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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에서 시작한 “99%”의 반격(번역문)

파랑새호 2012. 1. 31. 12:22

원문 ;  [いつでも元] 2012년 2월호

 

 

월가에서 시작한 “99%”의 반격

변혁의 부싯돌이 될 것인가?

 

우스이 마사코(薄井雅子, 재미저널리스트)

 

작년 9월중순, 미국 금융업을 상징하는 월가의 한편에서 수십명의 청년이 숙박을 시작했다. 금융기관의 비도덕적인 돈벌이에 대한 항의를 집중한 이 월가 점령운동은 즉시 전미 각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들은 우리들은 99%라고 주장하고, “1%의 번영으로 “99%가 가난한 불평등사회를 고발하고, “99%”가 단결하자고 주장했다. 주요 언론에서는 이 운동을 무시하고, 공화당에서는 폭도들이라고 매도하였다. 그러나 대기업의 횡포에 분노한 근로시민들이나, 전미간호사조합 등의 노동조합, 평화를 위한 귀환병 모임 등의 조직이 합류하여 지원하게 되면서, 운동을 확대시켰다.

 

이런 운동을 기다리고 있었다!”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의 [점거]천막촌에 참석한 켈리 존슨은(42, 자영업) 활기를 띠며 말했다. 이곳은 관광객이나 시민으로 북적거리는 페리 빌근처의 공원이다. 학생이나 실업자와 같은 청년들, 퇴역군인, 시민 등이 천막을 치고 거주하고 있다. 천막수는 40~50개를 넘었을까. “대기업이 이 나라를 말아먹는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등의 구호를 손으로 쓴 포스타가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존슨은 이라크 전쟁의 무법을 목격하고 평화활동에 참가하였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운동도 경험했다. 그러나 대기업에 타협하는 오바마 정권을 보면서, “우리 서민들이 운동하지 않으면, 대통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이 운동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생활도 변하고 싶다. 16세의 아이들의 장래도 밝게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1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왔던 것이다.

 

투기의 폭주와 욕망에 항의

월가의 이윤추구를 위한 폭주나 슈퍼리치들의 탐욕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못하게 했다. 도산 가능성이 높은 주택대출까지 채권으로서 상품화하고, 투기의 대상으로 팔아 넘겨 돈벌이를 위한 돈벌이라는 머니게임. 투자은행뿐만 아니라, 서민대출을 취급하는 상업은행마저도, 눈앞의 이익을 올리는 것에 혈안이 되었다. 그것이 2006년의 주택가격하락으로 한꺼번에 터져버린 금융위기였으며, 대규모 투자은행의 파산이 발생했다.

 

그러나 대은행 등은 크면 망하지 않는다”(오바마대통령), 미국민의 세금으로 구제금융을 받아 생명을 연장하였다. 국민의 도움으로 살아난 은행의 최고 경영자들은 전년보다도 많은 수십억엔이라는 거액의 보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어도 되는 것인가요? 그들은 범죄자 아닌가요?” 이렇게 말한 켄(36)은 이전에 신용카드회사에서 근무했지만, 탐욕스런 돈벌이에 분노하여 사직했다. 그는 아직도 실업상태이며, [점거]천막촌에 참여하여 대기업의 논리에 흔들리지 않는 생활방식을 모색 중에 있다.

115일 샌프란시스코 점거운동의 정례 [금융가포위데모]에 참가했다. 일반시민이나 고령자도 뒤섞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1000명 가까이 늘어나 있었던 시위대는 금융가의 가장 눈에 잘 띄는 장소인 마켓스트리트를 점거했다. 목적지는 웰스파고 은행본점. 이 은행은 2조원을 넘는 [구제금융]을 받고 최고책임자는 20억엔 가까운 보수를 받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필자도 시위대에 참가하여 부자들이야말로 세금을 납부하라!”고 소리쳤다.

 

통계상으로도 불평등은 확실하다.

금융가의 머니게임과 파산이 [급성기병]이라고 한다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소득격차는 미국의 [만성기병]이라고 해야 할 지 모른다.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하락하는 양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913일에 미국정부통계국이 발표한 숫자는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국민소득(중간치) 2000년 이후 10년간 7%가 하락했다. 빈곤선(년간 소득이 대략 173만엔, 한국 돈으로 하면 약2,250만원)이하의 생활을 강요 받고 있는 사람은 15%를 넘는 4,600만명이었다. 또한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몰락해 가는 속도는 통계를 산출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빨랐다. 특히 아프리카계 흑인들의 27.4%가 빈곤선 이하였기 때문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최상위층(인구의 0.1%)의 소득증가는 1979년부터 2005년까지 400%가 넘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이처럼 확대되는 소득격차를 만들어 낸 원인은 무엇인가?  왜 서민들의 생활은 좋아지지 않는 것인가? 이것이 미국의 경제 사회에 걸쳐있는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이다.

실은 오바마 정권이 출범한 직후 정부는 국민의 생활에 참견하지 말라””규제보다 자유를등을 주장하는 [티파티]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주장은 미국건국시대의 신흥자본가의 요구에서 출발했던 것이지만, “기업이 번창하면 경기도 좋아지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주장하는 재계의 선전에 이용되고 있었다. 미디어에서도 대서특필 되고, 국민의 불안이나 불만의 배출구가 되었다.

그러나 고용은 늘어나지 않고,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교육 복지예산 삭감 등의 영향이 심각해지자 이 운동의 설득력은 상실되었다.

 

의논하여 공통의 기반을 만들자.

샌프란시스코시에서 전차를 이용하여 오클랜드시로 이동했다. 다음날 시청사 앞 광장의 [점거]천막촌을 방문했다. 여기에서는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참가하고 있었다. 천막 중에 있던 제롬 힐(26세 제대군인) 씨도 그중의 한사람. 숙박은 4주정도 되었다. “군에 입대했던 것은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말하는 것을 믿고 이라크전쟁에 참여했지만, 해서는 안될 전쟁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불만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정치가 어디로 가고 있나 잘 모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들 민중이 서로 알고, 의논하여 공통의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헤매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 와서 봤으면 좋겠네요.”

힐씨는 친구와 트럭운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이 천막에서 출근하려 합니다고 웃으며 말했다.

방문했던 날이 일요일이어서 천막촌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숙박하지 못했던 사람이나 지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3명의 아이와 함께 온 탈마이 가스킹씨(32세 건설업)캘리포니아 대학직원이었지만, 2년 전에 해고되었습니다. 지금은 건설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지지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양한 요구를 갖고 모였기 때문에 좋습니다.”라고 흑인남성도 말했다.

 

분노의 불꽃을 끄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시작했던 월가 [점거]운동이지만, 미국민을 계도하고, 미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의 본질을 제기한 역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거대은행의 탈법적인 카드수수료를 철회시킨 구체적인 실적도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해선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예를들면 도시지역에서 일정한 장소를 [점거]한 것에 트집을 잡고 있는 시당국이나 경찰과의 [공방]이 집중되고 있어 일반시민과의 유대가 약해지고 있다.

127일 아침에는 샌프란시스코 경찰청에서 [점거]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운동참가자는 비폭력으로 대응했지만, 150명이 체포되었다.

운동에서 최대의 장애물은 재계와의 유대가 있는 양대 정당이 지배하고 있고, 진실로 민중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정당이 없는 점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국민이 갖고 있는 분노의 불꽃을 끄지 않고 계속 살려나가기 위해서나, 변혁의 긴 도정을 살피는 정치운동의 생성과 발전을 위해서도 이 [점거]운동이 부싯돌이 되는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