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은 ‘씨네21’이라는 영화잡지의 맨 뒤쪽에 있는 칼럼을 쓰면서 한국의 인텔리들 사이에서 일약 유명해졌다. 그의 글씨체는 군더더기가 없고 분명한 주제를 아주 간결하게 전달한다. 은근히 부럽다. 나는 뒤늦게 학생들 논술교재로 그가 쓴 글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착안하여 ‘B급좌파’라는 책을 사려고 인터넷 교보문고를 검색했으나 품절된 상태였다. 대신 최근 그의 글들을 수록한 다른 책이 있었다. ‘나는 왜 불온한가?’. 읽다보니 ‘강준만’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다음 내용은 글의 일부이다.
(나는 왜 불온한가라는 책. 돌배게 출판사)
……… 중략 ………
강준만씨는 참 오지랖 넓은 사람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거의 모든 지점에 끊임없이 의견을 낸다. 그의 의견은 철저하게 제도 시스템의 테두리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에는 여러 차원이 있고 늘 제도 시스템의 테두리가 충분한 건 아니다. 제도 시스템을 벗어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지점에서 강준만씨의 의견은 종종 무리한 훈수가 되기도 한다. 특히 좌파적 활동과 관련한 그의 의견이 그렇다. 근래 그가 좌파에 거듭하는 주문은 이른바 도덕적 순결주의에서 벗어나 시장과 언론 같은 오늘의 제도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얼핏 유익해 보이는 그의 의견은 실은 이치에 닿지 않는 무리한 훈수일 뿐이다.
……… 중략 ………
언론학자인 강준만씨가 그런 이치에 닿지 않는 훈수를 하는 건 그가 순진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념 때문이다. 자신의 말대로, 강준만씨는 오늘 시스템,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우파다. 그가 제도언론에게 "진보적 기사를 좀더 싣는 일이 자본주의 체제의 건강을 위해 좋다"고 주문하지 않고, 좌파에게 "도덕적 순결주의에서 벗어나 제도언론을 활용하라"고 주문하는 건 더도 덜도 아닌 우파의 좌파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다.
이상과 같은 그의 글은 우연히도 필자가 블로그에 게재한 글 ‘강준만교수와 한국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라는 내용과 주제는 다르지만 정반대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강준만교수에게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김규항은 정반대로 “강준만은 우파”이며, 강준만의 훈수를 “우파의 좌파에 대한 이념적 공격”이라고 주장한다. 김규항은 좌파라는 개념에 대해 오해하고 있고, 강준만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다.
(필자는 김규항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김규항의 ‘강준만’이라는 글은 2001년도에 작성된 것을 전제로 하고 이글을 쓴다. 지금 2007년도에 이르기 까지 김규항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는지 궁금하지만, 이글은 김규항의 2001년도 글에 대한 비판이다. 2007년도 김규항의 생각은 변했으면 좋겠다.)
좌파는 누구인가? 좌파는 사회주의자들을 일컫는가? 통칭 좌파라고 할 때는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며 보다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김규항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우파’라는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좌파를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려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이와같은 판단을 굳이 틀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문제는 김규항의 오해이다. 즉 김규항에 의하면 강준만은 우파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강준만의 글 어디에서도 그가 ‘자본주의를 지지 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보지 못했다. 김규항은 강준만이 좌파에 “시장과 언론 같은 제도시스템을 활용”하라고 요구했다는 근거에 의하여 그를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매도하고 '우파'로 매도한다. 도대체 시장과 언론같은 제도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왜 우파인지 모를 일이다. 특히나 그와 같은 요구가 왜 좌파에 대한 공격인지 더욱 모를 일이다. 김규항의 판단에 의하면 최근 사회주의를 주장하지만, 맨 처음 자본주의를 철폐하지 않고 제도적 개선을 실행 해 온 베네수엘라 ‘유고 차베스’는 우파이다. 실제로 ‘유고 차베스’를 우파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본인들이 유일한 좌파라고 착각하고 있는 ‘극좌’진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세상일은 어느 하나 반복되는 일이 없다.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일에는 사람들의 수많은 노력과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국 사람이 사는 사회이며, 사람만이 바꿀수 있기 때문이다. 한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그 대안을 찾는 사람들을 굳이 본인이 주장하거나 말하지도 않았는데 “자본주의를 지지하는가?”,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가?”라는 아주 단순 무식한 기준으로 편을 가르는 것은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인텔리들에게나 가능하다. 김규항의 글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주제로 등장하고, 본인은 극구 ‘좌파’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실제 나타나는 역할은 우파가 좌파를 공격할 때 즐겨 쓰는 ‘편 가르기’이다. 도대체가 적과 아를 구별 못하면서 ‘우파’운운하는 김규항이 안타까울 뿐이다. 싸움의 기본은 적을 고립시키고 우리 편을 많이 만드는 일이다. 적 진영에 가 있는 사람도 우리 편으로 당겨야만 하는 판국에 웬 ‘우파’타령인가? 김규항은 진정으로 반성해야 한다.
강준만과 김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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