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일본공산당의강령개정 비판

파랑새호 2020. 1. 22. 09:04

사회주의 재개발 – 레닌의 제국주의론과 등소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일본공산당의 강령개정에 대해 검토를 하면서, 사회주의 개념의 쇄신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비젼이며, 모델이고 프로젝트인 것인가. 핵심을 구성하는 이론적 모색을 일본에서는 전혀 하지 않고 있으며, 관심이나 열의도 없다. 학계만이 아니라, 공산당 조차 이런 임무와 과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거꾸로 소외되고 멀어져간다. “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다.”라는 명제를 제기한다면, 결국 사회주의 이념은 이런 것이고, 핵심은 이렇다라는 구체적인 논의를 해야만 할 것이다. 구체적인 논의를 제출하고, 논쟁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이번의 후와테쯔조가 제기한 강령개정의 방법론상의 논리, 즉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의 산물로서, 이를 전제로 중점을 둔 사회주의론을 제기한 내용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자 하는 입장에서, 필자 나름의 사회주의론의 착상이라는 시론을 서술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사회과학 이론은 어디까지나 변증법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마르크스 이후 사회주의에 활력과 현실적인 생명력을 부여하고 세계를 변화시켜온 지도자의 테제와 이론으로서 가치 있는 두 가지를 열거하고자 한다. 첫째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이고, 둘째는 등소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이다. 두 사람 모두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이었고, 전위당을 이끈 혁명가였다. 레닌부터 이야기해보자. 오늘날 레닌에 대한 부정적인 논의가 너무 많다고 느끼며, 이론가로서 의미가 묻혀버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다. 만일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없고, 러시아 혁명이 없었다면, 게바라라는 존재는 없을 것이고, 사회주의 이념과 열정을 전 세계 지식인들이 공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게바라는 세계속의 좌파아이콘이 되었으며, 상징으로 신봉받고 사랑받고 있다. 게바라가 생애 투쟁했던 적은 미제국주의였으며, CIA에게 살해당했다. 제국주의론이야말로 마르크스 이론을 서구세계의 한정된 틀에서 해방시키고, 전세계로 확대시켰으며, 세계의 지식인을 마르크스주의에 참여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핵심 개념은 “자본수출”이며(그리고 “노동귀족”), 이것은 마르크스 자본론의 이론적 변환으로서, 추가와 수정에 다름 아니다. 이런 개념으로 인하여 자본이 자행하는 착취와 수탈은 국경을 넘어서 확장한다는 점을 논증했고, 자본주의 운동과 모순은 지구상의 큰 문제로서 작용하여, 식민지화된 국가들의 소위 “피억압민족”이야말로 사회주의혁명의 주체가 된다는 인식을 확장시켰다. 저개발 국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인류사의 미래사회를 개척하고, 지구상에 이상사회를 구축하는 전위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도입한 것이다. 마르크스 자본론의 이론을 이렇게 대담하게 발전시키고, 마르크스의 동지를 세계로 확대시켰다는 점에서 사상가 레닌의 의미는 너무 큰 것이다. 물론 그것이 초래한 너무 거대한 비극과 재앙과 비참함을 보지 못해도 안될 것이다. 후와테쯔조는 오랜 시간 고전연구를 통해 레닌이 얼마나 자본론을 확장했는지를 서술해왔다. 최종적으로 레닌에 대한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한 후와테쯔조 자신도 자본론 연구자로서 레닌에 대한 존경을 감추지 않는다. 혁명적 이론가만이 혁명적이론을 알아본다.

 

등소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이것을 사회주의 지도자의 기념할만한 빅 프로젝트로서 평가하고,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버금가는 업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대체로 필자 외에는 없을 것이다. 등소평이 없었다면 사회주의가 되는 국가는 늘 가난하고 열악한 경제사회일 뿐이며, 꿈과 희망이 없는 비효율적인 사보타지가 횡행하는, 조악한 물품만이 남는 통제경제의 모습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실패와 빈곤과 자신감상실의 사회상인 것이다. 개인이 자유로운 발상과 능력을 개화시키고, 성공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풍요로운 인생을 영위하는 사회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화웨이의 5G로 상징적인 바와 같이, 첨단과학기술로 미국을 따라잡는 성과를 보이며, 20년 후에는 미국을 능가하는 GDP세계제일의 경제대국이 된다고 얘상할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도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카리스마 있는 등소평과 그의 제자 중국공산당의 노력과 성과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등소평은 중국인에게 자신감을 갖게 했다.

 

지금은 너무 자신감이 많아 오만한 점이 현저해졌지만, 아편 전쟁 이후의 굴욕과 분노를 불식시키고 중화의 자존심을 드높인 것은 확실하다. 또한 냉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세계에 미국에 종속하지 않고, 미국과 EU가 강요한 “자유주의”- 글로벌 스탠다드의 이름으로 신판 제국주의 = 신자유주의 –를 따르지 않아도 경제성장과 경제 발전은 가능하다는 실적과 진로를 제시했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내걸고 대항적 성공모델을 보여준 셈이다.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부에게는 소련형이 아니더라도, 경쟁력 있는 유의미한 사회주의 길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한 것이며, 정책노선의 대안확보를 제시해 준 셈이다. 지식인이자 혁명가였던 등소평은 어디까지나 독창적으로 마르크스 이후의 교과서에서 이탈한다는 점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하게 창조적인 발상으로 현실을 변혁시키고자 했으며, 지상을 이상에 가깝다고 해야 할 참신한 개념을 개발했다. 바로 일국 이체제가one country two systems 그것이다. 등소평의 대담한 지도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언어가 현실 속에서 일정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얼마나 상대화될 수 있는가를 알려주었다.

 

등소평의 도전은 사회주의 개념의 재개발이고, 이의 성공은 자본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획기적인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레닌과 등소평, 사회주의자라면은 두 의미있는 역사를 새겨야 할 것이다. 엄청난 희생과 부작용을 안고 있으나, 원래 불완전한 태생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항해를 하면서 이념의 나침반에 의지해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일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인간이 꿈을 쫒아가면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행위이겠지만,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작업도 있어야만 할 것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도, 일국이체제도, 지도자로 인한 상상력의 비약이고, 새로운 개념의 형성이다. 늘 주어진 현실이 있고, 살아가는 민중이 있으며, 정치가의 책임이 있다. 정치의 현장과 사회의 모순이 있고, 현장은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배경으로 한다. 교과서의 말만으로 사태를 총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술리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러시아에는 러시아 혁명방식이 있고, 자본론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중국의 현재를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르며 비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런 식의 규정과 평가만으로 좋을 것인가.

 

80년대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는 오오츠카 히사오(大塚久雄)의 이론을 모델로 한다. 일본에서 배운 경제시스템과 사회형성의 구현활동인 것이다. 이것이 부드럽게 발전하지 못하고, 2000년대 초반부터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악성표상이 되면서 너무나도 조악하고 경직된 국가주도형 신자유주의적 구조체와 운동체로 변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아울러 일본의 악영향도 있다는 점, 우리 일본인은 이런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https://critic20.exblog.jp/30680401/?utm_source=exblog-webpush&utm_medium=pu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