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백두대간을 오가며 활동했던 '이현상'을 아십니까?

파랑새호 2007. 11. 19. 11:46

대학 다닐 때 전북 진안으로 농활을 갔다. 선배들은 농활을 떠나기 전 ‘새참’이 농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만일 농민들이 ‘새참’을 주면 먹지 말라고 요구했다. 논에 피뽑기를 하고 있던 중, 새참이 왔다. 나는 “새참을 먹지 않겠습니다.”고 곧이곧대로 이야기 했다. 나에게 새참을 주려던 그 할머니는 “빨갱이야? 새참을 안 먹게?”라고 반문하는 것이 아닌가? 헉! 새참을 안 먹는데 빨갱이라니! 너무도 의아하여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새참 안먹는 것하고 빨갱이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할머니의 대답은 바로 나왔다. “예전에 빨치산들도 그랬어.” 속으로 나는 “아 그랬구나, 그런 기억이 아직 사람들에게 남아 있구나.” 나는 졸지에 새참 때문에 빨치산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었다. 이때부터 나는 빨치산의 활동에 대한 궁굼증이 생겼다. 곡성의 백아산에 놀러 갔을 때도 나는 주민들로 부터 빨치산이야기를 들었다.

 

([이현상 평전], 안재성지음, 실천문학사, 2007년)

 

 한국 현대사를 공부해 본 사람들은 모두 ‘이현상’이라는 이름을 보게 된다. 굳이 빨치산을 연구하지 않더라도 현대사 공부를 하다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빨치산이야기를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이병주의 [지리산]과 이태의 [남부군]도 있었다. 모두 다 80년대 경험이었다. 최근에는 아예 한국현대사와 관련된 글도 그다지 많지 않다. 더군다나 한국현대사에 대해선 우파 학자들이 대 놓고 왜곡하고 있는 터라, 요즘 젊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는 알아도 이현상은 모른다는 김성동의 발문은 공감이 간다. 2000년 초 한국에서도 인기 있던 미국의 하드락 그룹 RATM(Rage Against The Machine)은 공연할 때 체 게바라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았다. 이로 인해 체 게바라 평전이 불티나게 팔렸다.

 

(1925년 일제시절 이현상과, 평양 조선혁명박물관에 있는 이현상의 사진)

 

한국의 현대사는 비극 그 자체이다. 현대사를 통해 한반도의 사람들은 좌와 우의 극심한 대립에 신물이 났다. 어떻게 하든 목숨을 보전해야겠다는 신념 아닌 신념이 탄생했다. 김대중의 북한방문까지 긴 시간동안 남쪽에는 ‘좌파’라는 말 자체가 금지되었다. 그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누구의 잘못이건,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고통이 안겨졌다. 이현상은 바로 비극적인 한국현대사의 한 복판에 서 있다.

 

[이현상 평전]에는 빨치산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의 실상, 해방후 좌우익의 활동, 제주도의 4.3항쟁, 여순반란 등 한국현대사의 핵심적인 사건들이 모두 담겨있다. 이현상은 이 모든 사건과 관계가 있다. 또한 많은 사람이 사망한 한국전쟁, 한국전쟁이후 북한에서 남한 출신 당원들이 처형되는 과정에서도 이현상은 관계가 있다. 이현상은 한국의 현대사 그 자체라고 해야 한다.

 

대부분 본인이 우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공의 신념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한국전쟁을 이야기한다. 한국전쟁당시 인민군이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다는 것이다. 우리 장모님도 그런 이야기를 하신다. 직접 눈으로 봤다면서. 책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김일성은 대회 첫날 발표한 긴 보고문의 서두에서 인민군 후퇴 시 우익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부터 비판했다. 극소수 악질반동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강압에 못 이겨 우익에 가담한 인민들을 학살한 것은 큰 잘못이라는 지적이었다.”(521쪽)

     “우리나라의 민족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의 것을 기계적으로 반입하는 사업 작풍도 비판했다. 공식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장차 노동당의 거센 숙청 바람을 예고한 것이었다.”(522쪽)

     “ 남침만 하면 민중봉기를 일으켜 순식간에 남한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다던 박헌영의 호언장담에 따라 전쟁을 일으켰는데 통일은커녕 수많은 사상자만 나고 있다는 것이었다."(523쪽)

 

한국전쟁의 비극은 ‘동족상잔의 비극’임에 틀림없다. 남한내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어쨌든 북한에서도 수많은 인명이 죽은 것에 대해 비판했다. 좌익이 더 많이 죽었는가, 혹은 우익이 더 많이 죽었는가, 아니면 양민이 미군에 의해 대량 학살되었는가 여러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러한 죽음은 우익이든 좌익이든 절대 도움이 되질 못한다. 특히나 좌익의 경우 ‘백성이 곧 물이며, 자신들은 물고기’라고(모택동) 생각한다면 백성이 없는 상황은 좌익에겐 더 치명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되고 난 후부터 빨치산 투쟁의 의미는 없었다고 판단한다. 더군다나 6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던 북한의 무장공비침투는 남한에 반공사상만 드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작가는 남한에서 활동했던 빨치산과 북한의 지도부와의 관계를 비교적 많이 거론한다. 그러면서 북한의 지도부는 남한의 빨치산에 대한 사실상의 배려가 없었다고 결론 내린다. 작가의 안타까운 심정과 현대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판단을 존중하고 싶지만, 뒤로 갈수록 평전에 작가의 ‘관점’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 혹시라도 [이현상 평전]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관을 불러일으킬 것 같아 안타깝다.

 

(이현상이 죽기전까지 은신했떤 지리산 빗점골 아지트) 

 

[이현상 평전]을 읽으면 나는 또 다른 조선의 혁명가 ‘김산’이 생각났다. 김산은 중국공산당에서 항일투쟁을 하다 중국공산당에 의해 사형되었다. ‘김산’은 인텔리적 풍모가 물씬 풍긴다. 반면 ‘이현상’은 인텔리적 풍모보다는 ‘투사 그 자체’가 맞을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근거로 이현상의 인간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킨다. 그 어려운 상황을 죽을 때 까지 감내하며 살아간 이현상은 어쨌든 우리가 한번은 고민하고 그 의미를 곰곰 되씹어봐야 할 사람임에 틀림없다. 물질적 동기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신념을 위해, 자신의 이익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갔다는 그런 차원에서 이현상은 한국현대사의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