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노무현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파랑새호 2007. 11. 28. 12:03

항상 내 머릿속에는 노무현의 실패가 있다. (과연 노무현이 실패했는가? 라는 문제제기는 지금 이 자리에서 논의하지 말자. 노무현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얼른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면 된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지금 시점에서 나는 늘 노무현의 실패로 고민한다.

 

지역구에서 번번이 낙방하고, 도저히 대통령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정치인이 김대중의 다음 대를 잇는 대통령이 되었다. 제주도 경선에서 조짐이 보이더니 광주 경선에서 완전히 바람이 되었다. 역시 온몸으로 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 독재와 싸워본 광주-전라도 지역 국민들의 판단은 존경할 만 하다. 지역주의 관점에서 보면 부산출신이며, 맨 처음 김영삼으로 인해 정치에서 활동하게 된 노무현은 부산이나 경남이 아니라 광주-전라도에서 바람이 되었다. 우리나라 정치사상 처음으로 소위 ‘노빠’가 탄생했고, 불완전했던 김대중의 연립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정몽준과의 후보단일화도 노무현이 아니면 진행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노무현은 과감하게 단일화를 주장했고, 이겼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과정은 한국의 정치가 이제 본격적으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가 된다는 점을 상징했다.

 

(희망을 갖고 출발했었습니다만 .....)

 

그러나 유시민이 쓴 글을 보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좀처럼 노무현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도대체 이회창이라는 거물이 깜도 안되는 노무현에게 졌다는 사실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대 놓고 노무현을 깔봤으며 무시했다. 이런 한나라당의 기류는 마침내 탄핵으로 이어졌다. 탄핵은 노무현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결과가 되버렸다. 이 또한 국민들의 판단이었다. 비록 박근혜가 꺼져가는 한나라당의 불씨를 살렸지만, 탄핵은 노무현에게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아도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할 수 있다는 역사적 선례를 남겼다. 어쨌든 국민들은 노무현을 배신하지 않았다.

 

(국민들은 '탄핵무효'라고 열라 외친죄 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노무현의 시련은 탄핵이후부터 이다. 양극화는 계속 벌어지고, 한나라당은 갈수록 더 기승을 부리며, 노무현은 계속 실수했다. 믿을 사람을 믿어라. 어떻게 오랜 관료생활을 했으며, 우리나라 민주화과정에서는 전혀 관심도 없었고, 참여도 없었던 ‘변양균’을 믿는가? 고건은 어떤가? 양지만을 찾아다닌 사람이 노무현 정부의 ‘총리’가 되었다. 노무현은 줄곧 정치와 남북관계에 공을 들였다. 경제는 사실상 관료에게 맡겨둔 채 자신의 전공이기도 한 남북문제와 정치에 몰두했다. 경제는 계속 헛발질이었다. 부동산헛발, 수도이전헛발, FTA헛발, 비정규직헛발 등등. 국민들은 생각했다. “민주화세력 이정도 밀어줬으면 경제적으로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참으로 한탄스럽다. 왜 정치를 위해선 사람을 바꾸는데 경제를 위해선 사람을 바꾸지 않는가? 경제이든, 정치이든 사람이 주체이다. 삼성특검법이 통과되자 노무현은 공직부패수사처가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노무현의 주장이다.

 

이 같은 사건,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을 수 있으므로 공직부패수사처, 공수처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난번 대선 때 각 당이 모두 공약했다. 저는 그 공약에 따라 법무부와 검찰에 이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을 거쳐서 공수처법을 국회에 통과시켰다. 그 법 통과시키면 되는데 왜 국회가 그 법은 통과 안 시켜주느냐. 왜 안 시켜주는지 여러분 왜 그런지 이해가 가는가? 다 공약한 것이다. 국민들에게 물어보면 다 필요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왜 통과 안 시켜주는지 알 수 없다. 그걸 통과 안 시켜주고 이럴 때 특검법 끄집어내겠다고 하는데 특검법은 다수당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여소야대니까 야당이 뭉쳐서 특검법 자주 만들어내지만 앞으로 여대 국회가 되면 정부 어느 부처에 무엇이 있어도 특검 나올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다수당 몫이다. 지금처럼 국회가 결탁해서 대통령 흔들기 위해 만들어낼 때만 특검이 나올 수 있다. (삼성특검 관련 11월 27일 기자회견 모두발언 중에서 인용함)

(나는 괜찮은 데, 국회가 문제야....)

 

노무현은 늘 주장했다. “왜 국회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가?”, “왜 국회에서 대통령을 흔드는가?” 이번 삼성특검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정책이나 제안들이 국회에서 변질되거나 거부될 때 마다 이런 주장을 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가? 한나라당이 정치정당인 이상 일정한 지지 세력이 있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노무현을 반대한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뜻’이기에 노무현을 비판한다. 만일 노무현이 제안한 그 어떤 정책이 국회에서 부결된다면 분명한 차이를 갖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탄핵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한나라당의 노무현 반대가 이때만큼 엄청난 자충수였음을 확인한 적도 없다. 문제는 노무현의 정책이나 한나라당의 정책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점이다. 도대체가 한나라당과 그 어떤 뚜렷한 차이를 갖고 있는가? FTA, 비정규직은 국민들에게 “노무현이나 한나라당이나 똑같다. 어차피 그렇다면 명분이나 찾기 보다는 돈이라도 벌게 한나라당이나 밀어주자.”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또한 각종 고위공직자의 비리, 재벌의 비리는 “노무현도 별수 없네, 비리는 똑같이 발생하는구만”이라고 낙인찍는 계기가 되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어떻게 국회만 야단칠 수 있겠는가? “노무현 또 시작이다”는 비아냥만 들려올 뿐이다. 이런 비아냥이 사실은 정동영의 재빠른 변신을 합리화하는 밑거름이다.

 

대통령이 된 이후 노무현은 경제 분야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했다. 사람을 배치하는 문제도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지 못했다. 만일 노무현이 경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살렸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민주화 세력은 제대로 노무현을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믿기만 했습니다.” 혹은 “민주화 세력은 이제 사람이 바닥났습니다. 관료 외에는 쓸 사람이 없습니다.” 노무현의 실패는 민주화 세력의 실패임에 분명하다. 자신이 스스로 예전에 민주화 운동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어떤 누구도 노무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졸라 반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