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홍루몽 독후감

파랑새호 2007. 2. 24. 12:59

 

 

 

  [홍루몽] 조설근,고악지음/안의운.김광렬옮김/대돈방그림/청계출판사, 2007년 1월

 

 

  대개의 중국 고전소설은 대체로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반면 홍루몽은 영웅의 이야기는 전혀 없는 고전이다. 봉건귀족의 한 가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12권 전체가 일상생활에서 비롯되는 소재가 대부분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 홍루몽에서 나타나는 남자들은 대개가 술이나 여자에 빠져있고 사람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홍루몽의 중심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가? 불교사상이라고도 해야 하고, 도교의 영향도 있는 것 같고, 유교 사상도 일정하게 포함되어 있다. 가장 중심된 역할을 하는 사상이라면 역시 불교라고 해야 겠다. 그렇다고는 하나 불교의 사상을 유독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소설이라는 장르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적절한 허구를 가미한다고 볼 때,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불교사상을 채택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홍루몽의 가장 큰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필자는 한시(漢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기존의 한시에 대한 작풍이 형식적이며, 틀에 매어 있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한다. ‘人情鍊達卽文章’ (인정연달즉문장, 인정에 막힘이 없이 환히 통하는 것이 바로 문장이다, 1권138쪽)으로 시작한 기존 문학에 대한 비판은 홍루몽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글이란 모름지기 ) “자기의 진정과 독창성이 있어야지 옛사람들의 격식을 본받아 글자 맞추기나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8권257쪽)라고 주인공 보옥이 비판하는 내용이 이를 잘 드러낸다. 보옥과 함께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임대옥의 시에 대한 평가에서도 이점이 드러난다. “사실 시의 구절보다도 입의(立意 : 착상)가 첫째로 중요한 거예요. 뜻만 훌륭하다면 시의 구절 같은 건 수식이 없이도 멋지게 되는 거니까요. 말하자면 글자놀음을 위해 의미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5권 199쪽) 홍루몽은 소설이지만 훌륭한 시 이론서이기도 하며, 시집이기도 하다. 때때로 리얼리즘의 본질적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아큐정전의 노신은 “홍루몽이 나타난 뒤로 전통적인 사상과 작법이 모두 타파되었다”고 평가했으리라.

 

  형식주의에 빠진 한시에 대한 비판은 봉건사상의 타파와도 연결될 수밖에 없다. 홍루몽에서는 대 놓고 봉건제도에 대한 비판이 보이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루몽은 신분제 사회인 봉건제도에서 귀족계급이 갖고 있는 허상, 가부장제도하의 남성들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종의 신분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인간미와 중요한 역할을 부여하여 사람을 신분으로 판단하지 않고, 인간관계와 기여하는 역할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가부장제 하 봉건시대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본인들의 위치를 자각하고 시대를 살아갔는지를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주인과 종, 남성과 여성의 이 주종관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기도 하다.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주인은 종이 있어야 하고, 종은 주인이 이제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으로 판단하게 되어 결국 주인과 종의 관계가 역전되는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생각나게 한다. 이런 사례들이 홍루몽에서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가보옥의 아버지 가정이 타 지방에서 수령이 되어 하인들에게 휘둘리는 장면이다. 소설전체에서 봉건제의 신분이 하나도 타파되지 않고 봉건질서가 그대로 유지되며 봉건제를 혁파해야 한다는 내용은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홍루몽에는 봉건제의 모순, 봉건귀족의 허상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홍루몽은 봉건제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책이다. 만일 독자 여러분중에 문학은 사회의 실 생활을 반영하고, 그 시대의 사상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홍루몽은 딱 들어맞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은 대륙이 광대한 만큼 소설에서도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일일이 등장 이름을 외우고자 하면 오히려 소설의 참 맛을 상실할 수 있다. 주인공 가보옥과 금릉십이채의 각 인물, 즉 대옥, 보채, 희봉, 원춘, 영춘, 가경, 금춘, 탐춘, 석춘, 교저, 상운, 묘옥을 중심으로 책을 읽으면 될 것이다. 독자여러분은 가보옥, 임대옥, 설보채, 왕희봉, 습인, 평아 등 6명의 이름만 기억하고 소설을 읽어도 좋을 것이다. 권 마다 가계도가 나와 틈틈이 가계도를 보며 읽어간다면 저절로 사람 이름이 각인된다. 출판사에서 제작한 블로그(http://blog.naver.com/redology2006)를 방문하면 등장인물에 대한 자료가 나와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홍루몽 제1권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誰解其中味(수해기중미, 누가 그 참맛을 알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