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월터 아이작슨, 안진화 옮김, 민음사, 2011년
스티브 잡스는 “고객이 욕구를 느끼지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881쪽)이 자신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여러 해석이 가능한 말이다. 필자가 판단하는 가장 우선적인 점은 경영의 측면에서 수요 창출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이해한다. 고객의 욕구를 어떻게 알겠는가? 소비자의 욕망은 창출하는 것이지, 특정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없었어도 불편하지 않았으나, 아이폰이 나온 이후 휴대폰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엠피쓰리, 동영상, 디지털촬영, 인터넷 등이 모두 조그만 기기에서 해결된다. 아주 어린아이라도 설명서 없이 웬만한 조작이 가능하다. 휴대폰처럼 다이얼패드를 몇번 눌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스크린 터치만으로 휙휙 넘어간다. 소비자들의 욕망은 그들 자신도 몰랐으나, 확실히 지금의 스마트폰이 더 좋다는 것을 실감한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을 꾀하려면 언제나 끊임없이 밀어붙여야 한다”고(815쪽) 주장한다.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세계관이 이분법적이어야 한다. 본인이 확신하는 것에 대해선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이해 못하면 이해 못하는 사람의 세계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마켓팅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마이크 마쿨라’이다. 마쿨라가 스티브 잡스에게 강조한 철학은 세가지다. 첫째는 ‘공감’이다. 누구와의 공감인가 ? 고객과의 공감이다. 둘째는 ‘집중’이다. 중요한 것에, 우선적인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셋째는 ‘인상’이다. “사람들이 책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기준으로 삼는 것은 표지다. 우리가 최고의 제품, 최고의 품질, 가장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해도 그것을 형편없는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은 형편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창의적이고 전문가다운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이 최상의 품질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137쪽) 이후 이 세가지 원칙은 잡스의 원칙이 된다. “포장과 프리젠테이션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원칙은 특히 중요하다. 매킨토시 컴퓨터 포장박스의 컬러 디자인을 무려 50번이나 수정한다.(223쪽) 잡스는 포춘이라는 잡지에다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디자인은 ‘겉모습’을 뜻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건 디자인의 의미와 정반대입니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의 근간을 이루는 영혼입니다. 그 영혼이 결국 여러 겹의 표면들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겁니다.”(543쪽)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다.” 잡스가 이야기하는 단순함은 “무언가를 단순화하는 것, 잠재적인 난제들을 이해하고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다. (542쪽)
그러나 잡스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그의 생애에서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두가지 사례가 있다. 첫번째는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부인 ‘다리외 미테랑’이 애플의 공장을 견학했던 사례이다.
“미테랑 부인은 잡스에게 공장의 근로조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졌다. 반면 잡스는 첨단 로봇공학과 기술에 대해 계속 설명하려 했다. 잡스가 필릴 물건을 팔릴 때 팔릴 만큼만 생산하는 적기 공급 생산 스케줄에 대한 얘기를 끝내자마자 그녀는 초과 근무수당에 대해 질문했다. 짜증이 난 그는 미테랑 여사가 좋아할 주제가 아니라는 걸 빤히 알면서 공장의 자동화 덕분에 노동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얘기를 꺼냈다. 일이 고된가요? 그녀가 물었다. 휴가는 얼마나 되죠? 잡스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근로자들의 복지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 언제든 와서 직접 일해 보라고 해. 그가 미테랑 부인의 통역사에게 말했다.”(306쪽)
또 한번의 사례는 오바마를 만났을 때이다. 오바마를 만나서 잡스가 주장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가 "보다 더 기업 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는 중국에 공장을 세우는 일은 매우 쉽지만 요즘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것은 여러가지 규제와 불필요한 비용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851쪽) 그렇지만 잡스는 단 한번도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생산하는 중국의 제조공장인 팍스콘의 노동자 자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2010년 5개월간 무려 16명의 노동자들이 자살했지만, 잡스에게 이런 종류의 문제는 언급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스티브 잡스는 독점자본의 이해를 구현한 인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는 의미는 자본축적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자본축적을 위한 기본조건은 여러 사람이 지적했지만, 독점적인 시장지배에 있다. 독점적인 시장지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 생산과정의 혁신, 제품의 혁신, 유통혁신 등 혁신은 전 분야를 망라한다. 기업의 혁신은 왜 좋은가? 사회의 많은 돈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혁신을 위해서 살았다. 삶의 모든 의미를 혁신에 뒀다. 매킨토시, 아이팟, 아이튠스, 아이폰, 아이패드, 이제 피씨를 필요 없게 만든 아이클라우드까지 그가 개발한 혁신제품은 어느덧 세계의 표준이 되어 버렸다. 그가 이렇게 혁신제품을 개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886쪽) 잡스는 “우리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 깊은 감정을 표현하고 이전 시대에 이뤄진 모든 기여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흐름에 무언가를 추가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나를 이끌어준 원동력이다.”고(886쪽) 혁신에 대해 의미부여 했다.
우리는 “인류의 삶에 무언가를 추가하려는 노력”에 제발 삶의 질도 포함되길 원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혁신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스티브 잡스가 개발한 혁신 제품을 근로조건이 ‘혁신’된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은 아니었다. 잡스 자신은 “중국에 7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자랑”했지만, 단 한번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잡스 자신은 인류를 위해서 혁신제품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혁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는지가 망각되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위해 아이폰으로 연락한다. 아이팟에 담긴 음악을 들으면서, 아이패드로 한겨레 신문을 본다.
대개의 사람들은 한편으론 경영자가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회사를 번창시켜주길 원한다. 회사가 번창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근로조건이 개선될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를 운영하고 있는 독점자본은 절대 근로조건의 개선에 관심이 없다. 제품의 차별화, 기술혁신을 통한 독점적 시장지배에 모든 관심을 둔다. 독점자본에게 노동자는 늘 분리시키거나 지배해야 하는 대상이다. 잡스는 이것을 실현했다. 독점자본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사회적 배려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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