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연극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

파랑새호 2009. 6. 15. 09:57

우선 ‘그레이 아나토미’는 질병에 대한 묘사가 구체적이다. 사실에 가까운 의료행위 연출도 뛰어나다. 매번 환자들이 겪는 질병에 대한 고통과 이를 치료하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이 펼쳐지면서 의료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씨나리오도 탄탄한 느낌이다. 매번 의료와 남녀간의 사랑이 동시에 펼쳐진다는 주제가 반복되지만 어쨌든 드라마적 재미는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결국 ‘그레이 아나토미’는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이다. 첫 번째, 미국의 의료보험 문제가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레이스 병원’은 진료비에 대한 걱정이 거의 없다. 미국에서 환자들이 진료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는 경우는 흔치않다. 특히 최근 들어 무보험 환자가 늘고 있고, 보험이 있더라도 대다수의 경우 그 적용범위에 한계가 있어 진료행위가 추가될 때마다 늘 보험적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환자들은 어찌된 일인지 이런 과정이 전혀 없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사실 불필요한 묘사라고 주장한다면 한발 물러설 수도 있겠으나, 이럴 경우 현실과 동떨어진 드라마로 인해 사람들이 ‘환상’을 갖게 되고, ‘환상’의 핵심은 미국의 의료제도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런 상황을 바라는 사람이나 집단은 미국에서 세 종류이다. 의사집단과 보험회사, 그리고 대형 영리병원이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런 부작용을 양산한다.

 

두 번째,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오는 사람은 의사와 환자뿐이다. 의료행위의 핵심은 의사이고, 그래서 의학드라마의 주인공이 의사라는 것에 별 문제의식은 없다.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대부분의 의학드라마도 그러했다. 다만 의사의 의료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지원행위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접수와 수납행위, 간호행위, 영상촬영, 채혈, 각종 검사행위, 환자 이송, 식사, 소독, 세탁, 각종 설비나 장비의 유지보수, 청소 등등 어떤 행위 하나가 결여될 경우 의사의 진료행위는 심각한 장애를 받게 된다. 의사가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은 사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레이 아나토미’에는 이런 진료환경조성 행위가 전혀 없다. 병원에는 오직 의사와 환자만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은 100% 의사이다. 누군가가 의사아닌 사람들의 행위는 드라마의 설정상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이러한 설정으로 인하여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지적하고 싶다. 나는 의학드라마에서 의사가 주인공이라는 당연한 도식을 이젠 조금 비껴 생각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런 설정으로부터 ‘그레이 아나토미’는 사람이 살아가는 다양하고 생생한 모습이 부족하다.

 

드라마의 한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의 모든 모습을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레이 아나토미’는 너무나 특정집단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만을 하고 싶다. 특히나 민간의료보험의 천국 미국에서 이런 내용의 의학드라마는 사람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을 갖게 한다. 어디 미국사람 뿐이겠는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첨단 의료행위가 있는 나라이지만, 가장 열악한 의료 환경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후자의 상황을 거의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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