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이명박은 과연 박근혜를 배려했는가?

파랑새호 2007. 11. 12. 11:15

이명박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이다. 이회창이 출마선언을 했어도 변함이 없다. 반면 박근혜는 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졌고, 후보도 아니다. 그런데 언론의 보도만 보면 박근혜가 마치 대선의 주요 변수가 된 상태이다.

 

나는 이미 박근혜의 경선 후 행보에 대해 전망을 한 바 있다.(내가 블로그에 쓴 글 ‘박근혜의 이후 행보 전망 참조) 아직도 내가 전망한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회창이 출마하자 이명박은 12월 11일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이명박이 주장한 내용은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3가지이다.

  1) 대선과 총선을 모두 당헌 당규에 따라 하겠다.

  2) 3자 정례회동(이명박, 박근혜, 강재섭)제안

  3) 전직 국회의장, 당 대표 회의 제안

 

 각 언론은 위 제안 중 1)의 제안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하고 있다.

 

     “사실상 당 권력 대부분을 손에서 놓겠다.”(조선일보)

     “내년 총선 공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서울신문)

     “내년 총선 공천 과정은 물론 집권 시 내각 구성과 국정 운영에서도 박전대표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의미”(경향신문)

     “당 내홍에 대한 반성, 박 전 대표 정치 파트너로 예우, 내년 총선 공천 불개입 등 박 전 대표 측이 지금까지 요구해 온 핵심 사항이 대부분 포함”(동아일보)

     “박근혜의 진정성 주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중앙일보)

     “박근혜 전 대표에게 재차 화해의 손짓을 내밀면서 협력을 요청”(한겨레)

 

위에서 보듯 대부분의 신문은 이명박의 11일 기자회견에 대해선 박근혜의 당권을 인정했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명박이 언급한 당헌, 당규라 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가? 한나라당 당헌 제7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대통령이 당권까지 장악해 '제왕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2005년 11월 도입한 규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이명박이 “당헌 당규에 따라”라는 표현 자체가 바로 총선 공천 불개입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공천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당헌 제7조가 아니라, 제47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한나라당 당헌 제47조에 의하면 각종 선거 후보자 공천은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시행한다. 특히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대표최고위원이 임명하는 당내 외 인사 20인으로 구성된다. 공천심사위원회가 후보를 선정하면 이를 최고위원회의 의결로 결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 공천은 공천심사위원회와 최고위원의 의결이 가장 중요하다. 최고위원이야 별도의 선출과정이고, 이미 선출되어 있지만, 공천심사위원회는 그때 가서 대표최고위원이 임명한다. 만일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선정한 인사를 최고위원회에서 거부한다면 공천심사위원회는 다시 심의하는 데, 최고위원회의가 거부하더라도 공천심사위원회의 2/3의 찬성이 있다면 후보로 확정된다. 형식상 공천심사위원회가 엄청난 중요성을 갖고 있고, 이 위원회를 ‘대표최고위원’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당헌 규정만을 놓고 볼 때 공천과 관련하여 핵심키를 쥐고 있는 사람을 판단한다면 당연히 강재섭이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형식상 당의 공천에 개입하는 것은 현재의 한나라당 당헌상 불가능하다.

 

당헌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천과정에서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재의 정치역학상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영향을 미치더라도 강재섭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이 박근혜에게 제안을 하기 위해선 강재섭하고도 상의해야만 한다. 최소한 강재섭의 묵인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명박의 11일 기자회견 내용은 강재섭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최소한 강재섭의 묵인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강재섭은 한나라당의 7.11 전당대회에서 이재오에게 뒤지다 막판에 박근혜 진영의 지원으로 당선된 바 있다. 오늘의 강재섭을 있게 한 결정적 공로자가 박근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선과정에서는 박근혜측 보다는 이명박측으로 많이 기울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강재섭은 경선이후 교체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유임되었다. 현재 강재섭은 이명박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본인이 향후 더 큰 정치적 행로를 찾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박근혜와 경쟁도 해야 하는 처지이다.

 

즉 언론에서 일반적으로 평가하였던 이명박의 첫 번째 제안은 당헌 당규상 이명박의 공천불개입으로 해석하는 것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제안 자체가 바로 박근혜의 공천권 보장은 아니다. 당헌 당규 상으로만 본다면 강재섭의 역할이 중요한 바, 강재섭은 사실상 현재로서는 이명박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단 강재섭, 박근혜 이명박의 3자회동 자체만 놓고 볼 때도, 박근혜 입장에서만 본다면 2대1로 만나자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당헌당규를 준수하겠다는 것은 강재섭의 역할이 그만큼 증가한 다는 것이며, 강재섭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의 제안은 박근혜의 입장에서 볼 때 아직 박근혜를 배려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나라당 당헌 제 87조에 의하면 “대통령후보자는 선출된 날로부터 대통령선거일까지 선거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명박은 현재 대통령 후보자로서 당무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일보의 평가처럼 “당헌당규를 따르겠다.”는 이명박의 언급이 당 권력 대부분을 손에서 놓겠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닌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박근혜가 의도하는 공천권 행사 등의 내용이 충족되질 않았다. 더군다나 이명박의 기자회견은 사실상 이회창 때문이다. 다급해진 이명박이 기자회견을 한 것이지 박근혜를 배려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의 협조를 얻기 위해선 아마도 다른 내용이 더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명박의 발언이나 정치활동을 봤을 때 통 큰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아마도 박근혜는 김대중이 집권할 때 김종필과 연합한 수준의 내용(소위 DJP 연합)이라야 움직일 것이다. 또 언제 도덕성에 흠이 가는 결정적인 문제가 터질지도 모른다. 이회창이 출마한 결정적인 이유가 이명박의 ‘중도낙마’에 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근혜가 이회창을 지지할 수는 없다. 명분도 없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박근혜로서는 백의종군 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보수언론에서 박근혜의 입장표명을 부추기고 있어 일정한 ‘립 서비스’수준이야 가능하더라도 박근혜가 참여할 내용이 충족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