유효수요의 총합은 임금 인하와 보조를 맞추어 감소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효 수요의 감소가 실업을 증가시킬 것이다. 실업을 고임금이나 노동조합의 잘못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게 됐다. (289쪽)

     o 정부는 자체적인 수정 능력으로 사태가 개선될 것을 더는 기대할 수만은 없었다. 불완전고용 균형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일 수도 있었다. 정부는 더 이상 실업으로 임금이 내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더 낮은 생산량 ․ 고용 수준에서 균형이 이루어질 우려가 있었다. 저금리가 투자와 투자 지출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기대 할수도 없었다. 아마도 저금리는 유동성 선호를 조장할 뿐이다. 매우 적은 이윤을 얻기 위해 현금을 갖고 있을 때의 이점들을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지당한 예로 그 당시의 경제 상황은 명백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즉, 그 당시의 대단히 낮은 금리로는 투자를 자극할 수는 없었다. 과잉 설비 능력이 크고 수익의 전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아있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투자 지출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개입, 즉 정부가 차입해서 공공 목적을 위해 지출하는 것이었다.(289쪽)

     o  케인즈는 자본주의에서 불황과 실업의 악몽을 제거했다. 적어도 이것이 그의 의도였다. 이렇게 해서 케인즈는 자본주의가 설명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일면, 그리고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자본주의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없다는 일면을 제거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 또는 거의 전부였다. 이렇게 보면 케인스 혁명은 제한된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도 상당히 보수적인 것이다. (291쪽)

 

신자유주의 이론의 주창자 밀튼프리드만에 대한 평가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튼 프리드만의 주장에 따르면 물가는 수개월 간의 시차를 두고 늘 화폐공급량의 동향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화폐 공급량을 억누르면 - 화폐 공급량의 증가를 피셔의 역사적인 방정식에서 T 에 상당하는 거래액 수준으로 제한하면- 물가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프리드만은 자신의 주장을 과장되게 표현했다. 대부분의 통계적 관계가 그런 것처럼,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이며 무엇인 우연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다. 물가나 거래량이 변한 것이 화폐 공급량의 변화를 불러일으킨 원인이었을지도 모르고, 또 화폐 공급량과 물가의 경제학적인 관계도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여기에 대해 프리드만은 자연과 자연과학의 분야에서도 여러 관계들이 충분한 설명이 없는 채,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드먼의 처방전에는 한층 더 중대한 난점이 있다. 현대 경제에서는 무엇이 화폐인지를 누구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금통화와 당좌예금이 화폐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수표를 끊을 수 있는 저축성 예금이라든가, 즉각 당좌예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저축성 예금의 경우는 어떠한가, 또 신용카드나 미사용 신용 한도 등에 감추어져 있는 구매력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그리고 아무리 자의적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화폐라고 생각하는 것의 총량은 실제로 통제가 가능한가? 이것은 그 뒤에 통제가 불가능한 것임이 드러났다. (335쪽)

     통화주의,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금리를 통한 소비자 지출과 기업투자의 억제효과가 작용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심각한 경기침체를 야기했다. 이러한 치료책은 치료받는 병의 증세보다도 작은 고통은 아니었다. (338쪽)

     화폐 정책과 고금리로 유발된 실업이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약화시킨 것은 당연했다. 정통적 경제학자들은 실업이 임금 수준을 낮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고전적인 완전고용이 실현되는 것은 그러한 방식에 의한 것이었다. 노동조합은 그 조정 과정상 하나의 저항 세력에 불과했다. 만일 실업이 심각해지면 노동조합은 양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339쪽)

 

갈 브레이드는 밀튼 프리드만에 의해 “케인즈 혁명은 끝나 버렸다.” 고 평가하고 “경제학의 역사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 시대는 밀턴 프리드먼 시대에 양보했던 것이다.”고 결론내렸다.

 

갈브레이드는 고전파 내지 신고전파적 경제학 전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다음의 4가지를 지적했다. 핵심은 바로 ‘기득권’에 있다.

     1) 지적 기득권

     2) 현실로부터의 기술적인 도피 ; 배타성 ; 그것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지만, 침입자나 비판자는 기술적으로 자격이 없거나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배제된다. 살아 있는 경제현실에서 배제당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문제다.

     3) 경제적 기득권 ; 과거와 같은 노자 모순이 아니라 경제적 기업과 국가 간의 모순이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은 이미 영리기업의 주요한 적이 아니다.

     4) 고전파 경제학은 경제와 정치에서 권력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영속하게 될 것이다. ; 탈정치적 색채로 위장하면서 실제로는 정치적인 편향. 모든 것을 ‘시장’으로 돌리는 방법. 모든 사람이 권력은 사실상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데도 권력은 원칙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

 

이와같은 관점은 필연적으로 현대 경제를 바라볼 때 오류가 발생한다. 경제학의 오류는 다음과 같은 원인을 갖고 있다.

     1) 경제학이 정치와 분리된 점(알프레드 마셜이후)

     2) 화폐정책이 정치적 ․ 사회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신념.

     3) 경제학 자체가 수행하는 정치적 역할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도 잘못된 점이다. ; 경제적 권력과 경제적 동기라는 현실을 은폐하는 것.

 

갈 브레이드는 경제학이 정치학과 재결합해 정치경제학이라는 더 커다란 학과를 다시 형성해야 한다는 바램으로 결론을 내린다. 참으로 위대한 경제학자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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