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연극

반전(反戰)영화 ‘로스트 라이온즈’

파랑새호 2007. 11. 10. 10:40

특별히 영화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오마이뉴스’의 기사 때문이다. (기사 보시고 싶은 분은 여기를 클릭) ‘정치영화’라니까, 나는 정치에 관심 많으니까 한번 보자고 생각했다.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주둔하며 전쟁을 수행중인 미국에게 ‘국가’의 의미, ‘전쟁’의 의미를 묻는다. 영화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라틴계 미국인과 흑인 두 학생은 국가의 문제를 인식하고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실천을 찾기 위해 자원입대한다. 담당지도교수가 이들을 말려보지만 설득이 안된다. 아프카니스탄에 배치된 두 학생은 상원의원이 고안한 산악침투 작전 수행 중에 전사한다. 두 청년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인가 노력하기 위해 군대를 지원했지만, 그들의 죽음은 사실상 의미없는 죽음이 되버리고 말았다. 아프카니스탄의 교전을 획기적으로 바꿔보기 위해 새로운 작전을 구사한 상원의원 어빙(탐 크루즈)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역설하면서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언제나 삐딱하지만 결국 협조하는 주류언론과 입씨름하면서, 새로운 작전은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다. 베테랑 방송기자 재닌(메릴 스트립)은 어빙의 주장에 대해 무엇인가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언론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때문에 방송책임자와 갈등한다. 방송책임자는 메릴스트립에게 언론의 한계, 현실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메릴 스트립은 택시를 타고 지나가면서 공동묘지를 바라본다. 이 장면은 전쟁초기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점을 상징한다. 한편 캘리포니아 어떤 대학의 교수 로버트 레드포드는 강의 결석이 많은 학생과 대화를 한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학생에게 아프카니스탄에 자원입대한 자신의 두 제자를 이야기하면서 이 학생에게 국가를 위해서 무엇인가 실천하라고 요구한다. 교수의 이야기는 학생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교수의 이야기는 너무도 현실 상황과 무관한 이야기가 되버렸다. 놀기 좋아하는 젊은 학생은 클럽으로 돌아와 연예인이 이혼한 이야기가 헤드라인으로 나오는 뉴스에서, 상원의원이 말한 새로운 작전이 자막으로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자원입대하여  아프카니스탄에서 사망한 두 대학생, 라틴계와 흑인이다)

 

 

 

   

 

(야망을 위해 언론을 이용하는 상원의원과 베테랑 방송기자)

 

 

 

   

(놀기좋아하는 대학생과 아무런 영향이 없는 대학교수)

 

 

 

결국 영화는 미국을 운영하는 주요 집단과(정치인, 언론인, 대학교수), 향후 미국을 운영하게 될 젊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교차시키면서 국가의 의미, 전쟁의 의미, 인생의 의미를 참으로 부담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또한 영화는 ‘WASP(White with Anglo Saxon Protestant)'가 장악한 미국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아프카니스탄에 자원 입대한 두 학생은 위에서 밝혔지만 물론 ‘WASP'가 아니다. 강의에 빠지면서 노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르는 학생은 당연히 ’WASP'이다. 미국사회에서 비‘WASP'들은 ’WASP'를 위해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국가보조금이 잘 나오는 ‘WASP'자녀들의 학교와 국가보조금이 나오지 않는 비’WASP'자녀들의 학교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미국의 대학생들이 미국을 제국주의로 인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온 학생들은 사회의 문제점을 나름 인식하지만 언론과, 교육환경, 사회환경으로 인하여 정치에 무관심하다. 그것을 어떻게 개선하고 변화시키는 가에 대해선 거의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더라도 치밀하게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영화는 순수한 학생들의 뜻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죽어버리는 현실은 기성세대의 추악한 욕망을 위한 희생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사람들은 미국의 헐리우드에서 이정도의 영화가 나온 것에 만족해야 한다. 원제목 ‘Lions for Lambs'(어린양을 지키는 사자)에서 강하게 시사하는 것은 “사자가 어떻게 어린양을 지키겠는가? 고양이 앞의 생선과 같은 것이다”는 점에 있다. 국가가 순수한 젊은이를 지켜준다고 ?,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고 ? 엄청난 개소리라고 주장한다.(그런데 왜 한국어 제목을 ’로스트라이온즈‘라고 했을까 정말 궁굼하다.)

 

그러나 영화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제기는 치열한지 모르겠으나 영화관에서 편하게 앉아서 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영화이다. 마누라는 영화도중 ‘졸다’와 ‘힐끗 보다’를 반복했다. 웬지 젊은 사람들은 싫어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