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강준만교수와 한국마르크스주의 학자들

파랑새호 2007. 1. 23. 18:05

  사실 강준만 교수에 대해선 개인적으론 전혀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그가 주장하는 논점에 대해 모두 다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 강준만 교수의 관점은 분명한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때론 현상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의 주제와는 상관없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점은 ‘논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집에 있는 강준만 교수의 책들을 살펴봤더니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만일 교보문고 인터넷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강준만’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문구를 만나게 된다.

 

     “ '강준만' 로 검색한 결과 총 142종의 국내도서 상품이 검색 되었습니다.”

 

  그렇다. 그는 무려 142종류의 책을 썼다. 물론 이중에는 잡지책도 있고, 다른 사람과 같이 쓴 책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많은 책을 썼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쓴 여기저기의 칼럼을 합친다면 실로 엄청난 양의 작가임을 알 수 있다.

 

   그의 글은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쉽다. 학자라면 어려운 단어 섞어가며 글을 쓸 법도 한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강준만 교수는 그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언론문제나 문화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정치문제에 대한 글도 많이 쓴다. 사실 그가 쓴 ‘김대중 죽이기’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의 1등공신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서 소신 있게 주장하며, 대중이 알 기 쉽도록 여러 가지 시의적절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그의 글은 주장도 많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사실들이 항상 달라붙어 있어 돋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강준만 교수의 그 수많은 주장중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인용하는 내용이나, 혹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주장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여전히 소수이나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 그들은 제법 많은 책을 번역해 왔고, ‘맑스코뮤날레’라는 것을 조직하여 [지구화시대 맑스의 현재성]이라는 제목으로 두권의 책도 펴냈다. 또 ‘박종철 출판사’라는 곳에서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주요한 저작을 번역하여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은 모두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 서구의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선집은 모두 출판되어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일부만 출판되어 있는 실정임이 심히 부끄럽다.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선집은 사상의 좌-우를 떠나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교양서적으로도 그렇고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우리나라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에게 불만이 많다. 번역이면 번역, 저술이면 저술 어느 것도 심혈을 기울여 열심히 하지 않는 느낌이다. (이도저도 싫다면 한국에 출간되어 있는 마르크스-엥겔스 관련 저작이나 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쓴 책이나 번역서 등을 리스트로 정리나 해주면 원이 없겠다.)

(박종철출판사에서 나온 마르크스엥겔스저작선집(왼쪽)과 지구화시대맑스의 현재성 2) 

 

 

  [지구화 시대 맑스의 현재성 2]를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살아있는 글, 생생한 글은 학자들의 글에서보다는 현장 활동가의 글들에서 많이 드러난다. 한국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논쟁, 외국의 이론, 어려운 말들을 이리저리 조합한 듯한 논문들 속에 파묻혀 있다. 한국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글은 현장 경험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오직 외국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책을 보고 그것을 자양분으로 하여 글을 쓰기 때문에 대단히 지적이지만 대중들은 읽지 못하는 그런 내용이다. 외국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경우 구체적인 현실분석에서 나오는 논문이나 책이 많다. 한국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글을 보면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지 않고, 구체적인 삶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구체적인 근거가 없이, 오직 마르크스주의 논리에 입각하여, 외국 학자들의 논점만을 따온 결과적으로 죽은 글이 대부분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는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 당시 민중들의 삶이 줄곧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자본론은 어려운 책이다. 이 때문에 엥겔스는 ‘임금노동과 자본’이라는 소책자의 서문에 ‘자본론’이 너무 어려워서 소책자를 발간한다고 서술하지 않았겠는가? 예전에 독일의 녹색당 청년위원회에 소속되어 있는 한 여성을 만났을 때 자본론을 독일어로 읽으면 어떠냐고 질문했더니 "몇장 읽어보고 너무 어려워서 못 읽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대단히 의기소침해 지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다들 어려워 하니 이해가 되든 안되든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 은근히 뿌듯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자본론을 읽어본 후에 죽은 글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생생한 느낌이 '팍팍' 와 닿는다. 물론 자본론을 읽어보라고 모두에게 권할 수 는 없다. 더군다나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어렵게 썼다고 후세의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의 글까지 어려워야 할 이유는 더욱 없다.

 

  백보 양보하여 책이 어렵더라도 구체적인 연구결과물이거나 여러 사람들이 종합하여 달성한 결과물이거나 혹은 통계분석 등을 이용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글이라면 어렵게 쓸 수밖에 없는 학자의 한계는 인정하지만 대강 이해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마르크스 주의 학자들의 글이나 책은 수치도 없고, 연구결과물도 아니며 단지 그동안 대학원이나 유학과정에서 배운 내용을 하나 둘씩 써먹는 수준의 내용이다. 그들만의 독창적인 연구나 저술이 없다. 그렇다고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다양한 대중서적을 많이 발간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논쟁을 좋아하고,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비판을 좋아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한국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강준만 교수에게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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