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롱테일 경제학의 오류

파랑새호 2006. 12. 19. 08:25

 

 

[롱테일 경제학], 크리스앤더슨 지음, 이노무브그룹 외 옮김, 랜덤하우스, 2006년 서울

 

  ‘롱테일 경제학’은 소위 ‘히트상품’에 주목하기 보다는 팔리지 않지만 가치 있는 상품에 대해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만들어준 새로운 면을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책에 대한 독자들의 서평을 보니 대부분이 긍정적이다. 독자들은 잘 나가는 ‘히트상품’에 주목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상품에 초점을 맞춘다는 측면에서 이 책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나아가 일정한 논리적 비약마저 보인다.

 

  우선 틈새 상품이라는 개념에 대해 정확히 해야 한다. 책에서의 틈새상품은 주로 음악시장과 도서시장을 거론하면서 사실상 베스트셀러가(혹은 블록버스터) 아닌 모든 상품으로 규정한다. 틈새상품은 동일한 범주라는 것이 전제가 되지 않는다면 적용될 수 없는 개념이다. 상품을 세분화하는 것과 틈새상품은 다른 말이다. 예를들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 ‘해리포터’에 대해서 잘 팔리지 않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는 ‘자본론’을 비교하여 자본론을 틈새상품이라 할 수 있는가? 물론 두 책은 ‘책’이라는 범주로 보면 동일 영역이지만 서술되어 있는 영역이 다르고, 주된 독자층도 달라 시장의 개념에서 보면 이는 서로 연관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음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비틀즈의 음반이 많이 팔렸는 데, 나훈아의 음반은 안 팔렸다면 나훈아의 음반이 틈새상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틈새상품은 기존에 청소기가 많이 나와 있는 데 스팀청소기가 출시되었다던가, 혹은 선풍기가 많이 나와 있는데 음이온이 나오는 선풍기가 나왔다던가 하는 수준에서 거론되는 비교적 좁은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다양해진 사람들의 취향, 욕구, 문화를 반영하여 상품도 이에 걸맞게 변해가야 한다는 논리는 포드주의를 극복하면서 제기된 내용이다. 소위 대량생산에 의한 획일화를 비판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가? 롱테일 경제학은 마치 새로운 개념마냥 표현해 낸 듯 애쓰지만 사실상 본질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과 다를 것이 전혀 없는 ‘표절’이다.

 

  롱테일 경제학은 유통 중심의 사고를 갖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논리는 생산의 관점에서, 공급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된 것이라면, ‘롱테일 경제학’은 히트하지 못한 다수의 상품을 소비자들이 검색하고, 필터링이나 추천의 방법을 통하여 제시한다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롱테일 경제학은 상품을 직접 만들기 보다는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상품 중에서 팔리지 않은 상품에 주목하고, 팔리지 않은 상품일지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와같은 상품을 한 곳에서 판매할 경우 상당한 매출이 된다는 논리이다. 만일 누군가 필자에게 책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잘 팔리지 않는 음반이나 도서에 대해 소비자들이 충분히 검색할 수 있게 하여 한 곳에서 판매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로 제시하겠다.

 

   결국 롱테일 경제학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오히려 인터넷상에서 롱테일 경제학의 논리에 따라 판매할수 있는 품목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점을 의식해서 이기형이라는 인터파크 회장은 책의 추천사에서 “ 롱테일 이론은 음악, 영화와 같은 디지털화가 많이 진전된 상품 시장에 유독 잘 맞는 듯 보인다. 그래서 디지털 재화시장의 현재와 미래에 내용이 편중되어 있다”고 점잖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김택환이라는 중앙일보 멀티미디어랩 소장이라는 사람은 “많은 한국인 들이 롱테일 개념을 생소하게 여긴다. 심지어는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도 낯설어한다. 학문 및 이론적 토대의 부실함에서 오는 것일까, 혹은 지적 게으름에서 오는 것일까”하고 주장하여 마치 ‘롱테일 경제학’을 모르는 것이 학문적 토대가 부실하거나 게으름의 소산이라고 까지 과감하게 주장한다. 필자가 볼때 ‘롱테일 경제학’이야 말로 새로운 것이 전혀 없는, 따라서 학문적 토대가 지극히 부실한 그런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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