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자신이 노동자후보라고 주장하는 김소연의 주장에 대하여

파랑새호 2012. 11. 12. 13:17

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1111161807§ion=03

 

노동자후보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대선에 출마한 기륭전자 전 분회장 소연이 현재의 상태를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우경화가 되서 문제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정의당은 민주당과의 변별력도 없어서 출마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그 어떤 정당도 비정규직 문제를 폐기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현재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가 노동자 전체를 대변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자신이 출마했다고 주장한다. 기존 후보들 곁으로 간 노동운동 출신자들에 대해선 가서 운동한 것은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투쟁하는 노동자만이 진정한 노동자라는 김소연의 주장은 얼핏 타당하지만 투쟁의 개념이 지나치게 협소하다. 김소연에 의하면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 무언가 노동자의 근본적인 권리확보를 위해 실천하지 않는 노동자, 달리 말해 월급 받아가면서 회사에서 일만하지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무관심한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런데 사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정의당이나 민주노총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어떤 것에 관심이 있겠는가?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늘 이런 점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노동자의 투쟁 없이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자의 복지가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투쟁이 있었기에, 8시간 노동제가 확보된 것이고, 투쟁이 있었기에 아직 부족하지만 산업안전에 대한 여러 전향적 조치들이 시행되었다. 노동자들은 늘 투쟁해 왔다. 그러나 그 투쟁은 우리와 남을 구별하는 투쟁이 아니었다. “저 사람들은 민주당에 붙었으니 노동자가 아니다. 또 저 사람들은 법안 개정에만 관심 있지 실제 투쟁에 참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니네는 노동자가 아니다.”이런 식의 평가는 먹고 살기 급급한 사람들에게 던지는 선민의식이다. 오히려 우리는 99%라는 구호가 훨씬 더 다가온다. 김소연의 주장은 99%와 자신을 구별하는 선택된 백성의 자기주장이다. 오직 선명하게 앞서나가는 사람만이 노동자라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다. 상당수의 노동자는 김소연의 그런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난번 선거에서 이명박을 지지했다. 노동자가 노동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고, 민주노동당이나 민주정의당의 주장, 문재인이나 안철수의 주장을 노동자의 관점에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인식은 노동자의 독자후보가 출마하는 구실이라기 보다는 왜 우리의 활동은 이런 정도의 영향밖에 주지 못했는 가에 대한 반성의 밑거름으로 작용해야 한다. 김소연이 출마해서 보다 선명한 주장을 하고, 또 그가 판단할 때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라고 의미부여 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스스로 부여한 것에 불과하다. 김소연은 대중들을견인해야 한다는 생각이 철학적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대중들이 볼 때 김소연은 앞서나가도 한참을 앞서나가는 선지자요, 예언자다. 선지자나 예언자가 대선출마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  모든 예언자들의 운명은 장렬한 전사가 필연적이다.

 

중국의 모택동이 장정을 시행한 이유는 딱 한가지다. 싸우기 싫어서도 아니고, 겁이 나서도 아니고, 김소연이 주장하듯 근본적인 문제를 몰라서도 아니다. 싸움의 효과, 싸움의 방식, 싸움의 주체를 고려한 판단이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에겐 장렬한 전사보다는 끈질김, 끈적끈적함, 고래힘줄 같은 조직이 더 필요하다. 기사에서만 보면 김소연의 주장은 처음과 끝이 모두 진보진영을 향해 있다. 김소연에게 이명박이나 박근혜는 대선 출마의 이유가 아니다. 나는 김소연에게 한마디 한다. 열심히 해라. 어쨌든 우리에겐 선명한 사람도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노동자나 진보적 인사를 김소연 니가 평가하지 마라. 그들도 다 니가 생각하는 만큼의 고민은 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