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베트남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이다.(미국의 역사교과서 왜곡의 효과)

파랑새호 2007. 10. 22. 10:20

 미국학생의 1/4는 베트남전쟁이 남한과 북한의 전쟁으로 알고 있다. 제임스 W. 로웬에 의하면, 이같은 결과는 미국학생들의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 미국의 역사교과서가 왜곡하거나 은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학생들이 수준 높게 저항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이다. 미국학생의 2/3는 남북전쟁의 정확한 시기를 알지 못한다. 미국학생들은 노예제도에 무장폭동으로 저항했던 ‘존 브라운’을 모르거나 미친 사람으로 알고 있다. 베트남의 호치민이 사망한 날, 호치민의 책상위에는 존 브라운의 자서전이 있었다. 미국의 역사교과서는 아주 의도적으로, 불가피하게 일정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데, 특히 컬럼버스의 침략, 노예제도, 사회주의,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원, 제3세계에 대한 침략 등에서 가장 심각하다.

 

   (1)   한국어번역본                     (2) 미국의 원본    

                 

 

1)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제임스 W. 로웬 지음, 이현주 옮김, 평민사, 2001년

2) [Lies My Teacher Told Me], James W. Loewen, Simon & Schuster, 2007년 Reprint

 

 한국 학생들의 상당수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 한국 학생들도 미국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정규 교육기관에서 수업을 받게 되는 한, 미국의 역사를 배워야만 한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교과서 총 12종에 대한 검토를 한 결과 많은 사실들이 왜곡되거나 은폐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지적한 컬럼버스, 우드로 윌슨, 헬렌켈러에 대해 살펴보자.

 

  로웬은 컬럼버스 이전에 미국을 탐험한 사람은 셀수없이 많다고 주장한다. BC 7만년전부터 탐험한 증거가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인들의 탐험은 여러 가지 문화적 유사성으로부터 확인될 수도 있다. 또 아프리카 사람들의 탐험도 있는 데, 이는 여러 유럽자료에도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교과서는 “세계 역사의 가장 중요한 발달은 유럽에서 발생했다는 믿음을 강조”(70쪽)하기 때문에 “컬럼버스 이전의 아프리카 인들에게 너무 많은 인간적 잠재력을 부여하는 것은 유럽계 미국인의 감정을 손상”(70쪽)시켜 교과서에서 제외된다. 모든 교과서들은 컬럼버스에 대하여 “항상 불확실함이나 모순을 피하면서 컬럼버스를 예찬하는 짧고 건조한 대답만을 제시”(74쪽)하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컬럼버스가 “비극적으로 - 병들고. 가난하고, 자신이 한 일을 모른채-결말지으면서 극적 흥미를 부가”하고 있다. 현실은 정반대이다. 컬럼버스는 “엄청난 부자로 죽었으며, 그의 18대 후손에게 까지 물려준 ‘대양의 장군’이라는 호칭과 더불어 자손들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77쪽)했다. 그리고 아주 의도적으로 컬럼버스가 도착하기 이전에 살고 있던 인디언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1492년 이전에 “컬럼버스가 도착했던 아이티에 거주한 인디언 수는 거의 800만이었다. 1496년에 그 수는 110만으로 격감했다. 1516년에 이르면 컬럼버스가 주도한 인디언 노예정책과 노동정책으로 단지 12,000명만 남았다. 1542년경에는 200명이 못되었으며, 1555년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86쪽) 미국 역사교과서의 12종중 단 1종의 책만이 컬럼버스의 인디언말살에 대해 언급했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교과서가 컬럼버스를 칭송하면서 우리 자신은 압제자와 동일시 되도록 만들어졌고, 교과서 저자가 유럽의 세계 점령원인과 과정을 생략해 버리면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지각하지 못한 채로 역사를 받아들였다.”(102쪽)

 

 헬렌켈러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다. 어릴 때 헬렌켈러의 전기는 거의 필독서에 가깝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우뚝 섰던 인간의지의 산 표본 아니겠는가? 저자는 미국의 역사교과서가 헬렌켈러에 대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학생들에게 헬렌켈러가 누구인가 하고 질문했을 때 학생들 모두는 장님이며 귀머거리 소녀라 답한다. 이는 헬렌켈러의 어린시절이야기에 불과하다. 헬렌켈러가 대학을 졸업했으며, 급진적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에 대해선 모든 교과서가 침묵하고 있다. “그녀는 1909년에 매사추세츠의 사회당원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후에 그녀는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를 칭송했다. 점차로 그녀는 사회당의 좌익으로 변하여, 우드로 윌슨이 탄압한 노동조합주의자 연합인 세계산업노동조합원의 일원인 워블 리가 되었다.”(25쪽)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장님이 전 인구에 무분별하게 산재된 것이 아니라 하층계급에 모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난한 자는 산업재해나 부적절한 진료로 인해 장님이 되고, 창녀가 된 가난한 여성들은 매독으로 인해 장님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헬렌켈러는 사회계급제도가 인간의 삶에서 기회를 제어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장님이 되느냐 마느냐의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게 된 것이다.”(26쪽) 헬렌켈러는 자신이 만약 하층민 출신이었다면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같은 식민지 민족에게 희망의 빛이 된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윌슨에게 자결주의를 시행할 수 있는 민족은 북유럽에 한정된 것이다. 실상 윌슨은 “식민주의, 인종차별주의, 반공산주의라는 기본적 세 가지 주의에 대해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33쪽) 윌슨은 한번도 소련을 인정하지 않았다. 군대를 파견하여 소련정부를 전복하도록 노력했고, 반혁명군에 대한 재정을 지원했다. 윌슨은 남미도 침공했다.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니카라과를 침략했으나 대부분의 교과서는 정당화시키거나 은폐하고 있다. 우드로 윌슨은 또한 유명한 백인 지상주의자였다. 그는 각료회의에서 ‘검둥이’라는 단어를 쓰곤 했다. 윌슨은 “향후 20년 동안 민주당에 아프리카계 흑인을 입당하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연합정부의 일부 지역들은 1950년대 그리고 그 이후로도 분리된 채로 있게 하였다.”(34쪽) 그는 “1798년 이래 미국 시민의 자유를 가장 심하게 억압하였던 외국인 폭동진압법과 1917년 스파이 조직법, 1918년의 폭동진압법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다.”

 

  미국교과서에서 드러난 왜곡된 영웅 만들기와 역사에 대한 은폐는 이외에도 많다. 책의 저자는 10가지 에피소드를 제시한다. 미국에서 역사를 이렇게 가르친 결과 가난한 자는 자신의 가난이 자신의 무능력 탓 때문으로 생각하게 되고, 계급구조가 재생산되며, 기득권이 유지된다.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사실 미국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비교했을 때 어린아이 수준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나 자녀를 미국에 보내고 싶은 부모들은 좀더 정확하게 미국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아는 한 아래의 책만큼 미국역사를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는 책을 보지 못했다. 미국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아래의 책은 필독서이다.

 

 

[미국 민중사 1,2],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이후 출판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