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간첩

파랑새호 2006. 11. 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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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전쟁이후에도 60년대 초반까지 계속해서 무장간첩을 내려보냈었다. 아마도 남한내에 빨치산이 아직 활동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거나 혹은 북한내의 강경파 집단이 주도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해본다. 북한의 무장간첩은 남한 사람들에게 간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던 이승복같은 우상을 만들어 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어쨋든 6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무장간첩 파견을 포기한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과 햇빛정책, 육일오 공동선언, 금강산 방문 등  남-북한이 구체적으로 공동 협력하는 일은 이제 너무나도 많아진 상태이다. 북한이 핵 개발을 하고 핵 실험을 했는데도 아직 남북간의 공동협력은 끊어지지 않았다. 보수집단은 북한에 대한 지원이나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했고, 어느 여당의원은 북한이 핵개발을 한 마당에 주적개념을 바꿔야 하지 않느냐고 다그쳤다. 이런 와중에 간첩사건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북한을 지원하는 것과 북한의 간첩이 되는 것은 엄밀하게 다른 행위이다. 비록 보수집단이 이 둘을 싸잡아 한 통속으로 묶으려 하지만 헛된 시도일 뿐이다. 북한의 간첩이 된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가?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통일운동을 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남한에서 친북세력을 많이 만들어내기 위함인가?  북한은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이 북한의 온존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모든 실천은 북한의 온존을 위해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남한에서 살고 있는 나도 북한이 유지돼야 한다고 판단한다. 전쟁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양민학살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지금까지 정부나 교과서에서 일방적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행위만 발표한 것에 의한 반사행동이다. 한국전쟁은 우리민족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은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야만적 폭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60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에 대해 질문해보라. 한국전쟁은 북한도, 남한도, 미국도, 전쟁에 참여한 어떤 집단에게도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주몽'이라는 드라마에서 계루의 소서노가 계루부족이 전쟁으로 피해가 예상되자 스스로 항복하는 장면이 나왔다. 작금의 상에서 시사성이 많은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이십일세기에 전쟁은 폭력이요, 야만이다.

 

 남한에서 살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보면 북한을 온존시키는 것이다. 북한을 온존시킨다고 해서 북한의 간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간첩이 되겠다고, 북한지도부와 어떻게 해서든 끈을 연결해서 남한에서 활동하면 간첩이라는 어마어마한 단어가 부각되는 것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같으면 북한에 한번 가보고싶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지금이야 합법적으로 북한에 갔다오지 않는가? 간첩이 속한 바로 그 정당지도부는 어제 북한을 방문했다.

 

 사람들에게 간첩행위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먹고살기도 힘들거니와 북한과 직접연계하여 상하관계가 되는 것이 남한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빨간색은 나쁘다는 논리에 세뇌가 된 이유 때문인가? 대중들은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알아도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과 대화시키고, 한반도에서 전쟁 억제하고, 먹고사는 방법을 시급히 모색할 때이다. 이런 거 어느정도 이뤄졌다면 혹 간첩행위 하더라도 사람들이 무관심하여 크게 다루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간첩행위하려면 그때가서 하던지 말던지 해라.

ARTICLE

 학생운동했던 몇 사람이 간첩죄 혐의를 받고 있다.  독재정권 시절 간첩사건은 정권유지를 위한 도구였다. 상당부분 조작된 근거에 의해서 고문과 날조로 만들어진 사건들이었다. 국가보안법은 또 얼마나 반인간적인, 반민주적인 악법인가? 70년대의 '막걸리보안법'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술먹고 북한이야기만 하면 잡아가던 시절은 뒤로 하더라도, 80년대의 많은 간첩들은 사실상 정부에서 조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작금의 간첩사건은 초점이 '간첩이냐 간첩단이냐'에 있지 간첩 자체에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혐의를 받고 있다해서 곧바로 확실한 간첩은 아니겠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여러 정황을 참작했을 때, 간첩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북한에 갔다 온 것은 사실이며, 북한과의 연계를 위해 노력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추정된다.

 

 학생운동 시절 대전교도소에서 만난 한 장기수는 내가 태어나던 해에 북에서 대학생이었으며, 휴전선을 넘어오다 잡혀 그 이후 계속 징역을 살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석방되어 남한에 머물고 있지 않지만, 간첩은 분명히 있었다. 잠수함 타고 넘어오다 잡힌 간첩도 있었고, 유명한 학생운동가였던 사람이 북한으로 넘어가 간첩이 되었으나 전향한 간첩도 있다. 남 북이 대치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과 북의 정권에서 간첩을  파견하는 것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지 모른다. 또 넘어왔거나 넘어갔거나 어쨋든 안드러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임무가 무엇이든, 어느쪽이든 상관없이 간첩이 어떤 나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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