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아프카니스탄 통신-3

파랑새호 2010. 4. 26. 10:57

출처 ; いつでも元 5월호 44~45

 

; 모리스미 다카시(사진가)

 

수도 카불에서 서쪽에 있는 아프칸 국내촌의 하나인 발완두 거의가 파키스탄에서 2008년에 귀국한 사람들이다. 250가구 900명이 마땅한 직업도 없는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

 

“먹을 것이라곤 이게 전부예요”

현재 갖고 있는 식량은 이것뿐입니다.라고 모하메드 살람씨가(37)보여주었다. 밥통 밑바닥 1/5가량에 살이 조금 남아있었다. 이것을 먹고 나면 더 이상의 식량은 없다. 텐트 속에는 아이들 4명과 부인의 모습이 보였다. 더럽혀진 담요 위에 주전자와 20리터 크기의 물통, 그 안쪽으로는 모포가 포개져 있었다. 다른 가재도구는 없었다.

 

모하메드씨는 2년 전에 파키스탄 • 벳샤왈 교외의 카챠가리 캠프촌에서 돌아 왔다. 매일 아침 5킬로의 길을 걸어서 시장에 일을 알아보러 간다. 시장 손님들의 물품 운반해주는 일을 우연히 얻게 되었던 것이 일주일 전이었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나면 50아프카니(1,100)밖에 받을 수 없다. 이 돈으로는 쌀 1킬로도 살수 없다.

 

귀국할 때 NU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100달러를 주었지만, 식량이나 의복을 사고나니 돈이 남지 않았어요. 카르쟈이 대통령은 무책임해서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2008년에 방문했을 때는 텐트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1년 후인 09년에는 흙과 마른기와로 된 작은 집이 있었다.  12월말 아직 눈이 없었으며, 따뜻한 겨울로 인해 모두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지만 음지쪽의 하수도는 얼어붙어 있는 상태였다. 흙으로 만든 작은 방안에 일본의 화로와 같은 것이 있었으나 연료가 없어 차가운 상태였다. 틈새로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정부에게 속았다

아프카니스탄 동부 파키스탄 국경에 접한 남가할주 쟈랄라바트에서 차로 1시간가량의 사막에 찬드라 난민캠프가 있다. 큰 돌들이 여기저기에 있고, 단 한그루의 나무도 살아 있지 않았다. 당연히 물도 없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곳에는 파키스탄에서 귀국한 난민이 약 8만명 생활하고 있다. “2년전 파키스탄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일년 전 정부가 공원에서 나가면 넓은 토지가 있는 곳을 소개하겠다고 해서 이리로 왔다.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무것도 없는 것을 알았다. 정부가 우리를 속인 것이다.” 라고 한 남자의 말을 듣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도 차츰 모여들었다.

 

이곳은 수도도 없고, 진료소도 없고, 천막도 부족합니다. 정부나 유엔에서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고 다들 호소한다.

 

전쟁과 거듭되는 가뭄

구 소련 침공 후 30년 이상의 전란과 거듭된 가뭄 등의 자연재해로 황폐해진 아프카니스탄. 700만명 이상의 아프칸 사람이 조국을 떠나 인근의 파키스탄이나 이란으로 탈출했다. 난민이 된 것이다.

 

미국의 침공후에 탈레반 정권이 붕괴했다. 신정권이 발족한 2002년 이후 파키스탄이나 이란으로 탈출한 난민중에서 560만명이 귀국했다. 아프카니스탄 인구의 20%이상 되는 수치이다.

 

하지만 정부나 유엔, NGO등에서는 대량의 귀환난민을 받아들일 체제가 가능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최저조건 조차 구비되지 않은 가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주택, 식량부족, 일자리부족이 심각하다. 국민의 42%가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카르자이 정권은 부패와 마약밀대 등으로 국민과 등돌리고 있으며, 맹주 미국의 아프칸주재대사에게도 국방, 치안, 개발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무능한 정권으로 지적 받고 있다.(본국에 보낸 전문에 실린 내용으로 뉴욕타임즈가 116일 보도했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극심한 조국의 상황. 무능한 정부로 청년들이 떠나고 탈레반에 희망을 걸게 된다. 정국불안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