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본민의련

731부대 관련 새로운 자료 발견

파랑새호 2020. 2. 10. 22:22

731부대의 이시이(石井)부대장은 치바현(千葉県) 산부군시바야마山武郡芝山출신이다.

모리무라세이이치(森村誠一)[악마의 포식]이 대평판을 받은 후에, 이시이시로 군의중장의 생가를 방문하려 했지만, 이미 옮겼다는 것을 알았다.

이시이부대는 삼천명이나 되는 청년남녀를 생체실험으로 살해하고 얻은 세균전자료를 미국점령균에게 넘겨주고 목숨을 연명하는 데 성공했으며, 고향에서 마을의사로서 변신해서 전전의 범죄행위를 은폐한 채 천수를 누렸다.

내가 20년 쯤 전에, 하얼삔 교외 핑팡(平房)에 있는 [731부대범죄기념관]을 방문했을 때는 부대편성과 다수의 일본인 의사, 군의관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사진도 있었지만, 지금도 이름이 전시되었는지 궁굼하다.

일본의 의학계는 아직도 전전의 전쟁범죄를 검증하여 사죄하지 않는다. 특히 이시시시로의 모교로서 다수의 연구자를 731부대에 파견했던 교토대학의학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교토신문]731부대에 대한 기사가 가끔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흥미있는 분은 [교토신문 731부대]라는 키워드로 검색하시면 된다.

731부대와 교토대학 의학부는 교토신문 202021

https://www.kyoto-np.co.jp/articles/-/155149

전시중에 중국동북부에서 세균무기를 연구했던 ‘731부대’(관동군방역급수부)는 교토제국대학의학부 출신의 이시이시로 군의중장을 중심으로, 포로를 페스트균에 감염시켜 증상의 진행을 조사하거나, 생체해부를 했다. 이시이는 전후, 교토대에서 조수, 강사 급의 연구자들을 파견해 준 것에대해 감사의 말을 했다.

예전 만주의 하얼빈 근교에 있던 731부대는 종전시에 약 3,900, 박사학위를 갖고 있던 군의관은 53명이 있었다. 1945년 시점에서 군의관 52, 기사 49, 직원 1,275, 위생병 1,117명으로 부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교토대학 의학부 강사로서 731부대에 파견되어 동상연구를 하고, 전후에는 교토부립 의과대학장에 취임했던 요시무라히사토(吉村寿人)에 따르면 교토대의 조교수, 강사급 젊은 사람이 8(병리학 3, 미생물학 2, 생리학 2, 의료동물학 1)을 파견하였다.”

전후에 교토대출신 전 731부대원들은 일본의 의학계로 돌아와 가나자와대 의학부장, 교토대 의학부장 등으로 근무했다. 학자이외에도 교토대 출신이 있었으며, 이시이 군의중장의 오른팔로 불린 마츠다토모사다(増田知貞) 군의관 대위도 전후 미도리쥬지(ミドリ十字)를 설립한 나이토료우이치(内藤良一)도 군의 중위도 교토대학 의학부 졸업자다.

731부대가 시행한 실험 기록은 미국이 점령했던 시기에 진행된 심문조서나 갖고 돌아온 페스크 균, 탄저균 등을 주사하는 등 해부기록("Hill Report" : the investigations on human experiments in the unit 731)이 미국에서 기밀해제되어 있고, 미국국립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나중에 교토대학 의학부장으로 근무했던 의학자의 실험을 위해 사용한 500구를 해부했다.”는 조서도 포함되어 있다.

2011년의 공문서 관리법 시행에 따라 후생노동성은 전몰자 등 원호관계자료를 국립공문서관에 순차적으로 이관했다. 군인 군속 사망자 원부, 개척단 재적 명부, 인양자 재외사실 조사표 등 연인원 2천만명의 기록으로서, 이번에 발견된 731부대에 대해 1950년에 작성한 공문서도 이러한 이관문서 속에 포함되었다. 공문서의 날림관리가 사쿠라를 보는 모임문제로 나타난 지금, 역사를 검증할 수 있는 엄정한 보관이 더 요구된다고 하겠다.

 

다음 내용도 교토신문기사

세균생산등으로 기록된 관동군 방역급수부 활경과 개괄도 부분

림구(林口)지부 부대장 사카키바라(榊原)소위 전투후 약 80명을 이끌고 헝따오허쯔(横道河子)에 도착해서 . . . 하얼빈으로 후퇴한 후 안주(杏樹)육군병원에서 근무했다.”

이번 발견자료 중에 관동군방역급수부 활동경과 개괄도라는 기록이 있어서, 패전후 소련의 명령으로 병원에서 근무한 것을 알수 있었다.

사카키바라 소위는 중국에서 전범이 되어 탄저균을 사용한 인체실험으로 사망시켰다고 진술하였고, 귀국 후에는 국립 돗토리진료소 등에서 근무한 인물이다. 억류사의 자료로서도 귀중하다.

731부대 본부의 임무에 대해서 이들 공문서는 세균의 연구와 생산, 부대의 방역급수와는 별도로 거론하였고, “하얼삔본부는 비밀부대로서 외부와의 출입을 극도로 제한했다. 본부직속으로 항공기 5~7기를 소유하고 있었다.”등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전범으로서 형기가 확정된 자, 22이라는 기록, 다렌(大連)지부 항목에 세균이나 페스트 등이 있었다는 기록 외에, 합동검토회를 열어 이들 자료가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약어나 참조해야할 것으로 언급된 문서가 없는 부분도 있어서, 원래 있었던 상세한 부대관계자에 대한 심문 자료의 존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자료를 발견한 니시야마가츠오(西山勝夫) 시가의과대(滋賀医科大)명예교수는 지금까지 731부대와 방역급수부대의 군속자명부개시를 국립공문서관에 청구하고, 군의관 52, 기사 49명등, 종전 당시 성함이나 부대구성을 밝혀왔다. 니시야마 명예교수는 의학계나 대학이 왜 731부대 연구에 관여하지도 않고, 전후 731부대를 검증도 반성도 하지 않았던 것인가, 숨겨진 자료는 아직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번의 자료는 가까운 시일안에 전쟁과 의학연구소의 홈페이지에 공개할 예정.

 

[731부대]의 새로운 자료 발견, “없을 것이라던 전후 공문서에서 세균생산을 명기함.

202027일 교토신문 https://www.kyoto-np.co.jp/articles/-/155056

관동군 방역급수부 활동경과 개괄도의 실측복사와 니시야마명예교수

2차 세계대전 중에 세균전 준비를 추진했던 구관동방역급수부(731부대)에 대해 전후에 일본정부가 작성했던 공문서를 6일 발견했다. 교토제국대학 등에서 파견된 의사 등이 인체실험을 시행했다는 731부대에 대해,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국회에서 정부내에 활동상세 자료는 볼 수 없다.”고 답변해 왔지만, 발견한 니시야마 시가의대 명예교수는 아직 731부대에 관계된 자료가 어딘가 보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공문서는 전후 5년째인 19509월에 후생노동성 전시귀국 군인명부 업무 제3과가 작성한 [자료통보(B) 50호 관동군방역급수부]라는 문서. 니시야마 명예교수가 작년 11, 국립공문서관에서 개시결정을 받았다. 문서는 합계 4페이지이지만, 좀더 많은 자료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다. 전후 중소에 남겨진 전 731부대의 군의관이나 군인등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작성된 자료로서, “관동군 방역급수부의 특이성, 이전 직업으로 인한 관계자가 많다.”고 서술했다.

그중 1매는 [관동군방역급수부활동개괄도]라는 제목으로 세로 90센티, 가로 약 60센티크기의 큰 도면. “방역급수부 본부에 대해 부대장 이시이시로 중장 이하 약 1,300명 내외. 본부는 개전과 함께 전부를 함경도 방면으로 이동시켜야 할 것등과 만주(현 중국 동북부)에서 일본으로 귀국까지의 경로를 그려놓았으며, 본부 제1부가 세균연구, 4부가 세균생산 등으로 부대구성도 기록하고 있다.

그림은 다렌지부나 무단강(牡丹江)지부, 페스트 방역부대 등, 관동군방역급수부의 각지부가 소련참전시에 어떻게 부대를 구성했는가, 무장해제나 퇴각경로, 소련에 억류된 사람수나 지휘관의 성명, 중국 쪽에 잔류한 사람 수 등도 기록하고 있다. 731부대는 하얼삔 근교에 있던 본부와 실험시설을 폭파하고 연구자료도 폐기처분했지만, 퇴각 경로가 일본측 공문서에서 제시된 것은 처음이다. 731부대의 본부에서는 일본으로 귀국하여, 전후 의학계나 제약회사에서 활약한 인물이 많지만, 이번 자료에서 각 지부는 혼란스러웠던 상황이라는 점도 밝혀졌다.

731부대의 생체실험이나 페스트균 살포 등을 나타내는 전시 중에 작성된 문서나 논문은 일본내부나 중국에서 발굴이 이어지고 있고, 점령기에 미국이 이시이 전731부대장이나 해부를 담당했던 의학자 등을 심문한 조서도 기밀로 분류되었지만, 전후에 일본정부는 731부대에 대한 조사하지 않는다라는 견해를 반복했기 때문에, 공문서가 존재하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본정부는 731부대의 페스트 균 살포를 뒷받침하는 가네코 군의소위논문(1943)이 국회도서관간사이관에서 발견되었을 때도 2012년의 국회답변에서 정부내부에 자료를 발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답변했다.

2차 세계대전중에 인체실험 의혹이 있는 논문을 집필한 구 관동군 731부대의 장교로서 교토대가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사건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전문가그룹은 27, 본조사를 하지않겠다고 결정한 경위 등을 개시하지 않고 있는 교토대의 태도가 분명해졌다고 판단. 전문가 그룹은 극히 불성실한 태도라고 비판. 향후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조치도 검토하겠다고 함.

만주 제731부대 군의장교의 학위수여 검증을 교토대학에 요구하는 모임”(사무국장 니시야마 시가대 명예교수)가 교토시 사쿄구(左京区)에 있는 교토대에서 회견했다. 동 모임은 4, 교토대가 시행한 예비조사의 회의록 등을 개시하도록 요청서를 교토대에 송부했다. 510일에 교토대학이 개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있었다.

동 모임은 개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는 인정할 수 없다. 향후에라도 검증은 계속하겠다.”고 피력했다. 공동대표 히로하라모리아키(広原盛明)교토부립대 전학장은 대학의 연구부정에 관한 문제이고, 통상적인 수준보다 더 높은 정보를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1년의 공문서 관리법 시행을 계기로, 후생노동성은 전몰자 등 원호관계자료를 국립공문서관에 순차적으로 이관하고 있다. 군인군속 사망자 명부, 개척단 재적 명부, 인양자 재외사실 조사표 등 연 2천만명의 기록으로, 이번에 발견된 731부대에 대한 1950년 작성의 공문서도, 이러한 이관문서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공문서의 날림관리로부터 역사를 검증할 수 있는 조치가 요구된다.

 

京都新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