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연극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파랑새호 2009. 3. 25. 09:48

신자유주의 철학의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보면 인도에 대한 찬사가 많이 나온다. 인도는 비교적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미국이나 유럽과는 정반대의 시간대라서 특히 전화상담(에이알에스)에 호조건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임금은 싸다. 서구의 다국적기업의 서비스 영역이 인도로 많이 이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만일 같은 서비스를 미국이나 유럽에서 제공한다면 24시간 근무와 교대라는 조건 때문에 엄청난 비용이 소모될 것이라고 책에서는 주장한다. 후진국 국민을 다국적기업의 비정규직으로 변화시켜 빌붙게 하는 전략, 그것이 바로 '아웃소싱'이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는 이런 인도의 상황이 영화 내내 지속적으로 드러난다.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면서 인도 봄베이의(지금은 도시의 명칭이 ‘뭄바이’로 변했지만, 인도의 오래된 도시이며, 얼마 전에 폭탄사고가 발생한 도시이다)수많은 슬럼이 초고층으로 변해간다. 초고층으로 변해갈 때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폭력집단도 더불어 양산되고, 못사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빌붙어 기생하거나 서구자본의 전화상담 노동자로 살아가야 한다.

(내가살던 집도 없어지고, 마을도 없어지고, 더불어 사람도 사라졌다.)

 

주인공은 전화상담 노동자의 ‘보조원’이다. 전형적인 비정규직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는 여타 영화의 주인공처럼 정직과 사랑이 남아있다.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가난하고 불행한 조건에서도 정직한 그의 성품 등이 부각된다. 퀴즈대회에 나가 결정적인 두 문제를 한 문제는 정직함으로, 다른 한 문제는 그야말로 우연으로 선택한 답이 정답이 된다.

 

이 영화를 순전히 내 방식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개발 되는 것이 가난한 사람에게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사랑을 찾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퀴즈대회에 나가 우연히 정답을 맞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인도의 경찰은 전기고문, 물고문을 자행하고, 졸라 무식하다. 그러면서 영화는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라는 것인지,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것인지, 아무튼지 가난한 사람 중에 한두명은 부자가 되겠지만, 나머지는 운명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얻는다. 지금의 열악한 상황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에 의해 극복이 되고, 역경 속에서 사랑을 찾고 행복해진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런 주인공이 되는 꿈을 꾼다. 다만 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극복’이나 ‘행복’, 혹은 ‘쟁취’보다는 ‘그냥 버티기’로 상황이 종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