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의 정치학], 조기숙지음, 위즈덤하우스, 2017년 초판
조기숙은 문재인이 보수언론만이 아니라, 소위 진보언론(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소위 ‘한경오’)으로부터도 왕따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문재인에게만 나타나는 왕따현상을 보면서 저자는 “왜 유독 문재인에게만 가혹한 걸까? 또 그렇게 두드려 맞는데도 왜 그의 지지도는 계속 올라가는 걸까?”의문을 갖고 이 두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조기숙의 문제의식은 책을 읽다보면 진정성이 느껴진다. 비록 조기숙이 규정한 ‘신좌파’와 ‘구좌파’의 구분이 그리 썩 객관적이진 않더라 도, 저자 스스로 “진보의 연대와 협력을 위한 다음 책을 기다려주면 좋겠다.”고 고백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 하나만으로 모든 내용을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옹호하고 주장하는 몇가지 사실에 불편을 느낀다. 우선 저자가 주장하듯 ‘한경오’로부터 문재인이 왕따를 당하긴 했는지 모르겠으나, 되돌아보면 나 스스로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로 느끼지 못했다. 사실 진보는 원래 일정한 결벽증이 있다. 나는 이러한 결벽증은 문재인에게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심각한 왕따현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더군다나 오늘의 문재인 대통령을 있게 한 박그네의 탄핵에 한경오의 역할이 없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언론으로 국한해서 평가하면 제이티비씨가 결정적이었지만, 한겨레 또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 대해 결국 실패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노무현 정권 말기에 노무현의 지지도는 여전히 30%였으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한자리수 지지율이라는 것은 여론조작에 불과했다는 주장이 이를 입증하는 주요한 근거이다. 내가 저자의 판단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은 이것이 가장 크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기간 중에 지지율은 변동은 있었으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였으며, 오히려 구좌파라 할 수 있는 ‘한경오’나 운동권에서만 노무현 정권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이 정치적 영역에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영역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 자체였다고 판단한다. 첫째, 노무현 정권기간 중에 소득격차가 역대 최대치로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전체 임금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이 차지했던 비중은 54.2%로서 이 또한 사상 최고의 수치였다. (필자의 블로그 참조 http://blog.daum.net/chanhopark/13116532)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은 모범적인 신자유주의 그 자체이다. 이런 비판을 왕따라고 하기는 어렵다. 둘째, 나는 저자가 노무현 스스로 제시한 공약이 얼마나 이행되었는지의 여부를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경제문제와 관련한 공약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묻고 싶다. 노무현은 7% 성장률에 70% 중산층 시대, 유아보육비 지원 등등에 대해 의미있는 실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탄핵역풍에 의한 열린우리당 과반당선으로 국민들이 전폭적인 지원을 했으나, 결국 국민들은 경제문제에 대해 뼈저린 상실감을 맛보았을 뿐이다. 나는 이명박이 그렇게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되고, 투표율이 낮았던 원인에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 실패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셋째, 저자는 한미FTA에 대해 저자가 규정한 소위 ‘구좌파’들이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구좌파’와 ‘신좌파’의 결정적인 차이점으로 개방정책을 채택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을 제시한다. 저자의 이야기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당시 구좌파가 한미 FTA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를 한 것이 아니다. 또한 한미 FTA에 대해 구좌파만 반대한 것도 아니다. 노무현 지지자들의 상당수도 반대했다. 예를들어 미국의 쇠고기 수입문제는 지금도 당시 제기했던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으며, 온존되고 있다고 본다. 현재의 세계경제 여건상 폐쇄적인 경제 정책을 채택하는 경우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지만, 개방이라는 것과 퍼주는 것은 다른 것이다. 특히나 농촌, 농업과 관련해서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보호정책을 채택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통과시킬 때 이런 점들에 대해 얼마나 의견수렴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반대로 한미FTA체결을 주장했던 보수 언론과 비교한다면 노무현 정부와 보수언론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저자의 말대로 ‘좌파’라는 표현이나 ‘진보’라는 표현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 한경오의 일부 기자들에게 문제가 없다고는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왕따’로 규정할 만큼 심각했는지도 의문이다. 나 스스로는 노무현 정권의 경험이 양날의 칼이라고 본다. 비록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이명박 정권에 의해 거의 살인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이것이 구좌파의 왕따로 인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설사 한경오 내에 비문 혹은 비노적 성향의 기자가 있다고해도, 그사람들에게 전부 문재인을 지지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결국 문재인에 대한 구좌파의 왕따현상이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 일정하게 불공정했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해선 동의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현상의 반대급부로 인하여 노무현이나 문재인지지자가 계속해서 증가한 측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빠순이라는 개념을 분석한 강준만의 책에서도 드러나듯이 소위 ‘빠순이 문화’가 그렇게 나쁘게 만은 보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와 같이 보수일변도의 국가, 분단으로 두 체제가 대립하고 있는 국가에선 어느 한쪽을 경계하거나 지지하는 것이 왕따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경오의 모든 구성원들이 한경오이기 때문에 노무현이나 문재인을 지지해야 한다거나, 혹은 공격하면 안된다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 나는 한경오에서 박그네를 공격하거나 기존의 새누리당을 훨씬 더 압도적으로 많이 비판했다는 점은 변할수 없는 팩트라고 본다.
나는 노무현과 문재인을 지지한 사람들이 저자의 말대로 신좌파라고 각성하면서, 사상적으론 프랑스 6·8혁명에 뿌리를 두고 그들의 목적이라고 주장한 탈권위주의를 향해 가길 원한다. 한국의 경우 그동안 워낙 풀뿌리 조직, 시민조직이 허약했으니 어쨌든 자발적 시민조직이 늘어나는 것은 무조건 좋은일 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토양으로 해서 한국사회의 진보진영이 서로 변증법적 상호침투가 발생하고 통일이 된다면 더 바랄나위가 없겠다. 나는 저자가 다음 책에서는 진보의 연대와 협력을 위한 내용을 쓴다고 했으니 그것을 일단 기다려보고자 한다. 하지만 신좌파든 구좌파든 진보라는 타이틀 걸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가 필수적이면서, 대중들의 자발적인 조직결성과 일상정치, 지역활동에 대한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시민운동의 핵심은 노동운동과의 연계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러한 행위를 한마디로 ‘탈권위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인가의 논의가 남아 있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 어쨌든 나는 정치에서의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경제영역에서의 민주주의 심화 발전이 탈권위주의와 맞물려있다고 판단한다. 저자의 탈권위주의는 정치영역에 머물러있는 것이 아닌가 약간 미심쩍다. 계속해서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를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성장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해선 상당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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