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의심스러운싸움(존스타인벡)

파랑새호 2020. 2. 7. 09:34

[의심스러운 싸움], 존스타인벡 장편소설, 윤희기옮김, 열린책들, 2009년 세계문학판 1쇄

 존 스타인벡의 작품은 처음 읽어보았는데, 만일 이런 내용이라면 유명한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나는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읽은 지 하도 오래되어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받았던 [어머니]라는 소설의 러시아 노동자들은 교양있고, 정이 많지만 전투적이다. 존 스타인벡이 그리는 1930년대 미국의 노동자들은 무식하고, 질서가 없고 분노만 가득 차 있다. 또한 1930년대 미국의 공산당원들은 동시대에 활동했던 유럽이나 혹은 조선이나 일본의 공산당원들과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이것이 저자의 주관일수 있겠지만) 1930년대 유럽이나 동양의 공산당 활동가들은 보편적으로 지적이고 치밀하다는 느낌이 많다. 반면 미국의 공산당원들은(입당과정 자체도 그렇고 입당후의 교육도 그렇고) 사실상 위 미국 노동자들의 특징과 거의 차별성이 없다.

미국이라는 곳에서는 1886년 저 유명한 헤이마켓 투쟁이 있었으나, 발포로 시위를 무력화시킨 바 있다. 1906년에 발표한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이라는 소설에서도 보면 당시 이주노동자였던 주인공이 해고되는 과정에서 “조합”의 필요성이나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물론 당시 미국자본주의의 천박함이나 도축장 노동의 반인간 반환경성에 대한 신랄한 묘사에 비중이 많다보니 전반적인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조직과정 자체가 비중이 별로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대중조직이 상당히 강력하다는 점을 역시 묘사했다. 발포를 하고,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대중조직이 있고, 반사회주의 문화가 가득 찬 곳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노동운동을 하려면 거의 목숨을 내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20세기 중후반까지 살았던 유명한 사회주의자 스콧니어링의 경우, 위의 특징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스콧니어링은 “나는 사회변혁을 이루는 길 중에서 폭력, 증오, 공포, 강제 등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값비싼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커다란 손실을 가져오고, 더 이상의 진전도 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나는 폭력과 관계된 일체의 행위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스콧니어링의 주장에 대해 [의심스러운 싸움]의 주인공 맥과 짐은 사실상 정반대의 경우라고 봐야 한다.

번역자는 [의심스러운 싸움]에 대해 “명분없는 싸움이 야기한 한 비극”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명분없는 싸움”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주인공 노동자들은 농장주들이 일방적으로 임금 삭감을 결정해서 파업을 벌인다. 이것이 왜 명분없는 싸움인가? 번역자의 판단이 명분없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 [의심스러운 싸움]이라는 것은 내가 볼 때 주체적 관점에서의 “의심스러운 싸움”이다. 과연 이길 수 있을지, 이길수 없다면 왜 싸우는 것인지, 파업과정의 국면마다 준비하고 진행해야할 내용들에 대해 의심스럽기 때문이다.