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오직 전쟁을 부추기는 미국군부의 실체

파랑새호 2009. 8. 11. 13:54
미국 국방부는 2차대전 이후 자신들의 권력을 한번도 놓지 않았다. 대통령이 바뀌고, 국방장관이 바뀌는 것은 국방부의 권력과 사실 무관한 흐름이다. 미국 국방부는 2차대전이후에도 세계의 많은 전쟁들을 수행했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남미의 전쟁, 이라크전쟁 등등 이 모든 전쟁의 주역은 ‘펜타곤’이다. 미국 국방부를 점령한 세력, 지금은 ‘네오콘’으로 통칭되고 있지만, 군인과 무기제조회사, 학자들이 일체가 되어 정치인과 행정부를 좌지우지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는 군사정치였다.

 

 

[전쟁의 집], 제임스 캐럴 지음, 전일휘 추미란 옮김, 동녘, 2009년

 

 

지금까지 나는 제2차 세계대전을 끝장낸 결정적인 계기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였다고 생각했다. 저자에 의하면 원자폭탄은 미국 국방부 전쟁광들에 의한 대 소련 견제용이었으며, 국방부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다. 이미 독일과 일본은 당시 미국이 개발한 소이탄과 네이팜탄만으로도 충분히 공략 가능했다. 루스벨트는 ‘무조건항복’을 요구하면서 군사시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 민간인들의 대량 살상을 초래한 폭탄을 투하했다. “일본에 대한 무조건 항복 요구가 정상들의 토의의 산물이아니었다는 점을 다시한번 상기하자. 무조건 항복 요구는 처칠이 사전에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루스벨트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서 강요한 것이었다.”(95쪽)

 

하지만 미국에서는 “일본을 상대로 원자폭탄을 사용한 것이 적절했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소련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이 적절한지를, 혹은 우리가 핵무기 사용위협을 실행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64족) “원자폭탄 사용의 가장 큰 목적이 일본과의 전쟁종식이 아니라 소련과의 예상되는 갈등 양상을 통제하는 것”이며, “(미국이) 주로 제압하려고 했던 대상이 히로히토 일왕이 아니라 소련의 수상 스탈린이었다면 어떨까?” 미국 정부의 전략폭격연구소의 보고서는 “분명 1945년 12월31일 이전에, 그리고 1945년 11월1일 이전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라도, 러시아가 참전하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일본 본토 침공이 계획되거나 기도되지 않았더라도 일본은 항복했을 것이다.”고(108쪽)결론 내렸다.

 

2차대전 기간중 독일에 의해 자행된 소위 ‘홀로코스트’는 유태인 난민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 것을 말한다. 전쟁범죄이다. 저자는 이 홀로코스트가 독일군에 의해서만 자행된 것이 아니라 바로 미군에 의한 무차별 폭탄투하가 홀로코스트였음을 강조한다. 도쿄에 대한 소이탄 폭격으로 사람뿐만 아니라 “쥐와 생쥐, 이와 벼룩도 사라져 버렸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국방부의 논리는 ‘공산주의’, 소련에 대한 위험을 강조했다. 종전후 20년동안 펜타곤은 거의 1,000억 달러를 썼다. 같은 기간동안 미국정부가 보건, 교육, 복지에 지출한 금액의 100배이다. 1965년 무렵에 거의 600만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펜타곤의 관리를 받는 기업에 고용되어 일했다. 미국의 일류 대학들은 군부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았고, 그 덕분에 재정을 살지우면서 연구 프로젝트들에 의존하게 되었다. 실제로 미국의 부를 제도화한 전후 호경기는 상당부분 펜타곤 덕분이었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군산학정 복합체가 사회적 핵분열에 성공했고, 펜타곤은 그 원자로였다.”(60쪽)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NSC-68'이라는 문건과 아이젠하워의 ‘롤백정책’이다. “크렘린의 세계 지배 야욕을 견제하고 격퇴시키는 것”을 위해 “국방 예산의 전폭적인 증액이 필수적이었다. 소련정부의 계획을 좌절시키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노골적이든 은밀하든, 폭력적이든 비폭력적이든 모든 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트루먼은 이 정책에 대해 반대했지만, 때마침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딘 애치슨은 “한국이 우리를 구했다.”고 표현했다. 그 결과 핵무기 보유량은 1950년대초 300개에 불과했지만, 1960년에는 1만8,000개를 훨씬 넘었다.

 

핵 공격에 대한 미 국방부의 열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전쟁 때도 그랬고, 베트남전쟁 때도 그랬다. 닉슨은 특히 그랬다. 닉슨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참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닉슨은 단순히 별난 사람이 아니라 인격 장애가 있었다. 우울한 자기 동정이라든가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무조건 경멸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공대된 다양한 녹취록 속의 대화나 일방적인 호통은 닉슨의 온갖 천박함과 속물성, 편견, 인색함, 그리고 정기적인 술주정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씩 공개된 백악관의 비밀 기록들에 따르면 닉슨이 핵무기의 실제적인 사용권한을 갖고서 정신 빠진 사람처럼 농담을 해 댔다는 사실이다. …… 중략 …… 닉슨은 미국의 전략핵무기 부대를 포함하여ㅕ 자신의 군부대에 핵전쟁 바로 아래 수준의 전쟁 경보를 반복적으로 내렸다. …… 중략 …… 닉슨의 보좌관들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닉슨은 광기 때문에 더 자주 그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중략 …… “닉슨은 나는 차라리 핵무기를 이용하겠네! 핵무기 말이야, 자네 그게 신경 쓰이나? 나원참 좀 대범해지라고 헨리”라고 했다.”(502쪽 ~ 504쪽)

 

사정이 이렇다보니 전략공군사령부 사령관은 닉슨의 핵무기 경보체제를 따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이 독일에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폭탄을 베트남의 논과 정글에, 삼각주에, 가난한 촌락 등에 투하했다. 말하자면 남베트남을 구하겠다는 명분으로 남베트남을 강토를 완전히 파괴시켜 버렸다. 단지 펜타곤의 논리를 구현하기 위한 전쟁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소련이 선제공격을 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늘 소련의 선제공격위험이 명분으로 제시되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무기감축을 주장할 때도 미국은 전략방위구상(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들고 나왔다. 미사일을 방어하겠다는 구상으로서 ‘스타워즈’로 알려진 이 제안은 기만 그 자체이다. 핵전쟁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미국 상공에 관통할 수 없는 핵우산을 만들어 마술처럼 간단하게 전멸의 위협을 모두 없애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레이건은 SDI가 “핵무기를 무능력하게 만들고 마침내 제거하는 수단”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ABM조약’위반이다. 또 다른 전쟁준비였다.

 

저자에 의하면 미국 군부는 소련의 몰락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은 소련의 의도와 능력에 관한 한 거의 모든 평가에서 잘못된 판단을 했으며, 철의 장막 저편에 살던 사람들을 일관되게 그리고 철저히 오해했었다.”(592쪽)

 

미국 군부는 갑작스러운 소련의 멸망으로 냉전의 진정한 적이 사라지자 당황했다. 냉전없는 냉전체제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미국사람들은 당연히 냉전 종식으로 국방비에서 수십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으니 평화배당금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바로 그 배당금으로 레이건이 망쳐놓은 미국 경제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612쪽) 미국 군부에게는 이런 국민들의 인식을 뒤바꿀 새로운 전쟁이 필요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미국의 군부를 살렸듯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정확한 타이밍에 망각의 위기에 처한 군사, 방어 생산라인을 구했다.”(615쪽) 1990년 9월11일 부시는 의회에서 미국이 지배하는 단일지배체제를 설파했고, 펜타곤을 구했다. “쿠웨이트 주권을 위한 전쟁은 다시 말하면 아랍의 주권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었다.”

 

클린턴은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클린턴은 그가 자신의 공약사항이었던 ‘전국민의료보험’을 실패했듯이, 군사문제에 대해서도 실패로 일관한다. 군대의 동성애자 문제로 보수집단에게 반격의 빌미를 주었고, “군사문제에 있어 권위를 발휘해야 할 때도 무기력한 대통령이었다.”(643쪽) 아니 오히려 레이건의 SDI를 국가미사일방어체계라는 (NMD, National missile defense)것으로 재등장하게 했다. “클린턴은 스스로 믿지도 않는 무기 체계 개발을 위한 자금을 제공했다.”(643쪽) 펜타곤은 클린턴으로부터 확실한 우위를 갖게 되자, 핵무기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핵무기를 증가철학을 강요했다. 핵무기 확장 계획은 명백히 ‘핵확산금지조약’위반이었다. “비핵보유국들은 미국이 핵보유국 내 핵무기 폐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핵확산금지조약 제4조를 어겼음을 지적했다. 사실이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미국 정부와 클린턴은 그들의 반대를 그냥 무시했다.”(666쪽) 이로인하여 “미국의 입장을 알아차린 수많은 작은 나라들이 그들만의 핵무기보유 계획에 착수했다. 클린턴은 새로운 핵확산의 명백한 후원자였고, 그의 후임자도 핵확산을 계속 후원하게 된다.”(667쪽)

 

부시의 집권과 특히 울포위츠의 등장은 이제 소련을 대신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야 했다. 이를 위해 펜타곤은 ‘국방계획지침서’를 작성한다. 첫째목표는 새로운 적의 도래를 방지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미국의 권력만 존재할 것이었다. 미국은 군사력에서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압도적인 우위를 유지하는 세계의 감시자가 될 것이었다.”(682쪽) 그리고 2001년 9월11일 테러가 발생했다. 1941년 9월11일 펜타곤 건물이 착공되고 정확히 60년 후에 펜타곤도 테러를 당했다. “9월11일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가 최초로 시험대에 오른 날이었다. ‘신속한 경보’를 위해 쏟아부은 수십억 달러가 무색할 정도로 무능력을 처참하게 드러냈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던 항공 방위에 대한 미국의 오래된 망상적 믿음의 어리석음과 그 항공 방위에 미국의 미래를 걸었던 우둔함을 한꺼번에 폭로하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9월11일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는 실패했다.”(684쪽)그날 부시는 하루종일 피해다니면서 부통령 체니에게 미국의 호전적 대응을 결정하게 하고 향후 5년간의 계획을 짜도록 방치했다. “체니는 네오콘이 그들만의 전쟁 충동을 자유롭게 발산하게 했고, 베트남전 이후 30년동안이나 준비해 왔던 미국의 호전성을 드러냈다.”

 

책을 읽다보면 미국 군부의 호전성, 군국주의, 세계지배를 위한 욕심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한다. 미국은 군부로부터 자유로울수 없었고, 지금도 그렇다. 정치인, 기업인, 학자들이 모두 군부와 결탁하고 있다.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미국의 군부와 군사대국화를 저자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묘사한다. 떨어지는 엄청난 물줄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들이 필요하다. “역사는 현재의 수로가 상당 부분 인간의 선택에 의해 형성되었으므로 새로운 선택을 통해서 그 물결을 다른 방향으로 바꿀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일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생길 것이다.”(7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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