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마르크스주의], 프레데릭 제임슨, 김유동옮김, 한길사, 2000년.
제임슨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에 대해서 논의한다. 아도르노의 주요 저서인 [계몽의 변증법], [부정변증법] 등의 주요 내용을 인용하고 아도르노 철학이랄까 아도르노의 이데올로기를 평가한다. 제임슨은 아도르노 철학을 특징을 짓는 말에 대해 ‘동일성’이라고 표현한다. 동일성 자체라기보다는 동일성을 둘러싼 여러 판단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아도르노에게 동일성이란 법칙성, 필연성, 계급성의 의미를 갖고 있다. 동일성의 대표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마르크스주의이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동일성이 자기 발전해서, 아니면 스스로 진화해서 총체성이 된 것으로 판단한다. 아도르노에게 총체성은 곧 파시즘이며 나쁜 것이다. 아도르노가 볼 때는 기존에 우리가 동일성이라고 규정했던 것들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동일성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법칙이라고는 하지만 순수하게 법칙 적용은 있을 수 없다. 제임슨은 이것을 마르크스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말하자면 교환가치는 모든 상품 속에 내재된 동일성이다. 사람들은 지금껏 가치가 같아서 상이한 대상을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아도르노는 스테이크먹는 경험과 자동차를 타본 경험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용가치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는 데 이를 동일화해서 묶은 용어이다. 요컨대 아도르노는 동일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더라도 “동일성 밑에 포섭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본다. 차이, 타율성, 타자, 질적인 계기, 극단적으로 새로운 것, 육체적인 것 등등.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세이렌의 비유에서도 이점이 잘 나타난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을 때 물속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을 철저하게 묶어 두고, 발버둥 칠수록 더 세게 묶으라고 선원들에게 요구한다. 선원들은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안들리도록 철저하게 귀를 막는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들었으나 빠지지 않았다. 선원들은 세이렌의 노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듣지 않았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물에 빠지는 것은 ‘필연’인데, 틈새가 발생했다. 필연이 발생하지 않았다. 제임슨은 이것을 “비합리주의”라고 표현했다. 후기라는 표현은 영어의 ‘late’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post’와는 달리 끄트머리에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반면 ‘post’는 연결이 끊어지고 다른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에 아도르노를 포함시켰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구조주의와의 경계선상에 자리잡은 것으로 판단했다. 제임슨은 아도르노와 약간은 다르지만 비슷한 사람으로 알튀세를 언급한다. 제임슨은 알튀세가 “극단적인 비동일성을 바탕으로 인식론을 전개”한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아도르노가 이야기하는 ‘부정’이라는 것은 변증법의 고유의 속성으로서 자기부정, 혹은 내부동력에 의한 기존 질서의 부정 등의 의미라기보다는 ‘동일성’의 부정인 것이고, ‘총체성’의 부정이면서, ‘객관성’, ‘법칙성’의 부정인 것이다. 헤겔의 변증법, 마르크스의 변증법에 대해 수용하기 보다는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부정이다. 당시 지식인 사회의 대세였던 마르크스주의를 논박하고 직접 비판하기 보다는 약간 비껴틀면서 자신의 논리를 변증법이나 마르크스주의로 위장한다. 부정변증법이라는 책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아도르노가 이야기하는 것은 변증법이 아니다. 변증법의 부정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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