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사람들을 연결하는 운동을 만들자

파랑새호 2013. 11. 12. 15:17

출처 ; 미니렌이료(民医連医療) 2013년 11월호 18쪽~23쪽

원문제목 ; [人とつながる、運動をつくる]

 

 

사람들을 연결하는 운동을 만들자.

테라우치 요시카즈(寺內 義和) ; 아이치사립학교 교직원조합연합 중앙집행위원장

 

시작하며

지금 위기의 시대라고 말해지고 있지만, 위기라는 것은 상황의 위기라기보다, 목표도 애매한 상태에서 활기도 없이, 스스로 발전하는 힘이 쇠퇴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위기에 대해 모두가 힘을 합해 반발하는, 혹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갈 때는 위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발전하는 힘이라는 것은 인간력과 조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1. 인간성의 발현, ‘연결’의 재생

인간은 ‘인간의 본성’과 환경, 다른 말로하면 이기와 이타속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발현하고 있을 때에 사람은 충족감을 느끼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으며,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은 부조리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면서도, 인간인 한에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표를 향해 정열을 발휘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살아 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벽을 향해, 맞서 싸우는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자연, 사회, 사람들과의 연결로 살아갑니다. 즉 연결하려는 본성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알고 싶다] [배우고 싶다] [일하고 싶다]는 힘을 몸에 익히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그러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러한 인간성을 발현하기 어려운 시대나 사회로 되고 있습니다. 시장경쟁원리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로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의 연결이 붕괴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끈이 붕괴하면 [암흑]이 되고 말을 하지 않게 됩니다. 인간은 말하고 싶지 않은 상처나, 말하고 싶지 않은 어둠을 부둥켜안고 살아갑니다. 누군가 귀 기울여 들어주면, 무언가 안심하게 되고, 구원받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혼자서 꾹 참고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망, 목표가 없습니다. 갖고 있어도 될 리가 없지 하며 단념해버립니다. 이러한 상황이 지금의 사회를 덮고 있습니다.

볼프렌(Karel van Wolferen)이라는 사람은 “일본의 사회는 ‘부유해지는 국가와 가난한 국민’ ‘의욕이 없는 사람들의 나라’ ‘많은 사람이 내 인생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로 볼 수 있다. 이유는 시민사회를 대기업과 관료에게 뺏겨버리고, 무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노동조합이, 다음으로 사법기관이, 최후로는 언론이 차례차례 무너졌고, ‘거짓의 리얼리티’가 사회를 지배하고, ‘방법이 없는 병’이 만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국가재정이 파탄난다고 말하면서 소비세를 인상하고, 소비세를 훨씬 웃도는 공공투자 등을 시행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헨미 요(辺見庸)씨는 “다가오는 파국 속에서, ‘생존권’이나 ‘사회권’(교육받을 권리)이 박탈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서로 간에 도와주고, 괴롭고 불안해도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럴 때만이 처음으로 오랫동안 사용해온 카피가 생겨나는 데, 퇴물취급하고 있는 ‘성실’이라든가 ‘사랑’이라는 말이 무서움을 띠고 소생하게 될 것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인의 가치관을 변하게 한 것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원전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탈원전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만능, 효율제일, 이기주의와 같은 사상은 변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시장경쟁원리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파시즘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교사들은 “제자를 전쟁터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을 맹세했지만, 헌법9조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현실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인의 시민, 주권자로서의 성숙도는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요?

유럽에서는 무엇인가 발생하면 즉시 스트라이크와 시위가 발생합니다.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각자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은 온화하고 얌전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만, 목소리를 높이지 않습니다. 언론에서 무시해 버리고, 여기서 흔들리고, 저기서도 흔들리고. 그렇다면 민중은 그만큼 어리석은 것인가. 아베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70퍼센트 이상이고, TPP찬성이 60퍼센트를 넘고 있는 한편, 헌법 9조를 수정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40퍼센트 대의 사람들이 ‘반대’하고있으며, ‘지지하고 있다’는 대답은 30퍼센트 대이고, 뒤이어 ‘모르겠다’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착종된 상황 속에서 지금 최대의 위기는 연결, 서로돕기, 요구하며 투쟁하는 노동조합 등 중간조직의 쇠퇴인 것입니다.

일본의 고교생이나 청년들에게 걸려있는 문제도 어른들과 같습니다. [학력저하]로부터 오히려 [실존의위기], 인간성을 발현하는 것의 위기가 현재 청년들의 위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고싶은 것]이 보이지 않고, 인간관계에 대해 나날이 방황하고, 피곤해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한 풍파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교제를 하려하고, 속마음은 의논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혼자로서는 외롭습니다. 이런 상황인 것입니다.

지금 고교생의 73퍼센트는 자신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는 타자를 통해서 알수 있지만, 자기 안에 파묻혀 있고, 자신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자기중심주의] [사회적 문맹]이라고 표현되는 상황이 있습니다. 고교생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은 “낯가림이 심하다,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괴롭고, 어른은 너무 싫다”는 내용입니다. 어른들로부터 인정받은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혹은 함께 땀 흘린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청년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인 경향이지만, 개인적 관심 이외에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자신의 세계, 취미에 파묻혀 삽니다. 성실하지만,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성적이며, 밖으로 표출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수업]과 [클럽]만은 하고 있으나, 그 외는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합니다. 무엇에 대해서도 누구에 대해서도 깊게 파고들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있다면 “억지로 맡겨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대단히 많습니다. 회식자리도 고통입니다. 하물며 “조합이라니 촌스럽다” “조직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청년만으로 모이게 해줘도 최근에는 청년들도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습관적 고독감, 피로감, 폐쇄성에 빠져 있습니다. 마음이 맑지 않은 것입니다.

한편에서 자신이 가장 바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가치관으로 고정하는 것에 대해(이렇게 해야할 것이다)극도로 혐오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선입관 ․ 고정관에 잡히지 않고, 즐기는 곳에 모입니다. 그리고 주체자가 될 때에는 대단한 에너지를 발휘합니다. 그렇지만 성인사회를 반영하여 좀처럼 날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교사보다도 부모의 영향을 상당히 받습니다. 아이치사립학교 교직원조합연합(愛知私敎連 ; 아이치시쿄우렌)에서는 무모와 연결하는 운동을 해 왔고, [부모간담회]는 강력한 파트너입니다. 학생들은 부모의 가치관이나 부모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기 때문에, 부모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본인의 국민수준 저하가 화제가 되고, 교육이 안좋다고 얘기합니다. 그대로입니다. 현재의 교육은 민도를 높이고, 주권자를 시민을 만들려는 교육이 불가능합니다. 학교 안에서 기초학력, 혹은 도덕이나 생활규율이라는 미명하에 결국은 암기나 강요만을 일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교육을 복원하고,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 그것이 학교만이 아니라, 기업이나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반전하는 인간군상

그러나 이런 중에 반전하는 인간군상은 많이 있습니다. 아이치시쿄우렌(愛知市敎連)에서는 [큰 학력]이라는 책을 15년전에 펴냈습니다. 아이치 사학의 교육운동 속에서 사람들이 드러낸 지혜와 행동, 절망과 희망의 총체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1975년 노동조합운동이 임금권리투쟁만으로 장래가 있겠는가 고민했습니다. 교직원의 요구만이 아니라 학생, 부모의 절실한 요구에 대하여 학원에서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방침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예를들면 당시 학비부담의 공사립격차가 33배정도 되었고, 부모 80퍼센트의 요구가 “학비의 공사립격차가 없으면 좋겠다”였을 때 조차, 수업료는 매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학비동결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교육조성지침]을 내고 스스로의 활동을 검증한 [활동방법개선지침]을 발행했습니다.

그러나 학비나 교육의 문제는 부모자신이 스스로의 요구로서 자각하고, 관계하지 않으면 운동이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에 학급통신을 발행하고, 학급간담회, 지역간담회를 개최하여 솔직한 이야기를 거듭했습니다. 아이치 사학의 인간교육의 근거지로서 현재 아이치부모간담회가 40개 학원, 60지역에 있고, 이를 근거로 10개의 센타가 있습니다. 센타는 학원과 지역의 연합체입니다. 나아가 부모간담회를 보고 여러 가지를 도와주려는 고등학생들이 자신들도 부모나 교사처럼 하고싶다면서 1986년경에 [고교생 페스티벌]을 학원의 틀을 넘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페스티벌에서 학생이 학생을 부르는 호칭은 교사보다도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들의 현명함에 대응할 수 있는 수업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면서, 처음에는 소수의 뜻있는 교사들이 수업개혁 연구를 시작하였고, 여러 사람이 합류하여 [하계세미나]를 만들었습니다. 하계세미나에는 부모나 학생이 많이 참가하고, 실행위원회는 대부분 부모, 학생, 시민입니다. 교사만으로 수업연구를 하고 싶다는 요구가 있어서 새롭게 [수업개혁페스티발]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수업개혁 페스티발까지 학생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시민강사를 학교에 파견하는 아스크넷(아이치시민교육넷)도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참가하고 탈바꿈하여 가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교생 페스티발의 세계는]

고교생페스티발은 최초에는 락을 하고 싶어 모였던 것이지만, 과정에서 활동이 다채롭게 되어 최근에는 1억엔 모금에도 참여하여 이를 달성했습니다. 실은 아이치에는 40년 전에 교사들이 설립한 [사학장학금재단]이 있습니다. 이것은 수업료를 지불할 수 없어서 그만두는 학생, 혹은 수업료를 지불할 수 없어 졸업할 수 없는 학생을 없애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한 학생에 대하여 교사스스로가 모금하고, 우선 학생에게 빌려준다든가, 현에 대해서는 사학조성이 낮다고 요구하는 운동을 해왔던 것입니다.

당초 부모에게는 모금하지 않았습니다. 교사가 어디까지나 학생의 입장을 고려해주는 도전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퇴직금에서 100만엔 정도를 기부하는 교사가 제법 있었습니다만, 점차 자금이 줄어들었습니다.

돈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학생들은 1999년에 사학기금이 대폭 인하되었을 때에 [동료를 구하자]라고 1억엔 모금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선배로부터 후배들에게 까지 호소해가면서 가두에서도 운동을 했고, 9년째에 1억엔을 달성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보도되었을 때에 전국에서 기부가 모였습니다. 모두 [구원되었다]가 된 것입니다. 예를들면 80세의 여성이 “지금의 청년들은 아무것도 안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료를 구하자]고 이만큼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고 나는 내가 구원되었다고]고 쓰면서 1만엔을 기부해 주었습니다.

이들 고교생들은 지금 [희망프로젝트]를 만들고, 동일본대지진 지원과 사립고등학교 무상화를 [배울권리를 지키자]라면서 결집하고,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진피해지원도 캠페인을 통해2,100만엔정도를 모아서 지금도 현지주민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3년째인 올해 [사회의 모순에 맞서자]라는 것을 주제로 5월4일에 1만5천명이 모여서 신입생환영페스티벌을 열었습니다. 행사 중에 전국고교생 대표자회의를 열고 오키나와와 후쿠시마, 아이치의 고등학생들이 패널로 참가하였습니다. 오키나와는 미군 기지문제를, 후쿠시마는 주민들의 피난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치는 [교육의 공평성]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정리]한다면 세상에는 소수의 인간이 버려지고 약자가 되어 방치되고 있습니다. 무관심이라는 커다란 장벽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자신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사람문제를 다루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제기해야만 합니다. 단념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입장은 달라도 사람들이 손을 잡고, 협동하여 가야합니다.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계속 전달해야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고등학생들이 자라나야 하는 것입니다.

 

[아이치하계세미나의 세계는]

하계세미나의 금년 주제는 <[21세기형 학습]을 창조해왔던 4반세기! -책 ․사람․체험․사회로부터 배우는 ‘꿈의학교’, 그레이트 업>입니다. 역대교장은 2006년에는 나카보 코헤(中坊公平)씨, 2007년은 프로장기기사인 하부 요시하루(羽生善治)씨, 2008년은 다키타 사카에(滝田栄), 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씨 등이 역임했고, 금년은 달리는 철학자로 알려진 타메스에 다이(為末大)입니다. 3일간 1,500강좌를 진행합니다.

세미나에서는 시민이 많이 참여하고, 진행하는 사람이 대회가 열리는 장소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이런 역할을 학생, 부모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이것은 강좌를 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진행요원이나 이것을 지원하는 사람들 모두 [온전한 삶의 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와 연결하고 주체적으로 되어 갈 때에 학생들은 스스로 배우게 된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청년협의회 활동을 보면서 감동받은 것]

지금의 청년들은 학교일이 많고, 정치적으로는 무관심합니다. 예전처럼 학생운동을 했던 청년은 없습니다. 전국적으로 조합에 가입하는 사람은 10퍼센트, 20퍼센트 들어오면 많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교사로서 요구받는 내용들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조합은 쇠퇴할 것입니다.

아이치교사연합은 70~80퍼센트가 조합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3월말경부터 계속해서 몇 번이고 가입과 관련된 일을 합니다. 한사람이 몇차례나 가입을 위한 일을 하기도 하고, 그것도 모자라는 경우 다른 사람이 일을 합니다. 너무 일을 해서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도 있지만, “원하신다면 가입해주고, 당신이 필요하다” “학교를 좋게 만들기 위해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귀찮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음깊이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몇 번이고 말을 해보면, 무언가 하나라도 도움이 되고, 혹은 3번에 1번 정도는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홈룸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수업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상담을 해보거나 혹은 월에 1회 정도 학습회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권유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학교의 단위대표자회의를 할 때에 어떤 조합이 이런 방식으로 한사람을 확대했다고 보고를 하면, 모두가 박수를 쳐줍니다. 모두 피곤하지만, 새로운 동료가 증가하는 것만큼 기쁜 것은 없습니다. 조합원이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모두 박수를 치면서 서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청년협의회는 소박한 요구를 파악하는 힘이 있습니다. 고정관념도 없습니다. 청년들의 요구, 그 사람들이 지금, 가장 곤란하고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그런 점을 돌봐주고 대응하도록 활동해 왔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을 보고, 평가하는 힘도 풍부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청년을 어떻게든 함께 밖으로 데리고 나가자”고 조합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학교직원연합 운동의 하나로서 독자적인 목표를 내걸고 [배우고 놀기]운동을 축제화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구역질나지 않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주제로 경력교사도 호응하여 심포지움을 한다든지, 비조합원도 다수 참가하여 나고야돔에서 소프트볼 대회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월1회의 학습회는 물론이고 신입회원을 환영하고 소개하는 회보조차 운동화하는 것입니다. 작년에는 학급통신을 발행하자고 말해서 학급통신의 운동화를 진행했습니다. 과제도 다양했지만, 반전하는 뉴스타가 나오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이나 청년들이 빛나며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것인가?

하나는 ‘계기’와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백묵(쵸-크)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오오야마 야스히로(大山泰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76명의 종업원중에서 57명을 장해자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버님이 병으로 쓰러져, 회사를 물려받을 수 밖에 없었을 때에 양호학교 선생이 지적장해자 2명을 데려와 고용을 부탁했었다고 합니다. 처음과 두 번째는 거절했었지만, 양호학교의 선생이 3번째 찾아와서는 “적어도 1주간이나 2주간 일하는 경험을 해 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종업원들이 “사장님 경험하게 해줍시다”하면서 찬성했기 때문에 직장경험을 해 주게 했던 것입니다.

무사히 2주간이 경과했을 때에 절에서 재를 지냈고, 우연히 옆에 주지스님이 앉아 계셨기 때문에, “어떻게 저런 장해자들이 취직을 하고 싶어하는가?”하고 질문을 했었습니다. 주지스님은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 사람의 칭찬을 듣는 것,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이 4가지입니다“라고 말씀을 하셨답니다.

처음 계기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장해자를 고용하는 모법적인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양호교사에게 부탁받고 종업원들의 권유도 있었고, 처음에는 “방법이 없는데”라는 인식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활동이 계기가 되고, 만남 등이 있어서 도중에 자신이 지적장해자를 주력으로 하는 공장을 만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계기나 만남, 환경이 있다면 인간은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학생이나 부모를 봐도 처음에는 누구라도 권유를 받거나 주장을 들었을 뿐입니다. 계기나 만남 다양한 매개를 접하고 참가하는 중에 목표를 발견하게 됩니다. 특정한 목표가 없어도 참가하는 과정에서 목표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공명과 응답이 있다면 점점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3.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의 힘과 원천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의 힘이라는 것은 결국 종합한다면 어떤 것인가? 주력은 [살아가는 힘]입니다.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이기도 합니다. 이 힘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① 목표를 세우고, 추구하는 힘. 그리고 ② 관계를 깊게하고 확장하는 힘. 자신에게 이질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어느만큼 관계를 맺는가, 확장하는 힘을 갖고 있는가. 비슷한 사람끼리의 만남은 기분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쇠퇴합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연결하는 것으로 강해져 가는 것입니다. 이질적인 내용을 교류하는 힘,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조직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③ 활기차게 일하며 배우는 힘.(지혜) 인간은 일직선이 아니고, 톱날같은 모양에 지그재그하면서 성장합니다. 몰락한다고 맨파워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성장하는 것은 벽을 넘었을 때입니다. 큰 벽을 넘었다면 크게 성장하는 것이고, 작은 벽을 넘었다면 작게 성장합니다. 실패를 해도 맞부딪치고 있다면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벽에 부딪친다는 것, 이것이 풍파체험입니다. 풍파체험에는 지옥, 감동, 달성감, 발견, 만남 등이 수반됩니다만, 밀려오는 풍파체험과 도전하는 풍파체험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체험도 방관자가 아니라 주체적 체험입니다. 이러한 풍파체험을 겪는다면 즉각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는 이야기할 수 없겠습니다만, 활용할 수 있는 힘으로는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만남의 연속]의 만남이라는 것은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만남은 풍파체험이고,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벽이 있고, 장해물도 있습니다. 장해가 있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은 한이 없습니다. 장해가 있기 때문에 활기가 있는 것도 됩니다.

분기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혼자만으로 벽이나 장해물에 부딪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해하여 주거나 도와주거나 지원해주거나 격려하거나 그러한 것이 없으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부딪칠수 없습니다.

고교생이 사립고등학교 무상화를 지향하며 80킬로 밤새걷기를 했습니다. 완주한 학생이 “완주한 것은 결단코 완주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혼자서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았다. 함께 걸어준 친구들, 게다가 ‘수고많네’, ‘힘내’하며 격려해준 부모님, 지지해준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라며 감상문에 적었습니다. 이러한 지지, 격려 등의 [관계의 빛]이 어쨌든 필요한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거처]입니다. [거처]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보람이 있고 편안한 장소를 지향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ㄱ. 먼저 편안함이 있는 것. 편안함이라는 것은 어둠이나 고민을 드러낼 수 있어야합니다. 중간의식이 있습니다. 해방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ㄴ.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껴야 합니다.

ㄷ. 보람이 있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분들은 ‘ㄴ’과 ‘ㄷ’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편안함, 해방감입니다. 그것이 직장에 있다면 괴로울 때도 [반전]으로 향할 수 있는 장이 됩니다.

 

 

4. 관계와 거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떻게 하면 [관계의 빛]이 나타나는 [거처]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살아간다는 것은 목표를 향해 연결을 확산하는 과정입니다. 일한다는 것은 사랑받는 것, 칭찬듣는 것,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운동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런 내용을 공동의 것으로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떤 이념, 목표를 공유하고, 당면한 구체적인 요구를 달성하기 위해 연결을 확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소위 이야기를 담은 정보가 있고, 그 정보를 모두가 공유합니다. 때문에 “목표 방침만이 아니라 성과”를 공유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들은 [총평가운동]으로 부르고 있지만, 각각의 선의나 노력을 평가하는 시점과 힘이 필요합니다. [강함]은 미덕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어려운 사람이나 약자의 마음을 알수 없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공동체, 결국 요새를 구축해갑니다. 작은 요새, 큰 요새를 만들어 가지 않는다면 지금 다가오고 있는 파시즘에는 대항할 수 없습니다.

운동의 총결산은 이런저런 이론이 아니며, 본래 연결이 확산될 때만이, 진지가 넓어지고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운동과 조직의 3요소 중 하나는 리더십입니다. 조직은 리더의 양과 질에 의해 결정됩니다. 두 번째는 주체적 참가자가 얼마나 확산되는가, 세 번째는 주변사람들과 공감을 확산했는가에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요구’와 ‘자극’으로 만들어집니다. 누군가 인간적인 요구를 갖고 있습니다. 사욕, 이기심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보편적인 요구도 있습니다. 목표, 연결, 존재감. 때문에 이타(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웃음을 주는)심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요구라는 것은 자연발생적으로는 살아있지 않습니다. ‘자극’에 의해서만 자각할 수 있고, 고양되는 것입니다.

최대의 설득력은 논리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이야기하는 가에 있습니다.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이 말하는 것 보다, [관계]가 있는 사람이 말하면 그만큼 진솔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관계]를 만드는 것은 어느 만큼 같이 말하고, 먹고, 마시며, 땀을 흘리는 것으로 결정됩니다. 어느 만큼 이치를 얘기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 외에는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눈길)과 [듣는힘]인 것입니다.

공감능력은 스스로의 [풍파체험]과 상상력으로 발생합니다. 체험이 많으면 그만큼 상상력과 공감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따라서 30~40세였을 때는 알수 없었던 것이 해를 지날수록 점점 알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의 풍파체험, 특히 실패나 지옥체험이 모체가 될 수 있지만, 한사람의 풍파체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자극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학습회 등도 자극인 것입니다. 외부로 부터 자극을 받는것, 다양한 것을 아는 것, 혹은 사람과 만나는 것에 의해서 공감능력을 확산하여 가는 것입니다.

 

마무리

인간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존재입니다. [내보내고] [기다리고] [자라는]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뜻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내보낸다]는 것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하는 것이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며, 실패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보내기 전에 구시렁구시렁 말을 하면 상대가 싫어해버리고 맙니다. 친절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말을 해보지만, “잔소리가 많네. 저 사람은 어째도 상관없는 것을 주절이 주절이 이야기 하고 있네”가 되버립니다. 스스로가 체험하고 곤란한 실패를 겪으면 신호를 보내옵니다. 그때에 “보라. 내 말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랬냐”라고 말하고 그때에야말로 무조건 너를 지지한다고 조언합니다. 격려합니다. 그것이 [기다림]인 것입니다.

최근에는 운동선수도 학생들도 “포기하지 않겠다” “계속해서 하겠다” “여유”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장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기술 지식보다도 끈질김, 낭만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2013년 5월31일~6월1일에 개최된 [전국의학생대책활동교류집회]에서 행한 강연을 편집부에서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