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화이트헤드와 변증법

파랑새호 2017. 7. 18. 12:59

[과학과 근대세계], A.N. 화이트헤드 지음, 오영환 옮김, 서광사, 2008

[이성의 기능], 화이트헤드 지음, 도올 김용옥 옮김, 통나무, 1998


어떤 사람의 철학을 ‘유물론 - 관념론’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오히려 철학이나 사상의 발전을 가로막는 행위라고 봐야한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육체를 갖고 정신활동을 한다. 장자의 양생주 편에서 나오는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우리의 생은 끝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에는 끝이 없다.) 라는 구절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화이트헤드는 과학의 발전성과를 받아들이다는 면에서 예전의 방식대로 구분할 경우 유물론자이지만, 그러나 형이상학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활동이라고 본다.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인간의 정신활동, 소위 이성이라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본성이다. 이런 측면에서 종교는 무한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권리 같은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맨 먼저 17세 베이컨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갖고 있는 근대철학을 비판한다. 화이트헤드는 이것을 총칭하여 ‘과학적 유물론’으로 표현하는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기계론적 유물론’을 의미한다. ‘기계론적 유물론’의 문제는 1) 물질-정신의 이원구조, 혹은 내적동력-목적의 이원구조, 2) 인간의 심리적 요인, 정신적 요인에 대한 부정평가, 3) 유기적 통일성에 대한 시각 결여 등의 3가지로 요약한다. 이로인해 다시 부정적 영향 3가지가 퍼져버렸는데, 1) 기계적 결정론의 대세화로 인한 사상, 철학의 황폐화, 2) 인간의 부품, 부속품 화 3) 미래의 상실 등이 그것이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철학을 ‘유기체학설’이라고 부른다. ‘유기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내적 긴밀함을 갖는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심층생태학에서 주장하는 가이아이론도 크게 보면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거의 유사하다. 유기체라는 것은 사실 부분과 전체, 특수와 보편, 개별과 일반의 논리구조에서 주로 사용하는 변증법적 개념이다. 이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법에서 다루는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위의 두 저서에서 화이트헤드는 변증법을 자신의 철학주제로 다루고 있지 않으나 전적으로 일치한다. 이로인해 [이성의 기능]을 번역한 도올 선생은 헤겔의 유명한 명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화이트헤드의 사변이성과 헤겔철학의 핵심이 같다는 점을 언급하였다.(이성의 기능 341쪽)


그런데 화이트헤드 자신은 적어도 위 두 저서에서는 독일의 관념철학에 대해선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다. 독일의 관념철학을 제외하는 이유에 대해 [과학과 근대세계]에서는 1) 과학적 관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며, 2) 철학과 과학이 서로 주고받는 개념의 수정에 관한 한, 그 당시의 과학과 효과적으로 접촉했다고 볼 수 없기에 논의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하였다. 이같은 평가는 참으로 기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가지 관점을 그대로 적용할 수있는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예컨대, 데이빗 흄이나 심지어 버클리 주교의 철학에 대해선 아주 상세하게 언급하면서도 독일 관념론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의식해서 인가 화이트헤드는 [이성의 기능]에서는 ‘독일 관념론’의 범주를 상당히 제한한다. 즉 자신이 제외한 19세기 독일 관념론을 ‘신헤겔주의자’로 한정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헤겔 이후 헤겔좌파와 헤겔우파가 있었으며, 신헤겔주의자는 일반적으로 헤겔우파를 의미한다. 이런 한정된 설명을 접하니 또다시 떠오른는 의문은 바로 헤겔철학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평가인 것이다.


위의 두 저서에서 화이트헤드는 헤겔철학이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는 전혀 평가하지 않는다. 도올 선생은 [이성의 기능] 해설에서 화이트헤드의 또다른 저서 [관념의 모험]을 극찬하고 있으며, 나로서는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해 최종적인 단정은 내리지 못하겠다. 그러나 적어도 화이트헤드가 의도적으로 헤겔과 마르크스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도대체가 19세기의 사상을 논의하면서 어떻게 헤겔과 마르크스를 외면할 수 있겠는가? 화이트헤드는 19세기를 ‘당혹의 시기’라고 규정하고 일체의 사상적 흐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화이트헤드가 진지하게 언급하는 것은 진화론밖에 없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는 왜 헤겔과 마르크스를 일체 언급하지 않은 것인가? 나로서는 두 사람 철학의 핵심이 바로 변증법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화이트헤드는 자신이 주장하는 유기체철학과 변증법철학의 본질적 차이를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봤기 때문에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절대정신을 주장한 헤겔은 그렇다고 해도 헤겔 철학의 핵심이 변증법이라는 것을 주장한 마르크스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화이트헤드가 주장한 사변이성과 헤겔이 주장한 사변철학은 표현마저 사실상 같은 것이다. 이런 이유가 아니고서는 17세기 이후 서구의 모든 철학이나 사상을 검토한 사람이 헤겔과 마르크스를 일부러 제외한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표현방식이나 서술방식을 달리하여 자신의 유기체철학을 주장했으나, 이것의 본질이 사실상 변증법과 같은 것임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