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힐러리와 미국의 의료개혁

파랑새호 2007. 11. 5. 10:31

힐러리는 미국여성이지만,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부인이면서, 현재 미국상원의원이며 유력한 대선후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힐러리는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미국의 의료보험을 개혁하기 위한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이었다. 특별히 미국의 정치 한 가운데에서 미국의료제도 개혁을 위하여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경력 때문에 그녀가 쓴 책 [살아있는 역사]를 읽어보고 싶었다.

 

 

[힐러리로댐클린턴, 살아있는 역사 1, 2], 힐러리 클린턴 지음, 김석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3년.

 

이 책은 힐러리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서술하고 있으나 거의 상당부분이 빌 클린턴의 대통령 재직시절 경험한 내용이다. 따라서 힐러리가 미국의 ‘영부인’시절 겪은 경험담이라 할 수 있다. 책에서는 미국 현대정치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이해를 실감나게 할 수 있다. 특히나 미국의 의료제도, 복지제도 등에 대해 미국사회의 주류집단 내에서 어떠한 논의가 경과되어 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즉 책을 읽는 사람들은 첫째, 현재 미국 주류집단의 사고와 문화, 둘째, 미국의 의료-복지제도에 대한 주류집단내의 논리를 알게 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물론 힐러리 자신에 대한 매력을 꾸준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부작용도 필수적이다.

 

우선 힐러리의 구체적인 생각을 서술하기 전에 그녀의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여야 한다. 힐러리는 미국에 대하여

 

  “미국의 패권은 단순히 군사력의 결과가 아니라 미국의 가치가 낳은 결과였고, 우리 부모님처럼 열심히 일하고 책임을 지는 이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 결과이기도 했다.”(1권 14쪽)

 

고 생각한다. 힐러리는 한번도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남용하여 제국주의적 정책을 드러낸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개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로 저개발국의 경제가 향상되고, 여성이나 아동들의 복지가 개선되고 있다고 일관되게 생각한다. 힐러리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미국)노동계층의 개신교 가정이 갖고 있는 온간 편견 - 민주당원 ․ 가톨릭교도 ․ 유대인 ․ 흑인에 대한 혐오감-을 물려받은 상태에서 인생을 시작했다.”(1권 241쪽)

 

힐러리는 학교시절부터 철저한 반공주의를 교육받았으며, 한번도 이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나 소련의 학정은 힐러리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가뜩이나 강했던 나의 반공주의를 더욱 강화시켰다.”(1권 46쪽)

 

그렇지만 힐러리가 자신의 인생에서 방향 지침으로 삼은 사상-철학적 배경은 힐러리가 다니던 감리교회가 결정적이다. 힐러리는 감리교회에서 받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책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감리교회의 신앙생활에서 힐러리는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와 서구신학에서 가장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3인의 신학자 - 본회퍼, 라인홀트 니버, 폴 틸리히 -의 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감리교회의 영향으로 힐러리는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또한 신앙생활은 힐러리의 주된 관심을 아동과 여성문제, 혹은 아동과 여성을 위한 각종 복지제도 개선에 두게 한 결정적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힐러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의료제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빌과 나에게 가장 고민스러운 쟁점은 미국의 의료보험 위기였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의료제도의 불공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보험에도 들지 않고 진료비를 낼 돈이 없어서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시민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1권 177쪽)

 

  “빌이 의료보험 문제를 연구할수록 그 제도를 개혁하고 천정부지로 올라간 진료비를 억제하는 것이 사람들의 절박한 의료요구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경제를 바로잡는 데에도 필수불가결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1권 177쪽)

 

   “나는 빌과 내가 정치에 참여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고, 미국시민은 적정한 가격으로 양질의 진료를 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믿었다.”(1권 216쪽)

 

  “내가 미국의 의료체계에 내재되어 있는 문제점 - 개혁에 대한 정치적 술책,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기에는 너무 ‘부유하고’ 자기돈으로 진료비를 내기에는 너무 ‘가난한’가정이 직면해 있는 경제적 궁지 등-을 처음 깨달은 것은 아칸소 아동병원 이사회와 아칸소 주의 농촌보건위원회에서 일할 때 였다. 나는 1980년대에 아칸소 주를 여행하고 대통령 선거운동기간에 미국전역을 순회하면서 잘못된 의료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믿음이 더욱 강해졌다.” (1권 221쪽)

 

즉 힐러리는 클린턴과 결혼 이후 클린턴의 정치활동을 돕는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을 만나게 된다. 이후 미국 서민들의 삶속에서 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니 만큼 자연스럽게 의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힐러리가 생각하는 미국의료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나는 심장이식수술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아기가 첫돌을 넘길 때까지 살아남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당시 미국의 유아사망률은 공업국 중에서 일본이나 캐나다나 프랑스보다도 뒤떨어진 19위에 머물러 있었다. 부시대통령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리가 없어요.”“(1권 153쪽)

 

  “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당시, 대부분 노동자와 그 자녀인 3,700만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목숨이 위기에 빠질 때까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질병에 걸려도 그들은 결국 진료비가 가장 비싼 응급실 신세를 지거나, 자기 부담으로 진료비를 대려고 애쓰다가 파산하기 일쑤였다. 1990년대 초에는 매달 10만명의 미국인이 보험 혜택을 잃고 있었다. 직장을 바꿀 때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200만명에 달했다. 영세기업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의료보험료 때문에 종업원들에게 보험혜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의료의 질도 떨어지고 있었다. 보험회사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정한 손실률을 정해 놓고 의사들이 처방한 치료를 거부하거나 지연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1권 217쪽)

 

  “급증하는 의료비는 국가경제를 무너뜨리고,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자의 임금을 갉아먹고, 개인파산을 증가시키고, 국가의 예산적자를 팽창시키고 있었다.”(1권 217쪽)

 

  “의료비는 급등하고 보장 범위는 줄어드는 이 악순환은 주로 보험에 들지 않은 미국인의 수가 늘어난 결과였다. 무보험 환자들은 진료비를 낼 여유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비용은 그들을 치료한 의사와 병원이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와 병원은 의료보험에 들어 있지 않거나 진료비를 내지 못하는 환자를 치료한 비용을 벌충하기 위해 의료수가를 올렸다. 이렇게 턱없이 높은 의료수가를 감당해야 하는 보험회사들은 보험 가입자에 대한 보장 범위를 줄이는 한편, 보험료를 올리고 공제율과 본인 부담률을 높이기 시작했다. 보험료가 올라갈수록 종업원을 위해 보험료를 분담하는 고용주가 점점 줄어들었고, 따라서 보험혜택을 상실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그리하여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1권 217쪽)

 

빌 클린턴은 대통령 임기가 시작하자마자 힐러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를 가동하고 대통령취임 100일안에 개혁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힐러리는 각 방면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의료보험 개혁안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제기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빌이 개략적으로 제시한 개혁안에는 급등하는 진료비를 억제하고 사무 절차와 보험업계의 관료적 형식주의를 줄이고 처방약을 적정 가격으로 내리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미국인의 의료보험 가입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1권 178쪽)

 

  “나는 예산에 대한 걱정보다 의료개혁이 부유한 미국에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1권 220쪽)

 

  “일부에서는 우선 55세부터 65세까지의 연령층을 시작으로 메디케어를 차츰 확대하여, 결국 보험에 들지 않은 모든 미국인에게 의료를 보장해주는 방식을 선호했다.”(1권 224쪽)

 

  “빌과 나머지 민주당 의원들은 단일 지급자 방식과 메디케어 확대방식을 거부하고, 시장 경쟁을 통해 보험료를 떨어뜨리는 이른바 ‘통제된 경쟁’이라는 준 민간시스템을 선호했다.”(1권 224쪽)

 

  “나는 병원에서 보낸 긴 시간동안 기분을 달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 약제사, 병원관리자, 다른 환자의 가족들과 현재의 의료체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 한 분은 처방약을 살 돈이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 메디케어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써줄 때마다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약값은 다행히 치뤘지만 복용량을 처방된 것보다 줄이는 환자도 많았다. 그래야 약을 좀더 오래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환자들은 곧장 병원으로 돌아올 경우가 많았다.”(1권 236쪽)

 

  “나는 직장을 옮겼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의료보험 혜택을 잃은 사람들과 이야기 했다. 이런 일은 매달 평균 200만명의 노동자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이미 암이나 당뇨병 진단을 받아 병력을 가진 사람은 ‘선행질병’이 있었다는 이유로 보험금을 받을 수없었다. 고정 수입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은 집세를 내든가 처방약을 사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1권 272쪽)

 

 

힐러리의 의료보험 개혁안은 미국 내에서 의료보험으로 많은 기득권을 유지하던 집단으로부터 집중적인 반대에 부딪힌다. 또한 이들 기득권 집단을 대표하고 있던 공화당 의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는다. 힐러리로서는 첫 정치적 시련이었다.

 

  “의료산업과 관계가 있는 세 단체가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고소한 것이다. 그들은 내가 원칙적으로 국가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퍼스트레이디는 봉급을 받지 않는다)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것은 물론이고 비공개회의에 참석하는 것조차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내가 회의에 참여할 수 있다면 정보 공개법에 따라 기자들을 비롯한 외부인에게도 비공개회의를 공개해야 한다고 고소인측은 주장했다. 그것은 우리의 작업을 교란시키고 우리가 ‘비밀’회의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대중과 언론에게 주기 위한 교묘한 정치 술수였다.”(1권 229쪽)

 

   “수십 년 동안 의료보험회사들은 점점 강력해졌다. 많은 보험회사들이 전 국민 의료보장을 반대한 이유는 그것이 보험회사가 청구할 수 있는 보험료 액수를 제한하고 고 위험 환자들이 보험가입을 거절하기 어렵게 만들 거라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전 국민 의료보장은 민간보험의 사망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들린다고 생각하는 보험회사도 있었다.”(1권 220쪽)

 

   “8월말에 벤첸 장관과 워렌크리스토퍼 국무장관, 로버트 루빈 경제고문은 의료 개혁을 뒤로 미루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먼저 추진하자고 주장했다.”(1권 270쪽)

 

   “우리는 의료개혁안에 대한 홍보전에서 여전히 밀리고 있었다. 공직의 권위로 무장한 게다가 인기 있는 대통령도 부정직이고 왜곡된 광고와 그밖의 온갖 수단에 수억 달러를 쏟아 붓는 조직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정부가 처방약 값을 통제하면 자기네 이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제약회사들과 전 국민 의료보장을 반대하기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는 보험업계와도 대결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지지자들 가운데 일부는 의료개혁안이 자기네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차츰 열의를 잃어가고 있었다. 끝으로 우리 개혁안은 -의료문제 자체가 복잡한 것처럼-본질적으로 복잡해서, 그것을 홍보하는 것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거의 모든 이익단체가 의료개혁안에서 반대할 꼬투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1권 337쪽)

 

   “보험업계는 우리의 개혁안을 효과적으로 왜곡했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이 지지하는 개혁의 핵심요소가 실제로 클린턴개혁안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1권 341쪽)

 

 

 힐러리의 의료개혁안에 주동적으로 반대한 집단은 바로 ‘보험회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타 의사집단은 주요한 반대자였다. 다음은 힐러리가 판단한 찬 - 반 진영이다.

 

   “소비자와 가족 노동자 노인 아동병원 소아과의사를 대표하는 단체들은 대부분 찬성하는 쪽에 섰다. 하지만 기업체 특히 영세기업과 제약회사와 거대한 보험회사들은 오래 전부터 의료개혁을 위협으로 간주했다. 의사들도 개혁안의 특정 부분에 반대하고 있었다. 반대세력의 조직력과 자금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9월초 미국의 보험회사들을 대표하는 강력한 이익단체인 의료보험연합회가 개혁안의 평판을 떨어뜨리기 위한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1권 273쪽)

 

 

힐러리는 의료개혁안에 대한 소문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전파하고 서해안에서 워싱턴까지 전국에서 많은 청중을 끌어 모아, 개혁안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국회에 보여주자는 생각에 ‘의료보장 익스프레스’라고 명명한 버스를 타고 ‘버스투어’를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 조차 의료보험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너무 많았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미국 주류집단이 얼마나 서민들의 문제에 무관심한지 드러난다.

 

    “연방기금으로 운영되는 의료보험 프로그램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차이점도 모르는 하원의원이 한둘이 아닌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정부로부터 어떤 종류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지를 모르는 의원들도 있었다.”(1권 340쪽)

 

결국 힐러리는 의료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없었다.

 

    “(민주당의)버드상원의원은 의료개혁안은 예산 조정안에 포함시키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라고 말했다.”(1권 230쪽) “우리는 앞으로 오랫동안 미국의 사회보장 정책과 경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의안을 마련하는 일을 너무 서둘렀다.”(1권 230쪽)

 

    “때마침 발생한 소말리아 사태와 러시아에서의 쿠데타 문제로 의료개혁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1권 283쪽) “빌이 예정했던 100일 기한은 지난 지 오래였고, 특별위원회는 5월말에 해산했다. 그후 몇 달동안 의료개혁문제는, 대통령과 그의 경제팀 ․ 입법팀이 재정 적자 감축안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1권 270쪽)

 

    “20개월만에 우리는 패배를 인정했다. 우리는 다양한 의료계 전문가만이 아니라 국회의 동맹자들까지도 소외시켰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수의 미국인을 돕기 위해서 의료보험에 가입한 절대 다수의 미국인이 지금 누리고 있는 혜택과 선택권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그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다. 또한 개혁안이 의료보험 혜택을 상실할 위험에서 그들을 지켜주고 앞으로는 좀더 알맞은 가격으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주리라는 점도 납득시키지 못했다.”(1권 362쪽)

 

   “2002년에는 경제가 다시 어려워 졌고, 1990년대에 신중한 관리로 적립된 기금은 이제 제자리걸음이고, 의료보험료가 물가보다 훨씬 빠르게 다시 상승했고,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의 수가 다시 늘어났고, 메디케어에 의존하는 노인들은 여전히 처방약 값을 보장받지 못했다.”(1권 364쪽)

 

 

 힐러리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의료개혁이 실패한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하다. 힐러리의 입장에서 미국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의료개혁안의 실패는 현실 제도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반성을 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는 기득권 세력과의 타협과 절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의료개혁안은 무려 1천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었는데, 힐러리 자신이 “능률적으로 합리화하고 간소화하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인정하고 있듯이, 대중들에게 효과적인 핵심사항을 전달하는 것에 실패했다. [미국민중사]를 저술한 하워드 진의 표현에 의하면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펴낸 최종보고서는 빽빽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1,000쪽에 달하는 분량에서 문제에 대한 해답 -폭리를 추구하는 보험회사들의 개입없이 어떻게 모든 미국인들에게 의료보험을 보장해 줄 것인가-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미국민중사 2],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시울, 2006년, 528쪽) 그렇다면 의료개혁위원회에서 제시한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힐러리 자신이 드문드문 언급하고 있어 책에서는 구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 대신 독자여러분들은 이 내용을 [미국의 의료보장]이라는 책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1993년에 제안된 이 안은 전 국민에 대한 보편적 의료보장, 단순한 관리, 비용 절감, 질 향상, 선택 확대, 책임 강화 등을 원칙으로 하여, 기존의 틀을 최소한으로 바꾸면서 정부가 개입하여 전 국민이 의료보장에서 배제되지 않게 하는 목표를 정했다. 이 안은 보험료와 급여, 본인 부담의 상한선 등을 연방정부가 정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전 국민 의료보장에 한 걸음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민간부문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이 이 제안의 또 다른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특징적으로 ‘관리되는 경쟁’ 개념을 적용하였는데, 지역별로 구매자 조직인 ‘건강연합’을 만들어 보험료로 재원을 조달하고 집단적으로 민간보험을 구매하는 역할을 하게 하였다. …… 중략 …… 노동자들의 보험료는 최대 80%까지 사용자가 내게 하고 20%이하를 본인이 내게 하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자는 정부가 일부를 보조한다. 건강연합의 중요한 기능은 가입자를 대신하여 민간보험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보험료 산정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 안은 초기에 비교적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 중략 …… 그러나 클린턴의 개혁안은 법안이 의회에 제출된 이후 전국적으로 격렬한 논쟁을 벌인 끝에 1994년 의회에서 결국 부결되었다.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미국의 의료보장], 김창엽지음, 한울, 2005년 286쪽)

 

힐러리는 이후 의료개혁보다는 세부 복지혜택 확대로 방향을 전환한다. 클린턴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이후에 공화당이 지배하는 국회에서 공화당의원들은 기존의 복지혜택을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 복지법안은 빌 클린턴의 거부권 행사로 두 번이나 부결되었다. 이에 따라 공화당과 민주당은 새로운 복지법안의 내용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소위 ‘복지개혁’으로 잘못 알려진 1996년의 ‘개인적 책임과 노동기회 조정법(Personal Responsibility and Work Opportunity Reconciliation Act of 1996)'이다. 이 법안은 사실 미국내 진보진영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필자의 블로그 ’중산층의 몰락과 기생경제의 번영-2‘참조) ’미국민중사‘의 저자 하워드 진이 비판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1996년 여름, 클린턴은(다가오는 선거에서 ‘중도’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시도속에서) 뉴딜 아래 시작된 가난한 편모가정에 대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 보장을 중단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것은 ‘복지개혁’이라 불렀고, 법 자체는 ‘1996년의 개인적 책임과 노동기회 조정법’이라는 기만적인 명칭을 갖고 있었다. 클린턴은 이런 결정으로 과거의 자유주의적 지지자들 대다수를 소외시켰다. 피터 에들먼은 보건부 차관보에서 사임하면서 클린턴이 우파와 공화당에 굴복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 중략 ……‘복지개혁’의 목표는 연방정부의 복지수당 지급을 2년 기한으로 축소하고, 평생 5년 이상은 복지수당을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하고, 어린이가 없는 가장은 3년에 3개월 동안만 식품교환권을 수령하도록 함으로써 연방정부의 복지수당을 받는 빈민가정(그 대부분은 편모가정이었다)에게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합법적인 이민자들이 빈민의료보조를 받을 자격을 상실하고 빈민 가정들이 복지수당에 새롭게 도입된 5년의 제한 규정에 맞서 분투하는 한편 …… 의료전문가들은 결핵과 성병의 부활을 예상하고 있다.)[미국민중사 2],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시울, 2007년, 507쪽)

 

말하자면 이 법의 핵심 명분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5년간 제한하는 대신에 향후 항구적인 빈곤탈피를 위해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돈을 지원하는 대신 일자리를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이 법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자리 제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에 있다. 그러나 하워드 진에 의하면 “(5년이 지나서)복지수당을 받지 못하게 될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47만명이 복지수당 대상에서 제외되는 뉴욕의 경우 기존 고용증가율로 계산해 보면, 복지수당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전부 일자리를 얻으려면 25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됐다.”(위의 책 508쪽) 그러나 힐러리는 이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인 인식을 하고 있다.

 

   “ 이 법안은 취업으로 전환한 사람에게 더 많은 지원을 제공했고, 아동 보육비를 신설했고, 식량표와 의료 혜택에 대한 연방정부의 보장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합법적 이민자에 대한 복지 혜택을 대부분 중단하고, 연방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평생 동안 5년으로 제한하고, 매달 지급액의 상한선을 현 상태로 유지하면 상한선은 주정부가 임의로 정할 수 있게 했다. 연방 정부가 주정부에 양여하는 복지기금은 수혜자의 수가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던 1990년대 초에 주정부가 받았던 액수로 고정되었다.”(2권 160쪽)

 

   “내가 가장 걱정한 것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평생동안 5년으로 제한한 점이었다. 이 기간 제한은 경제가 호황이든 불황이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의존 지향적 복지제도를 자립지향적 제도로 바꿀수 있는 역사적인 기회였다.”(2권 161쪽)

 

   “나는 의료개혁안 실패를 지나칠 만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주고받는 양보와 타협이 없었던 것도 실패의 한 원인이었을지 모른다. 정치에서 원칙과 가치는 타협할 수 없지만, 특히 우리처럼 어려운 정치 여건에서 진전을 이룩하려면 전략과 전술은 충분히 유연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과 아동이 좀더 나은 삶을 얻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복지 개혁안을 통과시키고 싶었다. 이제 낡은 복지제도가 새것으로 바뀌었으니까 더 중요한 문제인 빈곤과 그 결과 -결손가정, 열악한 주거환경, 가난한 학교, 의료보험 미가입-에 대해 논의하자고 미국 대중을 설득하고 싶었다. 나는 복지개혁이 저소득층에 대한 관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기를 기대했다.”(2권 162쪽)

 

   “빌과 내가 백악관을 떠날 때쯤에는 복지 수혜자가 1,400만 명에서 580만 명으로 60퍼센트나 줄어들었고, 수백만명의 부모가 일자리를 구했다. 주정부는 이런 근로자들에게 계속 의료혜택과 식량표를 제공하여 대부분 시간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그들을 지원했다. 2001년 1월까지 빈곤 아동은 25퍼센트 이상 줄어들어 1979년 이래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했다. 복지 개혁, 최저 임금액 인상,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세금 감면, 경제 호황 등으로 거의 800만명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이 숫자는 레이건 시대에 빈곤 수준에서 벗어난 사람의 100배에 이른다.”(2권 163쪽)

 

위 인용문중 맨 마지막 인용단락에서 힐러리가 제시한 수치는 불확실한 수치이다. 즉 통계상 빈곤층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실제로 빈곤을 극복했는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힐러리의 주관이다. 즉 힐러리가 인용한 수치는 '빈곤층 프로그램에서 벗어난 사람의 수치'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지개혁’자체가 인위적으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큰 흐름에서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즉 클린턴은 미국정부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소위 ‘균형예산’) 군사부문의 예산이나 막대한 대기업 보조금을 줄이는 대신 복지예산만을 줄이려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복지개혁’은 합법적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혜택을 일방적으로 삭감하였다. 합법적 이민자들은 시민권을 얻지 못할 경우 식품교환권과 복지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합법 이민자 중에 “약 50만명은 시민권을 얻는데 필요한 시험에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영어를 읽을 수 없었고, 이제 와서 배우기에는 환자이거나 장애인이거나 나이가 너무 많았다.”([미국민중사 2], 505쪽)

 

 

 

끝으로 힐러리 그녀의 홈페이지에는(http://clinton.senate.gov/) ‘건강(Health)’이라는 공약이 서술되어 있다. 그중에서 ‘개괄(Overview)'과 ’의료보장 확대(Healthcare Affordability)‘항목을 번역하여 놓는다.

 

 

 개괄(Overview)

 건강보다 우리 생활을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면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과 밀접하게 관련된 주제는 없다. 미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민들이지만, 불행하게도 미국의 의료체제는 심각한 결점을 안고 있다. 의료비용의 증가, 의료보험료의 증가, 의료보장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보장혜택이 부족한 사람들의 증가, 의료서비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증가가 결점의 주요내용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일인당 의료비용으로 다른 선진국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하지만, 아직 다른 나라보다 평균수명, 영아사망율 등의 핵심적인 의료지표는 턱없이 수준이 낮다. 명백히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검토하여 보다 향상된 의료체제를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

 

 의료보장 확대(Healthcare Affordability)

 미국은 현재 4천6백만명의 사람들이 무보험자이며, 뉴욕의 무보험자수는 거의 3백만명에 달한다. 이 사람들의 상당수는 의료보험료가 년간 두자리수 이상 증가하기 때문에 보험가입을 할 수 없는 경우이다. 폭증하는 의료보험료는 영세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도 점점 더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근로자를 위하여 직장보험료를 지급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도 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3년에 200인상 고용하고 있는 기업의 2/3에 달하는 회사에서 일부 의료서비스를 폐지했으며, 보장영역을 유지하는 것에 더 많은 비용을 지급했다고 응답했다. 보다 많은 의료혜택을 달성하기 위한 해결책의 하나는 무보험 개인들에게 현존하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나는 ‘아동의료보험’에 빈곤층 무보험 부모가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가입할 수 있는 정책을 지원한다. 나는 소기업의 근로자 의료보험 가입을 지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금감면이나, 소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하여 대규모로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정책을 지원한다. 나는 치솟는 의약품 비용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의약품비용은 물가상승율 보다도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고령자나 만성적인 질병자, 저소득층의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 의약품비용의 증가는 많은 뉴욕시민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한 관리를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의약품 비용을 위해서 음식과 주거와 같은 기본적 필수재 사용을 포기하게 만든다.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의약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암치료제와 같은 생물학적 의약품에 대해서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음식과 의약품 관리를 개선할 수 있도록 입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또한 안전하고 합법적인 의약품의 재수입도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