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상태로 한평생 살수도 있다. 맑스-엥겔스의 이론을 모른다고 자본주의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의 본질을 인식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조금 길어지리라.
80년대 초반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해 본 사람들은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본 경험이 많다. 책은 없고, 간혹 복사된 책이 나타나도 외국어로 되어 있어 어렵거나, 내용 자체도 너무 어려워 한숨쉬는 경우는 아마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강독을 위한 일문법’은 당시에는 거의 광명의 빛줄기였다. 우리는 한문을 배웠다는 기본 바탕을 이용해 일어로 된 ‘경제학원론’을 공부했다.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은 일어독해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다. 당시 쉽게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을 소개한 우리나라 책이 있다면 아마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행히도 당시 정치사회적 조건은 이런 순박한 바램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맑스-엥겔스의 주요 저작이 번역되어 있는 상태이다. 맑스-엥겔스 정치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자도 많이 늘어났다. 맑스-엥겔스의 저작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으로 판단되는 ‘노동자’중에서도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증가했다. 그렇지만, 느끼기에 맑스-엥겔스의 핵심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체계적으로 해설해 놓은 책은 많이 보지 못했다. 맑스-엥겔스를 이해하기 위한 해설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맑스-엥겔스의 저작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맑스 엥겔스에게는 여러 저작이 있으나 정치경제학에 대한 이해는 필수이다.
[ 칼 맑스 정치경제학] 박영호 지음, 한신대 출판사, 2008년
박영호의 [칼 맑스 정치경제학]은 지금까지 출판된 그 어떤 책보다도 핵심을 제시하며,알기쉽게 서술했다. ‘자본론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의 핵심중의 핵심저서는 자본론이다. 자본론은 너무도 어렵다. 특히 가치, 잉여가치라는 개념은 자본론의 핵심단어이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연유로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을 해설한 책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반드시 핵심내용을 평이하게 서술하고, 풍부한 현실사례를 많이 제시해야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을 해설하거나 언급한 책이 맑스-엥겔스의 저작보다도 더 어렵고 난해한 경우가 있다. 이것은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형태이다. 서구에서는 대표적으로 '알튀세'가 그렇다.('알튀세'에 대해선 필자의 블로그 글 '마르크스를 위하여(알튀세)' 참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해설서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동일한 문제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이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해설서를 읽는 것인데, 해설서가 오히려 맑스-엥겔스의 기본사상이나 내용을 왜곡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는 해설이 아니라 ‘해악’이 된다. 대표적인 것이 이진경 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다.
‘이진경’은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정통적인 맑스가 이미 도처에 널려 있는 마당에 그것을 다시 성실하게 요약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수도 없이 많은 맑스 가운데, 그 중 어느 하나를 잡아서 충실하게 요약한다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저, 그린비출판사, 2004년, 10쪽)라고 썼다. 나는 이 말이 대단히 건방지다고 판단한다. 그가 아마도 여러 여건으로 인해 맑스-엥겔스의 저서를 많이 접하고, 또 맑스-엥겔스의 저서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한 사람들의 주장을 많이 읽었다 할지라도, “도처에 널려 있다”는 그의 표현은 주관적이다. 특히 사회주의권 붕괴이후 맑스-엥겔스에 대한 책은 물론이거니와 인문학 자체가 멸종할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의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하여 독일에서 자본론 판매부수가 급증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지금 현실은 거꾸로 맑스-엥겔스가 “죽은 개” 취급 받는 실정이라고 판단한다. ‘정통’에 대한 이해는 더군다나 희박하고, ‘아류’의 견해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박하다.
지금 이 글은 박영호의 정치경제학 저서에 대한 소개이기 때문에 이진경의 문제점을 상세하게 서술하지는 못한다. 다만 내친김에 이진경의 잘못된 문제의식에 대해 몇 가지만 밝혀둔다. 이진경에 의하면 ‘정통적인 맑스’는 헤겔이나 고전 정치경제학의 연장선상 위에 있다. 그러나 맑스의 유물론은 “모든 방향으로 열린 외부를 통해 사유”한다. 맑스는 헤겔주의자가 아니다. 이진경은 알튀세와 비슷하게 ‘헤겔과 맑스의 분리’를 주장한다. 다음과 같은 주장이 과감하게 등장한다. “맑스의 저작을 맑스적인 방식으로 읽는 다는 것은 헤겔적인 사유로부터 맑스를 분리하여 맑스 자신의 문제설정에 부합하도록 다시 읽는 것.”(위의책 26쪽) 두말할 필요도 없이 헤겔과 맑스를 분리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웃기는 시도이다.
반면 박영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 맑스 자본론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방법론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확신이 필요하다. 그의 방법론을 세밀하게 검토하게 위해서는 먼저 헤겔과 포이엘바하의 철학에서 나오는 변증법과 유물론을 맑스가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본 뒤에, 맑스의 변증법이 어떻게 헤겔의 것과 다르며, 또 맑스의 유물변증법이 포이엘바하의 자연변증법과는 어떻게 다른가를 간략하게라도 살펴봐야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물변증법과 역사적 변증법의 차이를 살펴보면 맑스 [자본론]의 방법론을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63쪽)
자본론의 첫 부분 ‘상품’이라는 장은 [그룬트리세]에서는 별도의 항목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가 정치경제학비판을 위하여 라는 저서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왜 자본론이 상품 분석으로 시작되었는가를 인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다. 맑스의 방법론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맑스 방법론의 핵심은 변증법적 유물론이다.
이진경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소개나 설명은 철저히 배제한다. 자본론을 설명하면서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철학(방법론)을 배제하는 것은 대단히 의도적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맑스 이론의 모든 내용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맑스 정치경제학이 영원히 살아 숨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론의 모든 내용은 사라질지 몰라도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라질 수 없다. 이진경은 다음의 엥겔스 주장을 숙지해야 한다.
“이 사람들 모두에게 부족한 것은 변증법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여기에서는 원인만 보고 저기에서는 결과만 봅니다. 이것은 공허한 추상이라는 것, 현실 세계에서는 그러한 형이상학적이고, 극단적인 대립은 공황기에만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전체적인 진행은 -비록 경제적 운동이 훨씬 가장 강력하고 가장 본원적이며 가장 결정적인 운동이 되는 매우 불균등한 힘의 상호작용이기는 하지만- 상호작용의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것, 여기에서는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 이러한 것을 그들은 한번도 보지 못하며, 그들에게 헤겔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890년 10월 27일 엥겔스가 베를린에 있는 콘라트 쉬미트에게, 255쪽)”
박영호에 의하면 맑스 - 엥겔스의 저서는 다음과 같이 경과하였다.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변증법적 유물론) 저서의 전개
① 1843년말부터 1844년 1월까지 ‘헤겔 법철학 비판에 대하여’
②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
③ 1845년 ‘신성가족’(맑스), ‘영국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상황’(엥겔스)
④ 1846년 ‘독일 이데올로기’
⑤ 1847년 ‘철학의 빈곤’
⑥ 1847년 ‘임금노동과 자본’(독일 노동자협회의 연설문)
⑦ 1848년 ‘공산당 선언’
⑧ 1850년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루이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
⑨ 1857년 8월과 9월 ‘정치경제학 비판서문’
⑩ 1857년 10월부터 1858년 3월 사이에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Grundrisse)
⑪ 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하여'
⑫ 1863년 7월 '잉여가치학설사'
⑬ 1865년 ‘자본론’
⑭ 1865년 ‘잉여가치론’
자본론 발간 이후
① 1870년 프랑스에 있어서 시민전쟁
② 1872-73년 주택문제에 대하여(엥겔스)
③ 1875년 고타강령 비판(독일노동자 당 강령에 대한 비평적 주석)
④ 1877-78년 반듀링론(엥겔스)
⑤ 1873-1883 자연변증법(엥겔스)
⑥ 1884년 가족과 사유재산과 국가의 기원(엥겔스)
⑦ 1886년 루드비히포이엘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엥겔스)
맑스-엥겔스의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저서의 전개
① 1844년 독불연감
②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
③ 1845년 포이엘바하에 관한 테제
④ 1845년 신성가족
⑤ 1845년 영국에 있어서 노동자계급의 상황(엥겔스)
⑥ 1846년 독일 이데올로기
⑦ 1847년 철학의 빈곤
⑧ 1848년 공산당 선언
(참조 ; 아마도 내가 알기에 위의 저서 중 ‘잉여가치론’만이 한글로 번역이 안된 상태이다. 사실 이것도 예전엔 모 출판사에서 북한에서 번역한 것을 그대로 출판했었다는 데, 현재로선 구할 수가 없다. )
“ 맑스가 [자본론]에 적용하고 있는 정치경제학 방법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62쪽)
“맑스 정치경제학의 연구방법은 현실의 개별적 현상의 총체로부터 출발해서 그들을 분석해 나가는 방법을 원칙으로 한다. 분석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개별적 현상들의 특색과 다층성이 벗겨져서 그들 속에 공통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나타나서 과학적인 개념과 범주로 파악된다.”(71쪽)
“역사적 유물론에 있어서 사회는 단순히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총합이 아니며 사회적 관계의 전체성 내지는 총체성인 것이며 이것에서부터 사회분석의 유물변증법적 방법이 정립된다. 즉 사회를 하나의 생동하는 그리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유기체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립한 것이다.”(80쪽)
“변증법적 유물론은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서 기본적이며 결정적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전체로서 물질적 세계를 다루며 역사적 유물론은 이 전체의 특별한 부분이 사회와만 관련을 갖는다. 전체로서 통일적인 물질적 세계에 대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보편적인 철학적 서술은 물질의 모든 운동 형태와 발전 형태에 대해서 유효할 뿐만 아니라 사회운동 형태와 발전형태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역사적 유물론은 그렇기 때문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지도원리, 그것에 의해서 발견되고 정립된 법칙, 범주, 개념들을 완전하게 받아들여서 사회현실 인식을 위한 수단으로 그것들을 사용한다. 역사적 유물론은 인간사회의 역사발전 연구에 변증법적 유물론을 확장해서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85쪽)
박영호는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시종일관 주장하면서 기본 개념들을 정리한다. 한편 박영호는 “영문번역판 [자본론]을 토대로 해서 한글로 번역한 [자본론]은 이중의 오해와 왜곡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89쪽)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언급한 “한글로 번역한 자본론”은 다름아니라 김수행이 번역한 자본론이다.
김수행은 자본론 1권 상의 ‘번역자의 말’에서 번역을 위하여 주로 영문번역판(Penguin 출판사, 모스크바 Progress 출판사)과 일본의 대월서점 자본론, 북한의 맑스 엥겔스 선집을 참조했다고 밝히고 있다. 2007년까지 자본론은 거의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이 유일했다. 그는 특히 “자본론의 이론적 기초는 주로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며 그것의 현실적 예증은 주로 영국사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영역판이 번역에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되었으며, 번역자 자신이 영국에서 10년이상 살면서 연구하였다는 사실도 번역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였다.(이상 자본론 1권 상 ‘번역자의 말’ 참조) 김수행과 박영호의 주장은 상반된다.
박영호는 오랜 기간 학생들에게 강의한 경험을 바탕으로 맑스-엥겔스의 핵심개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또한 최근 국내 대학의 경제학 교과서들이(속류 경제학) 갖고 있는 문제점, 맑스-엥겔스 정치경제학의 토대가 된 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내용들, 최근 맑스-엥겔스의 정치경제학을 둘러싼 논쟁들도 충실하게 소개한다. 이론적 깊이가 있으면서 아주 쉽게 서술하기 때문에 맑스-엥겔스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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