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중근이 국제야구대회에서 유창한 영어로 항의했다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언론 기사는 봉중근이 메이저리그 주심에게 영어로 말한 항의 때문에 일본대표팀의 일번타자 이치로의 리듬을 방해했고, 결국 그날 시합에서 이긴 원인으로 까지 확대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은 대조적으로 이치로가 미국에서도 일본말만 고집하고 영어를 배우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주최국인 한국말과 자국 언어인 불어를 사용했다. 당시 대부분의 기자들이 영어사용 국가였으나 그 감독은 불어를 고집해서 기자들이 불만을 갖곤 했다. 기자들의 불만이 있다곤 해도 프랑스 대표팀 감독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적어도 국가간 대항전에서 자국의 언어를 고집하는 것은 정당하며, 사실 국제적인 관례이기도 하다.
봉중근이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를 잘하는 것과 공식적인 경기에서 영어로 항의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봉중근은 반드시 공식 통역사를 대동하여 한국어로 항의를 해야 했고, 항의한 것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들었어야 했다. WBC라는 국제경기대회에서 공식 통역사 없이 마치 영어가 공식 언어인 것처럼 보이는 행위는 심각한 문화적 침해이다.
물론 미국에서 살면서 고집스럽게 일본어만 사용하는 이치로의 행태가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주위 동료들이나 이웃들과 대화, 의견교환 같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일상생활에서조차 통역을 대동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또 다른 문제로 판단된다.
WBC 대회는 사실상 미국중심이며, 메이저리그 중심의 독선적 운영이 특징이다. 그들이 각국의 고유 언어를 배려하여 공식 통역사를 배정하는 철학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각국의 대표단들은 이점을 충분히 인식하여 자국의 언어가 훼손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감독의 기자회견, 선수들의 기자회견, 공식문서, 공식적인 행위에서 사용되는 모든 언어는 철저하게 자국 언어를 고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언론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영어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마치 대단한 일인 것처럼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번엔가는 피겨선수 김연아가 영어로 기자회견하는 것을 보고 예의 “유창한 영어실력”운운하며 긍정적으로 보도한 적도 있다. 국제적인 공식 행사에서 한국 사람은 한국어를 사용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외면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언론이다.
(다음 부터는 꼭 한국말로 항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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