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출처 ; 'The Cuban Revolutionary Doctor, The Ultimate Weapon of Soridarity'
[ Monthly Review ] Jan. 2009
저자 ; Steve Brouwer
※ 미주는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 8월 19일, 체 게바라는 "혁명의료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쿠바군에게 강연을 했다. ;
몇 개월전, 이곳 아바나에서, 이제 막 졸업한 의사들이 일정한 보수를 요구하면서 먼 시골지역에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만일 의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이들처럼 대학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는 유복한 집안출신이 아니라, 학교를 진학하기에는 너무 가난하여 직업훈련을 받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어떻겠는가? 만일 2~3백명의 농업노동자가 대학교에 공부하러 나타난다면 어떻겠는가?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모두 노동자와 농민들의 자식으로 구성된 신입생들이 6~7년간의 공부 끝에 모든 종류의 전문 학위를 받을 수 있다면 …… 만일 우리가 의사 노동자들을-예전에 잊고 있었던 이 명칭 사용을 허용해 준다면- 성공적으로 양성한다면, 그래서 연대를 위한 새로운 무기로 이들을 활용할 수 있다면 ……
이제 아르헨티나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혁명적 변화를 희망하면서 과테말라를 탐사한 체 게바라의 희망은 마침내 실현되었다. 쿠바와 쿠바의 의사들은 국제 "연대"를 위한 경이적인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새로운 무기"는 성공적으로 배치되었다. 사실상 나는 지난해 베네수엘라의 산간마을에 살면서 혁명의 성과에 대한 체의 주장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증언할 수 있다. 농민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기꺼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
내가 살았던 마을은 영어를 전혀 사용할지 모르는 125명의 농민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고등학교에 가본적도 없고, 대학근처에도 못가 본 사람들이다. 이들 농민가족 중에서 11명의 청년이 의학과정에 등록했으며 6년간의 의학과정을 졸업하면, 공동체를 위한 일차의료(comprehensive community medicine)영역에서 본격적인 의사활동을 하게 된다. 이 학생들 중에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세도 있고, 애가 있는 30세도 있다. 이들 모두는 공동체 내에서 양질의 의료로 사람들의 건강을 책임지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체 게바라와 같이 혁명적 지식과 정신으로 무장하여, 국제연대 정신에 입각한 의사로서 복무할 수 있는 미래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의 경험은 쿠바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의 여러 국가에서 협력하고 있는 활동이 어느 정도 새로운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쿠바의사들은 과거에는 좀처럼 경험할 수도 없었던 가난한 대중들에게 의료를 전달하기 위하여 의사, 간호사, 기타 의료기사 육성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체 게바라와 혁명 초기 활동가들이 추구했던 새로운 의료 개념은 수십 년간 발전해 오면서 마침내 그 결실을 맺고 있다. 수천 명의 의사들이 혁명의료를 가르치고, 실천하고 있다. 그들은 아주 좋은 일에 쓰기 위해 의료라는 "무기"를 활용하고 있다.
2003년 쿠바의 의사들은 오랜 세월 소외되었던 대중들에게 의료를 베풀고,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혁명을 위해 대규모 지원을 시작했다. 특히 쿠바 의사들의 지원은 의료서비스를 총체적으로 붕괴시켰던 베네수엘라 의료재단의 파업 때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카라카스의 리베르타도 구역(Libertador section of Caracas) 시장 ‘프레디 버날’(Fredy Bernal)은 새로운 공동체 의료 네트웍 구축에 종사할 의사를 직접 고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지원한 베네수엘라 의사는 50명에 불과 했다. 그중에서 단 20명만이 리베르타도의 가난한 이웃을 위한 진료에 동의했다.
의사들의 소극성에 실망한 시장은 쿠바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쿠바는 다른 나라에서 의료지원활동을 충분히 경험한 의사집단을 파견하였다. 또 몇 개월 못가 쿠바의사 수백명이 일차의료를 위한 새로운 네트웍 구축을 지원하기 위해 카라카스에 도착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바리오 아덴트로'(Barrio Adentro, inside the neighborhood 직역하면 이웃과 함께라는 정도의 뜻이다.)라고 명명한 시범프로그램이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2004년 중반까지 만 명 이상의 쿠바의사들이 '바리오 아덴트로'에 참여했으며, 전국 모든 주민들의 의료요구에 부응하였다. 라틴아메리카의 반혁명세력은 의료 인력의 대규모 배치를 간과할 수 없었다.
미국 국무부 차관 존 볼튼은 2002년도에 자신이 주장했던 내용을 반복하면서, 2004년 3월30일 "우리는 쿠바의 제한 생물학 무기 개발을 우려 한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내의 인물들조차 쿠바가 실험실에서 치명적인 생물학적 재료를 혼합하는 형태로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주장은 사실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볼튼의 주장은 쿠바인들의 빈곤화와 고립화를 도모하는 오랜 기간 쿠바에 대한 미국정부의 적대정책을 더 한층 강화하기 위한 의도임에 틀림없다.
한편에서 베네수엘라 국민 대다수의 건강수준을 높이기 위해, 질병이나 세균과 싸우면서, 의료인들의 활기찬 인도적 활동을 바탕으로 상호 협력하는 쿠바와 베네수엘라 정부가, 다른 한쪽으로는 사람을 살상하기 위한 생물학 무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세계의 최강 군사 대국 미국은 최근까지 지구적 금융자본의 주인으로,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쿠바가 추진하고 있는 국제연대 활동에 대해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서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이를 우려하고 있다. 쿠바는 아주 유용하고 인상 깊은 방식으로 자국의 인적자본을 작고 가난한 나라에 파견하고 있다.
쿠바는 어떻게 인적자본을 육성하여 파견할 수 있었는가?
1959년 이후 쿠바는 한정된 경제자원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의료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쿠바의 의료시스템은 다수 선진국보다 더 훌륭하고, 모든 개발도상국의 선망이었다. 유아 사망율이나 평균수명과 같은 세계의 통계 기준으로 비교를 해보아도 우수성이 입증된다. 또한 의사를 육성하는 교육시스템이 갖고 있는 장점으로 의사수가 여타 국가보다 훨씬 높다. 2007년 쿠바는 국민 155명당 의사1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수치는 서유럽의 330명당 1인, 미국의 417명당 1인보다 훨씬 높은 수치이다. 쿠바는 2007년 72,416명의 의사가 1,120만명의 국민을 진료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수치는 OECD의 통계천명당 의사수를 비율에 의거하여 나타낸 수치이다. (역자주 ; 우리나라는 약 548명당 1인 - 2006년말 기준임)
1958년 쿠바혁명 전에, 인구 1,051명당 의사 1명에 불과했던 그 시기에, 모든 의사수의 절반 이상이 혁명 쿠바에서 의료 활동을 원하지 않아 미국이나 다른 국가로 떠난 경험이 있다. 1967년까지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수는 약 3,000명에 불과했으며, 인구 2,000명당 의사1인의 숫자에도 모자랐다. 의사를 새롭게 양성하는 과정은 더딘 상태였다. 아바나 의과대학이 1959년 혁명 승리이후(아바나 대학은 독재자 바티스타가 1956년부터 폐쇄한 상태였다.) 다시 강의를 시작했을 때, 161명의 의과대학 교수 중에서 23명만이 남아 있었다. 1975년까지 쿠바는 인구수에 대한 의사수의 비율을 혁명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물론 이 수치도 제3세계 국가와 비교할 경우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세계적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쿠바 의료 체계가 수년 동안 강조 했던 것은 평등한 의료 활동, 모든 국민에 대한 예방의학 프로그램의 강조, 정부의 교육활동으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문제에 대한 향상된 지식습득 등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쿠바는 이런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1984년 - 85년 사이에 쿠바 정부는 ‘종합일반의료’(Comprehensive General Medicine)라고 명명된 프로그램으로 의료체계를 개선하기로 결정하였다. ‘종합일반의료’는 한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한팀으로 구성된 가정의학 진료팀이 전국의 모든 주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2004년까지 가정의학 진료팀은 모든 쿠바인의 99퍼센트 이상에 대한 진료실적을 기록했다. 각 팀 마다 120-150가구의 주민을 상대로 진료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정기적으로 모든 가구와 가정 혹은 사무실에서 면담하면서, 마을 전체와 각 개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강문제를 인식할 수가 있다. 모든 사람의 살아있는 통계를 확보하는 진료활동과 질병예방, 건강교육에 중점을 두는 활동은 국민들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며, 질병이환율을 감소시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단센터 혹은 ‘복합의원’은(polyclinic) 현대적 장비와 시설을 구축하고, 다양한 수의 전문의와 의료전문가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각 복합의원은 총 인구 2만명 내지 4만명 수준의 마을을 담당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 단위가 되었다.
‘종합일반의료 프로그램’은 ‘특별시기’라는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다. ‘특별시기’는 쿠바에게 가장 큰 무역상대국이었던 소련과 동구유럽의 붕괴로, 쿠바경제가 겪게 된 1990년대의 심각한 불황을 의미한다. 물론 미국의 경제제재로 촉발된 의료장비와 의료수준의 심각한 단점도 진료에 많은 어려움을 발생시켰다. ‘특별시기’동안 특별히 두 가지의 주목할 만한 성과가 쿠바의료체계에서 달성되었다. 첫째 제한된 식량 배분으로 인하여 어른들의 경우 적정한 칼로리 수준을 달성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 쿠바어린이에게는 건강한 영양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식량이 제공되었다. 둘째, 쿠바 의사들에 대한 교육이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확대되었다. 인적자본이라는 가장 큰 자산을 활용하기 위해 쿠바정부는 1990년대 기간 의과대학 졸업생을 3만8천명이나 배출했다. 이 수치는 1970년대와 비교할 경우 4배가 넘는다.
21세기 초반, 쿠바는 점차 경제를 회복시키고 있지만, 아직 인구 1인당 소득수준은 낮다. 2002년에 쿠바 정부는 특별시기 동안 억눌려 있던 사회주의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하여 “혁명속의 혁명”이라 명명 된 운동을 촉진시키면서 약간의 경제적 이익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특별히 주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의료기관, 복합의원과 병원, 공립학교 등, 모든 시민에게 제공되는 장비나 시설 개선을 우선으로 제공했다.
2007년에 쿠바는 보건통계를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유아 사망율 5.3%, 평균 수명 77세로서 선진국 수준과 비교해도 상위 그룹에 속하는 수치이다. 이런 상황이 가능했던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1998년 인구 천명당 의사수가 5.8명을 기록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사수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첨단 의료기술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지만, ‘종합일반의료’ 시행과정에서 막강한 가정의학 진료팀이 제공하는 예방활동과 진료서비스가 주민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국민들의 보건상태가 지속적으로 개선되었다. 의사는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어, 2007년의 경우 인구 천명당 의사 6.5명이 활동하였다. 대조적으로 서유럽의 경우 인구 천명 당 의사수는 3.1명, 미국의 경우 2.4명에 불과하다. (OECD발표, 2007년 기준, ※ 참고 ; 한국 - 2.2명) 의사수가 많다는 장점은 가정이나 개인에게 직접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가 많을 때 더욱 효과가 커진다. 쿠바의 경우 가정의들의 대부분은 종합공동체 진료라는 전문과목을 이수하였으며, 인구 천명당 3명이 확보되어 있다. 미국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는 의사들-가정의, 일반의, 일반내과의-을 모두 합해봐야 인구 천명당 0.7명에 불과하다.
이런 작은 나라에서 2007년 72,417명이라는 의사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의 어느곳이 든 질병치료와 빈곤대중 진료를 위해서는 국제연대라는 정신에 입각하여 의료전문가(간호사와 의료기사를 포함한다)수천명을 동원 할수 있다. 쿠바는 늘 국제연대 정신에 입각하여, 비록 쿠바국민들에 대한 진료인원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이러한 활동을 기꺼이 수행해 왔다. 1963년 프랑스 식민지의 인력들이 모두 떠나 극심한 부족상태에 있던 신생독립국 알제리를 위해 처음으로 아프리카에 쿠바 의사들이 파견되었다. 이후 쿠바의 의사들은 체게바라가 은밀한 작전을 수행했던 1960년대 콩고를 포함하여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자원해서 활동했다. 그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반군세력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한 격렬한 전쟁을 하고 있던 앙골라 혁명정부를 지원한 쿠바군대와 함께 의료활동을 수행하였다.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한 의사수의 확보가 증가하자, 해외에서 수행한 초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쿠바의 의료인력 파견은 더 많은 나라로 증가되었다. 쿠바는 1988년 ‘종합건강증진 프로그램’을(Comprehensive health Program) 시작하면서 해외의료 활동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아이티를 황폐화 시킨 허리케인 ‘조지’와 온두라스와 과테말라에 자연재해를 발생시킨 허리케인 ‘미치’가 발생했을 때 시작한 것이다. 쿠바는 즉각 의사와 여타 의료전문가 집단을 희생자를 돕기 위해 파견하였다. 특히 파견은 원거리 지역에 집중하였다. 이후 쿠바는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3개국의 피해가 거의 영구적이었기 때문에 당초 파견된 의사들을 아무런 의료서비스도 받지 못하는 지역의 일차 진료를 담당할 의사들로 교체하였다. 결론적으로 지난 10년간 쿠바는 상대적으로 미국과 가깝고,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 있어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와는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이들 3개국에 대해 필수적인 의료 활동을 수행해 왔으며, 활동 중인 의사들은 아직 귀국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익으로부터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다.
2000년 과테말라의 반공산주의 비밀 무장조직(ESA)은 오지에서 일하고 있던 459명의 쿠바의사들에게 협박 편지를 보냈다. ESA는 일간신문 ‘Siglo XXI’에 게재된 기사에 의하면, 쿠바인 의사들을 “전체주의적 공산주의 사상”을 확산시키기 위해 “의료전문가로 위장한 간첩”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경고했다. “ 만일 즉각적으로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그들에 대한 사형집행이 시작될 것이다.” 과테말라 정부는 결코 협박사건에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으나, 쿠바 의사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2004년 아이티에서는 부시행정부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리스티드(Aristide) 대통령을 축출한 이후 제랄드 라토르뤼(Gerard Latortue) 총리 과도정부에 압력을 행사하여 525명의 쿠바 의료노동자들에 대한 본국송환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아이티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의료서비스를 위한 다른 대안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티의 대부분의 의사들은 부유한 고객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도 주변에 모여 있었다. 버넷 케리솔(Burnet Cherisol) 아이티 아동보호 국장은 “현재 아이티 정부가 제대로 지원도 못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쿠바의사들의 진료는 상당히 많은 지역에서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의료서비스 이다. 아이티의 의사 중에는 전기도 없고, 숙박시설도 없는 먼 지역까지 가서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사람이 전혀 없다. 주민들의 삶의 질 저하를 방치할 수는 없다.”
2005년 온두라스의 대통령 마두로는 미국대사관과 온두라스 의료협회의 압력으로 국론이 너무나 분열된 상태를 초래하기 때문에 쿠바의사들을 추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의사협회는 쿠바의사들이 온두라스 의사들의 일을 빼앗고 있다고 주장했다.(사실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온두라스 의사들 중에 오지에 고립되어 있는 빈곤대중을 위한 의료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그러나 노동조합과 공동체 조직은 쿠바의사들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대통령의 조치를 취소하도록 많은 항의를 했다.
쿠바 의료지원단은 위의 3개국에 계속해서 머물고 있다. 의료 활동을 완수하기 위해 새로운 자원자들로 계속해서 대체되고 있다. 더군다나, 정치 환경도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단지 쿠바인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이들 3개국에서 쿠바유학을 하려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이후 쿠바 아바나에 있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 혹은 ELAM은 과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40여 국가에서 온 의과대학 학생들을 년간 1,500명~1,800명 수준으로 졸업시키고 있다. 과테말라에서는 2008년 1월 중도좌파 꼴롬(Colom)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예전에 휴스턴에서 심장전문의로 근무한 경력을 갖고 있는 라파엘 에스파다(Rafael Espada)를 부통령에 임명하였다. 라파엘 에스파다 부통령은 ELAM을 방문하여 900명의 과테말라 학생들을 격려하고, 수준높은 교육과정을 칭찬했다.
현재 의과대학생들은 ELAM을 졸업하고 모국으로 귀환할 경우 따뜻한 환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쿠바 의사들은 그들에게 국제협력의 새로운 방향을 지도하고 있다. 예를들어 온두라스에서 온 원주민들이 ELAM을 졸업하고 그들의 고향 ‘모스퀴티아 해안’(Mosquitia Coast)의 가리푸나(Garifuna) 지역으로 돌아갈 때, 수련과정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온두라스 의사들은 쿠바 전문의에 의한 레지던트 훈련 자격을 얻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졸업생들은 ‘키리보야’(Ciriboya)와 같은 고립된 지역에서도 새로운 의료설비를 이용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2008년 온두라스 대통령 ‘호세 마뉴엘 젤라야 로살레스’(José Manuel Zelaya Rosales)취임식에 쿠바 보건대표단과 의료설비와 시설에 대해 자문을 해줄 전문가들이 참석하여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3년 전 쿠바의사들을 추방하기 위해 노력했던 온두라스 의료협회의 놀랄만한 변화도 있어, 쿠바대표단은 환영받았다.
온두라스 서부의 작은 마을들은 오랜 기간 북부의 소수 상층 보수주의자들과 군부독재의 자본과 정치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제 온두라스 주민들은 쿠바를 막아보려고 설득하는 미국의 주장을 전혀 듣지 않는다. 미국 국무성은 증가하는 쿠바의 영향력을 우려하면서, 미국에 충성하려하는 쿠바인들을 매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6년 8월 부시 행정부는 ‘쿠바의료전문가 특별 망명제도’(the Cuban Medical Professional Parole program)를 도입했다. 이것은 특별히 쿠바의료인들이 쿠바 밖에서 의료 활동을 시행할 때,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다. 새로 신설된 미국의 ‘국토방위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는 쿠바의 의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간호사, 스포츠감독, 기타 특별대우가 허용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미국 입국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개정했다. 쿠바의료노동자는 약 4만명 가량이 외국에 머물고 있으며, 미국의 유혹에 빠진 사람도 있다. ; 대략 1~2백명 정도가 실제로 미국으로 갔다. 언론에서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들의 대부분은 보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좀더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 미국을 선택했다.
미국으로 망명하는 쿠바인들은 사회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고자 원하는 분위기에 지쳤으며, 좀더 많은 돈을 원했다. 미국의 쿠바인 망명우대프로그램은 많은 국가들의 국민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인도주의적 활동을 돈으로 매수하여 중단시키는 것이어서, 여러 국가로부터 의미 있는 조치로 인정받지 못했다. 분명 미국은 그들이 스스로 위축되어 있는 만큼 이념적 영역에서는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다.
새로운 혁명적 의사들의 배출과 사상전투
1999년 ELAM의 개설과 1998년 ‘종합건강증진 프로그램’하의 새로운 국제 의료협력단의 구성은 같은 시기 나타났던 많은 교육적, 이념적 노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쿠바정부가 원하는 방향은 2000년 피델카스트로의 노동절 연설에서 드러나 있다. 카스트로는 쿠바국민들에게 혁명적 자주성을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은 “사상전투”( “a Battle of Ideas.”)에서 주체적으로 투쟁하여 승리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카스트로는 “우리의 의식과 사상은 우리의 무기로 40년 이상 투쟁해온 혁명에 아로새겨져 있다. 혁명은 ......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했고, 사람으로 대우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사상전투”의 원동력은 1999년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엘리안 곤잘레스’(Elian Gonzales)라는 어린이를 쿠바에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로 송환하기 위한 노력이 성공한 것에서 나타났다. ‘엘리안’을 대신하여 쿠바 전역에서는 쿠바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수백만명의 대중시위가 있었다. 쿠바는 1990년대가 부분적으로는 혁신이 필요했고, 부분적으로는 궁핍한 상황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아주 힘든 시기였지만, 혁명이 손상되지 않도록 비상하게 관리해왔다. “사상전투”는 쿠바인들에게, “특별시기”동안의 불평등한 경제적 관계나,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일시적 타협으로 인해 손상될 수 있었던 인도주의적 가치와 사회주의의 중요성을 확인시켰다. 아벨 프리토 쿠바 문화부 장관은 2004년 쿠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로날드 레이건, 조지 부시, 마거릿 대처 등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자본주의 발전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오랜 기간 들어왔던 다른 국가를 위해서도 혁신과정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불합리함, 야만성, 현재의 세계자체에 부여된 자본의 강력한 법칙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사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폭탄이나 증오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평화와 연대, 건강, 교육, 문화로 지구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믿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사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의료지원 활동을 수행하는 이유이다. 비록 의료지원에 불과하지만, 이 활동은 연대사상과 우리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며, 사상전투의 핵심이다.”라고 프리토는 주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쿠바 국제의료지원단의 활동은 이윤중심의 인간행위만이 가치 있는 활동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에 대한 대안활동임을 입증하는 일종의 투쟁전선으로 나타난다. 21세기 첫 10년간 집중적인 노력을 통해 2008년 11월 세계의 75개국에서 38,544명의 쿠바의료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중 17,697명이 의사라고 쿠바언론이 보도했다. 핵심전장은 베네수엘라이며,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료지원단의 절반이 머무르고 있다. 그들은 베네수엘라의 새로운 의료전달체계인 ‘바리오 아덴트로’(Barrio Adentro)를 신속하게 구축할 수 있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1999년 유고차베스가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베네수엘라의 35,000명의 의사 중에서 4,000명만이 가정의학이나 일반의료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쿠바의사 소수의 무리가 처음 도착했을 때, 그들은 사실상 전 국민이라 할 수 있는 2,500만 명의 국민들이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던 거의 30년간 왜곡되어온 의료전달체계의 개선작업에 직면했다. 단지 의원급 규모의 작은 의료기관을 운영한 1,500명의 베네수엘라 의사들만이 황폐해진 의료체계에서 일차의료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그들 중의 일부는 그나마 파트타임근무였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쿠바인 수천명이 ‘바리오 아덴트로’에 2년간의 일정으로 참여하기 위해 베네수엘라에 왔다. 그들 중의 상당수가 활동연장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2006년 가장 많은 사람이 활동을 했는데, 당시 쿠바인들은 14,000명의 의사와 기타 의료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2008년 쿠바 의사수는 볼리비아나 여타 국가에 대한 파견, 귀국 등을 이유로 일정한 감소가 있었다. ‘바리오 아덴트로’정책으로 수립된 일차의료는 아주 인상적인 몇가지 결과를 산출했다. ; 진료는 7,878명의 가정의학 전문의가 담당하며(쿠바인 7,000명, 베네수엘라 의사 800명)1,499명의 전공의가 보조하고 있다. ; 신규 혹은 개선된10,991개소의 외래진료소가 설립되었다. ; 3,019명의 쿠바치과의사들이 2,024명의 베네수엘라 치과의사들과 함께 치과진료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기타 안과나 응급의학 전문의 등 쿠바 의사들도 진단 센터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예전에 국민 17,300명당 1인의 일차의료 의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3,400명당 1인이 확보되었다.
인상적인 또 다른 통계도 있다. 병원과 의료시설, 임상클리닉의 건설이 급속하게 진행 중에 있다. ; 유아사망율과 같은 통계는 인구 천명 당 21.4%에서 13.9로 개선되었으며, 이는 바로 일차의료가 국민들의 건강조건을 신속하게 개선시킬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임을 입증한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현저한 변화는 국민대중의 태도 변화에 있다. 오랜 기간 민간의료시설에 의해 무시당하고, 거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약 70%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이제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과 의료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쿠바의료전문가들과의 상호 협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새롭게 인식하면서, 주민건강위원회를 발전시키고 있다. 보건진료소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이전에 지역주민들은 새로 배치된 의사들의 진료를 위해 지역 내 가정에서 임시 진료소 마련과 의사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건강위원회를 발족 시켜야만 했다. 그들은 새로운 의사들의 도움으로 주민들의 사회적 육체적 환경을 점검받을 수 있었다.
2004년 필자는 처음 새로 건설된 진료소가 있는 '카라카스 바리오'라는 빈곤지역을 방문했다. 진료소는 작은 8각형 구조의 2층 벽돌집으로, 전국적으로 ‘바리오 아덴트로’ 건축양식에 통일되어 있어 금방 눈에 띄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작은 사무실과 진료실이 1층에 깔끔하게 배치되어 있고, 큰 종이가 안내데스크 뒤의 벽에 테이프로 붙어 있는데, 여러 개의 표로 나뉘어져 있고, 손으로 써놓은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이 종이에 담겨있는 내용은 바로 주민건강위원회와 2층의 작은방에서 살고 있는 쿠바 전공의들이 작성한 마을 전체의 건강기록이다. 종이에는 마을 주민 모두의 조사를 통해서 확보된 건강상태와 관련 있는 기본 보건수치가 드러나 있다. ; 천식을 앓고 있는 어린이는 몇 명인가? 영양개선이 필요하고, 마을의 공동식당의 지원을 받아야 할 노인은 몇 명인가? 고혈압 환자는 몇 명인가? 이런 종류의 자료들이 각 지역의 ‘바리오 아덴트로’ 보건진료소마다 진열되어 있으며, 주민들은 처음부터 주민을 위한 의료체계가 왜 필요한지를 배우게 된다.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의료혁명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으며, 다른 나라에도 확산될 수 있을 것인가? 의사를 좀더 많이 양성하자.!
베네수엘라에서 일차의료의 급속한 확대는 인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한 나라로부터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사실상 베네수엘라는 쿠바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오일재정의 상당한 금액을 지원하고 있지만, 쿠바의 사회적 분위기는 상당히 긴장된 상태이다. 일차의료를 위해 베네수엘라에 그렇게나 많은 의사들이 파견되었지만, 베네수엘라가 예전부터 쿠바와 가깝게 지낸 그런 나라는 아니다. 아바나의 쿠바의사들은 지구상 어디보다(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를 제외하고, 주민 1000명당 4.8명의 의사가 있으며, 미국의 2배이다)많지만, 모든 주민을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들은 2005년 ‘보스톤 글로브’에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고 불평하고 있다.
쿠바는 의료분야의 국제연대를 확대하기 위해 의사를 더 충원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2007년 12월까지 이미 1,553명의 의사를 포함한 2,200명의 의료노동자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혁명적 변화를 지원하기 위해 볼리비아에 머물고 있다.) 부분적이지만, 베네수엘라는 쿠바의료인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다. ; 베네수엘라는 쿠바 의료인력을 자국 가정의학 전문의가 채워주길 갈망하고 있으며, 국제지원활동에 필요한 자원봉사자 파견을 원하고 있다. 두 국가는 신규 의사인력 수천명을 육성하고, 모든 국민들의 건강한 삶을 촉진하기 위해 수많은 사회적 과학적 도전을 극복하고, 더 좋은 장비 생산이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2004년 쿠바는 세계의 여타 국가와 쿠바의 의과대학에서 수세기 동안 시행해온 전통적인 교육과는 다른, '복합의료 의과대학 과정'(the University Polyclinic Medical Training Program)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의료인 양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05년 베네수엘라에서는 'Medicina Integral Comunitaria'라고 불리는 비슷한 국가 의료인 육성 과정을 시작했다.
이와같은 신규 의료인 양성과정은 전통적인 대학캠퍼스를 불필요하게 만들고, "장벽없는 의과대학"을 양성했다. 이 과정은 지역 복합의원과 진료소에서 일정한 강의방식으로 진행하며, '바리오 아덴트로' 진료소 근처에서 환자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가정의학 전문의가 지도하고 참여하는 형태로 지원한다. 대학은 학생들이 가야하는 곳이지, 대학이 학생들을 찾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신규 대학과정은 농촌의 빈곤주민이나 도시의 노동자계급 학생들에게 집에서 살면서 자신의 지역공동체 내에서 의료훈련과정을 배우게 한다. 필자가 방문한 베네수엘라의 다양한 지역에서 소규모그룹 학생들이 ‘바리오 아덴트로’ 사무실이나 임상 진료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각 쿠바인의사/선생님과 함께 매일 오전 4시간동안 실습을 하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오후에는 지역중심지역에 자리 잡은 교실에서 또다른 소그룹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공부하게 된다.
학생들의 교육내용은 사회의학과 생의학의 광범위한 영역을 담당하는 쿠바인 전문가 60명이 마련한 새로운 교과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학생들은 해부학, 생리학, 유전학 등과 같은 전통적인 의학과목만이 아니라, 'morphophysiology'(조직생리학 ; morphology+physiology)와 같은 2개 이상의 과목이 결합된 새로운 교과도 포함하고 있다. 모든 수업은 시청각자료를 활용하여 다양한 의사/교수진에 의해 진행된다. 교실 밖에서 학생들은 각 교과목에 대한 DVD자료를 복습할 수 있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동료학생들과 함께 스터디그룹을 운영한다. 오전 실습시간에는 그들이 현재 배우고 있는 학습내용이나 환자들의 진료와 관련 있는 문제에 대해 가능한 많은 의문점을 질문해야만 한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교육에 대해 가정교사로서, 학생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학생들이 부진한 특정영역에 대해서나 혹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식을 흡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생들은 이처럼 상당히 엄격한 교육과정을 일주에 6일씩 6년간 이수해야만 한다. 그들의 교과과정은 전통적인 의과대학의 모든 내용만이 아니라, 실제 공동체의 문제나 특수성을 이해하고, 실제 환자들의 인간적 요인에 대한 심오한 경험을 체험한다. 필자가 쿠바의사/교수에게 학생들의 정규 수업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고 질문했을 때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오히려 의학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가 커, 환자들과의 밀접한 상호관계와 이해를 통해, 모든 시간 내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나는 이런 교육과정을 본적이 없다. 학생들은 쿠바의 전통적인 대학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만일 그들이 3년간 수업을 받았다면, 3년간의 교과과정은 기존의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쿠바학생보다 적어도 일년 이상의 교육과정을 더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학생들이라기보다는 상호 신뢰하는 의료동지처럼 보인다."
학생들에 의하면 교과과정 자체는 의사들과 긴밀하게 결합된 형태이다. 이것은 의사들이 의료실습과정에서 필요한 기능과 상세한 지식을 학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의사들은 또한 혁명적 봉사 모델을 제공한다. 의사들은 베네수엘라에 오기 전에 이미 경험한 예멘, 이디오피아, 아이티 등 다른 국가에서의 의료 활동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학생들도 이런 경험을 들으면서, 이후에 자신의 의료활동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Medicina Integral Comunitaria’교육과정은 새로운 의사를 양성해야 하는 베네수엘라 전역의 모든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Medicina Integral Comunitaria’ 교육과정에는 현재 20,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3기째 참여하고 있으며, 2009년 초가 되면 6개월간의 준비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4~5,000명의 4기 학생들이 입학할 예정에 있다.
쿠바에서도 비슷한 교육과정으로 주로 가정의학 의료진을 양성하는 '복합의료 의과대학 과정'(the University Polyclinic Medical Training Program)에 학생들이 12,000명이상 수업하고 있다. 또 17,000명 정도의 학생들은 기존의 의과대학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ELAM, 미국학생 약 100명이 포함되어 있는 자유의과대학과정 등에도 충분한 숫자는 아니지만, 외국인 학생들이 24,000명 공부하고 있다. ELAM은 베네수엘라에서도 개설되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전국에서 모여든 ‘Medicina Integral Comunitaria’ 학생들과 함께 800명 정도의 외국인 학생들도 수업을 받고 있다.
사회주의 의료와 자본주의 의료
베네수엘라를 돕고 있는 쿠바의 경우 미국의 의과대학 학생 모두를 합한 64,000명에서 68,000명의 학생수보다도 훨씬 많은 70,000명 정도가 의과대학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미국학생들은 4년간의 의과대학과정 동안 학비를 위해 평균적으로 14만 달러의 부채를 부담한다. 미국사회에서는 의사가 된 후 고소득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부채를 부담하거나 대부분의 의사들이 익숙해 있는 중산층 이상의 생활양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보수가 낮은 가정의학으로 전공의과정을 이수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심각한 경제 불황의 시기에 미국의 의사양성과정과 의료전달체계는 돈이 우선이며, 예전보다 더 도덕불감증에 빠져있다. 세계의 많은 국가들에서 미국모델은 이제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운영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들은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시도하고 있는 의료체계, 특히 지역주민을 위한 공동체 의료에 대한 교육과 진료활동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만일 21세기 사회주의 모델이 성공한다면, 또 처음 졸업한 학생들이 지금 활동하고 있는 쿠바의사들과 같이 세계 각지의 어려운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갈망한다면, 인도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더 많은 혁명적 의사들의 물결이 전 세계를 가득 채우기 시작할 것이다. 끝으로 체 게바라의 정신을 다시 한번 말하는 행복을 누려야겠다. : “조금은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진정한 혁명가는 위대한 사랑의 감정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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