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문제

착하게 살기

파랑새호 2006. 1. 9. 09:26

  윤리학에서나 다뤄봄직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보통의 사람들이 도대체 착하게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혹은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라는 말 속에 퍼져 있듯이 착하게 사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박원순변호사는 한 강연에서, 요즘엔 장관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장관직을 제의하면 대부분 다 고사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국민들의 높아진 도덕기준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장관을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국회나 청문회에서 추궁당하게 될 자신의 지나온 과거 행적, 특히 부동산에 대한 문제가 많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러할진대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말할 나위 없다는 주장도 들린다.

 

  오늘 아침 한나라당의 이재오의원은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는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정부의 사학비리 감사라는 "협박"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는 그냥 넘길만 한데, 그 이유가 걸작이다. "모든 사학이 다 비리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이유이다. 이재오의원은 아마도 사학의 비리를 건드려 봐야 비리가 있는 사학은 몰라도 비리가 없는 사학은 정부의 사학법 개정에 반대하여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는 의미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이라는 표현속에 들어 있는 함정을 이재오의원은 한번더 생각했어야 한다. 정부나 열린우리당이 이재오의원의 말처럼 "모든" 사학에 비리가 있어서 사학법을 개정한 것은 아니다. 상당수의 사학들이 족벌운영이나 비민주적 운영을 관행처럼 일삼아 왔기 때문에 개정한 것이다. 이는 시민단체의 요구이기도 하면서 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느끼는 바이다. 그러므로 사학법에 반대하는 움직임의 도덕적 정당성은 사학비리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아주 경미한 문제여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나 열린우리당의 시도가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사학을 탄압하거나 혹은 나라의 교육을 망치는 시도로 될 수 있다. 이재오 의원은 "모든"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면서 사학법 개정 반대투쟁의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이는 진실로 황당한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모든"사람이 착하게 사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른다. 또 사회구조상 그럴수도 없다. 극단적인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사회속에서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꿈꾸는 사람들이 착한 사람이라고 어느 누가 주장할 수 있겠는가?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주식의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을 어느 누가 착한사람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면서 한 나라의 국민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기업마저 넘겨주려는 사람을 어떻게 착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나? 착한사람은 일단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아니다.

 

  예수는 일단 무조건 "가난한"사람은 복이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날 하루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물었을 때 그는 모든 계명을 다 성실하게 지켜온 사람이었다. 과연 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는 진실로 궁굼했다. 이 사람에게 예수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은 그의 가진 전 재산을 나누어주라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예수의 제자들 마저 수군거린다. "도대체 그럼 누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겠냐고?" 이렇게 수군거리자 예수는 다시한번 직격탄을 날려 버린다. "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라고 성경주석에 나와있다. 성경책을 자구하나 틀리지 않은 성스러운 책이라고 주장하는 일군의 기독교인들이 유독 이런 예수의 지적에는 소 닭보듯 하고 있는 상황이 작금의 상황이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직장생황을 할 때 대부분의 신입직원들이 느끼는 점은 선배직장동료들이 자신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직장생활 처음이라 좀 잘하기 위해서, 또 관계도 잘 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것을 역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누구나 다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 그러나 이 험난한 세상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단련시킨 것이고 훈련시킨 것이라고 생각하라. 자신의 노동을 투여해서 봉급으로 살아가는 모든 봉급생활자들은 착한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곧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조건은 오로지 봉급으로만 먹고사는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보면 이타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곧 이기적인 본능의 발로라는 말이 나온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더불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곧 보편타당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다.

 

  즉 사회경제적으로 혹은 '유전적'으로 자기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늘상 자신을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까딱잘못하면 밥 굶어죽기 딱 좋은 사회이다. 생존하기 위해 '졸라'열심히 일하라. 자기 자신을 위해 '졸라'열심히 일하라. 그러다보면 더불어 살게 된다. 우리 사회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자신만 위해서 살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 이외에 똑같은 '나'라는 사람을 도처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모두 착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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