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요 논점은 3가지다. 첫째, 무상의료가 좋긴 좋은데,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비현실적이라는 점, 둘째 현재의 건강보험료는 여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낮은 데, 보험료의 적정 인상 없이 무상의료는 불가능하다는 점, 셋째 앞의 두가지 요건이 불분명하고, 현실적인 대안도 없는데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점에 대한 간결한 최근의 주장은 대한병원협회에서 발행하는 [병원]이라는 잡지의 2011년 5~6월호에 ‘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재정은 건강보험료와 약간의 정부지원으로 조달하고 있다. 현재의 정부지원은 여타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다. 일단 재원이 부족하다거나 현재의 건강보험 재정만을 갖고 재원 운운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의료비지출을 선진국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또 다른 주장은 철저히 외면한다. 국민의료비에 대한 정부지출이 확대되어야 한다. 부자감세를 철회하고, 4대강 공사비 등을 줄여 국민의료비에 대한 지출비용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재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늘 상대적 측면에 불과한 것이다. 동전의 양면이다. 즉 국가의 재정지출 우선순위에 대한 문제이다. 무상의료는 국가 재정 지출에 대한 ‘천지개벽’을 요구한다. 현재의 재정지출 원칙대로 재원을 바라보는 것은 무상의료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현저한 관점의 차이를 드러낸다. 만일 무상의료를 실시하면 좋은데, 어디서 돈을 마련하느냐는 단순한 질문이라면 정부의 예산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답변할 수 있다. 대개의 논자들은 정부의 예산 집행은 다 쓸 곳이 있는데 가능하겠냐고 반문한다. 천만에 정부의 예산은 쓰지 않아도 될 곳에 많이 집행된다. 무상의료에 필요한 재원은 충분히 조달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가 선진국 수준에 비해 낮다는 점은 ‘사실’이다. 여러 조사에서 나타난 바와 같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일본의 제도를 본떠서 경제개발 과정에서 저임금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저부담을 우선순위에 두고 구축된 것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운영을 정부 재정지출 지원보다는 보험료에 상당히 의존하는 한, 보장영역이 대단히 협소한 점은 필연적이다. 저부담이 필연적으로 저보장 체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건강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출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러다보니 국민들은 저보장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서 부담을 늘리는 것에 민감하다. 심하게 말해서 별 혜택도 없는 데, 보험료만 올린다는 식의 사고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건강보험의 보장을 확대할 경우 일정한 보험료 부담도 고려하고 있다. 구체적인 근거는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주로 건강보험의 비급여와 본인부담금을 지급내용으로 하는 ‘실손보험’은 최근의 언론기사에 의하면 보험료가 10~20% 증가할 예정이다. 2011년 상반기 가입인구는 1,950만명이다. 물론 실손보험이라는 것은 건강보험의 보장혜택이 협소하기 때문에 발생한 ‘민간보험’으로서 바람직한 제도라고 볼 수 없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사람들은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인하여 추가로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보장영역을 늘리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건강보험료의 인상과 보장영역 확대는 반드시 실손보험 시장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민간업자들 배불릴 것이 아니라 적정 보험료 인상과 보장영역의 확대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다. 특히나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적정 보험료 인상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보장영역의 확대가 전제되고, 민간보험료 부담이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당연히 건강보험의 보험료 인상을 수용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을 씌우는 것은 보수인사들의 전매특허이다. 대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대중들의 인기만을 위해 영합하는 정치행태로 해석하고 있다. (포퓰리즘에 대해선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되어 있는 ‘코포라티즘과 포퓰리즘’을 참조) 언제부터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이런식으로 해석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포퓰리즘은 19세기말 미국에서 자유경쟁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변하면서, 자유경쟁 자본주의를 지지한 사상이다. 코포라티즘은 극심한 시장경쟁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시장의 왜곡을 주요 문제로 지적했다면 포퓰리즘은 소상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여,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을 주장했다. 포퓰리즘은 시장을 좌우하는 독점을 싫어한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당시 도도하게 대두한 자본주의 시장의 독점현상에 밀리게 된다. 대세는 코포라티즘이었던 것이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사람은 대개 의료가 시장의 실패영역이며, 사람의 생명과 건강은 국가의 우선 책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굳이 표현하자면 포퓰리즘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것이다. 의료는 시장의 논리로 좌우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결정하는 원리이다. 백보양보하여 표플리즘의 기원과 상관없이 인기에 영합하여 아무런 원칙없이 표만을 의식하는 행위를 ‘표플리즘’이라고 의미규정 했다면, 무상의료와 표플리즘은 전혀 상관없다. 무상의료는 국가운영의 근본을 제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역사를 보더라도 복지는 역사의 대세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미 사실상 파탄난 상태이다. 오히려 재정 운운하면서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사고가 아무런 원칙없이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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