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연극

영화 '김씨표류기'

파랑새호 2009. 12. 16. 09:44

한 사람은 사채업자에게 빚을 지고 자살을 시도하고, 한 사람은 히키코모리로 지낸다. 참으로 황당한 설정, 물론 두 사람 다 현실에 있는 사람이며, 자본주의 적응에 실패한 사람이다. 그들은 둘 다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과 단절하지만, 끊임없이 세상과의 소통을 원한다. 사람을 외면한 그들이지만 사람을 갈구한다.

 

사람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작한다. 일촌. 네트웍상에서 맺는 관계는 영화에서 일촌으로 나타난다. 일촌은 바로 부모와 나를 지칭한다. 부부를 제외하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우리는 모두 일촌을 만들고 싶다. 나의 허물을 그냥 덮어주고, 다만 사람 사는 정을 느끼고 살 수 있는 관계이면 좋겠다. 자본주의가 발산하는 모든 사치, 모든 화려함, 모든 뛰어남, 모든 천재들, 모든 승리들을 뒤로하고 돈 관리에 실패해도 살수 있고, 못생겨도 봐주고, 세상 밖으로 튕겨나가지 않는 조건이면 좋겠다.

 

왜 나는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자본주의형 자기관리에 실패하는 가? 왜 나는 자본주의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가? 왜 나는 혼자인가?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나에게 강요된 것이다. 하우 아 유라는 질문에 히키코모리는 파인 댕큐라고 답한다. 세상과 단절하고 있지만 파인 댕큐.

 

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사람은 살아왔다. 사람이 우선이다. 세상과 단절된 나를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더군다나 좋아할 수 있다는 감정. 이 모든 것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웅변한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선 사람을 보듬고 좋아해야 한다.

 

어쨌든 히키코모리가 햇살이 밝게 빛나는 눈부신 세상으로 나온다. 이제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 후 아 유라는 질문에 조심스럽지만, 또렷하게 자신의 이름을 뱉는다. 아이 엠 정연. 한국에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 좋다. 아 진짜 눈물이 핑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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