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파랑새호 2009. 7. 9. 12:26

 

막스 베버의 책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은 많은 사람들이 읽기 어렵다. 자본주의 초기 프로테스탄트의 중심사상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용어조차도 생소하다. 더군다나 나처럼 독일어 모르는 사람은 한국어 번역본을 볼 수밖에 없는데, 번역된 문장이 일반적인 한국말하고 비교할 때, 대단히 생소하다. 번역이 잘못된 것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직역’에 충실했기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본다. 이런 요인들이 책을 어렵게 만든다.

 

막스베버는 우선 벤저민 프랭클린의 긴 문장을 인용하면서 “인간은 돈벌이를 자신의 물질적 생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 자체로 여기는 것이다.”고(38쪽) 설명한다. “화폐취득은 -그것이 합법적 방법으로 얻어진 것인 한- 근대적 경제 질서 안에서 직업상의 유능함의 표현이며 이 유능함은 쉽게 알 수 있듯이 프랭클린 도덕의 실질적인 알파이자, 오메가이다.”(39쪽)는 것이다. 막스베버가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성립할 때 ‘돈벌이’에 대한 사상이 필연적으로 사람들에게 발생했다는 점에 있다. 막스베버는 이 사상의 내용을 충족시켜준 것이 다름 아닌 프로테스탄트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막스베버가 볼 때 자본주의는 그 이전시기의 봉건제(막스베버는 ‘전통주의적 경제’라고 표현한다.)와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자본주의는 봉건제 내에서 상업의 발달, 도시의 발달에 의하여 맹아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선대제, 매뉴팩처 등을 거쳐 성립한 기계제 대공업의 사회이다. 즉 자본주의가 성립되는 것은 바로 선대제부터이다. 막스베버는 이 선대제 자본주의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업자들의 순수한 상업적 성격, 영업에 자본이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는 사실, 경제적 과정의 객관적 측면, 부기방식 등을 본다면 이 선대업은 모든 점에서 [자본주의적] 조직 형태였다. 그러나 이 업자들을 지배하던 정신을 본다면 그것은 [전통주의적] 경제였다. 즉 전통적 생활태도, 전통적 이윤율, 전통적 노동량, 전통적인 방식의 경영, 노동자 및 본질적으로 전통적인 고객군, 고객위치, 판매방식 등에 대한 관계의 전통적 성격 등이 영업을 지배했고, 이러한 업자들의 ‘에토스’를 근거 짓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온함은 …… 중략 …… 갑자기 파괴되었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즉 선대업에 종사하는 어느 가족의 한 청년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내려와 자신의 필요에 맞는 직물공을 엄선하고, 그들의 의존성과 통제를 점차 강화시켜서 그들을 농민에서 노동자로 교육시키는 한편, 다른 면으로는 최종 구매자인 소매업자와 가능한 한 직접 접촉하여 판매를 손수 행하며, 고객을 직접 구하여 그들을 매년 규칙적으로 방문하여 특히 생산물의 품질을 전적으로 그들의 요구와 희망에 적응시키고, 그들의 [구미에 맞게]하는 동시에 [박리다매]의 원칙을 실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그러한 [합리화]과정이 수반하기 마련인 결과가 여기서도 즉시 나타났다. 즉 상승하지 못하는 자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자 목가적 분위기는 붕괴하고, 상당한 재산이 모아져도 이자를 노리는 대부로 사용되지 않고 재차 사업에 투자되었다. 안락하고 쾌적한 옛 생활방식은 박정한 냉혹함에 굴복했다.”(50쪽)

 

막스베버는 위의 문장에서 [합리화]를 자본주의 정신으로 규정한다. 지금의 용어를 빌리면 슘페터의 ‘혁신’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생산성 증가’, ‘유효수요 창출’ 등도 가능하다. 통칭하여 ‘경영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막스 베버에게 근대 자본주의 추진력에 대한 문제는 “우선 자본주의적으로 사용 될 수 있는 화폐재고의 원천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에 대한 문제”가 된다.

 

 

최근에 발간된 강상중의 책 [고민하는 힘]에서는 막스베버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 막스베버는 서양 근대 문명의 근본원리를 ‘합리화’로 보고 그것을 통해 인간사회가 해체되고 개인이 등장해서 가치관과 지식의 모습이 분화해 가는 과정을 해명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구원받기 힘든 고립의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고민하는 힘] 서장 21쪽) …… 중략 …… 막스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자본주의의 기원이 인색함의 철학이 아니라 오히려 금욕적인 에토스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같은책, 54쪽)”

 

자본주의 정신을 촉발시킨 요인은 무엇인가? 막스 베버가 볼 때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이었다. 그렇다면 칼뱅주의, 메서디즘, 침례교파 등으로 불리우는 프로테스탄트의 여러 종파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무엇인가?

 

프로테스탄트는 우선 예정설이 특징이다. 예정설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막스베버의 표현을 빌리면 “세계는 오직 신의 자기 영광에 봉사하도록 정해져 있고, 선택된 기독교는 오직 신의 율법을 집행하여 세계에 신의 영광을 각자의 몫만큼 증대시키도록 정해져 있다.”(84쪽) 중세의 수도원과는 달리 이런 신앙에서는 “사회적 효용을 위한 노동이 신이 영광으로서 장려되고 또 그러한 것으로 신이 의욕한 것임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84쪽) 인간의 운명은 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운명은 이미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벗어날 수는 없다. 오직 노동을 통해서 신의 선택에 응해야 한다. 오직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면 나의 삶이 예정된 삶이라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프로테스탄트에게 있어서 이같은 확신은 “참된 신앙을 통해 결과된 지칠줄 모르는 신뢰”가(85쪽) 강조된다. 즉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 모든 운명은 “신의 은총에 의해 결과된 신앙에서 유래하고, 다시 이 신앙이 그 행위의 특징을 통해 신의 결과로 정당화”된다.(88쪽) 이리하여 신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90쪽) “자신의 구원을 스스로 창조한다.”(90쪽)

 

이와같은 신앙의 내용에 대해 결정적인 것은 “일치하는 생활방식”에 있다. 프로테스탄트가 중세의 가톨릭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점은 ‘고해성사’와 같이, 죄를 사해 주는 행위와 구원의 희망을 베풀고 면죄의 확신을 심어주는 행위가 없었다는 점에 있다. 즉 프로테스탄트에게서는 모든 생활에 걸쳐 “행동에서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서”, “모든 것은 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 매순간 확신하는 행위가 있어야 했다. 지속적인 반성과 철저하게 합리화되고 윤리적인 삶이 필요했던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는 이것을 노동에 기초한 금욕생활로 정당화했다.

 

막스베버에 의하면 원래 중세 수도원의 금욕생활은 “세계와 자연에 대한 의존을 탈피케 하여, 계획적 의지의 우선성에 부속시킴으로써 그의 행위를 지속적인 자기통제와 그 행위의 윤리적 효과의 숙고 아래 두는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에게는 이것은 경멸의 대상이었던 “귀족출신의 주교와 관리들의 자제를 잃은 법석”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뚜렷이 의식된 청명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금욕주의는 “사람의 생활방식에 질서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또한 중세의 수도원과는 달리 프로테스탄트의 금욕주의는 세속적 직업생활에서 신앙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수도승의 탈세속적인 종교적 귀족주의를 영원한 과거로부터 신에 의해 예정된 성도들의 세속적인 종교적 귀족주의로 대체”(95쪽)한 것이다. 지속적인 자기 검열,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적 규제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은 “한편으론 직업에 충실한 관리, 종업원, 노동자, 가내공업자 등을 발전시키고, 다른 한편으론 주로 신을 만족시키는 겸손한 태도의 가부장적 고용주를 발전시켰다.” 바야흐로 노동은 운명이며, 신의 축복이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상이 성립된 것이다.

 

우리는 여러 역사적 사실을 통해 초기 자본주의 노동자들의 반인간적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하루 14시간 이상의 노동은 기본이었거니와 어린아이의 노동도 많아서 맑스의 자본론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입법의 과정이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테스탄트는 육신의 힘든 노동을 신의 구원으로 바꾸면서, 힘든 노동이 변할수 없는 축복받은 운명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신의 축복이다. 낭비는 죄악이다. 돈을 버는 행위가 축복인가 아닌가의 기준은, 프로테스탄트에게 있어서 ‘합법적이냐 아니냐“에 있다. 즉 당시의 법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노동과정을 꾸렸다면 노동시간이 길건, 어린아이가 노동을 하건 그것은 모두 신을 믿는 자들이 행해야 하는 신앙이었던 것이다. 장시간 노동은 당연히 금욕을 전제로 한다. 눈을 뜨면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문화활동이라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금욕생활은 신으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의 표식이 되었다.

 

이리하여 “프로테스탄트는 합리적인 부르주아 경영과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를 수행했다.”(132쪽) 이것은 분명 봉건귀족을 그 뿌리로부터 흔드는 것이었다. “마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의 계급적 도덕과 반권위적인 노조연맹에 반대하여 노동을 원하는 자를 보호하는 것처럼, 군주적이고 봉건적인 사회는 발흥하는 부르주아의 도덕과 반권위적이고 금욕적인 가정집회에 반대해서 오락을 원하는 자를 보호했던 것이다.” 또한 프로테스탄트에게는 부의 획득은 신의 축복이었다. “부단하고 지속적이며 체계적인 세속적 직업노동을 단적인 최고의 금욕적 수단이자 동시에 거듭난 자와 그 신앙의 진실성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증명”(137쪽)이었던 것이다. 이 정신은 바로 자본주의가 수립하는 데 가장 강력한 지렛대의 역할을 했다. 장시간 노동도 구원이 되었고, 기업가의 화폐취득도 신의 축복이 되었다.

 

막스베버는 자신의 책에서 증명하려고 한 요점을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 근대적 문화에 구성적인 요소 중 하나인 직업사상에 입각한 합리적 생활방식은 기독교적 금욕의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라고(144쪽)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막스베버는 자본주의의 무한한 증식욕구, 확장욕구, 그 운동의 강제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가 완성되고, 자본주의 질서가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막스베버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금욕이 세계를 변혁시키고 세속에 작용하기 시작하자 이 세상의 외적인 재화는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에 대한 힘을 증대시켜 갔고 마침내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오늘날 이 정신은 그 겉껍질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쨌든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그것이 기계적 도태에 입각하는 한 그와 같은 지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145쪽)

 

프로테스탄트는 노동을 하기 위해 직업을 원했다. 직업은 신이 내린 의무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질서가 뿌리내리는 순간 신의 구원은 사라지고 “경제적 강제”로 직업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직업을 갖는 것이지, 신에게 구원받기 위해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직업을 통해 수행하는 노동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막스베버는 프로테스탄트의 옛 정신이 살아날지, 아니면 이런 상태가 지속되어 “기계화된 화석화”가 있을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정신없는 전문가, 가슴없는 향락자”라는 공허한 인간들이 지배적인 상태가 된다.

 

사람들은 종종 막스 베버와 맑스를 비교한다. 그러면서 평가하기를 막스 베버는 사회의 근본 추동력으로서 ‘정신’을 강조한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의 책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만을 놓고 본다면 막스베버의 초점은 맑스가 표현한 바 있는 ‘상부구조’를 해명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지배질서로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철학은 무엇이었는지가 막스 베버가 해명하고 싶어 했던 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경제적 질서로만 해명되지 않는다. 또 맑스주의의 유물변증법이 경제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풍부한 인간의 삶에 대해 맥을 짚고, 구체적인 여러 영역의 운동을 해명하는 것은 모두 맑스주의와 배치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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