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민의련

오사카니시요도병원 설립 70주년

파랑새호 2016. 11. 22. 11:38

니시요도병원(西淀病院) 설립 70년

“침략전쟁의 보루(砦)”에서 “평화 · 생명 · 건강을 지키는 보루”로


니시요도병원은 1947년 2월10일 서일본에서 처음으로 민주진료소인 니시요도가와(西淀川)노동회관부속병원으로 오사카시 니시요도구 미테지마(御幣島) 서3번지에 창립했다. 일본의 헌법이 시행되기 3개월전이다.

니시요도병원이 설립된 당시 일본의 국민생활은 실업과 기아, 질병이라는 악조건이었다. 산업은 괴멸상태였고, 전쟁에서 돌아온 사람들, 식량난이나 실업의 만연속에서 티푸스, 콜레라, 결핵 등이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당시 아직 국민개보험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고, 부족한 의약품에 더하여 진료비, 약가가 높았기에 서민은 병에 걸려도 의사에게 진료를 받지 못했다.

그런 시대속에서 “의료를 민중의 손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전쟁 전의 무산자진료소운동의 역사를 계승하는 진보적인 의사, 의료종사자와 전후의 민주화를 추구했던 노동운동이 있었다. 니시요도가와는 전쟁 전부터 “동양제일”로 불릴 정도의 공업지대로서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30년대에 군사부문 일색의 산업이었다. 당시엔 지금은 과자로 유명한 에자키글리코(江崎グリコ)도 제지산업이나 항공기산업에 진출하고 있었다.


전시체제를 가일층 추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토나리구미(隣組)에 나타난 ‘타이세이요쿠산카이(大政翼賛会)’와 ‘산교호코쿠카이(産業報国会)’였다. 산교호코쿠카이는 노동조합을 해산시키고 극우적인 노동조합과 하나가 되어 산업을 전쟁협력에 봉사하게 하는 사령탑의 역할을 수행했다. 산교호코쿠카이 니시요도가와지부 회장은 에자키글리코 사장(당시)이었다. 그러나 이십여차례에 걸친 대공습으로 패전당시에는 니시요도가와의 산업도 주민생활도 괴멸적 타격을 받고 있었다.


오랜기간 절대주의 천황제 지배하의 극심한 탄압과 핍박으로 신음해 온 일본의 노동자는 전후 그 분노를 일거에 폭발시키면서 많은 사람들이 노동조합운동 ·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니시요도가와에서도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니시요도가와노동조합 협의회(현재, 니시요도노렌으로 계승되고 있다.)를 설립했다.

협의회는 미테지마(御幣島)에 있었던 산교호코쿠카이의 건물 관리와 운영을 주장하고, 노동자측과 경영자측의 동수로 이사회를 구성하여 운영을 시작하였다. 노동자측에서는 회관내에 남아있던 진료소(산부인과)를 병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경영자측의 동의를 얻어 개설준비를 시작했다. 자금은 ‘1구좌당 3천엔’의 출자금을 노동조합, 노동자, 시민등으로부터 걷고, 의사는 간사이 의료민주화동맹의 참가로 확보하여, 결국 1947년 2월10일 ‘니시요도가와 노동회관 부속 니시요도병원’을 개설하였다.


간사이 전력노조, 요도가와제강노조 등 지역의 노동조합이 개설을 전면적으로 지원하였다. 한신전철노조는 간판을 걸어 니시요도병원을 알렸다. 개원으로부터 2개월 후 이런 설립과정이 [선데이 매일](1947년 4월20일 · 27일)에 계속해서 게재되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사제목은 “병원도 우리손으로 - 오사카에 탄생한 노동자 니시요도병원”이었으며, “근로자의 건강향상, 의료의 사회화를 목적으로 공장-가정을 직접 연결하여 노동자들 스스로가 경영하는 우리의 병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최초의 민주적인 노동자 병원이 오사카 니시요도가와의 공장지역 한가운데에 탄생했다.”라고 첫 문장을 서술하였다. 설립과정이나 병원의 개용 등을 서술하면서 “철저한 민주적 경영방침” “그다지 크지 않으나 밝은 느낌의 병원”등으로 호의적인 내용이었고, “우리들의 병원이 탄생한 것은 큰 기쁨이고, 장차 이런 병원이 계속해서 설립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게재하였다.


제3대원장은 구로다(黑田)혁신정부하에서 여당의원단장을 역임했던 의사 하야시 요시히코(林嘉彦)가 취임했다. 하야시원장은 전쟁전의 무산자진료소에도 참가했으며, 전후 국립 센고쿠쇼(千石莊)병원노동조합이나 전일본의료단체종업원조합을 조직했다. 니시요도병원에 참가한 후에는 전국민의련(현재는 전일본민의련)의 설립에도 참가하였다. 니시요도병원의 기초가 단단해디면서, 이러한 뛰어난 의료기관을 자신들의 지역에도 세우고 싶다는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 카시하나진료소(栢花診療所), 히메시마(姬島)진료소 등 니시요고가와구 내에는 물론 우에니진료소, 미미하라(耳原)실비진료소 등 오사카부와 고베(神戶), 아마가사키(尼崎)등 인근지역으로도 점차 민주진료소 · 병원을 건설하였다. 이 시기에 뒤에 참의원 의원이 된 의사 구쯔누기다케코(沓脫タケ子)도 초대 히메시마진료소 소장으로 참가하였다.

1963년에 결성한 민의련은 현재 47개도도부현에 1,800개의 사업소가 가입하였으며, ‘생명의 평등’ ‘무차별 평등의료와 복지의 실현’을 내걸고 활동하고 있지만, 니시요도병원은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니시요도병원 홈페이지 사진)


니시요도병원은 ‘민주적인 의료종사자를 양성하는 기관’(간사이의료민주화동맹)으로서도 자리잡고 있다. 니시요도병원은 현재까지 공해의료, 산재직업병 등의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1968년에는 요도가와준간호학원(18년간)을 개설하여, 간호사양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병원은 1979년에 현재의 노자토(野里)3번지로 신축이전하였다. 이곳에는 미테지마(御幣島)진료소, 재가복지종합센타를 경유하여 현재는 간호소규모다기능시설 쿠라쿠라, 24시간 365일의 방문간호스테이션 등 7개의 사업이 입주한 복합형 장기요양시설이 되었다.

현재 니시요도병원 창립 7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미테지마(御幣島)의 구니시요도가와 노동회관 유적지를 기념하는 기념비 서립을 추진하고 있다. 건립된 비문에는 ‘생명의 평등을 지향하며 ~ 19472월, 니시요도가와노동회관부속 니시요도병원을 이곳에서 설립함’이라고 새겨 내년 2월 제막할 예정이다.

나가세 후미오(長瀨文雄) 요도가와근로자후생협회 부이사장은 “<침략전쟁의 보루>를 <평화 · 생명 · 건강을 지키는 보루>로서 발전시켜 온 노동자, 시민의 운동, 진보적 의료종사자의 공동의 역사를 공유하는 과정에 반드시 협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한다.


출처 ; 오사카 민주신보(大阪民主新報) 10월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