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금융연구원장의 '착각'

파랑새호 2009. 1. 31. 10:24

혹시나 하는 마음에 먼저 몇 자 적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엠비 정권을 비호할 의도가 전혀 없다. 이 글의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엠비 정권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원하지 않는다. 나의 의도는 전혀 다른 것에 있다. 특히 한겨레나 경향신문에서 금융연구원장의 주장을 대서특필했다. 두 신문의 보도는 현 정권이 상층부 내 합의조차 달성하지 못하는 일종의 ‘패거리’문화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두 신문의 보도는 금융연구원장을 용감하게 보이게 하고, 올바른 주장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역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동걸’이라는 금융연구원장은 퇴임하면서 금융연구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특히 정부의 성장률 수치 조정 압력, 금산분리 완화 정책 압력, 국민의 의지를 결집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 부재 등에 대해 강조했다. 그러면서 금융연구원은 정부의 ‘싱크탱크’이지 ‘마우스탱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글의 전문 보기)

 

다만 이동걸은 왜 금융연구원이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금융연구원의 자율성은 그의 글로 미루어 판단할 때, 핵심적인 사안이다.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자율성 침해를 비판한 것은 두 가지를 추측하게 한다. 첫째, 금융연구원의 자율성 확보는 정부의 잘 알려진 약속이었다. 둘째, 금융연구원의 자율성 확보는 만인이 다 아는 ‘당연한 진리’이다.

 

 나는 오히려 이동걸에게 지금까지 금융연구원이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한 적이 언제인지 묻고 싶다. 덧붙여 금융연구원은 왜 정부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나는 금융연구원의 자율성 확보는 가능하지도 않고, 자율성 확보 시도가 오히려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며, 전문가 집단을 순수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대개 요즘의 경제학자들, 특히 통화주의에 입각하고 있는 학자들은 경제학이 정치로부터 중립적이어야 한다면서 마치 그들의 판단이 진리인양 주장하고 있다. 경제학이 정치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은 알프레드 마셜이후이다. 경제학자들은 ‘과학’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수식어를 붙이면서 정치와 분리된 ‘중립성’을 강조했다. 특히 경제학자 갈브레이드에 의하면 통화주의자들의 이런 속성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은 화폐정책이 정치적 ․ 사회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갈 브레이드의 주장을 음미해보자.

 

          “ 경제학을 정치와 정치적 동기에서 분리시키는 것은, 불모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또한

            경제적 권력과 경제적 동기라는 현실을 은폐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것은 경제 정책상의 오류와

            과오의 중요한 원천이기도 하다. 경제학의 역사에 관한 모든 저서는 경제학이 정치학과 재결합해

            정치경제학이라는 더 커다란 학과를 다시 형성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결론을 맺어야 한다.“

            ([경제학의 역사], 존케네스 갈브레이드 지음, 장상환옮김, 책벌레, 2002년, 366쪽)

 

이동걸은 엠비 정부가 금융연구원에 개입한 것을 비난했지만, 그 자신이 먼저 한국의 금융시장 정책에 개입한 과오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특히 이동걸은 김대중 정부 이후 ‘양지’에서 지내면서 한국금융시장이 외국 금융기관들의 텃밭으로 변하게 만든 역사적 장본인중의 하나이다. 이동걸이 금융연구원의 자율성 운운하는 것은 이동걸을 개혁세력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착각’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