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스콧니어링자서전발췌

파랑새호 2016. 11. 4. 16:05

[스콧니어링 자서전], 스콧니어링지음, 김라합옮김, 실천문학, 2006년 1월 초판14쇄


- 교육이란 평생을 두고 배우는 것이다. 학교가 교육의 시작이자 끝일 수는 없다.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편견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그들의 복사판에 가까웠다. 그러나 하나둘 세상에 관해 배워가면서 나름대로 견해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내 생각을 감히 표현하려고 했던적도 심심찮게 있었다.(47)

- 레오 톨스토이의 저작들은 나에게 사회적 책임, 전쟁과 평화, 노동자 계급의 연대 필요성 등을 일깨워주었다.(54)

- (패튼교수와) 한가지 점에서 만은 의견이 일치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한순간의 잘못으로 법의 심판을 받더라도 일정한 죄과를 치른뒤에는 또 다른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81)

- ‘울타리와 구급차’ - 사람들이 떨어져서 죽거나 심한 부상을 당하곤 하는 위험한 절벽에 대해 묘사한 시였다. 마음 착한 시민들은 구급차를 구입해 절벽 밑에 두고 희생자들을 돌보기 위해 조금씩 돈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다시는 절벽에서 사람들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절벽 둘레에 울타리를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일어난 뒤에 구급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급진주의자였다.(83)

- 나의 네 번째 스승은 내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 톨스토이였다.(87) . . .톨스토이는 거의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사회인식을 갖게되었다. 그는 모스크바 빈민가의 인구조사를 돕기로 지원했다. 그는 그곳에서 접하게 된 지독한 가난에 충격을 받아, 모스크바 귀족 클럽의 동료 회원들에게 빈민드레 대한 동정과 연민을 호소하며 모자를 돌렸다. 그후 톨스토이는 자신이 인구조사차 방문했던 바로 그 빈민가의 판잣집들이 동료 귀족들의 소유이며, 자신의 귀족 친구들이 처참한 빈민가 거주자들의 집세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집세로 수천 루블씩 거둬들이고 있는 집주인들이 빈민들을 돕자는 호소에는 마지못해 겨우 몇 루블 내놓고 마는 것을 보고, 톨스토이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이 톨스토이의 인생을 바꿔놓은 데 한몫 했다. 세상은 향락과 안락을 위해 세워진 것이라는 달콤한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그에게 상류층의 혜택이란 하류층의 노동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과 그들의 비참한 운명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는 남은 생애 동안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체제에 맞서 싸웠다.(88)

- 더없이 훌륭한 이들 스승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편견을 경멸하고, 도그마를 부인하고, 끊임없이 실험을 추구하는 자세였다.(95)

- 경제문제에 중압감을 느껴 나는 세가지 원칙을 세웠다. 1)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일 것, 2) 학교 밖의 수입원을 늘일 것(일종의 투잡), 3) 수입의 일부를 노후생활을 위해 적립할 것.

-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에 따르다가 타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여 자기 배를 불린다는 사실을.(120)

- 개인 차원의 자선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경제적 불공정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눈앞에 닥친 긴급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무조건적인 재정 보조는 수혜자를 그것에 길들게 만들어 결국은 자생의지를 꺽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 . . 기금 보조는 그 단체들을 영원한 구걸꾼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125) . . . 부를 피하지 않고 되레 그것을 추구했더라면 나는 분명 안이한 삶에 말려들었을 것이다.(125)

- 탐욕으로 가득한 경쟁사회에서 개인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 애써본 오랜 경험에서 얻은 결론. 1) 보통 수준의 지성을 갖춘 뻔뻔한 사람이 여물통에 두발을 들여놓고 구정물로 배를 불려, 과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의 고통을 겪다가 심장마비로 제 명을 다 못살고 죽기란 쉬운일이다. 2) 급진주의자가 직장에 붙어 있기란 힘든 일이다. 지출을 적게 유지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 . . 많은 부분을 자급자족하면서 검소하게 생활해야 한다. 3) 이러한 삶은 권력에 미친 소수 독재정치에게 성실성과 두뇌를 파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가치있는 대안이다. 4) 이러한 토대 위에서 신중함을 잃지 않는다면 돈에 얽매이지 않고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5) 안정과 안락, 편리, 그리고 육신의 욕구 충족은 다 소수 독재정치가 자신의 희생자들을 잡는 데 이용하는 미끼다. . . . 바른 생활이란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옮은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127~128)

- 아덴 등지에 흩어져 있는 헨리 조지의 추종자들은 입만 열면 땅값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단일세 주창자들에게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것은 일반적인 사항들뿐이었다. 나는 임금과 소득에 관한 자료를 얻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들은 반세기 전에 출간된 [공산당 선언]의 구절들만 들려주었다. 이번에는 사회사업가들을 만나 보았다. 그들 역시 눈앞의 일에만 정신이 팔려, 고작 얻어낸 것이 ‘1908년 피츠버그 조사서’나 ‘1913년 프랭크 윌쉬 산업위원회보고서’같은 일반적인 내용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서 직접 자료를 만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134)

- 패튼 교수의 충고 “우선 사실에 충실하라.”

- 그 동안 지켜온 세가지 기본원칙 1) 진실을 배운다, 2) 진실을 가르친다, 3) 사회에서 진실을 구현하는 데 일조한다.(136)

- 나는 아동노동문제를 과제로 삼았다.(137)

- E.R.A.셀리그먼 교수의 자본주의 옹호논리 ; 1) 자본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자본주의는 과거 인류의 생활 수준을 높였다. 사회의 변화는 천천히 이루어진다. 2)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체제이다.(146)

- 클레런스 대로우와의 논쟁 ;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민주주의가 이 세상의 사회악을 치유할 수 있는가? 대로우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대중은 대개 어리석은 백성이다. 다수는 결코 옳을 수 없다. 모든 진실은 상대적이다. 대중의 보편적 지성은 신뢰할 수 없다.”(149)

- 인간은 지식이 일천한 동안은 가르치고 설교하러 돌아다니지만, 완벽한 지식을 습득했을 때는 자신의 지식을 쓸데없이 과시하지 않는다.(157) ; 슈리 라마크리슈나의 글

- 전화, 확성기, 라디오, 영화, 화보 잡지 등은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쉽고도 값싼 수단을 제공한다. 이런 발명품들은 선을 보일 때마다 대중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일보 전진’하게 하는 수단으로 환영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의사전달통로가 효율적이라 판명되면, 독점자본가들이 먼저 그것을 장악해, 대주의 귀와 관심을 사로잡고 그들을 세뇌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165)

- 1870년부터 1910년까지 40년간 전국 유명대학의 요람을 조사해 교직원 분포에 초점을 맞추었다. 초기에는 80퍼센트가 교수급이고, 그 이하가 20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러나 40년뒤에는 대학원생이나 고급과정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부교수, 조교수 등이 20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80퍼센트는 강사, 조강사, 시간강사 등이 차지했다.(202)

- 대다수의 톨레도 시민들은 전쟁으로 야기된 활황에 기뻐했다. 전쟁 전에는 그렇게 많은 지폐를 만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톨레도의 뿌리깊은 자유주의와 급진주의는 급격히 무기력해졌다.

- 어떤 전쟁에서든 최초로 희생되는 것은 바로 진리라는 옛말이 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전쟁은 진리와 인간적 품위, 예절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과 사회의 진보에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나는 당당히 증언할 수 있다. 전쟁은 지옥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극악할 수도 있다. 전쟁은 건설과 진보라는 인간고유의 활동을 방해하고, 그들을 파괴자와 살인자라는 범주로 몰아넣는다.(240)

- 세가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즉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241)

- 나는 사회변력을 이루는 길 중에서 폭력, 증오, 공포, 강제 등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값비싼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가져오고, 더 이상의 진전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나는 폭력과 관계된 일체의 행위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들을 해치거나 죽이는 방식은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243)

- 나는 인간에게 최대한 창조적이고 건설적 차원에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협동적 사회유형을 계획하고 건설하기 위해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 . . 나는 사회주의라는 사회적 변화가 인간의 행복과 안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244)

- 만약 서구 문명이 살아남는다면, 서구 문명은 한 사람은 만인을 위하고 만인은 한사람을 위하는 협동의 기반위에 서게 될 것이다. 생활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업들을 반드시 공동체가 소유하고 계획하고 관리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물자와 서비스는 그것이 부족할 때는 사회질서의 기본원칙에 따라 각 개인에게 필요한 만큼 아낌없이 제공되어야 한다.(247)

- 메이플라워 서약과 윌리엄 펜의 사랑과 선한 인간관계에 대한 헌장, 토머스 제퍼슨의 권리장전, 1789년 헌법,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과 재취힘 연설(249)

- 대중의 행복과 복지는 옛말이 되었다. 국토는 모험가와 부당이득자, 그리고 역사를 터무니없는 소리라 부르며 자신들의 특권을 이용해 출세를 도모하고 대중을 희생시켜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해적들을 위한 즐거운 사냥터가 되어 있었다. 평화와 진보와 번영은 부패하고 군국주의에 물든 굶주린 늑대들에게 던져진 날고기 조작이 되어버렸다.(250)

- 나는 총선거에서 자본주의 후보(아무리 자유주의자라 해도)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다.(259)

- 나는 자유주의를 상한 갈대라고 본다. 개혁은 약탈자와 착취가들에게 면죄부와 무기를 제공해 줄 뿐이다. 오로지 혁명적인 변화만이 자본주의 체제라는 낡은 케이크를 부수고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세력과 제도를 위한 길을 열 수 있다.(259)

해설) 인생역경대학이라는 표현. 스콧니어링은 인생역경대학을 삶의 경험속에서 우러나오는 진리의 체득, 혹은 현실에 뿌리박은 진리의 체험자의 의미로 사용한다.

저자의 나이는 1917년에 서른 넷이었다.

- 귀중한 다섯가지 가르침

1) 제국과 문명은 인간이 그렇듯이 영원하지 않다.

2) 사상은 오래 지속되지만 사상을 그늘 아래서 생성된 제도와 관행은 버섯과도 같다. 버섯처럼 제도와 관행도 밤사이에 생겨난다.

3) 새로운 사회제도와 관행은 인간의 진화과정에 얼마나 유익한가에 따라 수명이 다르다.

4) 독창성과 용기와 담대함과 결단력과 끈기를 지니고 충분한 대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는 장인들이 흙을 빚고 돌을 깎듯이 인간사회라는 구조물을 만들고 부수고 고려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5) 낡고 쓸모없는 것에 대한 충절은 사회진보의 큰 장애물이다.

- 1925년 소련방문. ‘소비에트 교육’출판.

- 1927년 중국 철도청의 경제고문직 제의받음. [중국은 어디로?] 출판

- 일단 사실들을 모아서 정리한 다음 너희들의 머리를 써라. 스스로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기회가 올 때마다 자신이 내린 결론에 따라 행동하라(276)

- 나는 몇가지 이유에서 공산당 입당을 주저했다. 첫째 나는 제국 건설과 제국이 양상, 서구 문명의 조직과 관리에 관한 연구와 집필을 진행중이었다. 이 작업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고 싶었다. 둘째 당시의 소련공산당은 분파간의 논쟁과 개인의 권력투쟁에 깊이 휘말려 있었다. 공산당에 가입하면 분파논쟁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데 전념해야 할 것 같았다. 1927년 초 나는 공산당에 가입하기로 마음을 정했다.(278)

- 제국주의에 대한 내용을 문제삼아 탈당. 당은 탈당을 인정하지 않고 제명함. ‘고대 제국주의, 고전적 제국주의, 근대 제국주의 간의 역사적, 경제적 상호관계’

- 스콧 니어링은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당의 방침과 규율에 순응한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기여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저 친구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공산당원이라면 그 누구도 단순히 혁명의 ‘친구’일수는 없다. 공산당원은 누구나 적극적인 혁명의 전사여야 한다. 혁명적인 노동계급의 친구라 함은 노동계급의 대열에 서서 싸우는 투사를 말한다.(286)

- 내 앞에 보이는 세상은 거대했다. 인구수로 보나 전통과 관습, 습관, 전망, 제도의 다양성으로 보나 세상은 한없이 거대했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이며, 모순과 무지, 편견과 분노,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290)

- 이것이 그야말로 사회문제의 핵심이다. 소수 독재체제는 자신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대중들에게도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는 동안, 대중은 체제 안에 남아 있게 되고, 소수 독재체제는 부자를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힘있는 사람을 더욱 힘있게 만드는 프로그램을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294)

- 미국처럼 여러 인종이 공존하고, 다원주의가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문제는 하나의 단순한 공식으로 축약된다. “이 정보가 또는 신문에 실리는 특정한 사상이 과연 정책결정라인인 재·정·군·민의 과두정치체제의 이익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것인가?” 대답이 긍정적이면 그 아이템은 뉴스시장이나 정보시장이나 사상시장에서 다른 아이템들을 밀어내게 된다. 경쟁은 치열하다.(306)

- 해가 갈수록 전쟁을 치를수록, 거대기업의 이해는 공익과 일치해갔고, 마침내 국민들이 듣고 보고 읽어서 좋은것 - 미국의 소수 독재체제와 미 제국이 최상의 이익을 얻는 데 좋은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정책결정을 거대기업이 맡기에 이르렀다.(307)

- 제1의 판단은 돈이 되겠느냐였다. “수지가 맞을까?”

- 내가 실제로 쓴 것은 내가 쓰고 싶은 것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용하면서도 흥미롭고 중요한 글감이 너무 많아서 당황스럽고 때로는 좌절감마저 느꼈다.(323)

- 나는 대공황을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도박에 대한 인간의 열망이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과 경마장과 여타의 빠르고 손쉬운 수입원에서 광적인 형태로 발현된 바 있는 사기업 경제의 논리적 귀결로 보았다.(329)

- 나는 1936년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 사회주의자들이 이끄는 군대와 공산주의자들이 이쓰는 군대, 그리고 노동조합주의자들이 이끄는 군대가 각기 어느 정도는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통합된 참모부도 없고 합의된 전투 계획도 없었다. 인력은 많았지만, 최신무기와 장비, 중앙조직은 부족했다.(334)

- 당시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독일에서 파시즘이 들어서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니어링은 스스로 파시즘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함.

- 전쟁은 왕들의 스포츠요, 스포츠의 왕이 되었다.(346)

- 서구 문명은 전지구적 차원의 단일화와 통합이라는 점에서는 실패했다.(360)

- 니어링이 서구문명과 작별을 한 이유 1) 위선적 태도(사랑과 이기심), 2) 경쟁을 으뜸원리로 삼는다, 3) 군의 모험주의로 인한 가망없는 파산상태. 이외 결정적인 이유는 히로시마 원폭. 결국 4가지로 봐야 한다.

- 1945년 8월6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냄.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 오늘부터 우리의 길은 갈라집니다. 당신은 계속 세계를 파괴하고 이 세상을 고통에 빠트리는 당신의 행로를 가겠지요. 그것은 자살행위입니다. 나는 협력과 사회정의, 그리고 인간의 행복에 기초한 사회의 건설을 돕는 일에 착수할 것입니다.”(363)

- 나는 일본에 핵무기를 사용한 것은 인류에 대한 범죄일 뿐 아니라, 지구 전체를 파멸로 몰아간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었다고 생각하는 탓에 1945년 8월6일 이후 미국 정부와의 모든 관계를 끊었다.(364)

- 내가 조금이라도 더 쓸모있는 존재가 되려면 어디를 택해야 할까? 낯선 땅, 낯선 사람들에게로 가야 하나, 아니면 내가 태어난 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 함께 머물러야 하나?

- 어떻게 먹고 산단 말인가? 내가 선택한 것은 자급농이었다.(374)

- 우리는 경쟁적이고 공업화된 사회양식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네 가지 해악 ; 1) 물질에 대한 탐욕에 물든 인간들을 괴롭히는 권력, 2) 출세하고 싶은 충동과 관련된 조급함과 시끄러움, 3) 부와 권력을 차지하고 싶은 투쟁에 반드시 수반되는 근심과 두려움, 4)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으로 몰려드는 데서 생기는 복잡함과 혼란.(380)

- 소박하고 알뜰한 여행을 위한 6가지 원칙

1) 짐은 자기 혼자 쉽게 들고 다닐 수있을 만큼만 챙겨라.

2) 1등석에서 편하게 여행하지 말고 3등석에서 고되게 여행하라.

3) 식당에 출입하지 말라. 신선한 과일, 견과류를 먹어라.

4) 술, 담배, 청량음료, 커피 같은 습관성 기호식품을 끊어라.

5) 택시를 피하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라.

6) 생산적인 운동을 많이하고 많이 걸어라.(381)

- 우리는 일주일에 하루씩 금식을 한다. 소화기관에 쉴 시간을 주고, 주부에게 휴가를 주고, 우리의 하루를 먹는 것보다 좀더 의미있는 활동으로 채우기 위해서이다.(400)

- 헬렌과 나는 장기간의 소련 체류 후에 중국으로 갔기 때문에, 사회주의 건설에 착수한 두 대국의 합동 후원아래 진척되고 있는 이 가슴 뿌듯한 협력 프로그램의 양면을 볼 수 있었다. 중국에 대한 무한한 긍정성(433)

- 사회주의 · 공산주의 세계 운동이 시대에 뒤떨어진 봉건주의와 진부한 독점자본주의를 전지구적 사회주의 사회의 조직과 운영으로 이행시킨다는 책임뿐 아니라, 사회주의가 다른 문화양식들에 비해 더 많은 인류 구성원들에게 좀더 나은 삶을 보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449)

- 사회주의가 사회사에서 의미잇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사회가 부르주아 사회를 능가하는 진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적 인간이 부르주아적 인간을 능가하는 진보를 성취해야 한다.(461)

- 중국의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

- 사회주의는 완제품이 아니라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진화하는 사회제도들의 결합체로서, 자본주의가 한 지역에서 미약하게 출발하여 전지구적으로 수용 · 채택되기까지의 유사한 라이프사이클을 밟고 있다.(465)

- 모든 초심자들이 다 그렇듯, 사회주의를 건설하려고 애쓰는 사람들 역시 끝없는 문제와 난관에 봉착해 왔다.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제대로 만들기까지 6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한다. 모든 발명가와 실험가들은 같은 운명이다.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중에는 효율적인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효유적인 방법도 얼마든지 많다. 천재는 실수를 안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른길을 마음속에 그리며 그것을 발견할 때가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467)

- 사회주의의 최우선과제는 생존이다.(472)

- 스탈린노선과 트로츠키노선의 차이, 중소분열에 대해선 언급하지만 스탈린주의나 문화혁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