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의 금융화(The Financialization of Capitalism)

파랑새호 2007. 5. 30. 11:27

John Bellamy Foster

(원문은 이곳을 참조하세요)

 

과거 30년간의 자본주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3개의 단어로 규정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지구화, 금융화. 이들 3가지 중 앞의 두 용어는 많이 사용되었지만, 세 번째 단어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화는 이제 점점 더 지배적인 힘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본주의의 금융화 - 생산으로부터 금융으로 경제 활동의 중심이동(서비스 부문의 증가) - 는 우리 시대의 핵심 주제중의 하나이다. 다른 여러 현상보다도 금융화는 훨씬 비중이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선 것인가?

 

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금융화의 결과로서 변해왔다고 할지라도, 자본주의의 전반적인 새로운 단계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생산에 대한 축적의 기본적인 문제는 아직 여전히 남아있다고 판단한다. 대신에 금융화는 “독점-금융자본”이라고 명명된 자본주의 독점단계의 이질적인 국면으로 귀착되었다. 자본은 경제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고 있기 보다는 오히려 금융 불안과 침체의 끝없는 순환에 빠져든 것처럼 나타난다. 독점금융자본의 새로운 경제관계는 지금껏 자본주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이 진원지이며, 점점 더 전 세계에 침투해 왔다.

 

 “금융화”라는 말의 기원은 다소 애매모호 하지만, 1990년대 초반에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전체적으로 금융을 향한 무게중심이동은 1960년대 후반이후 시작되었다. 좌파에서 이 문제를 처음 구조적으로 제기한 사람은 해리 맥도프와 폴 스위지였다.

 

Amherst의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금융 분석가 로버트 폴린에 의하면 “1960년대 후반 시작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를 통해 지속되어온 문제”이다. 맥도프와 스위지는 “이제 자본주의 기능에서 금융이 우월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자본주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금융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나는 스위지와 맥도프가 이문제를 주목하고 환기시킨 좌파진영의 최초의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금융의 기본적인 지배력, 타당성 그리고 금융의 구체적 실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해를 위한 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보여준다.” 폴린에 의하면 후자의 경우에 보다 주목한다. ; “맥도프와 스위지는 금융화 경향에 대한 진정한 개척자이며, 그들의 저작속에서 현상으로서 금융화의 출현에 대한 단순하지만 돋보이는 경험적 분석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스위지와 맥도프가 처음으로 작업을 수행하여 좌파진영의 사람들이 이러한 경향을 인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정체에서 금융화로

자본주의 금융화에 대한 분석에서 맥도프와 스위지는 단지 통계적 추세를 통한 연대기적 내용만을 서술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분석이라는 시각을 통해 금융화를 고찰했다. 아마 이런 분석중 가장 압축적인 표현은 1997년 스위지에 의해 사용된 것인데, “지구화에 대한 심화”라고 명명된 논문제목이라 할 수 있다. 스위지는 소위 “1974-75년 경 침체로 시작된 자본주의 최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세가지 추세는 다음과 같다. ; (1) 성장률의 전반적인 하락, (2) 독점적 다국적 기업의 지구적 확산, 그리고 (3) 자본주의 축적과정의 금융화이다.”

 

스위지에 의하면 세가지 추세는 “난해하게 상호 연관된 것”이다. 이윤확대를 위한 대기업들의 독점화 경향은 “시장을 지배하기위한 추가 투자 수요”가 증가한다. 논리는 “이윤의 지속적인 증가 실현, 반면 수지맞는 투자기회의 지속적인 축소와 자본축적의 둔화를 방지할 수 있는, 즉 자본축적에 의해 경제성장을 추동할 수 있는 방법의 지속적인 한계.” 로 나타난다.

 

자본은 경제적 잉여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으며, 그 결과가 바로 “실질 투자의 축소와 급증하는 금융화의 이중과정”이다. 처음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황금기’의 쇠퇴과정”에서 나타나며, 지금까지 “강도가 점점 더 강화되는” 상황이 지속된다.

 

이와같은 논의는 바란과 스위지의 ‘독점자본’(1966)에 의해 제기된 이론적 틀에 뿌리내린 것이지만, 사실 ‘독점자본’은 멀리 마르크스와 로자 룩셈부르크로부터 경제학자 마이클 칼렉키와 스타인들의 작업에 의하여 고무된 것이다.

 

바란과 스위지에 의하면 독점자본경제는 독점체제의 주요 상층인사와 소유자로 구성된 소수의 독점자본가들/과두지배자들에게 거대한 잉여를 보장하는 생산체제이다. 자본가로서 그들은 더 큰 축적을 위해 잉여를 투자하려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 막대한 잉여가 보장되는 똑같은 조건으로 인하여 이윤가능성있는 투자처는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업들은 단지 소비자에게 독점적 지배에 의한 이윤율을 산출할 수 있도록 조정된 가격으로 상품을 판매한다. 소비성장의 취약성은 기업들이 과잉생산을 회피하고 적정이윤을 보장하는 가격을 위하여 의도된 것으로서 생산용량의 축소에 의한 것이다. 지속적인 초과생산용량의 구축은 새로운 투자여력이 거의 없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으로서, 사업의 침체신호이다.

 

자본 소유자들의 고민은 투자기회가 말라버린 상황에 직면하여 그들이 처분해야 할 광대한 잉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가에 있다. 1970년대부터 그들은 화폐자본을 확대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금융상품 시장의 확대를 해결책으로 판단했다. 이를 위해 공급자 측면에서 금융기관들은 새로운 금융투자 상품을 개발했다. ; 선물, 옵션, 파생상품, 헤지펀드 등등. 이 결과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 까지 금융투기가 엄청나게 증가했다.

 

주류경제학자들 내부에서 금융성장의 불비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사람이 있었다. 1984년에 198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케네디 경제자문위원회의 선임자인 제임스 토빈은 “금융체제의 효과에 대하여” “우리 금융시장의 카지노적 상황”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나는 우리가 점점 더 우리의 자원을 사회적 생산능력과는 맞지 않게 고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으로, 혹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생산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금융활동 속에 낭비하고 있다는 일종의 중농주의적 관점에서 의심하고 있다. 나는 컴퓨터의 엄청난 활용능력이 보다 경제적인 거래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금융거래 속에서, 돈을 뻥튀기하는 방법에 이용하고 있는 ‘장부상의 경제’로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하이테크놀로지는 경제의 생산성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과는 반대가 되는 현상을 초래했다. 나는 예전 케인즈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금융기관들의 협상능력과 유동성 이익이 단기적 관점에서 비효율적인 거래라 할지라도 몇 번의 투기행위를 촉진하는 비용을 조달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하고 있다. 나는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금융기관들의 단기실적에 대한 보다 더 큰 억제조치를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케인즈의 견해가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토빈의 견해는 자본주의가 잉여자본을 실물경제의 장기투자보다는 카지노 도박처럼 점점 투기화 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1970년대에 그는 외환거래에 대한 “토빈세”로 알려져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다. 이것은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금융투기로부터 세계경제의 비중을 이전하는 것에 의해 투자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금융의 급속한 성장은 실물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초래한다는 토빈같은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맥도프와 스위지는 1985년에 “금융폭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금융화는 정체경향을 나타내는 자본주의를 위한 기능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카지노 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재능과 에너지가 금융이라는 게임으로 이끌리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렇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실제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비용으로 게임하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현재 고용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의 에너지나 재능이 생산적 영역으로 이전하며, 금융구조가 축소될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전적으로 잘못 판단한 것이다. 게으른 인간과 천연자원의 거대한 저장고가 이미 국가에서 활용되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은 단순한 실업자에 불과하다. 카지노사회에서 경제성장은 현저하게 질질 끌리며 정체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경제가 최근 수년간 경험해온 바에 의하면, 군사부문의 성장과는 별도로, 현재의 경제성장은 금융팽창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변화를 겪어온 것이다. 자본주의는 정체와 금융화에 의해 형성된 발전하는 관계, 복잡한 관계로 표현할 수 있다. 위 글을 서술하고 거의 10년 뒤, 스위지는 “금융자본의 성장”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는 이 금융적 상부구조가 지난 20년간 성립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금융적 상부구조의 출현은 1970년대의 경기침체와 동시적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금융팽창은 실물경제의 번영과 함께 진행해 왔다. 그러나 금융팽창이 실물경제의 번영에 기초한다는 판단은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20세기 후반에는 정반대의 경우가 나타났다. 즉 다른 말로 하면 현재의 금융팽창은 건강한 실물경제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기보다는 오히려 경기침체 속에서 발전한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그렇다’라는 말이 가능하며, 이미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과 실물경제간의 역전된 관계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경향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요소이다.”

 

돌아보면, 이 역전된 관계는 시작부터 자본주의속에서 발전 가능한 것이었음이 명확하다. 다만 자본주의체제의 일정한 발전단계에서만 구체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체 속에 놓여진 사실로부터 가능성을 추정해 본다면, 마르크스와 케인즈가 이미 강조한 바 있는 바와 같이, 자본축적과정은 이중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실물자산의 소유권에 대한 개입이 있으며, 똑같은 자산에 대해 장부상의 보유권이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실물축적과 금융투기간의 모순 가능성은 시작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인 요인이다.

 

주류경제학자들의 경우에도 오랜 기간 생산적 투자와 금융투자가 함께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고 생각해 왔으며 - 즉 한편에서는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자본을 사용하는 기업가와 실물자산에 대한 금융상의 권리를 구매한 증권투자자의 단순한 가정에 기초한 활동 - 이둘 간의 모순이나 갈등은 오랜 기간 허위라고 판단해 왔다. 생산투자와 금융자산의 축적은 직접 관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 두 가지 요인은 현저하게 분리될 수 밖에 없어 두 요인의 갈등은 단지 가능성으로만 존속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성숙한 금융체제 없이 이와같은 모순은 일반적으로 경기호황의 끝이라는 신호를 나타낸 것으로 자본주의 역사의 점을 찍는 투기거품보다 더 앞서갈 수는 없다. 현재의 심각한 붕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기능이나 구조에 대한 어떠한 영향도 미칠수 없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 독점자본주의의 성립과 금융이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기 이전 증권시장의 발전했으며, 이시기는 아직 생산과 금융 간의 모순이 무르익기 이전 시기이다. 새로운 독점자본정권의 시대가 열리면서 철도와의 관계속에 성장해온 투자은행은 광대한 기업합병을 촉진했고, 거대 독점기업들은 경제성장을 좌지우지 하였다. 이 시기는 J.P 모건의 시대였으며, 미국의 솔스타인 베블렌과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힐퍼딩이 각각 독점자본의 이론, 특히 금융자본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이 발발했을 때, 독점자본주의 경제의 금융적 상부구조는 1929년의 주식시장 몰락으로 나타나듯, 붕괴되었다. 금융자본은 대공황기간동안 크게 감소했으며, 실물경제회복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도 하지 못했다. 미국경제가 대공황으로부터 살아난 것은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국가통제하의 군사비 지출의 증가였다.

 

바란과 스위지가 1960년대 초반 ‘독점자본’을 썼을 때, 두 사람은 국가부문의 지출, 판매촉진 활동, 제2차 자동화 물결, 1960년대 자본주의황금기에 배태되어 있던 잉여흡수와 경기부양과 같은 요소들을 강조하였다. 두 사람은 또한 광범위한 양의 잉여가 소위 FIRE(금융, 투자, 실물자산)로 빠져나가고 있음을 지적했지만, 그러나 상대적으로 당시 이에 대한 강조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경기침체가 다시 나타나자 스위지는 맥도프와 함께 금융의 증가에 점점 더 초점을 두게 되었다. 두 사람은 1975년에 “은행 ; 얇은 얼음위에서 스케이트 타기”라는 글에서 “과도한 부채와 은행수의 엄청난 증가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와 자신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의 증가는 적어도 일시적이지만 미국의 전쟁과 제국주의적 팽창을 지지하고, 그것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

 

 

독점-금융자본

만일 1970년대가 “자본주의 경제의 오랜 구조가 아직은 완만한 금융조정에 의해 유지되는 생산체제로 있었다면,”(스위지가 1995년 말했듯이) 1980년대 말에 이르면 “주요 생산구조의 꼭대기에 자리 잡고 높은 수준의 독자성을 달성하여 엄청나게 확장된 금융부문이 자본주의 체제내의 새로운 구조로 자리 잡았다.” 경기침체와 광범위한 금융투기는 필연적인 경제적 파국 속에 똑같이 자리 잡은 공생 영역으로 나타났다.

 

이 공생은 3가지의 결정적인 요인들이 있다. 1) 주요 경제의 침체는 자본가들이 화폐자본을 늘리고 유지하기 위하여 금융성장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자본주의 경제의 금융상부구조는 기반이 되는 생산경제의 토대와 완전히 무관한 확대를 할 수 없다. - 그리하여 투기거품의 파열은 점점 증가하며, 재발한다. 3) 금융화는 그것이 얼마만큼 확장되더라도 생산의 침체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의 역할은 금융화라는 절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청산을 위한 조치를 즉시 제공할 책임을 지며, 최종 대부자로서 기능하는 국가의 역할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완전하게 결합된다. 1987년 이후 주식시장의 붕괴가 있었을 때 연방준비위원회는 전체 자산시장에 대해 명백히 “너무나 덩치가 커서 실패할 수 없는”인식에 기초하여 정책을 전개했다. 그러나 연방준비위원회는 2000년 주식시장의 가파른 몰락을 막지 못했다.

 

이러한 조건은 금융화가 침체경향이 있는 경제의 항구적인 구조적 필연성이 되어 온 상황에서 이전에 내가 명명한 “독점-금융자본”으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선진국 주식시장의 팽창그래프, Economist) 

 

 

계급과 제국적 의미

만일 금융화의 뿌리가 앞서 언급한 사실로부터 분명해 졌다면, 계급과 제국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주어진 공간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나는 8개의 간략한 내용제시로 한정한다.

 

1) 금융화는 특정 금융거품을 뛰어넘어 진행하는 과정으로 판단된다. 만일 우리가 1987년 주식시장 몰락이후 시작된 최근의 금융 붕괴를 보게 되면, 금융화 경향을 늦추거나 잡기위한 노력들이 얼마나 효과가 없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2000년 3월부터 2002년 10월 사이에 월가의 거품파열로 인해 주식시장 가치의 절반이상이 사라진(스탠다드 푸어스의 500지수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사건은 불과 2년 후에 다시 재연된다. 1985년 미국의 부채가 GDP의 두배가 된 반면, 20년 후 미국의 부채는 GDP의 거의 3배반으로 증가했으며, 전체 세계의 GDP라고 할 수 있는 44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외환거래의 일당 평균 규모는 1989년의 5,700억 달러에서 2006년의 2조7,000억 달러로 늘어났다. 2001년 이후 세계 신용파생상품 시장은(신용위험을 회피하기위한 세계시장)매년 100% 이상 증가해왔다. 새로운 천년의 초입에 상대적으로 거의 중요성이 없는 신용파생상품의 명목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부풀려져 2006년 상반기 까지 26조 달러로 증가했다.

 

(2) 독점-금융자본은 질적으로 20세기초 힐퍼딩이나 여타의 사람들이 특별히 투자은행의 주도적 역할에 기초한 “금융자본”의 시대로 기술했던 현상과 다르다. 최근 미국 금융기업의 이윤이 비금융기업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더 많이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비 금융기업이 자본과 화폐시장에 과도하게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 두 영역사이의 구별은 쉽지 않다. 부의 커다란 덩어리가 점점 더 생산보다는 금융과 관계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금융은 점점 더 비금융기업의 현금유동성을 관리하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비금융기업과 금융기업의 합병은 자본 자체 내의 분업에 기초한 것으로서 볼 수가 없다.

 

(3) 금융자산의 소유여부는 자본주의 계급구성에서 주요한 결정요인이다. 사회의 상위계급과 하위계급간의 금융재산과 소득격차는 천문학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2001년 미국의 경우 금융자산계급의 상위 1%는(주택소유를 제외할 경우) 전체 대중의 80%가 갖고있는 자산보다 4배가 많았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상위 1%는 1.9조달러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같은 수치는 나머지 99%가 소유한 주식금액과 같다. 미국의 소득격차는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인 버넹키가 2007년 2월6일에 “경제적 풍요의 분배와 수준”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실질임금은 장기적으로 더 크게 불평등해질 것이다.”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더욱 확대되어 왔다. 버넹키는 또한 “소득수준 상위 1%의 가구주들이 차지하는 전체 가구와 대비한 세후소득의 비중은 1979년 8%에서 2004년 14%로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2006년 9월에 미국인중 가장 부유한 60명은 어림잡아 6,300억달러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전년도보다 10% 상승한 것이다.(뉴욕타임즈 2007년 3월1일)

 

최근의 역사는 불평등의 급속한 증가가 독점금융자본의 필연적 국면으로 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금융 상부구조의 투기적 거품 확대를 위한 새로운 현금 주입은 거품이 파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끝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고도화된 착취, 보다 불평등한 부와 소득의 분배를 요구하며, 전반적인 경기침체를 강화한다.

 

(4) 정체된 금융화를 역동적으로 만들기 위한 중심영역은 주택투기를 통해 달성되었다. 이것은 주택소유자들에게 실질임금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대출에 의해 주택자산을 늘려 삶의 수준을 더 높이도록 강제했다. 폴린이 지적한바와 같이 맥도프와 스위지는 “미국 가구 중에서 임금이 정체되거나 떨어졌어도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부채에 의존하는 가구가 대부분이다.” 최근의 경기침체 이후 낮은 금리는 주택가격 거품을 부채질하는 주택투기를 촉진했다. 오늘날 주택거품이 터지는 것은 미국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주요원인이다. 한편에서 소비자부채비율이 증가하고, 다른 한편에서 주택가격 급등으로 인한 부채의존 심화는 현재로서는 사라졌다. 단독 주택의 가격은 2006년 4분기 149개 대도시지역에서 절반이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뉴욕타임즈, 2007년 2월16일)

 

따라서 주택가격의 거품현상은 경기침체에 대한 반작용이면서 금융화를 위한 기초토대를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초래했으며, 미국 가구주의 기본적 생활수준 향상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또한 주택시장의 취약성은 급속한 경기하락과 광범위한 금융혼란을 촉진시킬수 있다. 더군다나 금리의 인상은 소비자부채를 급증하게하고 주택가치가 하락하여 채무불이행 사태를 확산시킬 수 있어, 경기침체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잠재요인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소비는 세계경제의 핵심 견인차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하여 주택시작의 취약성은 지구화된 위기로 까지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증가하고 있다.

 

(5) 현재까지 좌파진영에 확산되고 있는 논리는 금융적 지구화가 세계경제속에서 국가의 본질에 대해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는 수준으로 까지 변화시켰다는 점에 있다. Ignacio Ramonet는 "시장을 무장해제하기“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금융적 지구화는 그 자체에 작용하는 법칙이다. 금융적 지구화는 초민족적인 국가를 정부기구와 분리하였으며, 고유의 영향력이나 행동수단으로 부터 분리시켰다. 이와같은 초민족적인 국가는 IMF, OECD, WTO등을 말한다. 세계국가는 사회 내부에 아무런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권력을 행사한다. 세계 금융시장을 대신하여 행동하며, 금융시장을 장악하여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들의 이해를 반영한다. 이로인하여 세계의 실제 국가는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사태는 점점 악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사실 근거가 없다. 세계경제의 금융화는 부인할 수 없지만, 자본의 새로운 국제조직의 창출을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세계독점금융자본주의는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아직 분열된 체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IMF, 세계은행, WTO는 “개별 초민족 국가”를 구성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이차세계대전 이후 국제자본의 이해관계를 위해 세계경제를 관리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로 형성된 브레튼우즈협정에 의한 국제조직에 불과한 것이다. 이들 국제기구는 주요 제국국가들의 통제 하에 놓여 있으며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이들 기구들의 지배는 비대칭적으로 적용된다. 적어도 세계 빈곤대중의 착취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며, 미국자본의 이해관계를 위한 개입이 대부분이다.

 

(6) 초기 독점자본의 이념적 파트너가 케인즈주의였던 것과 같이 우리가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독점금융자본의 이념적 파트너로서 나타난다. 오늘날의 국제자본시장은 금리수준이나 자본의 흐름 등의 영역에서 자본을 통제하는 국가기구의 권리에 대한 심각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대처수상이나 레이건대통령의 재임기간 중 헤게모니적 경제이데올로기의 시작으로서 신자유주의 성장은 금융적 지구화에 의해 초래된 자본의 절박함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이다.

 

(7) 세계경제의 증가하는 금융화는 저개발 경제에 대한 제국적 침투가 더 강화되었고,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의한 정책의 강요, 금융적 종속의 증가를 초래했다. 이것의 구체적 사례가 브라질에서 나타난다. 브라질은 IMF를 포함한 국제자본의 외채를 지불하기 위해, 그리고 외국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지난 20년간 독점금융자본의 지구적 지배에 경제의 우선권을 부여해 왔다. 그 결과 금융의 영역에서 “경제적 펀더맨틀”이 더 좋아졌다고 평가되었으나, 경제성장의 둔화, 지구적 금융의 급속한 변동에 훨씬 더 취약해졌다.

 

(8) 자본주의 금융화는 통제 불능의 상태를 초래했다. 오늘날 지구적 금융관계들 속에서 약간의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책임을 맡게 되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1997-98년의 아시아금융위기, 2000년의 “신경제”거품의 파열, 2001년 외채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 등의 사태에 대응하여 2000년대 초 IMF는 분기별로 ‘지구금융안정보고서’를 발행한다. 자본주의체제의 불안정성과 증가하는 휘발성을 분명하게 느끼기 위해선 이 보고서의 여러 주제들을 읽어야 할 필요도 없다. 거품이 터져야만 팽창이 중단되는 것은 명백한 투기적 거품의 특징이다. 금융체제 내에서 지속적인 위험 증가와 현금에 대한 선호가 점점 더 증가하는 것은 취약한 금융구조가 될 수록 더 절박해 진다. ‘지구금융안정보고서’의 여러 내용은 모두 “위험 회피”라는 유령을 언급하는 내용으로 가득차있으며, 이는 바로 금융시장의 위험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위험한 자본주의 금융)

 

 

2006년 9월에 ‘2006 금융안정보고서’에서 IMF집행위원회 감독자들은 헤지펀드와 신용 파생상품의 급속한 증가는 금융안정에 구조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경제의 성장둔화와 주택시장의 냉각은 더 큰 “금융불안”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것은 “예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증폭”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체적인 상황은 체제에 예상할 수 없는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는 통제를 벗어난 금융화 확산이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역사가 Gabriel Kolko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들은 세계금융체제가 점점 더 불안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렇게 판단하는 상당한 근거도 있다. 무시무시한 경고가 가장 신뢰할 만한 여러 요인들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실체는 손으로부터 빠져나갔다. 탐욕의 악마가 풀려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