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다시 태어나는 삶

파랑새호 2009. 8. 6. 13:16

 

  

 

 

 

 

 

 

 

 

 

 

 

 

 

[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꾸리에, 2009년 6월

 

사람은 ‘가치’를 고민하는 동물이다. 가치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

 

나는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언어가 우리 인간인식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라고 판단해 왔다. 언어는 자신이 속한 문화 속에서 습득하고, 발전한다. 문화는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응해가면서, 자신의 생존과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과정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언어를 매개로 모든 것을 배운다.(필자의 글 ‘논술이란 무엇인가’ 참조)

 

사람의 인식, 철학은 반드시 경험의 산물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도 인간의 생활속에서, 문화 속에서 나타났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이 있는 세상에서만 존재하시고,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는 존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나의 신앙고백이다. 나의 이런 신앙은 비록 내가 신학교를 졸업했지만, 맑스의 책과 여타의 철학책을 읽으면서 결론내린 것이다.

 

 

책의 저자 다니엘 에버렛은 미국의 ‘복음주의’교단에서 선교사의 자격으로 아마존 ‘피다한’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간다. 그는 언어학자였지만, 일차적인 관심은 선교에 있었다. ‘피다한’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며, 그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에버렛은 자신의 신앙이 문화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임을 처절하게 자각한다. 책에서 그는 상당한 분량의 내용으로 노엄 촘스키의 언어이론을 비판한다. 비판의 핵심은 인간의 언어는 경험의(문화)산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는 언어이론을 모르지만, 에버렛의 소개에 의하면 촘스키는 인간언어의 보편성을 인간언어의 유전자속에 갖고 있는 고유의 영역에 기인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에버렛은 ‘피다한’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인간언어는 인간이 살아가는 문화적 영향에 의해 형성된다고 결론 내린다. 나는 그가 사실상 맑스주의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절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가치가 허물어질 때 가장 고통스럽다. 살기위해서는 표면상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를 부정할 수도 있다. 먼 옛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그랬듯이, 혹은 일주일 내내 얻어터지면서 생각을 바꾸라고 강요당할 때도 그럴 수 있다. 이러한 진리부정은 강요된 것이다. 강요에 의한 진리는 힘이 없다. 나는 기독교의 선교가 진리를 강요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반면 새롭게 다가온 진리가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와 확연하게 다를 때, 예전의 진리를 바꿀 수 있다면 진정으로 개방적인 사람이다. 다가오는 진실, 사실, 행위, 사람들에 대해 좀더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 개방적인 자세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절대적인 기준을 믿지 않는 것이다.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여기에서의 진리가 저기에서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

 

적어도 ‘문명’속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일종의 ‘가치의 틀’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거나, 노인이나 약자를 기꺼이 도와줘야 한다는 ‘가치’등이 이에 해당한다.  '가치의 틀'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될 수도 있다. 윤리, 도덕, 철학, 세계관, 신앙 등이 '가치의 틀'에 영향을 미친다.  '가치의 틀'을 하나 둘씩 인정하다 보면 우리는 쉽게 어떤 상황이나 어떤 조건에서도 받아들여져야 하는 ‘절대적 가치’를 고민한다. 절대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우리 인생은 편하고 쉽다. 절대적인 가치에 나를 내맡기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부터인가 공허하고, 부족하고, 위험하고, 힘들다. 온전하게 내가 험한 세상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세상과 비교했을 때 나는 너무 나약하고 부족하다. "사람들을 구원하려면 그들의 삶에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심어줘라." 절대적인 가치는 사실 살기 어렵고 불행하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사람끼리 서로 의존하고, 돕고, 이해하고 살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용서한다. 설사 내가 무신론자라고 주장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삶은 곧 우리의 전부이다.  에버렛은 다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