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일본 사람이 선물해서 읽어 본 책이다. 저자는 ‘후와 테츠죠’(不破哲三)라는 사람이다. 책에 있는 저자의 약력을 보니 일본 공산당의 핵심인물이다. 1930년에 토쿄에서 출생하고, 토쿄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철강노조에서 일하다가, 1964년부터 일본공산당중앙위원회에서 활동했고, 1970년 이후에는 서기국장, 위원장, 의장을 역임했다. 2006년 일본공산당을 퇴임한 이후에는 당 부설 사회과학연구소소장을 했다. 1969년부터 2003년까지 중의원 의원을 11번이나 지냈다. 상당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나는 물론 일본공산당에 대해 잘 모른다.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과의 식민지 인연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라면서 일본사람에 대한 막연한 적대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도 맑스주의자가 있다는 것이 생소하기 조차 하다. 다만 이런 저런 문헌을 통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일본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고, 민주주의 혁명을 내걸고 있다. 소련공산당을 패권주의로 규정하고, 소련이 망했을 때도 “환영”했다. 맑스-레닌주의에 정통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일본공산당의 태도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도 있다. 나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공산당은 그들 나름의 경험이 있고, 특징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된다면 일본공산당 역사를 공부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일반인들에게 맑스의 사상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금석이라는 관점에 기초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다 읽고 난 후에 드는 느낌은 반 스탈린주의의 의미, 프롤레타리아혁명 보다는 ‘민주주의혁명’에 대한 강조 등 일본공산당의 노선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일본공산당의 노선을 한마디로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본문 중에서 자본주의 사회악의 근원으로 ‘이윤제일주의’를 거론하면서, 현재의 자본주의를 ‘규칙이 없는 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규칙이 없는 자본주의’는 ‘사회에 의한 강제’를 통해 ‘규칙이 있는 경제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선거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혁명이라는 표현으로 선거참여를 중요하게 판단한다. 무장투쟁은 일본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이하에서는 책의 내용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유물론의 사상가 마르크스>, <제2장
자본주의 병리학자 마르크스>, <제3장 미래사회의 개척자 마르크스> 등이다. 먼저 제1장에서 저자는 변증법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하며(소위 변증법적 유물론) 역사적 유물론에 대해서도 주요 내용을 언급한다. 맑스를 소개하면서 유물론과 변증법을 우선 제기하고 설명했다는 측면에서 저자의 방식은 옳다. 저자는 주장하기를 지금까지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왔는데(총 13회), 그중 압도적인 분야가 자연과학(7회)이고, 자연과학 중에서도 물리학분야라고(6회) 소개한다. 그러면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유물론과 변증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연과학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때 특히 엥겔스의 [자연변증법],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등에 의하여 올바른 관점을 취할 때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의 변증법과 관련된 이야기도 인용하고 있다. 또 맑스 자신이 메이지 시대에 일본대사를 했던 영국인의 여행기를 보고 일본사회에 대한 언급도 많이 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일본사회의 관찰자로 맑스를 소개하기도 한다.
변증법에서 저자의 주장 중 특기할 내용은 맑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주장했던,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라는 문장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맑스가 이런 주장을 할 때는 아직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연구가 심도 있게 진행된 상태가 아니어서, 소위 원시공산제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맑스가 원시공산제를 본격적으로 인식한 것은 [공산당 선언]이 있고 난 5년 후, 1853년 4월부터였다는 것이다. 이때 맑스는 인도 등의 동양에서 원시시대의 공동체가 존재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이를 새로운 역사인식으로 1859년의 [경제학비판]에 서술했다고 소개한다. 저자에 의하면 맑스는 죽을 때까지 고대사회를 연구했고, 여러 노트를 남겼으며, 이것이 나중에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이라는 저서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말해 원시공산제는 어디까지나 공산제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간의 “계급투쟁”은 없었다는 점이고, 이로 인해 위의 [공산당 선언]문장은 수정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한다. 따라서 저자는 1898년판 [공산당선언] 서문에서 엥겔스가 표현한 말, “인류의 모든 역사는(토지를 공유하고 있었던 원시씨족사회의 해체 이후)”라는 내용을 소개한다. 계급투쟁은 원시사회 이후 ‘착취사회’의 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류의 역사가 계급투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맑스의 원시공산제연구를 강조하는 것은, 특히 역사연구의 구체성과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맑스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역사적 유물론을 풍부한 이론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구체화된 사실 연구가 없이 단지 맑스의 결론만을 주장하는 경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맑스 이론이 확산될수록 이론의 분야에서든 운동의 분야에서든 맑스의 입장과 무관한 사람들이 자칭 ‘맑스주의자’라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경향에 대해 언급하면서, 맑스가 이야기했던 “이 사람들이 맑스주의자라면,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인용한다.( 물론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계급이 전면에 부각된 사회라는 점, 계급투쟁이 사회발전의 동력임을 강조하고 있다.)
2장에서 저자는 맑스의 [자본론]에서 나타난 새로운 개념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노동력의 판매’, ‘잉여가치’, ‘가변자본’, ‘불변자본’, ‘상대적 잉여가치’, ‘절대적 잉여가치’, ‘필요노동시간’의 개념 등이 제시된다.(88쪽~89쪽) 이후 저자는 [자본론]을 통해 현대 일본 자본주의에서 나타난 착취현상을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노동시간, 노동강도, 고용문제라는 3가지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현대 일본에서 문제되는 노동시간의 사례로 제시된 것은 소위 ‘서비스잔업’에 대한 비판이다. 아마도 우리말로 옮기면 <무급잔업>이 금방 떠오른다. 저자는 일본 제일생명연구소가 2003년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현실적으로 시간외노동을 시키면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서비스잔업’은 매년 증가하여 2002년의 경우 노동자 1인당 평균 년간 200시간을 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노동강도에 대해서도 조금 오래된 사건이지만, ‘파나소닉’ 공장 여성노동자의 근골격계 직업병 사례와 과로사를 제시한다. 고용에 대해선 최근 사회문제로 되고 있는 비정규직 사례중에서 파견노동자를 언급한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상대적과잉인구의 개념도 설명한다.
저자는 ‘[자본론]에 나타난 노동자 상’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맑스가 노동자를 자본가로부터 착취당하는 피동적인 계급으로만 묘사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사회를 변혁하고 미래사회를 담당할 계급으로서 성장 발전하는 모습이 [자본론]에 나타난 노동자상의 큰 특징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맑스가 [자본론]에서 주목한 노동자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노동자는 집단노동을 통해 발전해 간다는 점에 있다. 맑스는 이것을 <노동의 결합>이나 <결합한 노동자들>로 언급한다. 물론 노동자의 결합은 노동자 스스로 원하여 달성되기 보다는 자본가에 의해서, 자본의 지휘로 인해 발생하지만, 미래사회의 <결합한 생산자들>의 맹아가 나타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번째는 이윤제일주의와 투쟁하는 노동자 상이다. 맑스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영국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상세하게 연구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하루 15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노동이 확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자의 계급적 저항이 장기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침내 1850년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최초의 입법이라 할 수 있는 <10시간 노동법>이 제정되었다. 맑스는 이것을 <반세기에 걸친 내란>이라고 언급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 성장함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조직과 투쟁도 증가하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한마디로 계급투쟁이 격화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내용을 근거로, 노동자계급의 공장입법 투쟁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윤제일주의’라는 횡포를 사회적으로 규제하는, 사회적 규칙 실현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 내용이 2장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자본론의 문장을 인용한다.
“대홍수여 우리가 죽은 뒤에나 오라! 이것은 모든 자본가들과 모든 자본주의국가들의 표어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사회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대해, 어떠한 고려도 하지 않는다. 육체적, 정신적 쇠약, 조기사망, 과도노동의 고문으로 인한 고통에 대해 자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들의 쾌락이(이윤) 증가하는 데, 우리가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가?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것(노동시간의 무제한연장의 요망)도 마찬가지로 개별 자본가의 선의 혹은 악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자본가에 대한 외적인 강제법칙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제1부제3편제8장)
※ 참고 ; 위 문장은 한국에서 출간된 자본론(김수행역)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이것이 모든 자본가들과 모든 자본주의국들의 표어다. 그러므로 자본은 사회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 한, 노동자의 건강과 수명에 대해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육체적 및 정신적 퇴화, 조기사망, 과도노동의 고통 등에 과한 불평에 대해 자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쾌락(이윤)을 증가시켜 주는데 어째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가라고. 사태를 전체적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은 개별 자본가의 선의나 악의 때문은 아니다. 자유경쟁 하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들은 개별자본가에 대해 외부적인 강제법칙으로서 작용한다.”(자본론 I권 상 343쪽)
뒤이어 다음의 문장도 인용한다.
“모질게 괴롭히는 뱀으로부터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은 결집하여야 하며, 계급으로서, 하나의 국법, 하나의 강력한 사회적 바리케이트를 쟁취하여야만 한다.”(자본론 제1부제3편제8장)
※ 참고 ; 위 문장은 한국에서 출간된 자본론(김수행역)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을 괴롭히는 뱀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단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이 자본과의 자발적인 계약에 의해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가족들을 죽음과 노예상태로 팔아넘기는 것을 방지해 줄 하나의 법률(즉 아주 강력한 사회적 장벽)을 제정하도록 하나의 계급으로서 강요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본론 I권 상 384쪽)
저자는 위의 두 문장을 인용하면서, 먼저 첫번째 [자본론] 인용문에서는 ‘강제’라는 말이 2번 나타나는 점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첫째, 문장의 끝에 나타난 [외적인 강제법칙]이라는 표현에 대해, “자본이 잉여가치에 대한 욕망을 지속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장시간노동을 강요하는 등, 가혹한 착취 행위가 자본가 개인의 선의나 악의를 넘어선 자본주의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이해하고 있다”는(102쪽) 점을 드러낸다. 보다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경쟁 속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내몰린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강제’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런데 자유경쟁이 초래한 [외적인 강제법칙]에 대항하는 유효한 대책은 무엇인가? 맑스는 노동일을 둘러싼 투쟁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사회에 의한 강제]이다. 영국 노동자가 쟁취해야 하는 [사회적 바리케이트]는 국가의 법률로 [강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자본가에 대해 국법으로 10시간 노동일을 제정하고, 이를 감독하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이윤제일주의를 추진력으로 하는 자본의 횡포에 대해 규제라는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이다. 공장입법의 성공은 [사회에 의한 강제]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훌륭하게 실증했던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적 착취로부터 노동자를 해방하려면 자본주의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사회변혁이 필요하다고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또한 단호하게 일관성을 갖고 주장한 혁명가이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다가올 혁명의 날까지 노동자는 가혹한 착취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이 있어야 한다”는 대기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맑스는 노동조합 조직과 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한 최초의 사회주의자였으며, 이윤제일주의라는 횡포로부터 노동자나 국민의 이익을 사회적인 강제, 즉 [사회적 규칙]만들기라는 중요한 의미를 이론화한 최초의 사회주의자였다.”(102쪽~103쪽)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규칙이 있는 경제사회]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즉 저자에 의하면 [규칙이 있는 경제사회]는 자본의 이윤제일주의를 사회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며, 노동자나 국민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저자는 “[사회적 규칙]이 세계의 발전방향이 되었다” 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주장한다.( [규칙이 있는 경제사회]는 [ルールある経済社会]를 번역한 것인데, ‘rule’이라는 말이 대단히 함축적이어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생소한 느낌이다. 그냥 [룰이 있는 경제사회]로 번역해도 될 것 같다.)
“공장입법으로 시작한 [사회적 규칙]만들기 투쟁은 그후 세계에서 크게 발전했다. 규제의 대상도 노동시간뿐만이 아니라, 노동생활과 사회생활의 다양한 분야로 확산 되었다. [사회에 의한 강제]방식도 국법에 의한 강제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조약, 전국적인 단체협약, 행정지도나 여론감시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103쪽)
저자가 주장하는 [사회적 규칙] 혹은 [규칙이 있는 경제사회]라는 것은 한마디로, 자본의 이윤제일주의를 강력하게 제어하는 잡다한 여러 제도를 나타내는 것이며, 자본으로 하여금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책의 끝부분인 3장으로 넘어간다. 3장에서 저자는 주로 맑스가 표현했던 미래사회의 모습과 달성방법, 소위 “과도기”란 무엇인지 맑스의 저서에 근거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최후로 소련공산당의 문제, 소련의 붕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서술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맑스가 사회주의의 기본 원칙에 대해선 일관되게 표현하지만 사회주의를 달성하는 방법에 대해선 잘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맑스는 미래사회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운동을 전개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맑스는 새로운 사회가 탄생하는 과정이 대단히 복잡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사회변혁의 큰 전개방향은 설정하면서도, 새로운 사회가 실현되는 구체적인 형태나 방법에 대해선 미리 결정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변혁이 진행되는 구체적인 시기에 변혁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탐구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언제나 적용할 수 있는 설계도를 미리 만들어 놓고, 이 도면대로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라고 할 수 있는 단순한 작업은 아닌 것이다.”(169쪽)
또한 맑스가 사망하기 전에 유럽의 어떤 사회주의자로부터 “가까운 시기에국제회의를 개최하고자 합니다. 회의에서는 사회주의자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정치와 경제분야에서 어떠한 입법조치를 시행해야 하는 가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맑스의 답변을 구한 적이 있다. 맑스는 이 요구에 대하여 이런 문제의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고 한다.
“장래 일정 시점에 사정이 어떤 것인가에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언제 어디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정답을 말하는 것은 ‘풀 수 없는 방정식을 풀어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미래의 행동강령에 대해, 교조적인 자세로, 필연적으로 공상이 될 수 밖에 없는 내용을 미리 결정하는 것은 현재의 투쟁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170쪽,
저자는 과도기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저자는 [고타강령비판], [프랑스내전], [자본론] 등에서 맑스가 언급한 과도기의 설명을 소개한다. 핵심적인 내용을 간추린다면 다음과 같다. 즉 처음에 맑스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과도기가 자본주의 성립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짧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파리꼼뮨’ 경험 이후에는 과도기가 봉건제사회에서 자본주의사회의 성립기에 필적할 만금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을 바꿨다는 점이다. 근거로 제시된 내용은 구지배계급의 반란도 있겠지만, 보다 중요한 점은 자본주의적 생산체제를 공동체적 생산체제로 바꿔놓은 경제적 변혁이라는 과제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맑스에 의하면, 생산체제를 노예제와 같은 속박에서 자유로운 노동자의 결합에 의한 생산체제로 재조직하는 일이야 말로 과도기 경제변혁의 핵심이며, 구체제에서 남아있던 오래된 기득권이나 각종 계급적 이기심의 저항과 맞서야 하기 때문에 “몇번이고 지연될 수 있고, 저지당할 것이다.”고 예상했다. 과도기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서, 어려움이 많지만 미래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인 것이다.
저자는 과도기를 설명한 후에는 맑스를 “폭력혁명의 신봉자”로 이해하는 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공산당선언] 끝부분에서 맑스가 표현한 문장, 즉, “공산주의자는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질서를 무력으로 전복할 때만,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는 표현을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산당선언]이 작성된 시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1848년 1월이었는데, 유럽의 주요국 어디에서도 국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들어서지 않았으며, 노동자가 선거권을 갖고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산당선언]발표 직후, 2월~3월에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서 민중들이 봉기했던 1848년 소위 2월 혁명이 시작했으며, 2월 혁명은 어느 국가에서도 구체제를 무력 전복한다는 형태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산당선언]에서 밝힌 혁명에 대한 맑스의 관점은 1848년 2월혁명 이전이라는 시기를 고려하지 않는 한, 일면적인 평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저자는 맑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이전에 유럽의 신문이나 잡지에 혹은 내부문서로 다음과 같은 혁명론을 주장했다고 밝힌다.
“ㄱ. 공산주의자는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든 노동자가 의회의 선거권을 갖는 민주주의 국가체제 실현을 당면 정치목표로 한다.
ㄴ. 민주주의 국가체제가 실현되었을 때 노동자계급은 영국의 경우에는 노동자 계급만으로, 프랑스나 독일 등에서는 소농민이나 소시민 등 다른 계급과 연대하여 의회의 다수를 장악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정권을 구성한다.”(176쪽)
저자는 이런 내용을 현대에 적용하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기 위한 혁명”(177쪽)노선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19세기 혁명가 중에서 특히 보통선거권이 갖는 혁명적 의의를 운동의 전면에 내걸었던 선각자야말로 맑스와 엥겔스였다.”고(177쪽) 주장한다. 나아가 맑스와 엥겔스는 “(ㄱ) 의회가 국민주권의 기관으로서 국정을 움직이는 권한을 갖고 있는 나라(영국, 미국 등)와 (ㄴ) 의회도 보통선거권도 있지만, 나라의 정치체제는 전제 군주제로 의회가 무력한 상태에 있는 나라(독일 등)으로 구별하고, (ㄱ)의 나라에 대해선 “선거의 다수를 획득하기 위한 합법적, 평화적인 수단으로 노동자계급이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178쪽)이 있다는 점을 명쾌하게 주장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맑스의 근거를 제시한 이후에 최근 10년간 라틴아메리카에서 진행된 정치변혁을 소개한다. 즉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자주독립을 지향하는 좌파정권의 수립으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뒤흔들고 있다. 이런 과정은 모두 “선거를 통한 다수획득의 혁명”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저자가 구구절절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일본공산당 의회중심노선의 정당화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소련은 어떤 국가였던가?”라는 제목으로 소련에 대해 특히 스탈린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저자는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 “패권주의라는 역사적 거악의 붕괴로서 환영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고 소개한다. 또한 3년 후인 1994년 일본공산당 대회에서 “소련사회는 패권주의와 전제주의가 특징으로, 사회주의와는 무관한 인민억압의 사회였다”고 평가한 내용을 소개한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저자가 설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저자는 소련혁명 이후 레닌이 지도한 초기시기와 스탈린이 지도한 시기를 확실하게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닌은 초기 영국이나 일본 등에 의한 내전시기에는 [전시공산주의]라는 잘못된 경험도 있지만, 전쟁종결과 함께 “대내적으로는 시장경제를 통해 차차 사회주의로 진행하는 신경제정책=네프 노선과, 대외적으로는 자본주의국가와 평화공존하고 주변의 여러 민족의 독립을 존중하는 외교방침을 채택하여, 이것을 기본노선으로 확립하였다.”는(198쪽)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은 1920년대 말부터 3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기본방침을 변경, 소련사회에서 대전환을 발생하게 했다는 것이다. 주요내용으로는 ㄱ) “위로부터의 전면적인 농업집단화”를 통해 부농이라고 낙인 찍힌 수백만명을 시베리아 강제수용소로 추방하였으며, 전국적으로 농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초래한 점, ㄴ) “독 • 소 불가침조약” 체결이라는 히틀러와의 협정을 통해, 폴란드 동부와 발트해 3국의 합병을 강행하여, 레닌의 노선을 포기하고 자본주의 대국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침략과 팽창정책을 채택했다는 점, ㄷ) 1934년 12월 소련공산당의 최고위급 간부인 킬로프가 레닌그라드에서 암살당하면서, 스탈린 노선을 반대하는 당간부에 대한 탄압을 확대한 점. 특히 당, 정부, 군의 중앙이나 지방간부, 활동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대량 테러가 자행된 점 등이다. 이후 스탈린 일인지배체제가 확립되면서, 소련사회는 집단토론도 없고, 독재사회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소련의 문제는 심각했다고 주장한다. 소련은 각국 공산당과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라는 방침을 표면상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많은 국가의 당을 사실상 자신들의 지휘하에 두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그동안 공공연했지만, 비밀로 진행되다가, 소련 멸망 이후 소련공산당의 비밀자료가 공개되면서 실태가 드러나게 되었다. 일본 공산당도 이전부터 소련공산당에 동조한 일부 그룹을 통해 소련의 간섭을 심하게 받은 바 있으며, 일본공산당의 완강한 저항으로 1979년 소련측이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1979년 아프카니스탄 침략전쟁은 소련의 패권주의가 세계평화를 위한 과정에 역사적 거악이라는 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책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정리하다보니 상당한 양이 되어버렸지만, ‘공부’하는 마음으로 적었다. 어떤 특정이론이나 지침을 아무것에나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은 실상 여러 사람이 강조해온 내용이다. 각국의 특수성에 맞는 방법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 정당하게 평가 받는 사회를 지향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많은 토론과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신자유주의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노동자계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현재의 조건을 어떻게 개선하고, 어떤 방법을 통해 미래의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선 많은 이론적 연구와 토론이 아직 모자란다. 실상 모든 이론의 문제는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생생한 느낌으로, 살아있는 풍부한 사례를 동원한 방법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방법을 찾는 이론의 심화, 확대는 특히 일하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고, 토론하는 등 자발적인 분발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어떤 나라의 방법론을 평가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구체적으로 살아가면서 느껴야 하고, 활동을 해봐야 하는 데 실상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도(특히나 우리의 경우에는)아직 잘 모른다. 이런 면에서 다른 나라의 활동가들이 저술한 방법론에 대해선 일단은 존중하면서 신중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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