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2009년 3월29일)케이비에스의 ‘박중훈쇼’에서는 ‘장기하’라는 인디밴드 가수가 나왔다. 나는 물론 장기하의 노래를 전혀 들은 적이 없다. 한겨레신문에서 장기하가 발행한 앨범에 대한 기사를 본적은 있으나, 실제 노래를 들은 것은 어제가 처음이다. 그의 노래는 상당히 독특했다. 흐물흐물거리는 느낌이랄까, 요즘 유행하는 빠른 비트풍이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트롯트와 같은 종류도 아니었다. 나야 원래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나보다 훨씬 더 문외한인 마누라가 꼭 “산울림의 김창완 느낌이 난다”는 코멘트를 하는 순간, 박중훈의 멘트에 똑같은 내용이 나오질 않는가 ! 나는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마누라를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박중훈은 장기하의 노래에 대해 “88만원 세대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박중훈의 식견에 놀랐다. 장기하는 어제 두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달이 차오른다 가자’와 ‘싸구려 커피’이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어떤 절박성을 암시한다. 더 늦기 전에 이제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싸구려 커피’는 전형적인 룸펜이나 실업자들의 모습 아니겠는가? 두 노래 모두 장기하의 독특한 노래 부르기로 인해 물렁물렁, 흐물흐물 거리면서 끈적끈적한 현실의 버거움을 전달한다. 이런 가수가 지금 있다는 사실이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장기하는 자본과의 결합을 거부했다. 박중훈의 질문은 “근사한 조건으로 돈도 많이 들여서 홍보도 해보겠다는 제안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한 답변이었다. 장기하는 답변하기를 “투자에는 반드시 원하는 것이 있다. 그들은 수익을 보장하는 음악을 바란다. 이것은 내가 음악 만들 때 전제가 아니다. 이것은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박중훈은 이런 답변을 음악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다. 박중훈의 해석은 지점을 잘못 짚었다. 장기하는 자본의 속성을 간파한 것이고, 자본을 거부한 것이다. 문화가 자본과 결합할 때는 반드시 자본을 위한 상품이 된다. 자본과의 결합은 반드시 자본에 대한 복종을 전제로 한다.
장기하는 “자신의 노래가 사회의 문제점을 반영하려 했기 보다는 자신의 개인 경험에 근거해서 만든 것이라고 밝히면서, 자신도 이 사회의 평범한 젊은이라서 아마도 사회현상을 반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노래는 극한의 미만 추구하거나 꼭 듣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조금 낯설면서도 공감이 가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내 노래는 대중음악이다.” 말의 어휘선택이나 설명이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의 경험과 세계관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표현이다. 인디밴드는 왜 ‘인디’밴드인가? 장기하는 ‘인디’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지적했다. ‘인디’는 바로 자본으로부터의 ‘인디’이다. 우리사회는 이제 ‘인디’밴드 뿐만 아니라, ‘인디’노동자나 ‘인디’정치를 지향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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