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민의련

731부대의 이시이 시로(번역문)

파랑새호 2017. 8. 15. 21:18



731部隊石井四郎部隊長千葉県山武郡千代田村加茂出身

 細菌戦兵器開発する極秘部隊なので石井自分郷里のしっかりした少年たちだけを千葉県庁手配して特別採用させて渡満させ人体解剖実験助手として使731部隊加茂部隊した

 石井生家跡現在山武郡芝山町となっている直接訪ねて確認したわけではないがでは更地になっていると地元からいている成田空港から

731부대의 이시이시로(石井四郎)는 치바현 산부군 치요다무라 가모(千葉県山武郡千代田村加茂)출신이다. 세균전 무기를 개발하는 극비부대였기 때문에 이시이는 자신의 고향에서 신원이 확실햇던 소년만을 치바현 사무소에 요청하여 특별채용시키고 만주로 건너가, 인체해부 실험의 조수로 이용하였으며, 731부대도 가모(加茂)부대로 불렀다. 이시이의 생가터는 현재는 산무군 시바야마마치(芝山町)로 변했다. 내가 직접 방문해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바뀐 지역이라고 지역사람들로 부터 전해 들었다. 나리타공항에서 가깝다.

 

 連軍満州侵攻情報731部隊りの捕虜をすべて殺害焼却施設爆破して特別列車日本った千葉県中国残留日本人孤児生活支援活動などをやってきたのでいちはやくった資料米軍して助命成功した部隊幹部へのりはきい満蒙開拓団員らされず不意のソ連軍侵攻々とんでいった

소련군의 만주침공 정보를 받고, 731부대는 살아남아있는 포로를 전부 살해한 후에 소각하고, 시설은 폭파해서 맨처음 특별열차로 일본으로 피신하여 돌아왔다. 나는 치바현에 거주하는 중국거주 일본인 고아에 대한 생활지원 활동 등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일먼저 돌아와서는 자료를 미군에 건네주고 생명을 건질수 있었던 부대간부에 대한 분노가 컸다. 만몽개척단원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불의의 소련침공으로 대개 사망할 수 밖에 없었다.

 

 先年ハルピン郊外731部隊跡日本軍罪障記念館ねたにも人体解剖実験をみがいた医学者たちが戦後日本医学界枢要地位をしめたという展示釘付けになった

작년에 하얼삔 교외의 731부대 유적지에 있는 일본군 범죄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에도 인체해부실험으로 경력을 쌓은 의학자들이 전후 일본의 의학계에서 요직을 차지하였다는 전시물에 빠져들었다.

 

 石井金沢四高から京都帝大医学部軍医最高位である中将にのぼりつめた過去旧満州での悪業もすべて封印戦後平凡親切町医者けてきのびた晩年にはキリスト入信して195967天寿うしたようだ3000ものきている男女解剖してしペストやコレラ中国民衆のうえにばらまいた石井上智大学神父告白懺悔したのかはわからない

이시이는 가나자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토제국대학 의학부를 거쳐 군의관의 최고지위인 중장에 올라, 과거도 만주에서의 죄악도 모두 봉인하고 전후에는 평범하고 친절한 시골의사로 변신하여 살았다. 늘그막에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1959년에 67세로 천수를 누렸다. 3천명의 살아있는 남녀를 해부하고 살인적 페스트균이나 콜레라균을 중국민중에게 살포했던 이시이가 죠우찌대학(上智大学)의 신부에게 무엇을 고백하고 참회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人体実験といえば九大医学部米兵捕虜解剖事件があり遠藤周作毒薬いている

731部隊戦後日本国民にいっぺんにられることになったのは1981森村誠一、「しんぶん赤旗悪魔飽食連載してからである(この12光文社悪魔飽食になり3角川書店から出版されている)

인체실험이라고 한다면 큐슈대 의학부에서 미군포로해부 사건이 있었던 상황을 엔도슈사쿠(遠藤周作)가 그의 저서 [바다와 독약](毒薬)에 서술했다. 731부대가 전후, 일본국민에게 일시에 알려진 것은 모리무라 세이이찌(森村誠一)[신문 아카하타]<악마의 포식>을 연재하면서 부터이다.(이글의 1~2부는 나중에 코분샤(光文社)[악마의포식]으로 3부는 카도카와쇼텐(角川書店)에서 출판되었다.)

 

 もう戦後72になるが日本医学会らの1戦争犯罪検証犠牲者正式謝罪したというはなしをいまだに1一度にしたことがない日本医師会政治部戦前回帰をねらう自由民主党一貫した支援団体である

또한 전후에도 72년이나 경과했지만 일본의 의학회가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검증하고, 희생자에게 정식으로 사죄한다는 말을 아직도 나는 한번도 듣지 못했다. 일본의사회의 정치부는 전전회귀를 노리는 자유민주당을 지금도 일관되게 지원하는 단체이다.

 

 戦争犯罪人にあまりに戦後日本社会731部隊人体実験知見をもとに部隊幹部がつくった会社血液製剤悲惨薬害エイズ事件をひきおこさせたのではなかったか

帝銀毒殺事件手口から犯人731部隊員ではないかといううわさもえてはいない(うわさといえば加計学園獣医学部新設には部外者づけない生物化学兵器研究棟建設予定されていると警告するひともなくないアベ政権える日本会議核保有野望さえしていないから細菌兵器研究躊躇しないのではないか・・)

전쟁범죄자에게는 아무래도 너그러운 전후 일본사회 아닌가. 이런 풍조가 731부대 출신의 간부가 설립한 회사에서, 부대의 인체실험으로 얻게된 여러 정보를 이용하여 혈액제재를 만들었지만, 결국엔 비참한 약해에이즈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테긴독살사건(帝銀毒殺事件)의 수법은 731부대원이 아닌가 라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소문으로 말한다면 가케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는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는 생물화학무기연구동이 건설예정되어 있었다고 경고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베정권을 지지하는 일본회의는 핵보유 야망 조차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균무기연구도 주저하지 않은 것인가...)

 ぜったい秘密らしてはならない連絡ってもならないと厳命されて731部隊隊員たちは戦後日本社会人知れずえていった

 石井郷里から抜擢されて731部隊所属した少年たちも々な人生んだようだ

결코 비밀을 누설하지도 않았고, 연락도 서로 하지 말라고 엄명을 받은 731부대 원들은 전후 일본사회에서 사람들도 전혀 모르게 사라져갔다. 이시이의 고향에서 발탁되어 731부대에 소속된 소년들도 다양한 인생을 살았다.

 

作家森村誠一らのすべての体験った少年のひとりに篠塚良雄さんがいる篠塚さんについては高柳美知子日本にも戦争があったー731部隊元少年隊員告白(新日本出版社)になっている敗戦前夜本土った部隊幹部とは撫順戦犯管理所収容された篠塚さんは64にやっと帰国千葉県平和運動労働運動活躍したが三年前くなった


작가 모리무라 세이이찌(森村誠一)에게 자신들이 겪은 모든 경험을 이야기한 소년중의 한사람으로서 시노쯔까요시오(篠塚良雄)가 있다. 시노쯔까에 대해서는 다카야나기미찌코(高柳美知子)[일본에도 전쟁이 있었다-731부대 전소년대원의 고백](日本にも戦争があったー731部隊元少年隊員告白, 신일본출판사)저서로 알 수 있다. 패전전야에 본토로 도망갔던 부대간부와는 달리 무순전범관리소에 수용되었던 시노쯔까는 결국 64년에야 귀국하여 치바현의 평화운동과 노동운동에서 활약했지만, 3년전에 사망했다.

 この篠塚さんのさんが田村明美さんという日本共産党匝瑳市(そうさし)市議会議員戦争はだめ憲法9まもれとおさんの遺志をついで奮闘している

 (いじょう昨夜NHK731部隊特集をまだみてないので記述りがあったらご容赦ねがいたいいま田村さんに電話了解いただいた昨年他界された高柳さんが前衛俳人高柳重信さんだったとはこの稿った)

시노쯔까의 딸이 다무라아케미(田村明美)라는 일본공산당 소사시(匝瑳市)시의회 의원으로 전쟁에 반대하고 헌법9조를 지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가기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상 어젯밤 NHK731부대특집을 아직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에 오류가 있다면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지금 다무라에게 전화하여 양해를 얻었습니다. 작년에 타계한 다카야나기가 유명한 일본의 사회성 짙은 시조작가 다케야나기 시게노부(高柳重信)와 남매였다는 사실은 이들을 작성하는 중에 알았다.)

 

원문출처 ; https://www.facebook.com/akihiro.nishizawa.5?hc_ref=ARRSXAzc1nlZlGK33w363au1clCqCXSVs2zYbHm5U9PM00v49__efsDJYSxNi4sqxVw&fref=nf&pnref=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