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연극

영화 '굿바이 칠드런'

파랑새호 2008. 12. 26. 09:32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 사람들에게 2차대전의 경험, 아우슈비츠의 경험, 독일로부터의 식민지 경험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식민지라고 하는 것이 국가와 유형을 불문하고, 독립을 억누르고 반드시 ‘협력자’를 만들어 낸다는 측면에서 동 서양의 구별은 없다. 유태인에 대한 독일의 탄압은 일정한 동조자를 얻어내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영화 ‘굿바이 칠드런’에서는 감독 개인의 2차대전 당시 식민지 경험이 주요 내용이다. 상류층 자제들이 다니던 신학교에 숨어 있던 유태인 학생 3명이, 학교의 식당에서 일 했지만, 나중에 교장신부에 의해 해고 된 ‘노동자’의 밀고로 잡혀간다. 만일 학교 식당에서 해고 된 ‘노동자’의 밀고가 없었더라면, 유태인 학생 3명과 교장신부가 끌려가 처형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영화 정보를 보니 이 영화가 ‘루이 말’이라는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다룬 것이라고 하는 데, 참으로 어설픈 느낌이다.

 

교장 신부는 독일의 식민지 상황에서 학생들을 만나러온 부유층 학부모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빠져나가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성경말씀을 주제로 강론한다. 학부모 한명은 항의의 차원에서 강론 도중 나가버린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오늘 세게 나오시네.”라고 촌평한다. 그리고 학생들의 집이 부유해서 학생들이 집에서 갖고 나온(당시로서는) 비싼 음식들을 받는 대신에, 우표나 담배를 제공하고 그 비싼 음식을 내다 팔아 돈을 챙겨온 식당 종업원은 일이 발각되어 해고된다. 학교 식당에서 학교 물건을 빼낸 사람은 주방을 책임지는 여자도 있는데, 어쨌든 이 청년 노동자만 해고된다. 학생들은 무사하고. 부유층에게 일장 훈시했던 교장 신부는 마음 같아선 학생중의 한 두명을 퇴학시키고 싶지만, 식민지 상황에서 ‘돈’ 때문에 자르지 못한다. 자신만이 처벌당했던 것에 앙심을 품고 해고당한 청년노동자는 독일군 게슈타포에게 유태인 은닉 사실을 밀고한다.

 

‘굿바이 칠드런’에 대한 영화소개는 거의 대부분이 ‘걸작’이라고 되어 있다. 어떤 점이 걸작인지 나는 전혀 모르겠다. 내가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한겨레신문에 소개 글이 올라와서 인데, 특히 한겨레신문의 영화소개는 거의 믿을 수 없다. 1시간 40분의 시간 내내 학교를 중심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내 생에 최고로 지루한 영화였다. 같이 관람했던 마누라와 딸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설마 학교만 나올지 몰랐다. 학교가 아닌 다른 장면도 나오겠지 하고 기다렸지만, 끝까지 학교만 나온다.” 영화속 경험은 한국 사람에게는 너무나 흔한 것이다. 역사책속에서 우리는 프랑스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식민지를 경험했고, 더 절박했다. 서구인들이 ‘걸작’이라고 주장하는 영화 중에는 우리가 판단할 때 걸작 아닌 것도 많다. ‘굿바이 칠드런’은 대표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