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출처 ; monthlyreview.org /2015/07/01/contemporary-imperialism/
저자 ; Samir Amin
(※ 후주는 첨부만 하고 번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Lessons from the Twentieth Century
20세기의 교훈
Lenin, Bukharin, Stalin, and Trotsky in Russia, as well as Mao, Zhou Enlai, and Den Xiaoping in China, shaped the history of the two great revolutions of the twentieth century.1 As leaders of revolutionary communist parties and then later as leaders of revolutionary states, they were confronted with the problems faced by a triumphant revolution in countries of peripheral capitalism and forced to "revise" (I deliberately use this term, considered sacrilegious by many) the theses inherited from the historical Marxism of the Second International. Lenin and Bukharin went much further than Hobson and Hilferding in their analyses of monopoly capitalism and imperialism and drew this major political conclusion: the imperialist war of 1914-1918 (they were among the few, if not the only ones, to anticipate it) made necessary and possible a revolution led by the proletariat.
중국의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레닌, 부하린,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20세기 두 위대한 혁명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다. 혁명적 공산주의정당의 지도자로서, 그리고 뒷날 혁명국가의 지도자로서 그들은 주변부 자본주의의 승리한 혁명국가에서 여러 문제들에 직면해야 했으며, 2차 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여러 테제들을 수정(나는 여러 신성불가침한 생각들을 깨기 위해 임의적으로 이 단어를 채용했다.)해야 했다. 레닌과 부하린은 홉슨과 힐퍼딩보다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 내용을 더 밀고 나갔으며 다음과 같은 정치적 결론을 정리하였다. 1914~1918년의 제국주의전쟁은(비록 이들만은 아니지만, 이 전쟁을 예상한 사람들이다.)프롤레타리아가 주도하는 혁명의 필연성과 가능성을 초래하였다.
With the benefit of hindsight, I will indicate here the limitations of their analyses. Lenin and Bukharin considered imperialism to be a new stage ("the highest") of capitalism associated with the development of monopolies. I question this thesis and contend that historical capitalism has always been imperialist, in the sense that it has led to a polarization between centers and peripheries since its origin (the sixteenth century), which has only increased over the course of its later globalized development. The nineteenth-century pre-monopolist system was not less imperialist. Great Britain maintained its hegemony precisely because of its colonial domination of India. Lenin and Bukharin thought that the revolution, begun in Russia ("the weak link"), would continue in the centers (Germany in particular). Their hope was based on an underestimate of the effects of imperialist polarization, which destroyed revolutionary prospects in the centers.
비록 뒤늦은 지적일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그들의 분석이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레닌과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독점의 발전과 결합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최후의 단계)로서 판단했다. 나는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맹아의 발전 이후 주변과 중심 간의 양극화 체제를 동반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뒷날 지구화된 발전과정으로 더욱 확장하는 점에서 제국주의 국가였다. 19세기 독점 이전 체제도 제국주의와 비교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대영제국은 인도에 대한 식민지 지배로 인한 헤게모니를 항상 주장했다. 레닌과 부하린은 러시아에서 시작한 혁명은(취약고리)중심에서(특히 독일)지속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은 중심부의 혁명적 전망을 파괴할 정도로 심각한, 제국주의 양극화의 효과를 과소평가한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Nevertheless, Lenin, and even more Bukharin, quickly learned the necessary historical lesson. The revolution, made in the name of socialism (and communism), was, in fact, something else: mainly a peasant revolution. So what to do? How can the peasantry be linked with the construction of socialism? By making concessions to the market and by respecting newly acquired peasant property; hence by progressing slowly towards socialism? The New Economic Plan (NEP) implemented this strategy.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닌과 부하린조차도, 필연적인 역사적 교훈을 재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사회주의 이름을 내건 혁명은 사실상 거의 대부분은 농민혁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농민들이 어떻게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인가? 시장과 타협을 하거나 새롭게 취득한 농민들의 재산을 존중하는 말하자면, 사회주의를 향한 점차적 진보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인가? 신경제정책(NEP)은 이러한 전략을 위해 시행한 것이다.
Yes, but� Lenin, Bukharin, and Stalin also understood that the imperialist powers would never accept the Revolution or even the NEP. After the hot wars of intervention, the cold war was to become permanent, from 1920 to 1990.2 Soviet Russia, even though it was far from being able to construct socialism, was able to free itself from the straightjacket that imperialism always strives to impose on all peripheries of the world system that it dominates. In effect, Soviet Russia delinked. So what to do now? Attempt to push for peaceful coexistence, by making concessions if necessary and refraining from intervening too actively on the international stage? But at the same time, it was necessary to be armed to face new and unavoidable attacks. And that implied rapid industrialization, which, in turn, came into conflict with the interests of the peasantry and thus threatened to break the worker-peasant alliance, the foundation of the revolutionary state.
그렇지만 레닌, 부하린, 스탈린은 제국주의 권력은 결코 혁명이나 NEP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강력한 개입전쟁이 끝나고 1920년부터 1990년까지 냉전이 항구적인 상태가 되었다.2) 소련은 비록 사회주의 건설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늘 세계의 모든 주변부를 지배하기 위해 갈구했던 제국주의의 일정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실상 소련은 그 사슬을 끊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국제적 차원에서 개입을 억제하고, 만일 필요하다면 타협을 추구하는 것으로 평화적 공존을 추진해야 하는가? 그러나 동시에 새롭게 대두된 피할 수 없는 공격으로부터 무장도 필요했다. 그리고 급속한 산업화는 농민의 이해관계와 갈등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리하여 혁명국가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노동자 농민 동맹을 깨뜨릴 위험에 빠뜨렸다.
It is possible, then, to understand the equivocations of Lenin, Bukharin, and Stalin. In theoretical terms, there were U-turns from one extreme to the other. Sometimes a determinist attitude inspired by the phased approach inherited from earlier Marxism (first the bourgeois democratic revolution, then the socialist one) predominated, sometimes a voluntarist approach (political action would make it possible to leap over stages). Finally, from 1930-1933, Stalin chose rapid industrialization and armament (and this choice was not without some connection to the rise of fascism). Collectivization was the price of that choice. Here again we must beware of judging too quickly: all socialists of that period (and even more the capitalists) shared Kautsky's analyses on this point and were persuaded that the future belonged to large-scale agriculture.3 The break in the worker-peasant alliance that this choice implied lay behind the abandonment of revolutionary democracy and the autocratic turn.
그런 연후에야 레닌, 부하린과 스탈린의 애매모호함을 이해할 수 있다. 이론적인 기준에서 볼 때 한쪽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방향전환이 있었다. 때때로 초기 마르크스주의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국면적 접근에 의한 결정론적 태도(처음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 그리고 그 다음 사회주의 혁명의 도래)가 우세했으며, 때론 목적의식적인 인위적 접근(정치적 행동이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다.)이 우세했다. 마침내 1930~1933년, 스탈린은 급속한 산업화와 무장을 선택했다.(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파시즘 대두와 관련이 없지 않았다.)집단화는 그와같은 선택의 대가였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는 너무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그 시기 모든 사회주의는(비록 자본주의가 더 많았지만)스탈린의 정책 내용으로 드러난 카우츠키의 분석을 공유했으며, 미래는 대규모 농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다.3) 이러한 선택은 혁명적 민주주의의 포기와 독재적 전환을 의미했던 노동자 농민 동맹의 분열을 초래했다.
In my opinion, Trotsky would certainly not have done better. His attitude towards the rebellion of the Kronstadt sailors and his later equivocations demonstrate that he was no different than the other Bolshevik leaders in government. But, after 1927, living in exile and no longer having responsibility for managing the Soviet state, he could delight in endlessly repeating the sacred principles of socialism. He became like many academic Marxists who have the luxury of asserting their attachment to principles without having to be concerned about effectiveness in transforming reality.4
나로서는 트로츠키가 당시 확실히 더 뛰어났던 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크론슈타트 수병들의 반란을 향한 태도와 뒷날의 애매모호함은 정부 내의 여타 볼세비키 지도자들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1927년 이후 망명을 시작하면서 더 이상 소련에 대한 책임이 사라졌을 때, 그는 끝없이 사회주의의 신성한 원칙만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는 많은 강단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현실의 변화에 대한 어떠한 효과적 검증을 결여한 상태에서 원칙만을 뱉어내는, 겉으로만 드러난 아주 화려한 주장을 할 뿐이었다.4)
The Chinese communists appeared later on the revolutionary stage. Mao was able to learn from Bolshevik equivocations. China was confronted with the same problems as Soviet Russia: revolution in a backward country, the necessity of including the peasantry in revolutionary transformation, and the hostility of the imperialist powers. But Mao was able to see more clearly than Lenin, Bukharin, and Stalin. Yes, the Chinese revolution was anti-imperialist and peasant (anti-feudal). But it was not bourgeois democratic; it was popular democratic. The difference is important: the latter type of revolution requires maintaining the worker-peasant alliance over a long period. China was thus able to avoid the fatal error of forced collectivization and invent another way: make all agricultural land state property, give the peasantry equal access to use
of this land, and renovate family agriculture.5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이보다 뒤에 혁명국가를 건설했다. 마오쩌뚱은 볼세비키의 애매모호함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중국은 소련과 똑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 후진국의 혁명은 혁명적 전환과정에서 농민을 필연적으로 포함할 수밖에 없고, 제국주의 국가의 적대적 공세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오는 레닌, 부하린, 스탈린 보다 더 분명했다. 그렇다. 중국혁명은 반제국주의 농민(반봉건)혁명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대중민주주의였다. 차이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후자의 혁명유형은 긴 시간동안 노동자 농민동맹을 필요로 한다. 중국은 그리하여 집단화 강제와 여타 방법 적용에서 치명적 오류를 회피할 수 있었다. 즉 모든 농지의 국가소유와 농민에게 균등분배, 가족농업의 혁신을 달성했던 것이다.5)
The two revolutions had difficulty in achieving stability because they were forced to reconcile support for a socialist outlook and concessions to capitalism. Which of these two tendencies would prevail? These revolutions only achieved stability after their "Thermidor," to use Trotsky's term. But when was the Thermidor in Russia? Was it in 1930, as Trotsky said? Or was it in the 1920s, with the NEP? Or was it the ice age of the Brezhnev period? And in China, did Mao choose Thermidor beginning in 1950? Or do we have to wait until Deng Xiaoping to speak of the Thermidor of 1980?
두 혁명은 안정화를 달성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주의적 전망과 자본주의와의 타협에서 일정한 절충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두 경향 중에 어느 것이 우세해야 하는가? 이러한 혁명은 트로츠키의 말을 빌리면"테르미도르"이후에 안정을 달성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테르미도르가 언제 있었던가? 트로츠키가 언급한 것은 1930년대를 의미하는 가? 아니면 NEP가 시행되었던 1920년대인가? 아니면 냉전의 와중이었던 브레즈네프 시대인가? 그리고 중국에서 마오가 선택했던 테르미도르는 1950년대에 시작했던가? 아니면 우리는 덩샤오핑이 출현했던 1980년대를 테르미도르라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인가?
It is not by chance that reference is made to lessons of the French Revolution. The three great revolutions of modern times (the French, Russian, and Chinese) are great precisely because they looked forward beyond the immediate requirements of the moment. With the rise of the
Mountain, led by Robespierre, in the National Convention, the French Revolution was consolidated as both popular and bourgeois and, just like the Russian and Chinese Revolutions -which strove to go all the way to communism even if it were not on the agenda due to the necessity of averting defeat-retained the prospect of going much further later. Thermidor is not the Restoration. The latter occurred in France, not with Napoleon, but only beginning in 1815. Still it should be remembered that the Restoration could not completely do away with the gigantic social transformation caused by the Revolution. In Russia, the restoration occurred even later in its revolutionary history, with Gorbachev and Yeltsin. It should be noted that this restoration remains fragile, as can be seen in the challenges Putin must still confront. In China, there has not been (or not yet!) a restoration.6
이와 같은 내용이 프랑스혁명으로부터 얻게 된 교훈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현대의 위대한 3혁명(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정말 대단 했는데, 그것은 이들 혁명이 당시의 즉자적 요구를 넘어 진행했기 때문이다.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한 산악파의 대두와 함께 국민의회를 통해 프랑스혁명은 대중들과 부르주아에게 확고하게 자리 잡았으며, 러시아와 중국혁명과 같이 - 패배를 회피하기 위한 필요성에 기인한 내용이 아니었다 해도, 공산주의를 향한 길로 모두가 나아가길 갈망했었다.- 더 먼 미래를 향한 전망을 담고 있었다. 테르미도르는 구체제 복귀 운동이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구체제 복귀 운동은 나폴레옹뿐만이 아니라, 이미 1815년에 시작하고 있었다. 구체제 복귀 운동이 발생했으나, 혁명으로 인한 거대한 사회적 변혁을 완전하게 제거할 순 없었다는 점을 여전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 구체제 복귀는 고르바초프와 옐친에 의해 혁명역사에서 비교적 뒤늦게 발생했다. 이러한 구체제 복귀는 아직까지 푸탄이 직면한 여러 위기들 속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취약한 상태임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에서 구체제 복귀 운동은 (전혀)없었다.6)
A New Stage of Monopoly Capital
독점자본의 새로운 단계
The contemporary world is still confronted with the same challenges encountered by the revolutions of the twentieth century. The continued deepening of the center/periphery contrast, characteristic of the spread of globalized capitalism, still leads to the same major political consequenc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begins with anti-imperialist, national, popular-and potentially anti-capitalist-revolutions, which are the only ones on the agenda for the foreseeable future. But this transformation will only be able to go beyond the first steps and proceed on the path to socialism later if and when the peoples of the centers, in turn, begin the struggle for communism, viewed as a higher stage of universal human civilization. The systemic crisis of capitalism in the centers gives a chance for this possibility to be translated into reality.
현대 세계는 20세기 여러 혁명이 직면했던 동질적인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심부/주변부 양극화 심화, 지구화된 자본주의의 확산이라는 특징은 똑같은 정치적 귀결을 초래하였다. 즉 세계의 전환은 반제국주의, 민족, 대중적이며, 향후 반자본주의 혁명을 가능성으로 시작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예측 가능한 미래를 위한 유일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사회주의를 향한 과정의 첫발을 넘어서 꾸준히 진행하고, 이후 만약 중심부 국가의 대중들이 보편적 인류문명의 보다 높은 단계로서 공산주의를 전망하고 이를 향한 투쟁을 시작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중심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는 가능성이 현실로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In the meantime, there is a two-fold challenge confronting the peoples and states of the South: (1) the lumpen development that contemporary capitalism forces on all peripheries of the system has nothing to offer three-quarters of humanity; in particular, it leads to the rapid destruction of peasant societies in Asia and Africa, and consequently the response given to the peasant question will largely govern the nature of future changes;7 (2) the aggressive geostrategy of the imperialist powers, which is opposed to any attempt by the peoples and states of the periphery to get out of the impasse, forces the peoples concerned to defeat the military control of the world by the United States and its subaltern European and Japanese allies.
예전에는 남쪽 국가와 민중들이 직면한 과제로서 두 가지를 거론 했었다. (1) 현대 자본주의가 인류의 3/4에 해당하는 모든 주변부에 강요하고 있는 불안정한 발전, 특별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농촌사회를 급속하게 파괴하는 과정과 결국 농촌문제에 대한 대응이 향후 미래 변화의 본질을 구성할 것이라는 점.7) (2) 제국주의 권력자들의 공격적인 지정학적 전략은 난국을 극복하려는 주변부 국가와 민중들의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으며, 미국과 유럽, 일본의 동맹으로 세계에 대한 군사적 지배를 강요한다.
The first long systemic crisis of capitalism got underway in the 1870s. The version of historic capitalism's extension over the long span that I have put forward suggests a succession of three epochs: ten centuries of incubation from the year 1000 in China to the eighteenth-century revolutions in England and France, a short century of triumphal flourishing (the nineteenth century), probably a long decline comprising in itself the first long crisis (1875-1945) and then the second (begun in 1975 and still ongoing). In each of those two long crises, capital responds to the challenge by the same triple formula: concentration of capital's control, deepening of uneven globalization, financialization of the system's management.8 Two major thinkers (Hobson and Hilferding) immediately grasped the enormous importance of capitalism's transformation into monopoly capitalism. But it was Lenin and Bukharin who drew the political conclusion from this transformation, a transformation that initiated the decline of capitalism and thus moved the socialist revolution onto the agenda.9
자본주의의 첫번째 구조적 장기 위기는 1870년대부터 태동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역사적 자본주의의 확장 양상에 대해 나는 연속하는 3단계의 시대구분을 제시한 바 있었다. 즉 중국의 1000년부터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에 이르기 까지 10세기 동안의 잠복기,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던 정복 러시(19세기), 그리고 본질적으로 첫번째 장기위기(1875 - 1945)에 대한 타협으로서 장기하강 국면과 그 이후 두번째 위기(1975년에 시작해서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로 구분할 수 있다. 두 시기의 장기 위기에 대해 자본은 똑 같은 삼중 공식으로 대응했다. 집중화된 자본통제, 불균등 지구화의 심화, 체제관리의 금융화이다.8) 중요한 사상가 두 사람(홉슨과 힐퍼딩)은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변한 내용에 대해 엄청난 중요성이 있음을 즉각적으로 알아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로부터 자본주의의 몰락이 시작되었으며, 그리하여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할 것이라는 정치적 결론을 도출한 사람은 레닌과 부하린이었다.9)
The primary formation of monopoly capitalism thus goes back to the end of the nineteenth century, but in the United States it really established itself as a system only from the 1920s, to conquer next the Western Europe and Japan of the "thirty glorious years" following the Second World War. The concept of surplus, put forth by Baran and Sweezy in the 1950-1960 decade, allows a grasp of what is essential in the transformation of capitalism. Convinced at the moment of its publication by that work of enrichment to the Marxist critique of capitalism, I undertook as soon as the 1970s its reformulation which required, in my opinion, the transformation of the "first" (1920-1970) monopoly capitalism into 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 analyzed as a qualitatively new phase of the system.
독점자본주의의 기본적 형성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사실상 1920년대부터 체제로 구축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영광의 30년"은 서유럽과 일본을 정복하면서 가능했다. 1950년대 - 1960년대 바란과 스위지가 제시했던 잉여의 개념은 자본주의 변화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이들의 저서가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풍부하게 한 작업임을 확신하면서 나는 곧이어 1970년대가 독점자본의 재형성을 요구받은 시기라는 점에 동의하였다. 나로서는 체제가 질적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하면서, 독점자본주의가 보편화된 독점자본주의로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 이행한 “첫 번째” (1920-1970)전환이라고 보고 있다.
In the previous forms of competition among firms producing the same use value-numerous then, and independent of each other-decisions were made by the capitalist owners of those firms on the basis of a recognized market price which imposed itself as an external datum. Baran and Sweezy observed that the new monopolies act differently: they set their prices simultaneously with the nature and volume of their outputs. So it is an end to "fair and open competition," which remains, quite contrary to reality, at the heart of conventional economics' rhetoric!
똑같은 사용가치의 여러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들 간의 예전 경쟁형태에서 상품가격은 회사의 자본 소유자가 외부 자료로 형성한 공인된 시장가격을 기초로 각각 독자적으로 결정하였다. 바란과 스위지는 새로운 독점에서는 전혀 다르게 결정하고 있음을 파악하였다. 즉 상품가격을 생산의 규모와 상품자체의 질로서 동시에 결정해 버린다. 그래서 “공정하고 개방적인 경쟁”이라는 구호는 사실상 끝나고, 실제 현실과는 정반대인 주류경제학자들의 미사여구에만 남아 있게 되어 버렸다.!
The abolition of competition-the radical transformation of that term's meaning, of its functioning and of its results-detaches the price system from its basis, the system of values, and in that very way hides from sight the referential framework which used to define capitalism's rationality. Although use values used to constitute to a great extent autonomous realities, they become, in monopoly capitalism, the object of actual fabrications produced systematically through aggressive and particularized sales strategies (advertising, brands, etc.). In monopoly capitalism, a coherent reproduction of the productive system is no longer possible merely by mutual adjustment of the two departments discussed in the second volume of Capital: it is thenceforward necessary to take into account a Department III, conceived by Baran and Sweezy. This allows for added surplus absorption promoted by the state-beyond Department I (private investment) and beyond the portion of Department II (private consumption) devoted to capitalist consumption. The classic example of Department III spending is military expenditure. However, the notion of Department III can be expanded to cover the wider array of socially unreproductive expenditures promoted by 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10
경쟁의 폐지는 - 경쟁 조건이 갖는 의미, 기능, 그리고 결과의 근본적 전환- 자본주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가치구조에서 가격체제가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합리성을 정의하는 데에 주로 사용했던 여러 기준점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용가치가 어느 정도 독자적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해도, 독점자본주의 하에서 실제적인 생산의 목적은 공격적이며 특별한 판매전략(광고, 브랜드 화 등)을 통해 구조적으로 달성된다. 독점자본주의 하에서 이러한 생산구조와 통일된 재생산은 더 이상 자본론 제2권에서 서술한 두 부문간의 상호 조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나타낸다. 즉 바란과 스위지가 이해한 바와 같이 부문III에 대한 평가가 필요해졌다. 이것은 자본주의 소비에 기여했던 부문II(민간소비)의 비중을 넘어서고, 부문I(민간투자)을 넘어, 국가가 촉진하는 추가 잉여흡수를 의미한다. 부문III의 고전적인 사례는 군사비 지출이다. 그러나 부분III의 개념은 보편화된 독점자본주의가 양산하는 사회적인 비생산적 경비일체로 보다 폭넓게 확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10)
The excrescence of Department III, in turn, favors in fact the erasure of the distinction made by Marx between productive (of surplus-value) labor and unproductive labor. All forms of wage labor can-and do-become sources of possible profits. A hairdresser sells his services to a customer who pays him out of his income. But if that hairdresser becomes the employee of a beauty parlor, the business must realize a profit for its owner. If the country at issue puts ten million wage workers to work in Departments I, II, and III, providing the equivalent of twelve million years of abstract labor, and if the wages received by those workers allow them to buy goods and services requiring merely six million years of abstract labor, the rate of exploitation for all of them, productive and unproductive confounded, is the same 100 percent. But the six million years of abstract labor that the workers do not receive cannot all be invested in the purchase of producer goods destined to expand Departments I and II; part of them will be put toward the expansion of Department III.
부문III의 이상성장, 다시말해 마르크스가 언급한 생산적(잉여가치)노동과 비생산적 노동 간의 특징이 사실상 소멸된다. 모든 형태의 임금노동은 이윤의 가능한 원천이 되거나 될 수 있다. 미용사는 소득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만일 미용사가 미장원의 종업원이 되었다면, 사업으로서 미장원 점주에게 이윤을 실현시켜 주어야만 한다. 만일 어떤 국가에서 천만명의 임금동자가 부문I, 부문II, 부문III에 고용되어 있고, 이들이 1천2백만년 분의 추상노동에 해당하는 양을 제공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들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이 만일 6백만년 분의 추상노동에 해당하는 양만을 받아 이들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은 6백만년 분에 불과하다면, 이들 모두의 착취율, 즉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구성비는 똑같이 100퍼센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받지 못하는 6백만년에 해당하는 추상노동 전부가 부문I과 부문II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생산자의 상품 구입에 투자되는 것은 아니다. 즉 그중 일부가 부문III의 확대를 위해 지출되는 것이다.
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 (Since 1975)
보편화된 독점 자본주의(1975년이후)
Passage from the initial monopoly capitalism to its current form (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 was accomplished in a short time (between 1975 and 2000) in response to the second long crisis of declining capitalism. In fifteen years, monopoly power's centralization and
its capacity for control over the entire productive system reached summits incomparable with what had until then been the case.
초기의 독점자본주의에서 현재 형태(보편화된 독점 자본주의)로 이행은 하강하는 자본주의의 두 번째 장기위기에 대한 대응을 위해 비교적 짧은 시기에(1975년에서 2000년까지) 달성되었다. 15년간 독점 권력의 집중화와 전체 생산시스템에 대한 통제능력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최고점에 도달했다.
My first formulation of 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 dates from 1978, when I put forward an interpretation of capital's responses to the challenge of its long systemic crisis, which opened starting from 1971-1975. In that interpretation I accentuated the three directions of this expected reply, then barely under way: strengthened centralization of control over the economy by the monopolies, deepening of globalization (and the outsourcing of the manufacturing industry to the peripheries), and financialization. The work that Andr�Gunder Frank and I published together in 1978 drew no notice probably because our theses were ahead of their time. But today the three characteristics at issue have become blindingly obvious to everybody.11
보편화된 독점 자본주의의 첫 번째 공식화는 1978년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때 나는 구조적인 장기 위기에 대한 자본의 대응문제를 다루면서 출발점을 1971-1975년으로 보았다. 그런 해석을 바탕으로 나는 향후 대체로 예상되는 진행으로 세 가지 방향을 강조한 바 있다. 즉 독점에 의한 경제의 집중통제 강화, 지구화의 심화(그리고 제조업의 주변부 하청화), 금융화이다. 안드레 군더 프랭크Andre Gunder Frank와 내가 함께 1973년에 출판한 저작은 이런 점들을 언급하였으나, 주제 자체가 당시 너무 앞서나갔기 때문에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위의 3가지 특징에 대한 문제는 모든 사람에게 단연코 명백한 상황이 되었다.11)
A name had to be given to this new phase of monopoly capitalism. The adjective "generalized" specifies what is new: the monopolies are thenceforward in a position that gives them the capability of reducing all (or nearly all) economic activities to subcontractor status. The example
of family farming in the capitalist centers provides the finest example of this. These farmers are controlled upstream by the monopolies that provide their inputs and financing, and downstream by the marketing chains, to the point that the price structures forced on them wipe out the income from their labor. Farmers survive only thanks to public subsidies paid for by the taxpayers. This extraction is thus at the origin of the monopolies' profits! As likewise has been observed with bank failures, the new principal of economic management is summed up in a phrase: privatization of the monopolies' profits, socialization of their losses! To go on talking of "fair and open competition" and of "truth of the prices revealed by the markets"-that belongs in a farce.
우리는 독점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상태에 대해 명명해야만 했다. 형용사 “보편화된”이라는 말은 새로운 것을 규정하고 있다. : 독점은 그때이후 모든(혹은 거의 모든)경제활동을 하청계약자로 취급해 버린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가족농업에 대한 사례는 가장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농민들은 독점의 영향을 받아 농사짓는 것에 필요한 재료나 자금을 비싼 가격으로 지불해야만 한다. 그리고 시장의 작용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농민들은 자신들의 노동 수입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가격구조를 감당해야 한다. 농민들은 납세자들이 지불한 공공 보조금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태는 바로 독점이윤 확보 때문인 것이다.! 은행의 실패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새로운 경제관리의 원칙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종합할 수 있다. 독점이윤의 사유화, 독점자본(기업) 손실의 사회화! “공정하고 개방적인 경쟁”과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의 진리”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상 희극적 대사에 불과하다.
The fragmented, and by that fact concrete, economic power of proprietary bourgeois families gives way to a centralized power exercised by the directors of the monopolies and their cohort of salaried servitors. For 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 involves not the concentration of property, which on the contrary is more dispersed than ever, but of the power to manage it. That is why it is deceptive to attach the adjective "patrimonial" to contemporary capitalism. It is only in appearance that "shareholders" rule. Absolute monarchs, the top executives of the monopolies, decide everything in their name. Moreover, the deepening globalization of the system wipes out the holistic (i.e., simultaneously economic, political, and social) logic of national systems without putting in its place any global logic whatsoever. This is the empire of chaos-the title of one of my works, published in 1991 and subsequently taken up by others: in fact international political violence takes the place of economic competition.12
아주 구체적인 사실로부터 분산된 부르주아 가족들의 배타적 경제권은 월급을 받고 있는 충실한 하인 무리와 관리자들이 집중된 권력으로 제공한다. 보편화된 독점 자본주의는 재산의 집중을 의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지금까지보다 훨씬 분산되고 있으며, 다만 그것을 관리하는 권력을 집중할 뿐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세습”이라는 단어를 눈치 채지 못하게 현혹시킨다. “주주”논리로 드러날 뿐이다. 모든 독점의 최정점에 자리 잡은 절대군주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더구나 체제가 전 지구적으로 심화되면서, 지구화의 논리가 무엇이건 어떤 지역에서도 맨 살 그대로 적용하지 않고, 국가의 적대적 체제논리로(예를들면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것이 동시에)정리해 버린다. 이것은 혼란의 제국 - 이 표현은 1991년에 출판한 필자의 저서제목인 바,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채택하였다. 말하자면 사실상 국제적인 정치적 폭력이 경제적 경쟁이 벌어지는 곳에 자리 잡는다.12)
Financialization of Accumulation
축적의 금융화
The new financialization of economic life crowns this transformation in capital's power. In place of strategies set out by real owners of fragmented capital are those of the managers of ownership titles over capital. What is vulgarly called fictitious capital (the estimated value of ownership certificates) is nothing but the expression of this displacement, this disconnect between the virtual and real worlds.
경제 분야의 새로운 금융화는 자본권력의 전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다. 분산된 자본의 실제 소유자들이 세운 전략을 대신해서 자본에 대한 관리자라는 직함을 달고 등장한 것이다. 천박하게 의제자본(소유권을 인정하는 추정가치)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상 이러한 대체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며, 실제와 가상세계를 단절한다.
By its very nature capitalist accumulation has always been synonymous with disorder, in the sense that Marx gave to that term: a system moving from disequilibrium to disequilibrium (driven by class struggles and conflicts among the powers) without ever tending toward an equilibrium. But this disorder resulting from competition among fragmented capitals was kept within reasonable limits through management of the credit system carried out under the control of the national state. With contemporary financialized and globalized capitalism those frontiers disappear; the violence of the movements from disequilibrium to disequilibrium is reinforced. The successor of disorder is chaos.
자본주의는 축적의 본질상 늘 무질서속에서 진행하는 데, 이것은 마르크스가 다음과 같은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균형을 향한 그 어떤 조짐도 없이 불균형에서 불균형으로 이전하는 체제.(권력자들 내부의 갈등과 계급투쟁이 촉진한다) 그러나 분산된 자본들 간의 경쟁으로 발생한 무질서는 신용체제 관리를 통해 국민 국가의 통제를 받으면서, 합리적으로 제한된 틀 안에서 유지된다. 현대의 금융화 되고 세계화된 자본주의는 전선이 사라져 버린다. 불균형에서 불균형으로 이동의 폭력성이 강화된다. 무질서의 계승자는 혼돈이다.
Domination by the capital of the generalized monopolies is exercised on the world scale through global integration of the monetary and financial market, based henceforward on the principle of flexible exchange rates, and giving up national controls over the flow of capital. Nevertheless, this domination is called into question, to varying degrees, by state policies of the emerging countries. The conflict between these latter policies and the strategic objectives of the triad's collective imperialism becomes by that fact one of the central axes for possibly putting 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 once more on trial.13
보편화된 자본의 지배는 화폐와 금융 시장의 지구적 통합을 통해서, 변동환율의 원칙과 자본이전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포기하면서 세계적 규모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배는 개발도상국의 국가정책으로 인해 다양한 수준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개발도상국의 정책과 삼각편대(미, 유럽, 일본)제국주의의 전략적 목적 간의 갈등은 이러저러한 시도를 통해 보편화된 독점자본주의를 가능한 한 이식하려는 중심축의 하나로서 자리 잡고 있다.13)
The Decline of Democracy
민주주의의 하락
In the system's centers, generalized-monopoly capitalism has brought with it generalization of the wage-form. Upper managers are thenceforward employees who do not participate in the formation of surplus-value, of which they have become consumers. At the other social pole, the generalized proletarianization that the wage-form suggests is accompanied by multiplication in forms of segmentation of the labor force. In other words, the "proletariat" (in its forms as known in the past) disappears at the very moment when proletarianization becomes generalized. In the peripheries, the effects of domination by generalized-monopoly capital are no less visible. Above an already diverse social structure made up of local ruling classes and the subordinate classes and status groups there is placed a dominant superclass emerging in the wake of globalization. This superclass is sometimes that of "neo-comprador insiders," sometimes that of the governing political class (or class-state-party), or a mixture of the two.
체제의 핵심으로서 보편화된 자본주의는 임금형태의 일반화를 가져왔다. 상층 관리자들은 이때부터 잉여가치 형성에 참여하지 않는 종업원이 되었으며, 또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또 다른 사회적 축으로서 임금형태를 갖는 일반화된 프롤레타리화가 나타나는 데, 이것은 노동력의 분리 형태를 다양화 하여 달성된다. 다른 말로 하면 “프롤레타리아”(과거에 알려진 형태로서)는 프롤레타리아화가 일반화되는 바로 그 순간에 사라진다. 주변부에서 보편화된 독점 자본의 지배효과는 뚜렷해진다. 이미 해당 지역의 지배계급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구조의 상층부와 그들에게 종속된 하위그룹과 계급은 지구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지배적 초계급으로 자리 잡는다. 이들 초계급은 때론 “신-매판적 내부자들”이거나, 때론 지배적 정치계급(혹은 계급-국가-당)이거나 아니면 이 둘이 뒤섞인 자들이다.
Far from being synonyms, "market" and "democracy" are, on the contrary, antonyms. In the centers a new political consensus-culture (only seeming, perhaps, but nevertheless active) synonymous with depolitization, has taken the place of the former political culture based on the right-left confrontation that used to give significance to bourgeois democracy and the contradictory inscription of class struggles within its framework. In the peripheries, the monopoly of power captured by the dominant local superclass likewise involves the negation of democracy. The rise of political Islam provides an example of such a regression.
“시장”과 “민주주의”가 결코 동의어가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중심부에서 새로운 정치적 여론 문화(단지 보기만 하지만, 그러나 아마도 일정하게는 행동을 수반한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영역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였던 좌와 우의 대립과, 그런 틀 속에서 계급투쟁의 모순된 정책내용이라는 예전 정치 문화의 의미를 정치적 무관심으로 변질시킨다. 주변부에서는 권력독점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경향으로, 해당 지역의 지배적 초계급이 장악한다. 정치적 이슬람의 대두는 그러한 민주주의 퇴보의 사례를 제공한다.
The Aggressive Geostrategy of Contemporary Imperialism
현대 제국주의의 공격적 지정학전략
The Collective Imperialism of the Triad; the State in Contemporary Capitalism
삼각편대 집단제국주의 ; 현대자본주의의 국가
In the 1970s, Sweezy, Magdoff, and I had already advanced this thesis, formulated by Andr�Gunder Frank and me in a work published in 1978. We said that monopoly capitalism was entering a new age, characterized by the gradual-but rapid-dismantling of national production systems. The production of a growing number of market goods can no longer be defined by the label "made in France" (or the Soviet Union or the United States), but becomes "made in the world," because its manufacture is now broken into segments, located here and there throughout the whole world.
1970년대에 스위지, 맥도프와 나는, 안드레 군더 프랑그와 내가 1978년에 출판한 저작에서 주장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미 이러한 내용을 발전시킨 바 있다. 우리는 독점자본주의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고, 국가 생산체제의 점차성-신속성-해체로 특징이 나타난다는 내용을 주장하였다. 증가하는 시장상품은 더 이상 “메이드인 프랑스”(혹은 소련이나 혹은 미국)라는 라벨로 제한되지 않고, “메이드인 세계”가 된다. 왜냐하면 전 세계의 다양한 곳에서 상품을 제조하게 되면서 지역적 분리라는 한계를 깨버린다.
Recognizing this fact, now a commonplace, does not imply that there is only one explanation of the major cause for the transformation in question. For my part, I explain it by the leap forward in the degree of centralization in the control of capital by the monopolies, which I have described as the move from the capitalism of monopolies to the capitalism of generalized monopolies. The information revolution, among other factors, provides the means that make possible the management of this globally dispersed production system. But for me, these means are only implemented in response to a new objective need created by the leap forward in the centralized control of capital.
이젠 거의 상식이 되어버린 이런 점을 인식하는 것은 전환의 문제를 야기하는 중요한 원인에 대한 설명이 단 하나만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의 경우 독점자본에 의한 통제의 집중화 수준이 도약한 것으로 설명하고, 그것이 바로 독점자본주의로부터 보편화된 독점자본주의로 이행이었다. 여러 요인들 가운데 정보혁명은 이러한 전 지구적 수준으로 분산된 생산체제 관리를 가능하게 한 수단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이러한 수단은 다만 자본의 집중화된 통제가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으로 창출된 새로운 목적을 위해 대응하는 도구로서만 필요할 뿐이다.
The emergence of this globalized production system eliminates coherent "national development" policies (diverse and unequally effective), but it does not substitute a new coherence, which would be that of the globalized system. The reason for that is the absence of a globalized bourgeoisie and globalized state, which I will examine later. Consequently, the globalized production system is incoherent by nature.
이러한 지구화된 생산체제의 출현은 일관성 있는 “국가발전”정책(다양하고 특수한 효과)을 제거하고, 새로운 통일성으로 대체하는 것도 아니면서, 다만 지구화된 체제만이 존속할 뿐이다. 이유는 지구화된 부르주아지와 지구화된 국가의 부재 때문이며, 나는 뒤에 이를 검증할 것이다. 결국 지구화된 생산체제는 본질적으로 통일성이 없다.
Another important consequence of this qualitative transformation of contemporary capitalism is the emergence of the collective imperialism of the triad, which takes the place of the historical national imperialisms (of the United States, Great Britain, Japan, Germany, France, and a few
others). Collective imperialism finds its raison d'�re in the awareness by the bourgeoisies in the triad nations of the necessity for their joint management of the world and particularly of the subjected, and yet to be subjected, societies of the peripheries.
현대 자본주의의 이러한 질적 전환의 또다른 중요한 귀결은 삼각편대 제국주의의 출현이다. 삼각편대 제국주의는 역사적 국민국가 제국주의(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와 다른 몇몇 나라들)를 대신해서 자리 잡았다. 집단제국주의는 세계에 대한 협력관리의 필요성과 특별히 주변부 사회를 종속시키기 위해 이들 국가의 부르주아지가 자신들의 존재이유로서 채택한 것이다.
Some draw two correlates from the thesis of the emergence of a globalized production system: the emergence of a globalized bourgeoisie and the emergence of a globalized state, both of which would find their objective foundation in this new production system. My interpretation of the current changes and crises leads me to reject these two correlates.
몇몇 사람은 지구화된 생산체제의 출현에 대해 두가지 연관성을 주장하고 있다. 즉 지구화된 부르주아지의 출현과 지구화된 국가의 출현으로서 이 둘은 새로운 생산체제 속에 자신들의 객관적 기초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변화와 위기에 대한 나의 해석은 이러한 상관관계를 거부하도록 만든다.
There is no globalized bourgeoisie (or dominant class) in the process of being formed, either on the world scale or in the countries of the imperialist triad. I am led to emphasize the fact that the centralization of control over the capital of the monopolies takes place within the nation-states of the triad (United States, each member of the European Union, Japan) much more than it does in the relations between the partners of the triad, or even between members of the European Union. The bourgeoisies (or oligopolistic groups) are in competition within nations (and the national state manages this competition, in part at least) and between nations. Thus the German oligopolies (and the German state) took on the leadership of European affairs, not for the equal benefit of everyone, but first of all for their own benefit. At the level of the triad, it is obviously the bourgeoisie of the United States that leads the alliance, once again with an unequal distribution of the benefits. The idea that the objective cause-the emergence of the globalized production system-entails ipso facto the emergence of a globalized dominant class is based on the underlying hypothesis that the system must be coherent. In reality, it is possible for it not to be coherent. In fact, it is not coherent and hence this chaotic system is not viable.
세계적인 차원에서 혹은 삼각편대 제국주의 국가 내부에서 형성 중에 있는 지구화된 부르주아지(혹은 지배계급)는 없다. 나는 독점의 자본에 대한 집중통제는 삼각편대 국가간의 관계나, 유럽연합 회원 국가들 관계에서 조차도, 훨씬 더 많은 내용이 삼각편대(미국, 유럽연합, 일본)국민국가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부르주아지는(혹은 과두지배그룹) 국가간에 그리고 국가 내부에서(최소한 부분적으론 국민국가가 이러한 경쟁을 관리한다)경쟁한다. 그리하여 독일 과두지배그룹은(그리고 독일이라는 국가는)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유럽연합에서 지도력을 형성했던 것이다. 삼각편대 차원에서 동맹을 이끌고 있는 미국의 부르주아지는 다시한번 동맹으로 인한 혜택을 불공평하게 분배한다. 객관적인 원인 - 지구화된 생산체제의 출현-이 사실상 지구화된 지배계급의 출현 때문이라는 생각은 이 체제가 반드시 일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론 일관된 내용은 불가능하다. 사실상 일관성이 없으며 그리하여 이런 혼돈의 체제는 지속할 수 없다.
In the peripheries, the globalization of the production system occurs in conjunction with the replacement of the hegemonic blocs of earlier eras by a new hegemonic bloc dominated by the new comprador bourgeoisies, which are not constitutive elements of a globalized bourgeoisie, but only subaltern allies of the bourgeoisies of the dominant triad. Just like there is no globalized bourgeoisie in the process of formation, there is also no globalized state on the horizon. The major reason for this is that the current globalized system does not attenuate, but actually accentuates conflict (already visible or potential) between the societies of the triad and those of the rest of the world. I do indeed mean conflict between societies and, consequently, potentially conflict between states. The advantage derived from the triad's dominant position (imperialist rent) allows the hegemonic bloc formed around the generalized monopolies to benefit from a legitimacy that is expressed, in turn, by the convergence of all major electoral parties, right and left, and their equal commitment to neoliberal economic policies and continual intervention in the affairs of the peripheries. on the other hand, the neo-comprador bourgeoisies of the peripheries are neither legitimate nor credible in the eyes of their own people (because the policies they serve do not make it possible to "catch up," and most often lead to the impasse of lumpen-development). Instability of the current governments is thus the rule in this context.
주변부에서 생산체제의 지구화는 새로운 매판 부르주아지가 지배하는 새로운 헤게모니 블록이 예전 헤게모니 블록을 대체하는 세력교체와 관련되어 있으며, 이것은 단지 세계화된 부르주아지의 구성요소가 아니며, 다만 삼각편대 지배 부르주아지의 하위 종속 동맹에 불과하다. 새로운 사회구성의 형성과정에서 세계화된 부르주아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화된 국가도 없다. 이것의 주요 원인은 현재의 세계화된 체제가 제국주의 삼각편대와 나머지 세계간의 갈등이(이미 가시화되었거나 혹은 향후 가시화될 것이라는 의미에서) 약해진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론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사회간의 갈등, 결국에 국가간의 갈등이 현실화 될 것으로 본다. 제국주의 삼각편대의 지배적인 위치(제국주의 초과이윤)로부터 형성되는 이익은 보편화된 독점에게 정당한 명분을 살려주면서 혜택을 부여하는 데, 다시말해 이것은 좌와 우, 모든 주요 정치정당을 수렴하면서, 주변부의 국가영역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과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라는 동일한 내용을 관철시킨다. 반면 주변부의 신 매판 부르주아지는 정당성도 없고, 자국 국민들에게 신뢰도 받지 못하고 있다.(왜냐하면 그들이 제공하는 정책은 선진국을 “따라 잡는 것”이 불가능할 뿐이고, 대개의 경우는 불안정한 발전의 막다른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현재 주변부 국가들의 불안정은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거의 규칙과 같은 것이다.
Just as there is no globalized bourgeoisie even at the level of the triad or that of the European Union, there is also no globalized state at these levels. Instead, there is only an alliance of states. These states, in turn, willingly accept the hierarchy that allows that alliance to function: general leadership is taken on by Washington, and leadership in Europe by Berlin. The national state remains in place to serve globalization as it is.
삼각편대 제국주의 차원이나 혹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세계화된 부르주아지가 없는 것과 같이, 또한 이들 차원에서 세계화된 국가도 없다. 대신에 국가간의 동맹만이 있을 뿐이다. 이들 국가들은 동맹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기꺼이 위계구조를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일반적 지도부는 워싱턴이 담당하고, 유럽은 베를린이 담당한다. 국민국가는 세계화를 제공하는 장소로서만 기능한다.
There is an idea circulating in postmodernist currents that contemporary capitalism no longer needs the state to manage the world economy and thus that the state system is in the process of withering away to the benefit of the emergence of civil society. I will not go back over the arguments that I have developed elsewhere against this naive thesis, one moreover that is propagated by the dominant governments and the media clergy in their service. There is no capitalism without the state. Capitalist globalization could not be pursued without the interventions of the United States armed forces and the management of the dollar. Clearly, the armed forces and money are instruments of the state, not of the market.
현대의 자본주의가 더 이상 세계경제를 관리할 국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포스모더니즘적 관점과 이로 인해 국가체제가 시민사회가 출현해서 달성한 여러 이해관계를 약화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돌고 있다. 나는 내가 이러한 나이브한 주장에 대해 다른 지면에서 주장했던 논의로 되돌아 살 생각은 없으며, 더군다나 언론이나 지배국가의 정부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전파하는 사람도 아니다. 국가 없는 자본주의는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화는 미국의 달러화 관리와 무장군인의 개입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명백히 무장군인과 화폐는 국가의 도구이지, 시장이 필요로 하는 장치는 아니다.
But since there is no world state, the United States intends to fulfill this function. The societies of the triad consider this function to be legitimate; other societies do not. But what does that matter? The self-proclaimed "international community," i.e., the G7 plus Saudi Arabia, which has surely become a democratic republic, does not recognize the legitimacy of the opinion of 85 percent of the world's population!
그러나 세계국가가 없다는 현실에서 미국은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려 하고 있다. 삼각편대 사회는 이 기능을 정당한 것으로 판단한다. : 그러나 다른 사회는 그렇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가? “국제 공동체”라는 자기주장, 예를들면 G7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확실히 민주공화국 체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세계 인구의 85%의 견해는 정당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There is thus an asymmetry between the functions of the state in the dominant imperialist centers and those of the state in the subject, or yet to be subjected, peripheries. The state in the compradorized peripheries is inherently unstable and, consequently, a potential enemy, when it is not already one.
그리하여 지배적인 제국주의 중심부와 그들 국가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 즉 주변부와의 관계에 불균형이 존재한다. 매판화된 주변부 국가는 내부적으로 불안정하고, 결국 하나가 되지 못할 때 잠정적인 적대세력이 될 수 있다.
There are enemies with which the dominant imperialist powers have been forced to coexist-at least up until now. This is the case with China because it has rejected (up until now) the neocomprador option and is pursuing its sovereign project of integrated and coherent national development. Russia became an enemy as soon as Putin refused to align politically with the triad and wanted to block the expansionist ambitions of the latter in Ukraine, even if he does not envision (or not yet?) leaving the rut of economic liberalism. The great majority of comprador
states in the South (that is, states in the service of their comprador bourgeoisies) are allies, not enemies-as long as each of these comprador states gives the appearance of being in charge of its country. But leaders in Washington, London, Berlin, and Paris know that these states are fragile. As soon as a popular movement of revolt-with or without a viable alternative strategy-threatens one of these states, the triad arrogates to itself the right to intervene. Intervention can even lead to contemplating the destruction of these states and, beyond them, of the societies concerned. This strategy is currently at work in Iraq, Syria, and elsewhere. The raison d'�re of the strategy for military control of the world by the triad led by Washington is located entirely in this "realist" vision, which is in direct counterpoint to the naive view-�la Negri-of a globalized state in the process of formation.14
지배적 제국주의 권력이 최소한 현재까지 상호공존 해야만 하는 적들이 있다. 중국의 경우 신매판 기능을 거부하고 통합된 주권 확보와 통일된 국가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푸틴이 설령 경제적 자유주의를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제국주의 삼각편대와 동맹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에서 확장의 야심을 관철하길 원하면서 적이 되었다. 남쪽 매판국가의 대다수는(즉 매판부르주아지가 장악한 국가)제각기 자국의 책임을 지는 외양을 갖추고 있는 한에서는 적이라기보다는 동맹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의 지도자들은 이들 국가가 취약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반란의 형태를 띤 대중운동이 -가시적인 대안전략을 갖고 있건 그렇지 않건 간에 - 이들 국가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삼각편대는 개입을 위한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사칭할 것이다. 제국주의의 개입은 이들 남쪽 국가를, 아니 그들을 넘어서 모든 관계있는 사회적 영역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끌 것이다. 이러한 전략이 현재 이라크, 시리아, 그리고 여타 다른 지역에서 이미 작동 중에 있다. 워싱턴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삼각편대에 의한 세계의 군사적 통제를 위한 전략의 존재이유는 전적으로 이러한 “사실주의적”관점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 국가가 형성과정에 있다고 보는 네그리 등의 나이브한 견해와 직접적으로 대립하고 있다.14)
Responses of the Peoples and States of the South
남쪽 국가와 인민들의 대응
The ongoing offensive of United States/Europe/Japan collective imperialism against all the peoples of the South walks on two legs: the economic leg-globalized neoliberalism forced as the exclusive possible economic policy; and the political leg-continuous interventions including
preemptive wars against those who reject imperialist interventions. In response, some countries of the South, such as the BRICS, at best walk on only one leg: they reject the geopolitics of imperialism but accept economic neoliberalism. They remain, for that reason, vulnerable, as the
current case of Russia shows.15 Yes, they have to understand that "trade is war," as Yash Tandon wrote.16
남쪽의 모든 민족에 대한 미국/유럽/일본이라는 집단 제국주의가 공격중인 행위는 두개의 다리로 진행되고 있다. 즉 경제적 다리 - 지구화된 신자유주의를 배타적 경제정책으로 강요한다. 정치적 다리 - 제국주의의 개입을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에 반대하는 선제공격을 포함해서 지속적인 군사개입을 정당화 한다. 이에 대응하여 BRICs와 같은 남쪽의 몇몇 국가들에서는 최대한 한쪽 다리로만 진행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제국주의의 지정학적 논리를 거부하지만 경제적 신자유주의는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러시아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아직은 취약한 상태가 남아있다.15) 그렇다. 남쪽국가는 야시 탄돈Yash Tandon이 서술한 바와 같이 “무역은 전쟁이다.”는 식으로 이해를 할 수 밖에 없었다.16)
All countries of the world outside the triad are enemies or potential enemies, except those who accept complete submission to its economic and political strategy. In that frame Russia is "an enemy."17 Whatever might be our assessment of what the Soviet Union was, the triad fought it simply because it was an attempt to develop independently of dominant capitalism/imperialism. After the breakdown of the Soviet system, some people (in Russia in particular) thought that the "West" would not antagonize a "capitalist Russia"-just as Germany and Japan had "lost the war but won the peace." They forgot that the Western powers supported the reconstruction of the former fascist countries precisely to face the challenge of the independent policies of the Soviet Union. Now, this challenge having disappeared, the target of the triad is complete submission, to destroy the capacity of Russia to resist. The current development of the Ukraine tragedy illustrates the reality of the strategic target of the triad. The triad organized in Kiev what ought to be called a "Euro/Nazi putsch." The rhetoric of the Western medias, claiming that the policies of the Triad aim at promoting democracy, is simply a lie. Eastern Europe has been "integrated" in the European Union not as equal partners, but as "semi-colonies" of major Western and Central European capitalist/imperialist powers. The relation between West and East in the European system is in some degree similar to that which rules the relation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Latin America!
삼각편대 밖에 있는 세계의 모든 국가들은 정치 경제적 전략에 완전히 굴복하지 않는 한 적국이거나 향후 적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방식에 입각할 때 러시아는 “적국”이다.17) 소련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평가하든, 삼각편대 제국주의는 러시아와 적대적인 바,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지배와는 독자적인 개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소련체제의 붕괴이후 많은 사람들은(특히 러시아 국민들)“서방진영”이 “자본주의 러시아”에 독일과 일본이 “전쟁에는 졌지만 평화를 달성”한 사례에서와 같이 적대적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서구 권력자들이 소련의 독자적 정책에 직면하여 예전 파시스트 국가들의 재건을 지원했다는 점을 잊고 있었다. 이제 이러한 식의 서구 권력에 대한 도전은 사라졌으며, 삼각편대 제국주의의 목적은 완전한 복종만을 요구하면서 러시아가 저항할 수 있는 여지를 파괴하고 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비극의 발전은 삼각편대 제국주의의 전략적 목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예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삼각편대 제국주의는 키에프에서 소위 “유로/나치 반란”으로 불리는 세력을 조직했다. 삼각편대 제국주의가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서구 언론의 미사여구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유럽연합에 편입된 동구유럽은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주요 서방국가와 중부유럽지역의 자본주의/제국주의 국가의 “반식민지”에 불과하다. 유럽에서 서구와 동구국가간의 관계는 일정수준 미국과 라틴아메리카간의 관계와 유사한 것이다.!
Therefore the policy of Russia to resist the project of colonization of Ukraine must be supported. But this positive Russian "international policy" is bound to fail if it is not supported by the Russian people. And this support cannot be won on the exclusive basis of "nationalism." The support can be won only if the internal economic and social policy pursued promotes the interests of the majority of the working people. A people-oriented policy implies therefore moving away, as much as possible, from the "liberal" recipe and the electoral masquerade associated with it, which claims to give legitimacy to regressive social policies. I would suggest setting up in its place a brand of new state capitalism with a social dimension (I say social, not socialist). That system would open the road to eventual advances toward a socialization of the management of the economy and therefore authentic new advances toward an invention of democracy responding to the challenges of a modern economy.
그리하여 우크라이나 식민지화에 저항하는 러시아의 정책은 반드시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러시아의 “국제정책”이 갖는 이런 긍정성은, 만일 러시아 국민들이 지원하지 않는다면 실패할지도 모른다. 또 러시아 국민들의 지원은 “민족주의”라는 배타적 감성에 기대고서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러시아 국민들의 지원은 만일 내부 경제 사회정책이 대다수 근로대중의 이해관계와 일치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능한 한 “자유주의”라는 메뉴와 선거라는 가면무도회에서 벗어난 사람중심의 정책과 결합해야만 하며, 그것만이 역행하는 사회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나는 사회적 내용을 충족하는 새로운 국가자본주의라는 브랜드를 구축하자고 제안한다.(나는 사회주의라고 말하지 않았다. 사회적 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사회체제는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사회화된 관리를 향한 진보적 노선이며, 그리하여 현대경제의 여러 과제를 극복하는 민주주의 발명품을 향한 새로운 진정한 진보가 될 것이다.
Russian state power remaining within the strict limits of the neoliberal recipe annihilates the chances of success of an independent foreign policy and the chances of Russia becoming a really emerging country acting as an important international actor. Neoliberalism can produce for Russia only a tragic economic and social regression, a pattern of "lumpen development," and a growing subordinate status in the global imperialist order. Russia would provide the triad with oil, gas, and some other natural resources; its industries would be reduced to the status of
sub-contracting for the benefit of Western financial monopolies. In such a position, which is not very far from that of Russia today in the global system, attempts to act independently in the international area will remain extremely fragile, threatened by "sanctions" which will strengthen
the disastrous alignment of the ruling economic oligarchy to the demands of dominant monopolies of the triad. The current outflow of "Russian capital" associated with the Ukraine crisis illustrates the danger. Reestablishing state control over the movements of capital is the only effective response to that danger.
러시아 국가권력이 신자유주의 정책의 엄격한 제한 속에 남아있는 것은 독자적인 외교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와,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실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말살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러시아가 다만 전 세계 제국주의 질서에서 종속적 지위만을 갖게 하고, “불안정 발전”의 유형이라 할 수 있는 비극적인 사회 경제적 퇴보를 맛보게 할 뿐이다. 러시아는 삼각편대 제국주의에게 석유, 개스와 몇가지 천연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즉 러시아의 산업은 서구 금융독점자본과 하청계약의 지위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세계 체제 속에서 현재 러시아가 추구하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국제적인 영역에서 독자적인 정책 추구가 극단적으로 취약한 상태가 되어 버리며, 삼각편대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지배독점의 요구를 관철하는 경제적 위계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재앙적인 상태를 초래하는 “제재”로 위협할 것이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위기와 결합하여 나타나고 있는 “러시아 자본”의 유출현상은 이러한 위험을 실증하는 것이다. 자본운동에 대한 국가통제의 재확립은 그러한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하게 효과적인 정책이다.
Outside of China, which is implementing a national project of modern industrial development in connection with the renovation of family agriculture, the other so-called emergent countries of the South (the BRICS) still walk only on one leg: they are opposed to the depredations of militarized globalization, but remain imprisoned in the straightjacket of neoliberalism.18
가족농업의 혁신으로 현대적인 산업개발의 국가적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중국 이외의 국가, 소위 남쪽의 여타 개발도상국들은 다만 한쪽다리로 걷고 있을 뿐이다. 즉 그들은 군사적 지구화의 약탈에는 반대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라는 족쇄에 여전히 갇혀 있는 것이다.18)
Notes
1. .In this article, I am limiting myself to examining the experiences of Russia and China, with no intention of ignoring the other twentieth-century socialist revolutions (North Korea, Vietnam, Cuba).
2. .Before the Second World War, Stalin had desperately, and unsuccessfully, sought an alliance with the Western democracies against Nazism. After the war, Washington chose to pursue the Cold War, while Stalin sought to extend friendship with the Western powers, again without success. See Geoffrey Roberts, Stalin's Wars: From World War to Cold War, 1939-1953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07). See the important preface by Annie Lacroix Riz to the French edition: Les guerres de Staline: De la guerre mondiale �la guerre froide (Paris: �itions Delga, 2014).
3. .I am alluding here to Kautsky's theses in The Agrarian Question, 2 vols. (London: Pluto Press, 1988; first edition, 1899).
4. .There are pleasant exceptions among Marxist intellectuals who, without having had responsibilities in the leadership of revolutionary parties or, still less, of revolutionary states, have nonetheless remained attentive to the challenges confronted by state socialisms (I am thinking here of Baran, Sweezy, Hobsbawn, and others).
5. .See Samir Amin, "China 2013," Monthly Review 64, no. 10 (March 2013): 14-33, in particular for analyses concerning Maoism's treatment of the agrarian question.
6. .See Eric J. Hobsbawn, Echoes of the Marseillaise: Two Centuries Look Back on the French Revolution (London: Verso, 1990); also see the works of Florence Gauthier. These authors do not assimilate Thermidor to restoration, as the Trotskyist simplification suggests.
7. .Concerning the destruction of the Asian and African peasantry currently underway, see Samir Amin, "Contemporary Imperialism and the Agrarian Question," Agrarian South: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 no. 1 (April 2012): 11-26, http://ags.sagepub.com.
8. .I discuss here only some of the major consequences of the move to generalized monopolies (financialization, decline of democracy). As for ecological questions, I refer to the remarkable works of John Bellamy Foster.
9. .Nicolai Bukharin, Imperialism and the World Economy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3; written in 1915); V. I. Lenin,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New York: International Publishers, 1969; written in 1916).
10. .For further discussions of the Department III analysis and its relation to Baran and Sweezy's theory of surplus absorption see Samir Amin, Three Essays on Marx's Value Theory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3), 67-76; and John Bellamy Foster, "Marxian Crisis Theory and the State," in John Bellamy Foster and Henryk Szlajfer, eds.,
The Faltering Economy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84), 325-49.
11. .Andre Gunder Frank and Samir Amin, "Let's Not Wait for 1984," in Frank, Reflections on the World Economic Crisi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81).
12. .Samir Amin, Empire of Chao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92).
13. .Concerning the challenge to financial globalization, see Samir Amin, "From Bandung (1955) to 2015: New and Old Challenges for the Peoples and States of the South," paper presented at the World Social Forum, Tunis, March 2015, and "The Chinese Yuan," published in Chinese, 2013.
14. ."Contra Hardt and Negri," Monthly Review 66, no. 6 (November 2014): 25-36.
15. .The choice to delink is inevitable. The extreme centralization of the surplus at the world level in the form of imperialist rent for the monopolies of the imperialist powers is unsupportable by all societies in the periphery. It is necessary to deconstruct this system with the prospect of reconstructing it later in another form of globalization compatible with communism understood as a more advanced stage of universal civilization. I have suggested, in this context, a comparison with the necessary destruction of the centralization of the Roman Empire, which opened the way to feudal decentralization.
16. .Yash Tandon, Trade is War (New York: OR Books, forthcoming).
17. .Samir Amin, "Russia in the World System," chapter 7 in Global History: A View from the South (London: Pambazuka Press, 2010), "The Return of Fascism in Contemporary Capitalism," Monthly Review 66, no. 4 (September 2014): 1-12.
18. .Concerning the inadequate responses of India and Brazil, see Samir Amin, The Implosion of Capitalism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3), chapter 2, and "Latin America Confronts the Challenge of Globalization," Monthly Review 66, no. 7 (December 201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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