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연극

영화 '똥파리'

파랑새호 2009. 5. 7. 11:22

내가 ‘똥파리’를 본 것은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이다. 늘 출입하던 곳의 옆 좁은 계단으로 올라가니 상영 장소가 나타난다. 좁은 공간이고,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생각보다 관람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사가 온통 욕이다. 우리사회의 가장 밑바닥, 룸펜프롤레타리아의 가정환경, 직업 환경, 먹고사는 방법 등이 나타난다.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저런 욕과 저런 생활을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보다는 ‘정말 리얼하다’는 느낌이 더 많다. 마누라의 평가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그 사실을 감당하기가 힘들고,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로 요약되었다. 감독과 한번도 만난적 없고, 사상을 알지도 못하지만,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맑스는 자본주의 생산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산업예비군’을 언급했다. 맑스에 의하면 산업예비군은 늘 존재한다. 즉 상대적 과잉인구는 자본주의체제가 존속하는 한 늘 우리 곁에 있다. 일자리가 남아도 3~4%의 실업은 정상실업률이며, 사실상 완전고용의 상태라고 경제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산업예비군은 ‘상대적 과잉인구’라고도 말하는 데, 그 형태상 3가지의 유형이 있다. 유동적 과잉인구, 잠재적 과잉인구, 정체적 과잉인구이다. 영화 ‘똥파리’는 이 과잉인구 중에 ‘정체적 과잉인구’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정체적 과잉인구는 상대적 과잉인구 중에서 가장 사회의 밑바닥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맑스의 표현을 인용해보자.

 

 

“상대적 과잉인구의 제3의 범주인 정체적 과잉인구는 그 취업이 매우 불규칙적인 현역 노동자집단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정체적 과잉인구는 자본에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노동력의 무진장한 저수지를 제공한다. 그들의 생활형편은 노동자계급의 정상적 평균수준 이하로 떨어지며, 바로 이 사실로 말이암아 그들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특수부문들을 위한 광범위한 토대로 된다. 그들의 특징은 최대한도의 노동시간과 최소한도의 임금이다.

…… 중략 ……

상대적 과잉인구의 최하층은 구호의 대상으로 되고 있는 극빈자의 생활을 한다. 유랑자 ․ 죄인 ․ 매춘부, 즉 간단히 말해서 룸펜프롤레타리아를 제외하면, 이 사회층은 세 개의 범주로 구성된다. 제1은 노동능력이 있는 자이다.

 …… 중략 ……

제2는 고아와 구호빈민의 아이들이다. 이들은 산업예비군의 후보인데, 예컨대 1860년과 같은 산업의대호황기에는 그들을 급속히 그리고 대량으로 현역 노동자 군에 편입된다. 제3은 타락한 사람들과 노동무능력자들이다. 이들은 특히 분업으로 인하여 직업을 바꿀 능력이 없기 때문에 몰락한 사람들, 또는 노동자들의 정상적인 수명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 끝으로 위험한 기계 ․ 광산업 ․ 화학공장 등등의 증가에 따라 그 수가 점점 증가하는 산업희생자들인 불구자 ․ 병자 ․ 과부 등등이다. 구호빈민은 현역노동자군의 폐인 수용소이며 산업예비군의 고정구성원이다. 구호빈민의 생산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생산에 포함되어 있으며, 전자의 필연성은 후자의 필연성에 포함되어 있다. 구호빈민은 상대적 과잉인구와 더불어 부의 자본주의적 생산 및 발전의 전제조건을 이룬다. 빈민구호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비생산적 비용에 속한다. 그러나 자본은 그 비용부담의 대부분을 자기 자신의 어깨로부터 노동자계급과 소부르즈와지의 어깨로 전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자본론] 제1권 하, 810쪽 ~ 811쪽, 김수행 번역, 비봉출판사)

 

 

 (나도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다...씨바)

 

 자본주의는 늘 빈민이나 가난한 사람, 가난한데 몸까지 어려운 사람 등 사회의 밑바닥 계층자체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가 주목하는 사람은 ‘가난을 극복한 사람’, ‘장애를 극복한 사람’, ‘온갖 어려움을 뚫고 성공한 사람’이다. 자본주의의 최대 복음, 모든 사람이 새겨들어야 할 자본주의의 금과옥조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이다. 온갖 상업언론, 온갖 상품광고, 온갖 캠페인은 모두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이 중요하다. 그리고 밑바닥에 침전되어 있는 룸펜프롤레타리아를 비롯한 극빈층의 다수는 스스로의 문제를 노력해서 해결하지 않는 탈락자로 남는다.

 

(보기 싦음 보지마.....씨바)

 

영화 ‘똥파리’의 내용에 그 어떤 이념이나 신조가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그저 담담하게 사회밑바닥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똥파리’의 주제를 가정폭력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파헤친 것도 아니다. 그냥 보여준다. 보여주기만 하는데도 우리는 무언가 껄끄럽고, 무언가 거북하다. 엄연히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해결할 문제도 아닌 것 같고, 정부나 기업에서 어떻게 해결할 방도도 없는 것 같고, 그저 외면하고만 싶은데, 어쨌든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엄연히 살아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영화나 문학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