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신자유주의 이론의 파산

파랑새호 2006. 12. 28. 11:14

    

 

 

 

 

 

[ 사다리 걷어차기 ]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도서출판 부키, 2004

[ 국가의 역할 ] 장하준 지음, 이종태 황해선 옮김, 도서출판 부키, 2006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쉴새없이 많았다. 그간 진행된 신자유주의 비판의 영역은 첫째,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비판, 둘째, 이론적 비판 두 가지가 있다. 실제적으로는 두 가지 내용이 한데 뒤섞여 진행된 면이 많다. 지금까지의 비판만으로도 신자유주의는 실체가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이 느끼는 점은 신자유주의가 현실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념이자 논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은 주로 반체제적 내용이 많았다는 점이고, 반체제적 논리는 너무도 식상하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특히나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이후 마르크스 경제학 진영에서의 비판이나, 좌파 진영에서의 비판에 대해서는 싸잡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장하준 교수가 저술한 위의 두 책의 가장 큰 의미는 ‘주류경제학내’에서 ‘경제학 이론의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것에 있다. 적어도 신자유주의는 경제학 이론상으로도 설 땅이 없다. 단언컨대 장하준 교수의 저작으로 인하여 신자유주의는 이제 이론적으로는 파산했으며, 오직 정치적, 이념적 수준에서만 남아있게 되었다.

 

  [ 사다리 걷어차기 ]는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론작업을 전개하기 위한 역사적 실체 확인작업의 성격이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작성한 글에서 인용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표현은 지금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선진국들이 예전에는 자신들도 똑같은 과정을 지나왔으면서도 현실의 개발도상국가들이 추구할 때는 전혀 다른 논리를 적용하여 방해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우월한 지위를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정상에 오르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다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하면 현재의 개발도상국가들은 자국 시장의 개방, 탈규제, 민영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적용해야만 경제성장을 추진할 수 있다.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의 역사적 경험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같은 전략을 추진한 선진국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선진국들은 모두 보호주의 전략을 채택하여 자국 산업을 육성했다. 예를들어 미국의 제약업계가 선두를 지키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연구개발 투자비의 상당부분(29%)을 미국정부가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는 “19세기 미국은 보호주의 정책의 철옹성”이었다고 서술하였다. 반면 개발도상국가들은 선진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의해 자국 산업을 유치 보호할 수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저개발상태에 머물도록 작용했다. 선진국들이 현재의 개발도상국가들의 국민소득이나 총생산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때 선진국들의 경제개발 정책은 하나같이 정부가 주도하는 “유치산업 보호와 적극적 산업 무역기술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통치제도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현재의 선진국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달성한 시기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반면 개발도상국가의 민주주의는 선진국과 비교할 경우 비교적 단기간에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 선진국들과 개발도상국가들의 보통선거권 도입 연도와 1인당 GNP를 비교한 표이다. 현재의 개발도상국가들은 1인당 GNP가 1,000달러 미만이었을 때 보통선거권을 도입하였으나, 선진국의 경우 최하 2,000달러에서부터 가장 늦게 적용한 미국, 스위스 캐나다의 경우 10,000달러가 넘을 때 까지 적용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개발도상국가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선진국보다 훨씬 뛰어난 점을 입증한다. 또한 아동근로에 대한 역사적 사례는 현 선진국의 위선을 더욱 잘 드러낸다. 현 선진국들이 비교적 포괄적 강제적 의미에서 아동노동을 금지한 것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였다. 긴 근로시간 또한 마찬가지 이다. 개발도상국들은 비교적 단기간에 이같은 제도를 수립하였기 때문에 현 개발도상국가들의 제도가 과연 바람직하지 못한가에 대한 평가를 누가 어떻게 할 수 있냐고 반문한다. 경제적 수준에서 보면 선진국들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선진국에서 강요하는 국제기준은 자신들의 역사적 경험을 깡그리 무시한 적용인 셈이다.

 

  이리하여 현 선진국 들이 주로 WTO협상과정이나 FTA협상과정에서 제기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기준은 경제수준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선진국들 자신은 전혀 실행하지 못한 내용인 셈이 드러났다. 장하준 교수는 WTO 합의는 “다양한 불평등 조약의 현대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경제학 이론적으로도 신자유주의는 “매우 이질적이고 내적으로 상반된 요소들이 난마처럼 얽힌 지적 체계”이다. 신자유주의에 내재한 가장 큰 모순은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이른바 오스트리아 자유주의 전통간의 정략결혼”이라는 점이며, 이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론”이다. 신고전학파는 오스트리아 학파와 결합되면서 국가에 의한 개입주의적 색채를 억압하고 시장실패론을 오직 논리적으로 만 수용한다. 또한 학술담론과 대중정책담론을 구별하여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선 애써 무관심한 태도로 무시해 버린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학술적 태도가 아니라 정치적 태도로 인하여 자신들의 논리에 의하여 구상한 모델도 스스로 포기한다. 원래 신고전학파는 고전파 경제학의 자유방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한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개입주의적 색채”가 남아있는 데, 이에대한 명확한 결론이 없어 여전히 신고전파 내에서도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심각한 견해차이가 있다”는 점은 신자유주의 이론의 학문적 부실함을 나타낸다.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 이론에 대해 “ 일관된 내용과 명백한 결론을 가지기는커녕 오히려 모순적인 요소들로 구성된 일관성 없는 지적 독트린”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린다.

 

  [ 국가의 역할 ] 1부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에 대한 비판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 지 보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사람은 1부만 읽어도 좋다. 더 이상의 신자유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국가 개입의 정당성, 의의 등을 각종 신자유주의적 명제와 비교하여 따지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초국적기업의 문제, 공기업의 문제, 정부에 의한 규제, 지적소유권 등에 대한 내용들을 일관된 관점에서 서술한다. 아쉬운 점은 현실의 국가역할을 가장 결정적으로 제약하는 세력이라 할 수 있는 금융영역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금융역역은 국가를 좌지우지할 뿐 아니라 세계경제 자체를 폭발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이다. 금융영역에서 국가와 관계 맺는 방식은 산업영역에서 국가와 관계 맺는 방식과 일정하게 다를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에 대한 연구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역할]에서는 ‘rent'라는 단어를 모두 ’지대‘로 번역했다. 기본적으로 ’rent'라는 영어단어는 지대를 포함한 여러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지만 우리말의 ‘지대’는 대단히 한정되어 있는 표현이다. 특히 ‘monopoly rent'를 독점지대로 번역한 것은 문맥상 전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한 올바른 표현은 ’독점으로 인한 초과수익‘이다. 단언하건대 책을 읽어본 사람은 모두 내 의견에 찬성할 것으로 확신한다. 문제는 책을 다 읽은 종반에 가서야 이를 확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출판사에 문의 하였더니 “경제학 내부에서 ’지대‘라는 말을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한 번역”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경제학 내부의 동향'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와같은 ’황당한‘주장을 끝까지 반박하기도 귀찮아 대화를 중단해 버렸지만 번역이라는 것은 비록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표현을 써야 하는 것이며, 세심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밖에 없다. 부키출판사는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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