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혈연’중심으로 생각해 왔다. 가족이라는 말은 사실상 ‘피붙이’와 동의어였다. 혈연을 중심으로 한 가족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때때로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살게되자 “도대체 믿을 사람 없다”는 판단 하에 “역시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정실인사나 족벌체제는 우연이 아니다.
혈연중심의 가족개념은 가족의 근본 기원을 망각한 것이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핵가족 중심사회에서 ‘가정’과 ‘가족’을 거의 구별 없이 사용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새로운 가족의 구성은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간에 “우리는 이제 한 식구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도 시간이 흐르면서 결혼한 남녀를 중심으로 가족이 재구성된다. 사실상 끊임없이 변화되는 가족구성원의 중심은 피가 전혀 섞이지 않았던 남녀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은 혈연과 관계없는 사람이 만나 “피가 섞인 가족”을 이루게 된다. 결국 가족의 출발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믿고 “사랑하는”것에 있다.
가족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 더군다나 절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에 대해 언제 가족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다름 아닌 생활공동체이다. 이런 개념에 의한다면 가족은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내야 하는 경우까지 모두 한 범주로 확대할 수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한 회사에서 일정한 시간을 같이 보낸다면 이것도 가족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는 가족관계를 파괴할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혈연에 의한 형제들끼리, 아버지와 아들조차 경제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남보다 더한 상황을 초래하는 일은 너무나 많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이다. 이는 차원과 범주가 다르다. 가족은 생활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것이고, 자본가와 노동자는 사회의 생산수단에 대한 배타적 권리, 정치 ․ 경제적 자원의 점유 등에 의하여 구별되는 말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생활이다. 가족은 사회라는 범주의 하위 개념이다. 사회가 경제적 정치적 평등과 사람다움을 구현하면 가족이라는 영역도 사회를 쫒아간다. 가족문제는 사회문제이지만, 모든 사회문제가 가족문제는 아닌 것이다. 가족간의 애정과 신뢰를 넉넉히 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사회생활과 사회구조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가족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 가족이 살아 숨쉴 수 있는 대기는 바로 사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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