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미네르바'에게 전하는 위로

파랑새호 2009. 5. 19. 11:36

 

 

 

‘미네르바’라는 필명을 갖고 인터넷 다음의 ‘아고라’에서 우리나라 금융관련 포스팅을 해왔던 박대성씨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사회에 환멸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 서른을 갓 넘긴 박대성씨에게 닥친 엄청난 일들은 사실 개인이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따져보면 박대성씨가 아고라에 올린 글들은 금융자본의 투기적 행태가 초래한 작금의 세계위기에서 각 개인이나 기업이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박대성씨의 글들은 금융자본이 주도하고 있는 경제 행태를 주로 언급하고, 단기간의 실제 상황 등을 예측하였다. 따라서 박대성씨의 글은 금융위기의 본질이나, 향후 장기적인 운동방향에 대한 분석과는 거리가 멀다. 박대성씨가 스스로 표현하였듯이 그의 글들은 주로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나 자식을 유학 보낸 시민들을 위한”의도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증권시장에서 거래를 하는 주체들이 박대성씨의 글을 예의주시하였다.

 

증권시장의 거래 주체들은 실적을 내야하고, 늘 시장의 변화에 모든 감각과 정보를 총동원한다. 증권정보 찌라시는 시간 많은 사람이 할일 없어 발행하는 것이 아니다. 증권시장의 단기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거래차익을 본다. 시장의 장기적인 변화, 정부의 정책, 환율의 추세 등등의 정보가 이들에겐 단기적으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지금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런 정보는 가치가 없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든 박대성씨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한계, 즉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금융자본이 사실상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주체이며, 핵심 고리라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했다. 미국의 금융자본은 국제 금융거래를 할 때 사실상 환율과 이자, 주식, 보험 등을 짬뽕해 놓은 파생상품을 이용했으며, 아직도 우리나라 금융기관이나 정부는 이 점에 취약하다. 따라서 거대 금융자본이 시장을 좌우할 때 시장정보에 어둡고, 금융관련 거래기법에 취약한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희생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박대성씨는 ‘독학’으로 이런 금융시장의 본질을 인식했다. 미국의 이해관계, 한국정부의 한계, 금융위기의 폭발성 등에 대해 사실에 입각한 인식을 했던 것이다.

 

박대성씨의 놀라운 예지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과 원화가치의 폭락은 정치경제학적 분석에서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세계적 금융위기는 늘 개발도상국의 통화 폭락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페소폭락, 아르헨티나의 페소폭락, 태국 바트화의 몰락 등등 역사적 사건을 통해 이미 입증된바 있다. 리먼 브러더스는 파생상품 만들기에 ‘도사’로 알려져 있던 유명한 회사이다. 모기지 증권을 조각조각 썰어 유독성 쓰레기로 전 세계에 유통시켰다. 말이 금융회사이지, 투기꾼들의 집합소이다. 위기가 발생할 때 리먼 브러더스는 사실상 몰락의 1순위였다.

 

국제 금융자본은 왜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가? 대답은 한가지이다. 금융투기 거래가 가져올 분명한 결과 - 한쪽은 대박 나고, 다른 한쪽은 쪽박 차는 상황에서 최소한 쪽박 차는 상황을 면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투기자본은 최소한 쪽박 차는 상황을 면하려 하기 보다는 대박 나는 상황을 늘 염두에 둔다. 화폐가치는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 떨어지게 되어 있고, 떨어지는 가치를 현재의 가치로 유지보전 하는 것에 모자라, 대박 나는 상황을 염두에 둘 때, 누군가가 대박을 초래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데, 속는 것도 한 두번이지 매번 속을 수는 없다. 박대성씨는 ‘이번엔 속지말자’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했다.

 

금융자본이 스스로 초래한 금융위기는 우리에게 ‘금융’의 본질, '금융‘의 한계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금융은 기본적으로 실물에 빌붙어 기생한다. 실물을 촉진하고, 실물을 정리하고, 실물을 감시한다. 금융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금융이 그런 자신의 한계를 털어버리고 사실상 실물을 지배하고, 실물을 주도하려 할 때, 위기가 발생한다. 예전 금융의 위기는 실물이 휘청거리고, 실물이 파산 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지금은 거꾸로 금융이 실물을 파산시킨다.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실물과 금융의 긴장관계가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맑스의 유명한 공식 M-C-M'에서 M'의 실현은 중요한 두가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첫째 M'의 획득의 원천은 잉여가치에 있다. 잉여가치는 여러 부문의 자본가에게 이윤과 이자, 지대의 형태로 배당된다. 잉여가치는 어떻게 발생하는 가? 잉여노동의 착취로부터 발생한다. 현대의 잉여노동은 거의 대부분이 생산과정이나 서비스과정상에서 필요노동의 상대적 비중을 줄이는 것에서 달성한다. 끊임없는 혁신, 기술개발, 소위 6시그마, 변형근로시간 등등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잉여노동을 증대시킨다. 그리고 지속적인 하청, 계열 등의 형태로 위험작업, 단순작업을 싼값에 이전시킨다. 잉여가치의 실현을 위해 지속적인 잉여노동의 증가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사실상 두말하면 개소리다.) 문제는 잉여노동의 증대가 거의 대부분 노동강도의 강화로 직결된다는 점, 필요노동의 상대적 비중이 지속적으로 축소된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잉여노동의 증가 과정에서 노동자 집단의 반발은 필연적이다. 국제 금융자본은 신자유주의를 통해 노동자집단의 반발을 무력화 시켰다. 요컨대 잉여노동의 증가에 의한 잉여가치의 증가는 노동자집단의 반발이 가장 큰 변수이다.

 

둘째, M'의 최종 실현은 어쨌든 화폐가 수중에 들어와야 한다. 생산성향상해서 잉여가치를 증가시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중에 돈이 안 들어오는데. 수중에 화폐를 확보하는 것은 잉여가치의 증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아니 오히려 반대의 상황에 직면한다. 필요노동은 지속적으로 비중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잉여가치의 실현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하는 것이다. M'을 최종실현하게 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바로 소비자라는 이름의 노동자들이다. 금융은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소비자들에게 신용을 창출시킨다. 필요노동의 상대적 비중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용의 발전은 잉여가치의 실현을 촉진시킨다. 각종 광고, 할부, 신용카드, 대출, 심지어 주식투자까지. 잉여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자본의 노력은 눈물겹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필연적이다. 잉여노동은 필연적으로 증가하는 데 잉여가치 실현은 전적으로 우연이라는 점.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 위한 자본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100%가 될 수 없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불확실한 잉여가치를 일단 확보하기 위해 금융을 이용하지만, 실제 잉여가치가 실현된 것은 아니다. 위기는 필연이다.

 

박대성씨가 주장한 여러 내용들이 금융자본의 본질, 투기자본의 본질, 나아가 자본의 본질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어쩌면 그의 몫이 아닐 수 있다. 다만 인터넷의 익명성은 바로 인터넷의 민주주의와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결정적으로 검찰은 민주주의와 소통할 수 있는 연결지점을 정확하게 겨냥했다. 이때 박대성씨는 한국경제에 대한 정확한 예상이라는 그의 글의 내용보다는 온라인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다. 여기에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학벌, 파벌, 잡다한 이해관계가 덧붙이기를 했다. 박대성씨를 이용해 잡지를 팔아보려 했고, 경제문제는 독학한 사람이 절대 넘볼 수 없는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기득권도 출현했다.

 

 박대성씨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나에게는 비난밖에 남은 것이 없다. 우파는 나를 공격했다. 좌파는(Liberal) 한때 나를 지지했지만, 내가 좌파의 입이 될 수 없게 되자 나를 버렸다. 내가 한 행위들을 후회하고 있다. 다시는 한국에서 블로거 활동을 하지 않겠다.” 고 주장했다. 이런 말 속에서 느껴지는 그의 감성, 어려움, 씁쓸함, 적막강산에 혼자 버려진 느낌 등등이 애처롭다.

 

나는 박대성씨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혼자서 노력하여 금융시장의 문제를 공부한 그의 열정은 아직 그에게 남아있다고 믿고 싶다. 인터넷상의 소통을 원했던 노력을 포기하지 않기 바란다. 그가 원했던 ‘금융자본의 횡포에 더 이상 당하지 않기’는 사실은 개인에게는 벅찬 과제이다. 실제로 사회는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박대성씨의 다음 과제라고 본다. 나는 그를 만난적도 없고, 개인적인 정보도 전혀 없지만, 그가 추구했던 노력은 지금도 다른 제2의 박대성, 제3의 박대성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확실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시한번 온라인상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